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블레이드(5)
서걱.
단단하기 그지없던 개폐문이 단숨에 베여 나갔다.
그와 함께, 일련의 무리가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막아!”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는 군인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쏘아지는 총탄을 정면에서 모두 회피하거나 혹은 검을 휘둘러 튕겨내며.
민첩하게 달려들었다.
촤악!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새하얀 복도와 벽면에 군인들의 피가 흩뿌려졌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짓밟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검과 총이 맞붙음에도, 우습게도 그 결과는 검의 승리였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었다.
총을 든 자가 약자이며, 반대로 검을 들 자격이 있는 자들이 더욱 우위에 서는.
그런 역변한 마나의 시대 말이다.
뛰어난 기량을 지닌 마나 사용자들은 흉기 하나 쥐지 않은 맨몸일지라도 능히 수십의 사람을 도살할 능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하물며 두셋이 모이면, 능히 각성자와도 맞먹을 만한 전력을 지닌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콰직.
그들은 이미 쓰러져 피를 흘리는 군인들에게마저 손속이 없었다.
미약하게 숨을 내쉬던 이들에게조차 가차 없이 검날을 내리꽂았다.
그 모습을 뒤따르며 지켜보던 유성이 입을 열었다.
“불필요할 정도로 철저하군.”
“그럴 수밖에.”
블레이드는 태연히 응대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질척한 핏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우리들은 정당한 복수를 이행하는 거다. 이들은 우리를 억압하고 가뒀지. 같은 인격체로 대우하기보단, 전투를 위한 병사로 키워냈을 뿐이다. 고문도 서슴지 않고 벌였어.”
블레이드의 눈에 비친 것은 진득한 살기였다.
그 기류가 마치 연기처럼 새파랗게 기류를 일으키며 물씬 새어 나왔다.
유성은 그에 대해서 어떠한 응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무심히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을 뿐이다.
그의 눈에 곳곳에서 프로젝트 블레이드 시리즈의 클론들이 필요 이상의 살인을 저지르는 광경이 보인다.
저 복도의 반대편에, 군인의 목을 붙잡고 있는 아서가 보였다.
녀석은 사나운 살기를 분출하고 있었다.
“개 같은… 자식들.”
뿌득!
아서는 욕설을 지껄이며 제 손에 붙잡힌 군인의 모가지를 꺾어버렸다.
손에 힘을 주자, 그 단단한 사람의 척추뼈가 종잇장 우그러지듯 꺾였다.
일렁이는 눈길에 살의가 베어 나왔다.
이들의 행동 양식에 지독한 감정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곳곳에서 분노에 찬 학살의 광경이 여지없이 펼쳐졌다.
유성은 그 단적인 행동들만으로도, 이들이 어떠한 대접을 받아왔는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나와는 영 반대되는 삶을 살았던 녀석들이로군.’
지구 시절의 마나 사용자들은 인류의 희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하나하나가 지극히 희소하며 막대한 가치를 지닌 파일럿들이었기에.
사람들은 부상당한 마나 사용자들을 살려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제 몸을 내던졌다.
그것은 유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투를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쳤던 자신을 살리기 위해 자폭을 택했던 이들을 여럿 보았다.
왜냐는 이유나 설명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이시혁. 그는 존재만으로 그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각성자들은 인류의 명줄이 이어질 거라 믿는 상징체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구하고 대신 죽는다는 것을 희생이라 생각지 않았다. 다만, 인류의 내일을 잇는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자연히 유성의 사고 전반에는 동료애와 나가 싸운다는 의식이 깔리는 것 또한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끝없는 전투에 내던져졌음에도 몇 번이고 싸우기만은 포기하지 않았던 데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그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복수심인가.’
하긴, 그런 걸 생각할만한 때는 아니다.
이 순간에 이어가기에는 쓸데없는 생각일 뿐이었으니까.
담담히 이들의 내면을 가득 채웠을 감정을 읽어낸 그가 물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이런 식으로 시간을 소요할 필요는 없을 텐데. 불필요한 학살극이나 저지르다 도망치면 어쩌려고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거지? 이미 소장의 귀에도 이 모든 상황이 들렸을 거다.”
“걱정 마라.”
그의 말에 블레이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여기에 뒷문 따윈 없다. 여긴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온갖 실험을 받던 장소야. 쉽게 말해 안마당이나 다름없지.”
“…….”
휙! 푸욱!
그는 말을 하면서도, 정확하게 물러서는 군인을 향해 검을 내던져 박았다.
여유로운 기색과 함께 그들은 철저하게 살육을 자행하며 나아갔다.
중간에 눈에 띄는 이가 보인다면, 누구 하나 살려두지 않았다.
유성은 그러한 행위를 막지 않았다.
불필요한 행위나 마찬가지였으나, 그럼에도 그것이 이들의 선택이라면 말이다.
‘이들의 복수가 오로지 이곳에서만 제한된다면 구태여 막을 필요가 없다. 아니,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관여할 이유가 없으니까.’
유성은 철저한 외부인이었다.
살육을 행하고, 그것을 감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들의 자유 의지였다.
그것에마저 그가 관여할만한 자격은 없었다.
신 연합 세력 내부에서 벌어진 일은.
오로지 그들 자신이 마땅히 감내해야 할 결과물이었으니.
* * *
쾅!
격벽이 폭발하듯 비산했다.
피어오른 먼지가 매캐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을 뿐이다.
이내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자.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어느 누구의 보호도 받지 않은 채로.
유성은 남자에게서부터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도, 그가 바로 예의 소장임을 알아차렸다.
남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그에게서부터 물씬 풍겨왔다.
소장. 그는 환한 얼굴로 양팔을 펼치며 등장한 이들을 맞이했다.
