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블레이드(1)
“…투항하겠다. 녀석을 놔줘라.”
블레이드의 첫 한 마디였다.
그는 정말로 그 말 그대로 행동해 보였다.
쾅.
그가 손에 들려있던 기체 무장을 주저 없이 손에서 놓아 버리자, 육중한 무게감을 지닌 대검이 지면에 쿵 떨어져 내렸다.
블레이드가 타고 있던 기체의 무장은 그것만이 유일했다. 완벽한 무장해제였다.
그러자.
[음?]
처음으로 아서를 붙들고 있던 상대의 고개가.
블레이드, 그를 향해서 돌아갔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제껏 서늘한 기세만을 발출하던 놈의 안광이 조금 가라앉았다.
흥미를 보인다는 소리였다.
‘좋아. 반응이 있다.’
[이런 빌어먹을!]
하지만 블레이드조차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다.
오히려 그 요주의의 상대보다도.
붙잡혀 있던 아서 쪽에서부터 욕설이 터져 나왔다.
[블레이드, 너 미쳤어?! 할 짓이 없어서 적한테 목숨을 구걸을 해?]
“닥쳐라! 도움도 되지 못할 거라면 조용히나 있어!”
블레이드는 황급히 소리쳤다.
그는 붙잡힌 상태임에도 거칠게 저항하는 아서를 말리려 했다.
아서의 성질은 좋은 말로도 그리 차분하지 못한 편이다.
아니, 오히려 조금만 흥분할 거리가 생겨도 금세 이성이 반쯤 날아가 버린다.
쉽게 말해 통제 불능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 녀석이었다.
아서에게는 동료, 아니면 죽여 없애야 할 적뿐이다.
그것은 반대로 말한다면 적대하는 상대방과 마주쳤을 경우에는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는 거였다.
블레이드는 초조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상대방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어차피 아서가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우리가 소장의 허를 찌르려면 녀석의 공간기가 필요해.’
아서의 능력은 단지 수십 미터 단위의 거리를 도약하는 정도가 다가 아니다.
녀석은 오랜 에너지의 단련 끝에 본래 연구소에 기재되어 있던 한계치를 뛰어넘었다.
지금에 와선 공간 도약 따위만이 아니라, 성질 그 자체를 접거나 자를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만은 소장조차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아서는 이전 세대의 공간 능력자보다도 한 수 이성이 차분한 녀석이었다.
그전의 개체는 블레이드의 통제마저도 거의 들어먹지 못할 정도로 거칠게 흥분하는 편이었다.
녀석이 죽으면 다음에 태어날 클론이 그보다 나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블레이드에게 녀석은 잃어서는 안 될 패였다.
아서가 없이는 절대로 소장을 벗어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전함 메타트론에 있을 ‘그 존재’를 향해서 갈 유일한 통로였다.
“저항하지 마라! 놈의 반발을 사지 마!”
[닥쳐! 제길,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도 모를 이런 새끼한테… 크악!]
쾅!
거칠게 저항하던 아서의 기가스가 놈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풀썩 주저앉았다.
놈은 무자비했다.
섬뜩한 안광을 번뜩이며.
힘을 주어 아서가 타고 있던 기가스의 양팔을 죄다 뽑아버리곤 그대로 목덜미 부분을 짓밟았다.
기이잉-.
목덜미가 강한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으스러지더니.
이내 기가스의 푸른 안광마저 꺼트려 졌다.
중추 통제 신경 다발이 연결되어 있던 연결부 부위가 망가졌다.
기체의 통제권이 끊긴 것이었다.
[커, 헉….]
아서는 짧은 신음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정신을 잃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거칠게 저항하다 반발을 사 죽기라도 하는 것보단, 그편이 훨씬 나았다.
‘어떻게든 저 녀석을 살려야 한다.’
고오오오-.
놈의 푸른 안광이 보인다.
유난히 번뜩이는 섬뜩함이 그곳에 베여 있었다.
[…….]
상대방은 어떠한 말도 없이 짓밟고 있던 아서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잠시간 무거운 침묵의 기류가 흘렀다.
상대방과 자신들 간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의 격차라는 게 존재했다.
