#099
선호작품 등록/취소
알림 등록/취소
빛과 그림자
규태는 오장우와 협의를 거쳐 중국투자를 확정했다.
소프트뱅크와 타이거 펀드, 기룡증권이 각각 동일한 금액을 투자해서 중국투자 펀드를 만들고 운영은 소프트뱅크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오장우가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규태가 당부했다.
“아직은 조심해야 합니다. 한국정부를 크게 신뢰하지 말고요. 의심스러우면 황이사에게 말을 하세요.”
대통령의 아들이 소통령소리를 들으면서 설쳐대기 전이지만 이미 시작은 했을 것이다. 아들을 도운 자들 중에는 정보부 소속도 있었다.
무거운 표정으로 오장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자금문제로 점점 한국정부의 압박이 거칠어졌다.
규태가 전생에서부터 초지일관 지켜온 규칙은 일은 잘하는 놈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쥐뿔도 모르는 놈이 아는 척 나서서 설쳐대면 될 일도 안 된다. 그래서 밑에 두는 부하들은 시간을 두고 검증하고 이를 통과한 이들에겐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많은 연봉과 담당하는 업무에 대한 전권부여같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바랄 지원을 해주었지만 꼭 쥐새끼들이 나타나는 법이다. 저절로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지만 애써 참으며 되물었다.
“젠장! 이게 사실입니까?”
믿어지지가 않아서 규태가 되물었다.
“하나하나 전부 검증작업을 완료했습니다. 홀딩스에 하나, 타이거 펀드에 둘입니다. 타이거 쪽은 미인계와 금전을 동원한 회유전략인데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보안책임자인 해롤드 카이의 말에 규태는 이마를 움켜쥐었다.
“하나같이 문제로군요. 이렇게 까지 집요하게 파고 들었을 줄은 몰랐는데요.”
“보안의식이 아직까진 자리를 잡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월가의 탐욕을 우습게보시면 안 됩니다.”
그들이 노린 것은 타이거 펀드의 투자내역과 지분구조였다. 비상장사라 철저하게 기밀을 유지하는 것들이었다.
규태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하긴 나도 월가 몇 군데 펀드의 투자내역을 까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어요.”
정확하게 콕 찍어 말하자면 워크서, 그곳이라면 한번 투자내역이 어떤지를 정확하게 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수십의 직원을 거느린 상층부는 철저한 보호를 받고 있어서 정확한 내역을 알기란 불가능했다.
게다가 수시로 투자내용이 바뀐다.
“처음에는 가볍게 투자정보를 그 다음에는 계속해서 약점을 잡고 후일에 더 큰 것을 노리는 방식입니다.”
“가짜 장부나 증언조작 같은걸 말하는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회사를 무너트릴 작업을 미리 시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법원과 검찰, 내부에서 매수된 직원까지 한순간에 회사를 무너트리겠다는 수작이다.
외부세력이 집중적으로 노린 곳은 홀딩스와 타이거펀드였다. 그중에서도 홀딩스의 직원인 폴 몰리터의 행적이 의심스러웠다. 보안 팀에서 철저하게 조사해서 뒤를 밝혔다.
“폴은 입사 전부터 노리고 들어온 것 같습니다. 타이거펀드에 직접 들어가면 좋았겠지만 그시기에 타이거펀드는 직원을 뽑지 않았으니까요.”
“폴의 배후가 어디일 것 같습니까?”
“다른 직원들은 잡다한 쪽이지만 폴의 배후는 아마도 모건 쪽인 것 같습니다. 모건쪽 인물들과 접촉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빌어먹을 놈들.”
규태가 리만을 노린 건 그나마 2008년에 파산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모건 같은 쥐새끼들은 위기가 오자 그걸 기회로 삼아서 더욱 힘을 키웠다.
