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유리 엘 바이어스(3)
“하아.”
뜨겁게 달궈진 숨결을 내뱉었다. 헬멧을 벗은 유성은 격납고의 한쪽에 놓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생각했다.
‘피곤하군.’
실제로 따져본다면 그리 긴 시간 동안의 접전은 아니었으나, 그 연속된 찰나의 접전들은 초 단위보다도 훨씬 안쪽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때문에 유성이 느끼는 정신적 체감 시간은 실제의 시간보다도 한참은 길었다.
그런 그의 어깨 위로 하나의 기척이 걸터앉는 게 느껴졌다. 리브였다.
[아빠. 많이 힘들어?]
‘조금 그렇기는 하네.’
쿠우웅.
그렇게 눈을 감고서 잠시간 쉬고 있으려는데 돌연 격납고를 울리는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슬쩍 피곤한 눈을 떠보니 축 늘어진 기가스 한 기가 안으로 실려 오는 게 보였다.
‘EF-04로군.’
빌객스가 탑승하고 있었던 기체다.
격납고의 회수 역할을 맡은 이들이 그녀가 타고 있던 기가스를 대신 인양해서 가져오고 있는 게 저 멀리 보였다.
기가스의 안광은 꺼져있었다. 파일럿과의 동화가 중단된 것이다.
언제나 여유와 기백을 보이는 빌객스의 성격상 일부러 그럴 리는 없을 테니 저것은 그녀가 정신을 잃었다는 소리이리라.
‘하긴, 녀석도 적잖은 데미지를 입었을 테니.’
무려 수백여 미터에서부터 지상에 곤두박질치듯 내려꽂혔다.
그만한 충격에는 제아무리 빌객스 그녀라 할지라도 멀쩡할 수만은 없는 게 당연했다. 오히려 멀쩡하다는 게 더 이상한 편이었다.
‘물론 아그네스 녀석이 살아있다는 소리는 이미 들었지만……. 그래도 걱정은 되니 한 번쯤은 보고 가는 게 맞겠지.’
유성은 애써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아가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일어서자 육체의 어디에선가부터 뿌드득, 거리는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일전의 접전을 몸으로 받아낸 결과였다.
하지만 유성은 애써 빌객스가 타고 있는 기가스의 방향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디기 시작했다.
걷는 것조차도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음에, 그는 짤막한 한숨을 후, 하고 내쉬었다.
* * *
함장실.
유리. 그녀는 그 문을 앞에 두고서 서 있었다.
“라프티리아 함장. 안으로 들어가겠다.”
기잉-.
유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문은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너머로 발을 들이밀었다.
“아. 유리 후작님. 도착하셨단 소식은 들었습…….”
함장 라프티리아는 이미 병상에 누운 채로 여러 문서들을 확인하고 있는 게 보였는데, 유리가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 모습에 유리는 대충 손을 휘저었다.
“됐다. 일어서지 않아도 괜찮아. 누워서 빌빌거리는 녀석한테 인사나 받아야 할 정도로 내 정신머리가 불량해 빠지지도 않았고 말이지.”
“그, 그렇습니까?”
유리. 그녀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라프티리아를 마주한 채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린 시절부터 맡았던 역할만큼은 끝마쳐야 할 정도로 책임감 하나는 강하더니 그러한 면모는 나이가 들어서도 똑같구나, 라프티리아.”
그 말에 라프티리아 함장은 살짝 쓴웃음을 내보였다. 차마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본인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녀는 예전부터 다소 그러한 기질이 강하기는 했다.
실제로 당장 지금 그녀가 이렇게 병상에 누운 환자 꼴이 된 것 또한 그러한 성정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한 라프티리아 함장에게서부터 고개를 돌린 유리는.
이내 잠시간 주변을 둘러보다 짧은 소감을 내비쳤다.
“그나저나 방치고는 삭막하군. 아무리 함장실이라지만 뭐 하나 개인 물품이란 게 보이질 않는 개인실이라니.”
“개인적으로 불필요한 데에 신경 쓰지 않는 제 성격을 고스란히 반영한 탓이겠지요.”