놈이 구태여 아서를 죽이지 않고 붙잡기만 하였다는 것은 충분히 그만한 자신이 있어서다.
그게 아니라면 이미 아서는 진작에 죽었을 것이었다.
‘애당초 녀석이 단순히 이 주둔 기지의 무력화가 목적이었다면 이미 패한 직후에 우리 둘 다 죽었어야 마땅했다.’
블레이드는 긴장한 표정으로 놈을 노려보았다.
‘그러니 그게 아니라는 것은 우리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소리지.’
그때였다.
무심히 아서에게서부터 고개를 돌린 놈의 시선이, 블레이드 그를 향했다.
[이 녀석보다는 거기 네 쪽이 대화가 통할 것처럼 보이는군.]
상대, 유성의 입이 열렸다.
[너희들, 모두 몇 명이나 되는 거지? 겨우 이게 전부가 아닌 것 같은데.]
“…우리는.”
블레이드는 잠시간 말을 하길 주저했다.
그는 소장의 기분을 거스르는 선택을 하기에 앞서 잠시간 생각을 한 차례 이어나갔다.
지금 이 모든 전개들 또한 주둔 기지에서 철저히 녹화되고 있을 터다. 지금이 아니라도, 나중에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소장의 귀에 들어가고 말겠지.
하지만 지금 그런 게 중요할 리가 없다.
먼저 아서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는 유성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열 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로젝트 ‘블레이드’라는 이름과 함께 만들어진 클론 시리즈들이지.”
덧붙여진 설명이 마음에 들었던 탓일까.
상대가 꽤나 풀린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좋아. 대화가 잘 통하는군.]
그때 통신을 타고서 주둔 기지의 사령관 쪽로부터의 음성이 새어들었다.
[블레이드, 지금 적에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당장 그 입을 다물-!]
삑.
그는 곧장 통신 채널을 닫아버렸다.
방해다. 지금은 눈앞의 상대에게만 오롯하게 집중할 때였다.
그런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곧 상대방이 물어왔다.
[기지 쪽의 통신까지 끄는 걸 보니 동료를 살리고 싶은 생각은 있나 보군.]
통신을 타고서 상대의 피식 흘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놈은 자신을 비웃었다.
입맛이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당장에는 따라줄 수밖에.
“…원하는 조건을 말해라.”
[그건 여기서는 보는 시선들이 많으니 조금 힘들겠고.]
유성이 타고 있던 기가스의 고개가 한쪽을 향해 돌아갔다.
먼 황야를 응시하던 그가 말했다.
[조금 이동해서 말하도록 하지.]
쾅!
그 말과 함께, 부서진 아서의 기체를 들고서 유성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블레이드 또한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 * *
숲의 한 가운데.
쿠웅.
두 기가스가 수림의 한 가운데에 마주 보고서 강하했다.
땅을 울리는 강한 진동과 함께 착지한 그들의 기체가, 푸른 안광을 은은하게 빛내며 대치하고서 섰다.
‘꽤 적절한 장소로군.’
유성은 시선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수풀이 자리 잡은 한적한 지형이었다. 마력을 잡아먹고 비대할 정도로 높게 치솟은 거목들이 그들의 모습을 가려주었다.
‘주둔 기지에서부터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멀리 날아왔다. 여기라면 나름대로 대화를 나눌 만한 여유가 있겠지.’
지금쯤 이미 신 연합 세력의 주둔 기지 쪽에서부터 몇몇 추격자들이 따라붙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들 두 기가스의 속도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다른 이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오래도록 비행했다. 그러니 적어도 당분간의 추적에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을 터였다.
꽈득.
유성은 조종간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뿌득 형성된 두꺼운 실핏줄을 타고서 강한 마력이 줄기줄기 흘러들었다.
‘마력이라면 충분해. 어떤 식으로든 놈의 대응에 충분히 대응할 여유가 있다.’
유성이 대치한 상대.
직접 몸으로 맞부딪혀 가며 상대해봤던 녀석의 실력은 꽤나 괜찮은 축에 속했다.
과거, 지구 시절의 대전쟁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나름대로 한 자리는 꿰찼을 수준이었다.
기이한 점은 특이할 정도로 자신과 유난히 성질이 비슷한 녀석이었다.