잡아먹히는 메릴린치나 베어스턴스는 그들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미치지 못하는 곳들이다.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단결력이 공고한건 아니지만 이익이 걸렸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잠시 고민하던 규태가 결정을 내렸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조용하게 처리하세요. 법적인 처리절차를 밟게 되는 건 놈들이 바라는 바일 테니까요. 경고도 되겠지요.”
“알겠습니다.”
해롤드는 규태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했기에 잠시 흠칫 했지만 이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에 직접 연관된 직원인 폴은 사고로 처리하게 될 것이다. 나머지도 죽지는 않겠지만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퇴사할 정도의 부상을 입게 될 것이고
‘멍청한 놈들 사주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해롤드는 혀를 찼다. 겉으로 보기에는 규태는 호구처럼 보일정도로 직원들에게 베풀었다. 막대한 급여와 보너스, 업무에는 최대한 자율을 보장하는 근무환경.
리만과 다저스를 인수하고 터너의 TBS에도 투자해서 미디어 왕국을 건설해 나갔다.
완벽한 성공가도를 달리는 젊은 투자 천재의 모습이지만 그 이면에는 더러운 전쟁도 눈 하나 까닥이지 않고 치룰 배포가 숨겨져 있었다.
때로는 수많은 격전장을 거친 해롤드가 놀랄 정도로 규태는 뒤처리에 거침이 없었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홀딩스가 운영하는 회사는 하나 더 있었다.
회사에서도 극히 소수만이 알고 있는 투자였다.
PMC(Private Military Company)라 불리는 민간군사기업을 홀딩스가 인수하고 키웠다.
서부아프리카를 거점으로 움직이는 회사는 800명이 넘는 정식직원을 두고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
필요할 때마다 고용하는 비정규직원까지의 숫자를 합쳐는 2천명이 훌쩍 넘어갔다.
서부아프리카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오메가 시큐리티(Omega security), 그중에서도 비밀리에 운용되는 특수 팀은 숨겨진 타이거의 칼이었다.
***
박빙
올스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서부지역의 순위는 1위 자리를 놓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LA 다저스의 순위다툼은 말 그대로 치열했다.
82경기를 치룬 결과가 두 팀이 52승 30패로 동률이었다.
전반기 마지막경기인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를 VIP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규태는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삼진을 잡으며 포효하는 리베라를 보며 일어나 박수를 쳤다.
정석적인 승리공식, 리그 최고수준의 선발투수와 중간계투진, 뽑을 점수는 확실하게 뽑아주는 타선의 지원, 결코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 확실한 마무리 투수.
새파랗게 젊은 마무리 투수 리베라가 삼진을 잡고 주먹을 쥐며 기뻐하는 모습은 다저스가 전반기 내내 이루어내려 애쓰던 모습이었다.
5:2의 승리도 승리지만 이젠 루키들이 완벽하게 자리를 잡고 제 기량을 맘껏 펼치는 것 같아 규태의 마음도 후련했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던 애틀랜타의 일방적인 독주라던 내셔날 리그 서부의 선두다툼은 여전히 안개속이지만 규태는 터너와의 내기에서 이미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루키들이 많은 팀특성, 주전 포수인 마이크 피아자나 외야수 라울 몬데시, 투수인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리베라까지 전부 올 시즌이 풀로 뛰는 첫 시즌이었다.
오늘의 승리투수이기도 한 페드로는 자그마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체인지업을 던지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원래보다 훨씬 바르게 성장하는 걸보면 매덕스와 함께 붙여 놓은 게 잘한 일인 듯 싶었다.
긴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에서 체인지업을 가장 잘 던진 뛰어난 선수를 꼽는다면 매덕스와 페드로다.
아직 전성기처럼 공이 날아오다가 유령처럼 사라지는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완성되기 시작한 페드로의 체인지업은 타자들에게 공포였다.
실투로 홈런 하나를 맞았지만 7이닝 1실점으로 끝내고 승리투수가 된 페드로는 후반기에도 빼어난 활약을 해 줄 것이었다.