“내 자식들이여!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구나.”
그 말에 대답하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정면의 블레이드를 필두로, 여덞 명의 클론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서 검을 겨누었다.
블레이드가 잠시간 주변을 둘러보다, 이내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카쉬파는 어디에 있지? 본래라면 네 옆에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카쉬파?”
소장은 히죽 웃었다.
안경에 전등 빛이 반사되어 눈부신 반사광이 번들거렸다.
그 모습에 블레이드가 소리쳤다.
“말해라, 소장!”
“하하하!”
거듭되는 그들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는 놀랍도록 태연한 목소리로 손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거기에 있지 않나?”
그 말에, 모두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드라칸의 핵이었다.
풍겨오는 진득한 마력이, 푸른 기류와 함께 마치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만, 기이하게도 그 형상은.
드라칸의 그것이라고 하기보다는 흡사 인간의 심장과 비슷한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어, 어….”
아서가 서서히 입을 벌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장과 드라칸의 핵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그의 눈에 내비친 것은 충격, 혹은 당황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목소리를 떨었다.
“서, 설마 저기 있는 저게-.”
“그래.”
소장은 히죽 웃었다.
그의 새하얀 치아가 전등빛에 반사광을 드러냈다.
“하! 너희들은 인간이 아닌 인조 드라칸이다! 한낱 인간도 아닌 장난감 놈들한테 베풀어줄 자비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주인을 무는 개는 도살 처분이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즉시 격분한 아서가 놈을 박살내려는 듯이 새파란 기운을 일깨웠지만, 블레이드가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잠시 기다려라.”
“뭐? 미쳤어, 블레이드?”
“저 녀석은 어차피 오늘 중으로 죽는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하지만 저 새끼가 카쉬파를…!”
아서는 즉각 반발했다.
그가 유난히 이전 세대에 비해서 그나마 차분한 성정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카쉬파의 존재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녀석에게 카쉬파는 지긋한 선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반박하는 아서의 모습을 노려보는 블레이드의 눈에서는 새파란 살기가 번들거렸다.
“녀석을 죽이는 건 분명 네 녀석에게 맡긴다고 했을 텐데. 지금은 기다려라.”
“크읏!”
그 말에, 아서는 이를 악물었다.
형편없이 구겨진 표정에서 진한 불만감이 내비쳤지만, 이내 그는 홱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것은 대답은 없었으나 그 나름대로의 수긍이었다.
소장은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충 대화가 끝난 것 같은데. 이제 내 쪽에서 물어봐도 괜찮겠나?”
말문을 여는 그의 시선은 무리의 가장 앞에 선 이에게로 향해 있었다.
새카만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유성에게로였다.
소장의 시선에는 짙은 흥미가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이 현실이 어떠한지조차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놀라우리만치 태연했다.
“저 녀석은 누구지?”
“왜, 알고 싶나?”
“그렇다마다.”
블레이드의 반문에,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여기까지 너희들이 올 동안, 남들은 다들 분기에 차서 미쳐 날뛰는 동안 유일하게 혼자 서 있기만 하던데. 마치 전혀 주변 상황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지.”
카쉬파가 죽었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클론의 수는 분명 아홉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인원의 수는 열이다.
그 말인즉슨 한 명은 틀림없이 소장이 만들어낸 이가 아닌 외부인이라는 소리였다.
그가 관심을 드러낼 만도 했다.
곧, 그의 진한 흥미와 관심에.
이제껏 침묵하던 유성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알고 싶나?]
“그야 물론.”
소장이 히죽 웃어 보였다.
낮게 변조된 음성은 사뭇 귓가를 긁는 듯한 거친 소음이었지만, 그는 하등의 신경을 쓰는 듯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예전부터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궁금한 게 있다면, 끝끝내 해결을 보는 타입이었다.
물론, 유성으로서도 그의 관심은 적잖은 청신호였다.
오히려 그 또한 바라는 바였다.
그를 위해서 구태여 귀찮음을 무릎 쓰고서 이런 모습을 취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알고 싶다면. 보여주도록 하지.]
스윽.
그는,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벗어 내렸다.
“…뭐야.”
그리고 그 결과는.
태연하기 그지없던 소장의 미소에, 금이 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동공에 파문이라도 일은 듯 강렬한 흔들림이 일었다.
“너, 너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남자.
유성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드리웠다.
“잠시 대화의 시간을 가지자고.”
* * *
[2번 함 갑판 비어있습니다, 보스! 그쪽으로 내리십쇼!]
“오오냐.”
쿠웅!
들려오는 안내 지시에 따라.
그녀는 기가스를 움직여 2번 전함의 갑판 위로 내려앉았다.
시커먼 우주 함정의 갑판 위로 정박한 기가스.
기체의 외형에서는 오래된 격전의 흔적이 여기저기 엿보이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터였다.
기가스 EF-06.
한때 연합의 신기체로서 이름이 높았던 기가스였지만,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이미 그것은 오래된 유물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하아암-.”
그녀는 긴 하품을 내보였다.
태도에서부터 보이는 진한 느긋함이 있지만, 사실 그녀는 불과 수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격전지의 한복판에 투입된 이였다.
치직-.
그때, 통신 채널이 켜지더니 왠 불량한 차림새의 애꾸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나저나 보스.]
“뭔데, 말해봐.”
그는 하품을 쩍쩍 해대는 보스를 보며 말을 이었다.
[보스가 말하던 그 연구소 시설 있잖습니까.]
“어, 그런데.”
[방금 전 그 시설이 폭발했다 합니다. 대장이 언젠가 말했던 소리 있잖소, 그게 고스란히 실현되었다더군요.]
“…뭐?”
들려오는 난데없는 소식에.
빌객스의 미간이 모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