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블레이드(2)
고오오오-.
대치하듯 마주 보고 선 두 기의 기가스.
그들의 개폐문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열리더니, 두 파일럿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다.
멀리서 서로를 잠시간 관찰하는 듯하던 그들이 차례로 지상에 탁 떨어져 내렸다.
기가스의 높이는 상당한 편이었다.
비록 어느 정도 자세를 낮추었다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 정도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문제없이 착지했다.
“…….”
유성은 자신의 앞에 선 상대 파일럿, 블레이드를 응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나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클론인가.’
유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닮았군.’
과연, 정말로 닮았다.
단지 형상만이 그러하다는 게 아니었다.
블레이드.
녀석은 여러모로 그와 닮은 ‘분위기’를 선명할 정도로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전반적인 외형이나 기세만이 아니라, 마력의 형질마저도 놀라우리만치 차고 서늘했다.
마치.
마치, 유성 그처럼.
마력의 풍겨오는 형질에 민감한 이라면 어쩌면 틀림없이 눈앞의 저 블레이드라는 남자를 유성 본인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를 정도로.
‘메타트론의 모두가 날 이상할 정도로 경계하던 이유가 이거였나. 확실히 이 정도라면 나라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겠어.’
그리고 유성이 그러하듯이.
상대인 블레이드 또한 그를 탐색하고 있었다.
마주 보고 선 파일럿, 블레이드는 땀에 젖어 무거워진 머리칼을 흔들어 털어내고는 입을 열었다.
“이봐. 너.”
“뭐지?”
“헬멧 정도는 벗지그래? 얼굴을 마주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꽁꽁 싸매놓고 가리고 있으면 되겠어?”
그 말에 유성이 웃었다.
지금 그는 파일럿 헬멧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얼굴을 드러낸다면 꽤나 놀랄 텐데, 정말로 괜찮겠나?”
“그런다고 해서 내가 놀랄 일은 없다. 애당초 난 태어나던 순간부터 어떤 빌어먹을 인간에 의해 의도적으로 일부 감정의 영역이 거세되어 나오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거든.”
“흠. 보고서 놀라지나 말라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유성으로서도 친히 대응해줄 필요가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대체품인 블레이드의 반응을 한 번쯤은 확인해볼 필요는 있을 터였다.
스윽.
유성은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있던 헬멧을 천천히 벗어 내렸다.
그러자-.
처음에는 언뜻 차분하게만 보였던 상대, 블레이드의 동공이 조금씩 커지더니.
이윽고 감출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모습을 드러내어 보였다.
“너, 너는…?”
블레이드의 음성은 미약하나마 분명히 떨려왔다.
자신의 놀람을 주체하지 못함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유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을 것처럼 하더니, 뭘 그리도 놀라?”
하지만 여전히 블레이드는 차분함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더듬거리는 음성과 함께 물어왔다.
“너, 너는. 정체가 뭐냐.”
“유성이다.”
* * *
쏴아아아.
블레이드는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다. 유성은 3년 전에 죽었어.”
“그렇게 생각하나?”
“당연한 소리이지. 무려 수도의 삼분지 일이 날아갈 정도의 방대한 폭발이었다. 그만한 폭발에서는 그 대단하다는 유리 엘 바이어스조차 버텨내지 못할 거다.”
유성과 블레이드는 꽤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
흐르는 물줄기를 응시하며.
그들은 서로를 죽일 듯한 기세로 맞섰던 이전의 모습 따윈 온데간데없는 차분한 기류를 유지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아.”
블레이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말했다.
“네가 정말로 네 주장처럼 유성이든. 아니면 그게 아닌 다른 녀석이든 간에 상관없다. 그 일면이 일단 확인된 이상에는 더 이상 우리에게는 대처할 방도가 없으니.”
“그게 무슨 말이지?”
대처할 방도가 없다는 것은 꽤나 의아한 소리였다.
이번만큼은 유성도 단번에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적이었다.