“음. 그래 보여.”
유리도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확실히, 이 모습들을 보면 누구라도 아니라고 하기가 어려울 터였다.
라프티리아 함장은 솔직한 대답을 하는 유리의 모습에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여전하시군.’
둘이 다시금 마주한 것은 적어도 십수 년 이상이라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이후에서였다.
하지만, 유리이든 라프티리아이든 그들의 성정은 과거와 비교하더라도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유리는 보통의 인간이라면 결코 누리기 힘든 기나긴 시간을 스치듯 살아가는 각성자였기 때문일 터였고, 라프티리아 함장은 예전부터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짐들을 고스란히 떠맡아 가는 성격이기 때문일 터였다.
결국 그들의 태도는 과거와 비교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변한 게 있다면 그것은 눈높이라고 해야 할 터였다.
라프티리아가 어린 십 대 소녀 시절 이후로 처음으로 마주한 유리는 변함이 없었다.
본래부터도 그리 큰 키가 아니었던 유리는,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한창 때의 소녀처럼 보였다.
‘자라난 것은 나뿐인가.’
자신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유리는 여전히 소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흡사 라피스 생도, 그 아이와 똑 닮은 듯한 모습이었다.
둘이서 나란히 선 채 자매라고 한다면 그마저도 믿어질 정도로 말이다. 유리의 체구는 그만큼 작았다.
지나가는 세월의 흐름 앞에서도 멀쩡한 유리를 마주하며, 라프티리아는 새삼 다소 나이가 든 자신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그런 소리도 있었지.’
문득 각성자의 시간은 보통의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어느 학자의 언급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시선의 종류란, 흡사 유구한 것들을 바라보는 상상 속 불멸자의 시선과도 흡사하다고 했던가.
세상의 모두와 강산은 지나치듯 흘러가며 늙어가는데 오로지 자신만이 늙지 않고서 그 모든 것들을 마주하는 각성자의 감상이란 과연 어떠한 느낌일까.
그녀는 그것이 궁금했다.
라프티리아 함장은 연신 방안을 살피며 혀를 차는 데 여념이 없는 유리를 바라보다 이내 말문을 열었다.
“그보다 아스트라 부함장의 상태는 어때 보이십니까, 유리 님?”
“음?”
그 말에 유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막 손으로 건들고 있던 작은 인형을 놓아주곤 가볍게 한 차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너도 이미 답은 알고 있지 않느냐. 내가 보기엔 이미 마력이 바닥나서 골골거리는 게 보이던데. 이대로라면 머잖아 너랑 나란히 누워 병상에서 일 처리를 하겠더군.”
“…그렇군요. 유리 님께서 한 번쯤은 말씀해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는 누군가가 대신 나서서 멈춰줄 필요가 있습니다.”
“하하하!”
그 말에 유리가 웃었다.
흡사 그녀를 탓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아니, 이것은 그보다는 오히려 어린아이의 투정과도 비슷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둘의 관계를 알고 있다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연신 큭큭 대다 이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라프티리아야. 너도 그러한 성격이 아닌데 그라고 해서 나서서 멈추려 한다고 될 리가 없지. 어릴 때부터 너와 함께 나고 자란 아스트라가 구태여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쯤은 너 스스로도 알고 있지 않으냐.”
“…그건.”
잠시간 멈칫하며 대답하기를 주저하는 라프티리아 함장을 향해, 유리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쿡 찌르곤 말을 이었다.
“뭐. 나중에 둘이 결혼이라도 한다면 참으로 볼만하겠군. 집에 와서도 서로 쉬지도 않고 묵묵히 일만 해댈 테니 말이야.”
“진도가 너무 나가셨습니다!”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다. 말이.”
유리는 순식간에 목소리가 높아지는 라프티리아를 진정시키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의 표시였다.
그 모습에 이내 라프티리아는 저도 모르는 사이 입술을 비죽이며 낮게 불만감을 토로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의 앞에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을 모습이었다.
“유리 님께서는 예전부터 장난기가 많이 심하셨습니다. 그러한 면은 여전하시군요.”