함께 경기를 지켜본 제리와 함께 단장실로 들어서니 냉방을 하지 않아서인지 후덕 지근했다.
“한잔해야지? 버번, 위스키?”
“위스키로.”
이따금 단장실에서 한잔을 하는 제리였기에 숨겨둔 술이 꽤 양이 되었다.
제리가 가져다준 위스키 한잔을 조심스럽게 마셨다. 코를 찌르는 향기, 제리가 즐겨 마시는 제임슨 12년산의 독특한 향기가 코와 입안에 가득했다.
“후반기에는 더 잘할 수 있겠지?”
“아무래도, 밑에서 올려달라고 거칠게 시위하는 놈들이 둘이나 있잖아.”
“그 녀석들? 성적은 좋나?”
“알렉스가 4할에 가까운 타율에다 15개의 홈런을 때렸어 블라디미르는 3할 7푼에 홈런 12개. 더블 에이를 초토화 시키고 있지.”
예상처럼 빠른 성장이었다.
“수비는?”
“알렉스는 나무랄 것 없는데 블라디미르는 아직 조금 불안하기는 해. ‘
“3루로 바꾼 게 일 년 정도 되었으니 아직 올 스타급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지.”
제리에게 이들 내야진을 구성하면 올 스타급이라고 이야기 한 게 규태였다. 그래서 잔뜩 기대하고 잇던 제리에게 블라디미르의 수비는 조금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질 것이다.
블라디미르 게레로하면 동물적인 반사 신경과 강한 어깨를 가진 야구선수가 아닌가.
“언제 올릴 생각인데? 내가 서비스타임 같은 건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지.”
어지간한 구단이라면 연봉 때문에 마이너 선수들을 올리려면 날자 계산하기 바쁘지만 규태는 애초부터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역시 부자 구단주가 있으니까 걱정이 없어. 다음 달쯤에 올릴 생각이야.”
“구단 역사상 최연소인가? 블라디미르 말이야?”
“둘이 동갑이야, 알렉스가 7월로 블라디미르보다 어릴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반년 만에 메이저라 빠르긴 하군.”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소리지. 블라디미르를 처음 보고도 놀라웠지만 알렉스 녀석도 만만치 않은 재능이야.”
구단에서 큰 기대를 하는걸 아는 지 둘의 경쟁 심리도 대단했다. 다행스럽게 둘의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주전 자리를 주지는 않을 생각이야. 천천히 키워가야지.”
“그거야 당연한 소리고, 그래도 타격에는 워낙 재능이 있는 놈들이니까 빠르게 자리를 잡겠지.”
“어떨 것 같아?”
“뭐가 말이야? “
뜬금없는 소리에 규태가 되물었다.
“터너하고 내기를 했다면서?”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내기를 말하면 부담이라도 줄까 싶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오히려 제리가 묻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터너의 입은 너보다 가벼우니까.”
잠깐 잊고 있었지만 터너의 입은 가벼운 정도가 아니었다.
“제기랄, 너한테 부담이 될까 싶어서 말은 안했지만 사실이야. 터너하고 이번 시즌 우승팀 내기를 했지.”
“터너에게 뭐를 요구할건데?”
“톰 글레빈을 달라고 할까 생각했지만 그건 욕심이겠지?”
“무리야 무리, 받아와도 꽉 찬 선발진에 넣을 곳이 없어. 랜디도 이젠 에이스급이라고. 거기에 페드로도 성장이 빨라.”
어지간한 단장이라면 톰 글레빈정도의 투수를 받아오는 걸 마다하지 않겠지만 제리는 자체 팜에서 키운 랜디와 페드로에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고민을 좀 해봐야겠네.”
터너가 내기를 건건 매덕스를 욕심내어서였다. 당연히 내어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말이다.
제리의 사무실에서 위스키 두 잔을 마시고 LA의 집으로 돌아온 규태는 해롤드의 전화를 받았다.
타이거 홀딩스의 직원하나가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