최소한, 적이라고 한다면 죽기 전에 조금의 저항이라도 해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오래전, 유성이 아닌 이시혁이었던 시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없는 전쟁에 몸을 내던졌던 그 자신처럼 말이다.
하지만 곧 유성은 깨달았다.
그는 블레이드의 기세가 황당할 정도로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의 녀석에게는 더 이상 싸울 생각 자체가 없었다. 확실하다.
“태연하군.”
“그럴 수밖에. 네가 유성이든, 아니면 그게 아니든지 간에 그 일면이 확인된 이상 우리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대처할 방도가 없다. 설령 네가 당장 달려들어 검을 휘두른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검을 휘두른다고 할지라도?”
그 말만큼은 조금 의외였다.
적대감을 보인다 해도 대처할 생각조차 없다는 건가.
하지만 오히려 블레이드 본인의 태도가 더욱 기이했다.
그는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되려 코웃음을 쳤다.
“네가 정말로 그 폭발에서 살아남은 유성이라고 해봐라. 그렇다면, 족히 3년여의 시간 동안 더 성장을 했단 건데, 나나 아서 ‘따위가’ 감히 상대조차 될 것 같나?”
“과장이 심하군. 따위라니.”
“그럴 수밖에. 알려지기로도 이미 마나 능력을 각성한 지 불과 십수일 만에 완전체와 대적할 정도의 능력을 손에 넣은 게 그 유성이라는 인간이었다. 녀석의 영상은 이미 연합 양쪽 세력 모두에게 널리 퍼졌을 정도로 유명해졌지. 그런데 네 말처럼 네가 진짜로 그 녀석이라 한다면, 그 3년 동안 얼마간의 성장을 더 했을 것 같나?”
유성은 블레이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차렸다.
지금 녀석은 불과 십수일 만에 완전체와의 대적.
그것은 바로 오래전, 그가 콜로니의 붕괴 시절에서부터 탈출하며 마주쳤던 예의 그 순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영상이 결국 연합 전체에 흘러 들어간 건가.’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블레이드 말처럼 진실로 3년 동안은 아니긴 했지만, 과거 지구 시절로 돌아간 그는 적어도 수개월 이상치 분량의 성장을 이뤄냈다.
어떤 식으로든 나름 소폭의 성장치는 분명 있었다.
예전의 그와 비교한다면, 확실히 규격 자체가 전혀 달라졌다.
그러니 처음부터 꼬리를 마는 블레이드의 생각도 영 틀린 게 없기는 했다.
이번에는 유성 쪽에서부터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또한 의문인 것 같은데. 물어봐도 되겠어?”
“괜찮다. 말해.”
블레이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꺼릴 것 없다는 듯 분명한 수락이었다.
“내가 유성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다는 말은, 또 뭐지?”
“말 그대로다.”
하지만 오히려 유성은 미간을 좁혔다.
그는 이마를 모으며 물었다.
“…이해가 도통 가질 않는데.”
“한 번 생각해 봐라. 네가 진짜 유성이 아니라면, 비슷한 녀석이 나올 만한 다른 나머지 하나의 출처는 어디지?”
“출처?”
그 말에 유성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잠시간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이내 알아차렸다.
녀석이 무얼 말하는지 깨달았다.
그 답은 하나뿐이었다.
지금 유성의 앞에 있는 블레이드.
그것이 그 힌트였다.
“내가 진짜 유성이 아니라 한다면. 그건 아마도 연구소에서부터 찍어낸 새로운 클론이라는 소리겠군. 너나 아서처럼.”
“그래.”
블레이드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거다. 결국, 전자의 경우는 우리가 싸워 이길 힘이 없으니 싸울 엄두도 못 내겠다는 소리인 거고, 후자의 경우라면 애당초 같은 편이니 싸울 이유조차도 처음부터 없다는 거지.”
그러다 돌연 피식 웃음을 흘리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힌트를 줘야 눈치채는 것을 본다면 적어도 후자는 아닌 모양이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정말로 전자인 건가. 빌어먹을 일이로군. 하하!”