“원래 늙게 되면 장난기가 심해지는 법이지. 그리고 나는 네가 어릴 때부터 이미 늙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에도 이미 내 나이는 세 자릿수였거든.”
둘의 대화는 그러한 식으로 흘러갔다.
간혹 중요한 내용이 있는 듯하였으나, 그마저도 금세 건실하지 않은 방향으로 말이다.
내용은 빠져 있고 오로지 가벼운 형국으로서.
“그런데.”
“예?”
하지만 돌연, 대화의 도중에 유리가 말을 끊었다.
유리. 그녀는 저도 모르게 되묻는 라프티리아 함장을 마주하고선 다소 진지해진 눈을 한 채로 물었다.
“그 예의 완전체 드라칸을 상대했던 파일럿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구나. 라프티리아.”
“…그건.”
순간, 라프티리아는 말문이 멈췄다.
그런 그녀를 마주한 유리는 이미 예상이라도 하고 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물론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이미 아스트라 부함장과 얘기했을 때, 그에게서부터는 다소 꺼리는 듯한 기미가 느껴져 왔으니까. 그렇다면 파일럿과 무슨 얘기라도 오간 거겠지. 나도 눈치가 없지는 않아.”
아스트라 부함장. 구태여 그렇게 직위까지 들어서 말하는 이유는 분명할 터였다.
지금의 대화는 다시금 예전의 그들로서 돌아간 상태였다.
하지만 이내 유리는 씩 웃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알아보기로, 아마 그 파일럿이 우리 손녀딸인 라피스와 친구라고 하던데? 그러니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지.”
“…….”
“말해봐라, 라프티리아. 나도 궁금하기는 하니.”
“그건.”
잠시간 입을 열었던 그녀는, 이내 대답했다. 유리를 똑바로 응시한 채로 말이다.
“그건 제아무리 유리 후작님이라고 하더라도 말씀드리기 다소 어렵겠습니다. 그 파일럿 본인과는 가급적 정체를 가려주기로 얘기가 끝마쳐져 있어서요.”
그 말에 유리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나, 예나 지금이나 라프티리아는 그 성격이 여전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것은 저 막중한 책임감이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라프티리아의 어깨를 소리가 날 정도로 두들겼다.
* * *
하루가 지났다.
거의 늦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일어난 유성은, 느릿한 하품과 함께 바깥으로 나섰다.
‘피곤하군.’
유성은 평소보다도 다소 무거운 몸 상태를 느꼈다.
누구보다도 제 자신의 육체에 대한 감각이 예리한 그였다. 그런 그가 유독 늦은 시간대에 일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몸에 쌓인 부담감이 크다는 의미였다.
물론 단순히 조금 늦잠을 잔 정도에 불과했으니 크게 신경을 쓸 정도는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찌뿌둥한 느낌은 없잖을 정도로 남아 있었다.
“하암.”
조금 산발이 된 머리를 긁적이며 군인들이 돌아다니는 복도를 헤치며 나아간 유성은.
덜컹!
근처에 서 있던 자판기에서부터 콜라를 빼 들었다.
치익, 하고 탄산을 터뜨리는 콜라를 마시며 무심코 몸을 돌린 그는,
이내 저 반대편의 좌석에 앉아 있는, 이전까지는 전함 메타트론에 없었을 다소 생소한 인물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순간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하지만 유성은.
애써 그 시선을 모른 체하며 몸을 돌리려 했다.
조용히 걸음을 내디디려는 유성의 등 뒤에서부터 그녀가 말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래간만이다, 유성.”
여전히 유성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저 무시하듯이 걸음을 내디디려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움찔거리게 만드는 한 마디는, 그다음이었다.
“설마 검술에 재능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마나에까지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이제껏 그걸 드러내지 않은 것은 관심을 받지 않기 위함이었던 거냐?”
제기랄. 이미 다 알고 찾아온 건가.
그 말에 잠시간 눈을 감은 유성은, 속으로 짤막한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이미 다 알고 계시는군요, 유리 후작님.”
“그야 눈에 보일 정도로 알기 쉬운 성격을 한 게 바로 유성, 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