클론이라는 게 그 이유일지도 몰랐다.
유성은 가능하다면 녀석을 무턱대고 죽일 생각은 없었다.
‘나와 적대한다고 해서 무작정 그게 놈을 죽여야 할 이유는 되질 않지.’
어떤 식으로든 그들은 서로 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드라칸도 마찬가지였다.
‘구 연합과 신 연합이 적대하는 상황이라지만 드라칸 또한 그들 전체의 공공의 적이다. 강한 전력이라면 드라칸 놈들을 상정해서라도 살려두는 편이 맞아.’
인간들끼리 적대는 할지언정 말이라는 게 통하는 이상 거래와 협상이 가능한 존재였다.
하지만 드라칸은 그게 통하질 않는다.
놈들에게 인간은 둘 중 하나였다.
죽여서 배를 채울 양식으로 써먹던가, 그게 아니라면 자원으로 써먹던가.
어떤 식으로든 놈들에게 있어 인간은 양립 못 할 적이었다.
그러니 유성은 녀석들이 거칠게 저항하지 않는 이상에는 일단 흘러가는 기류를 지켜볼 셈이었다.
협상의 여지가 없는 상대 따위보단, 그 여지나마 있는 상대의 가치가 더 높았으니까.
“이봐.”
유성이 먼저 침묵을 깨고서 통신을 연결했다.
상대방이 타고 있을 기가스를 향해서 처음부터 말도 되지 않는 제안을 건네었다.
“우리 대화도 할 겸, 기가스에서 내려보는 게 어때?”
[하! 지금 뭐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지그래.]
대답은 바로 튀어나왔다.
애당초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너 같으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를 적을 앞에 두고 맨몸을 드러내는 행위를 할 것 같나? 적에게 죽여달라고 광고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내가 뭐하러 그런 말을 따라야 하지?]
그 말에 유성이 코웃음 쳤다.
“그건 네놈들이 주둔 기지에 있을 때에도 가능했다. 단지, 내가 죽이지 않은 것은 흥미가 있어서였을 뿐이지.”
[흥미?]
“다물고, 빨리 튀어나오기나 해라. 물론 나 또한 기가스에서 내릴 것을 약속하지.”
유성은 이미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는 확신이란 게 존재했다.
엿들었던 통신의 내용상, 이름이 아마 블레이드라고 했던가.
저 클론이라는 놈, 녀석은 지금 그의 손에 들린 이 아서라는 인간이 죽는 것을 꺼리고 있다.
아니. 단순히 꺼리는 정도가 아니다.
반드시 살려내려 하고 있었다.
아서 하나 때문에 주둔 기지와의 통신마저 뿌리치고 이곳에까지 홀로 따라온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따라서 자살이라도 하라는 게 아닌 이상은 웬만하면 말을 들어먹을 터였다.
[…….]
맞은편의 기가스에 타고 있던 파일럿, 블레이드는 말이 없었다.
침묵하는 상태를 지켰다.
유성의 관점에서부터는 표정조차도 볼 수가 없으니 언뜻 보면 일말의 협상조차도 들어먹을 것 같지가 않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확신했다.
녀석이 지금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죽일 생각 따위는 없으니 고민 그만하고 빨리 나와. 너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쯤은 알 텐데?”
신 연합의 주둔 기지.
그곳에서부터 뒤쫓아올 추격자들을 생각한다면 지금 그들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유성은 추격자가 온다면 주저 없이 이 자리를 물러설 생각이었다.
물론 아서를 그대로 데리고서 말이다.
‘추격자들을 격퇴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랬다간 적대심만 커질 뿐이지. 최소한의 협상이 가능한 여지마저도 사라진다.’
어차피 그에게는 아서를 심문할만한 선택적인 여유까지 있었다.
다만 아서가 아닌 블레이드를 택한 것은 녀석이 아서에 비해 차분한 성정을 가져서였다.
유성은 녀석의 고민에 종지부를 찍을 말을 내뱉었다.
“협상은 서로가 동일할 때 가능한 거다. 나 또한 내리도록 하지. 그러니 너 또한 그곳에서 나오도록.”
협상.
그 말이 결정적이었던 모양인지, 녀석에게서부터 짤막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