녀석은 소리 내어 웃었다.
다만 그것이 정말로 즐거워서가 아니라는 것쯤은 유성이라도 쉽게 눈치챌 수가 있었다.
이해한다.
자신의 목숨줄을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이 온전히 쥐고 있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소리가 아닐 테니까.
지금 녀석에 대한 처분권은 온전히 유성에게 있었다.
“하.”
마찬가지로 피식 웃음을 흘린 유성이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널 없애려 든다면? 그때에는 어떻게 할 거지? 정말로 얌전히 죽어줄 건가?”
“하하! 농담하는 건가?”
녀석은 코웃음 쳤다.
“물론 정말로 저항을 하지 않을 것은 아니지. 나도 내 목숨이 소중하기는 해서 말이야. 하지만-.”
잠시간 말꼬리를 늘어트리며, 유성의 위아래를 살피는 듯하던 녀석이 말했다.
“그게 오래 갈 것 같지는 않군. 내 손에 총이 있기는 하지만…. 네가 지금처럼 맨손이라도, 내가 도저히 이길 것 같지가 않아.”
그 말대로였다.
지금 유성의 손에는 총 한 자루, 검 한 자리조차 들려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완전히 무방비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마력으로 강화한 그의 신체는 총알마저 튕겨낼 정도의 단단함과 예리함을 겸비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예전, 테라의 모든 체계가 멀쩡하던 때.
그 시절에만 하더라도 마나 사용자들은 모두가 연합의 소속 아래에서 나름의 관리를 받았었다.
실제로 유성은 마나 능력을 일깨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조차 총알을 가볍게 튕겨낸 적이 있었다.
마나 사용자들에게는 모두가 그만한 위력을 내보일 잠재력이란 게 존재했다.
턱.
유성은 녀석, 블레이드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녀석이 순간,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고오오-.
유성은 푸른 안광을 빛내며 물어왔다.
“그렇다면 내가 너희들을 통제하려 든다면 어떡할 거지?”
“하, 하. 그렇게 나오는 건가.”
블레이드는 쓰게 웃어 보였다.
죽이려 드는 게 아닌 통제라.
아무래도, 녀석이 무엇을 말하려 드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다.
‘제기랄. 이제야 간신히 소장에게서 벗어나나 싶었더니 더 답이 없는 놈의 손아귀에 붙잡혀 버리는 건가.’
* * *
날이 저물었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이 내려앉았다.
타닥. 타닥.
유성과 블레이드.
그들은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 모여 있었다.
“으음….”
이제껏 정신을 잃은 상태였던 아서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곧 새카만 밤하늘을 응시하던 녀석을 향해.
유성이 물었다.
“이제야 눈을 뜬 거냐? 어지간히도 잘 자는군.”
“이 새끼!”
아서는 대번에 유성이 자신들을 습격했던 ‘그 녀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목소리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벌떡 몸을 일으킨 아서가 그대로 유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연하지만, 아서의 행동은 처음부터 부질없었다.
유성은 놀라우리만치 간단하게 녀석을 무력화시켰다.
퍽!
“컥!”
복부를 푹 걷어차듯 후려치자.
아서의 육중한 체격이 둔탁한 소음과 함께 뒤편으로 형편없이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조차 아서는 여전했다.
“이 개자식이! 죽여주마!”
그 모습에 유성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일어나자마자 대뜸 욕부터 한다고? 저거 성질머리 봐라.”
잠시간 녀석을 응시하던 유성이 뒤편의 블레이드를 돌아보더니 물었다.
“혹시 저 녀석을 한 대쯤 더 후려 패도 괜찮은 거냐?”
“안 돼.”
블레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가능한 예의를 담아 말했다.
“괜한 폭력만큼은 자제해주길 부탁하지. 녀석에게 적개심을 심어 놓으면 내가 곤란해진다. 저 녀석은 우리 클론들이 소장에게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탈출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