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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04화 (104/200)

105화. 금강의 창기사(5)

유성은 그 길로 곧장 한 방향으로 향했다.

다수의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는 그곳은, 다름 아닌 빌객스가 거주하는 구역이었다.

서늘한 기세와 눈매를 한 군인들과 시선이 마주치자, 유성은 짤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응답이라도 하듯 마찬가지로 고개를 슬쩍 끄덕인 군인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곳의 어느 누구도 유성의 얼굴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유일하게 빌객스를 다룰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 또한.

아마 조금만 눈치가 빨라도 손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낱 일반인 생도에 불과한 이들이 아무런 이유가 없이 이 연합 소속의 전함에 탑승할 거란 사실을 아무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즉, 이미 라피스와 마찬가지로 유성이 그 터무니없는 괴수,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을 격살한 천재 파일럿이라는 사실에까지 자연스럽게 생각이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미 이 전함 내에서의 유성이란.

적어도 라피스와 더불어 침묵 속에 그 존재가 용인되고 있는 묵인의 존재나 다름없었다.

“빌객스. 나 들어간다.”

기잉-.

문이 열리고, 빌객스가 머무르는 숙소의 내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한창 제 자신의 육체를 단련하고 있었던 것인지, 땀에 젖어 비치는 모습을 한 빌객스가 있었다.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유성이 들어서자 빌객스의 고개가 그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엉? 뭐야, 대장.”

턱, 하고 바닥을 짚은 채 일어선 그녀가 긴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이내 밝은 얼굴을 한 채로 유성을 향해 물었다.

“또 왔네?”

반응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 기색이 어둡지 않은 것이, 영 꺼리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던 유성이 입을 열었다.

“일어서 빌객스.”

“엉? 뭔데 그래.”

“나와 함께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리브에 관해서야.”

움찔.

유성의 말에 빌객스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 눈동자 속에서, 옅은 흑연이 일렁거리며 새어나왔다.

대전쟁의 시대를 살았던 빌객스의 전생은 기본적으로 잿빛이었다.

전쟁의 여파는 온 세상에 미쳤고, 자연스레 많은 이들이 그에 휩쓸리고 희생되기 마련이었다.

그 흔한 이야기의 주인공 중 하나였던 빌객스는 드라칸들에 의해 가족과 지인 전부를 잃고서 열렬한 복수심에 타오르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성정은 40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유성은 그녀가 약간의 불쾌감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네가 의도적으로 리브를 멀리하고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물어볼 게 있다.”

“…내가 그 꼬마 놈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조차도 싫어하는 걸 알면서 구태여 얘기를 꺼낸단 말이지? 미리 말하지만, 쓸데없는 이유로 말을 걸은 거라면 나도 그냥은 안 넘어갈 거야.”

빌객스의 표정은 처음의 밝았던 기색이 무상할 정도로 금세 싸늘해져 있었다. 바람 하나 일어날 리 없는 이 실내에, 은연중에 옅은 공기의 흐름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모두가 그녀에게서부터 흘러나온 기세로서, 그만큼이나 불쾌하다는 의미다.

물론 빌객스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음에도 유성이 이렇게 찾아와 자신의 신경을 건드린다는 것은 분명 심상치 않은 내용의 용건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을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빌객스는 그렇게 엄포를 놨다.

은연중에 허락이었다.

우웅-.

긍정적인 대답을 얻어낸 유성이, 주변에 마력의 장막을 쳤다. 주변 어딘가에 있을 것임이 분명한 도청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푸른 장막의 안에서, 유성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온 건 다름이 아니라 드라칸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런 거야.”

“그리고 그게 리브라는 그 꼬마와 관련이 있다고?”

“너. 언젠가 유독 인간처럼 싸우는 여왕체가 하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무슨 소리야, 그게.”

“그 녀석을 리브와 비교한다면 어떻지?”

난데없는 소리에 빌객스는 돌연 의문을 드러냈다.

주체는 없고 내용만이 있는 이상한 말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되물을 뿐이었다.

드라칸은 환경에 적응해나간다. 그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놈들은 끓어오르는 열기의 대지에서라면 그 열기에 버틸 만큼이나 두꺼운 갑각질을, 숨을 쉴 만한 산소가 없는 무중력의 우주에서라면 그 밖의 물질들을 사용하여 생존하는 능력을 터득한다.

주어지는 환경에 따라 그 생김새와 능력들이 변해간다. 이른바 진화라고 부르는 종류의 것이었다.

과거, 400년 전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놈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대전쟁의 초기 시절, 그때에도 그러했다.

처음의 놈들은 분명 완전한 괴수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여러 개의 발을 사용하는 괴수의 형상에서부터, 온갖 이해 못 할 불규칙적인 생김새를 하기까지 했던 존재들이었다.

그것들은 기묘했고, 기이하였으며, 또한 인류가 알던 지구상의 어떠한 존재와도 비슷한 구석이 없던 생명체였다.

그나마 표현을 한다면, 곤충의 형상에 가장 가까웠다고 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인류는 놈들의 형상이 점차 그들 자신과 ‘흡사해져 간다는’ 기묘한 느낌을 받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전쟁이 지속됨과 함께, 놈들은 변해가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다리들과 불규칙적이었을 생김새가 점차 통일성을 가지고, 보다 효과적인 방식으로 진화했다.

두 다리로 올곧게 선 일부의 상위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놈들은 인류의 전함을 격멸하기 시작했다.

기가스가 등 부분에 고기동의 출력을 분사하는 쓰러스터를 장착하였듯이 놈들은 등 뒷부분에 여러 장의 날개들을 달았으며, 기가스가 온갖 무장을 사용하듯이 놈들 또한 점차 다양한 방식의 무장을 손에 쥐고서 인류를 무너뜨렸다.

그렇게 처음에는 격렬한 전장에서도 기껏해야 한두 개체만이 보였던 인간형의 드라칸이 보다 다수가 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갔다.

나중에 가서는 아예 ‘검술’을 사용하는 개체들마저 등장했다.

그것은 보건대 흡사.

인류가 사용하는 보다 효과적인 방식의 전투를 따라하는 듯한 형상이 되어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녀석들은 단지 환경에 적응할 줄만 아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장점과 능력들마저 흡수할 줄 아는 보다 위협적이기 짝이 없는 생명체였던 것이다.

“예전, ‘에바형’ 이라고 명명되었던 여왕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아그네스.”

“에바형? 뭔 소리야, 그건?”

빌객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대꾸했다.

“대장. 그렇게 복잡하게 말하면 난 몰라. 대충 어떻게 생긴 녀석이었다던가, 뭐 그런 말을 해달라고.”

“여러 각성기를 사용했던 개체 있잖아. 유독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었다던.”

예전, 단 한 번.

인간과 소름이 돋을 만큼이나 유사한 형상을 지닌 여왕체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사람처럼 눈과 입과 코를 모두 가졌다고 했던가.

적어도 이제껏 이상으로 유난히 인간과 닮은 듯이 보였다고 했던 개체가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다만 그때 나는 부상으로 인해서 해당 임무에 출전하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나는 놈을 직접 마주하진 못했다.’

그때의 유성은 지독히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였다.

때문에 유성을 대신해서 전장에 나간 게 바로 빌객스, 아니, 아그네스 그녀다.

“기억이 안 나는 건가? 예전에 소대원들이 유독 인간과 닮아서 소름이 끼친다고 하던 개체 말이야. 한낱 자식을 낳는 능력만이 전부인 여왕체 주제에 완전체만큼이나 위험하다고 했던 녀석.”

“음?”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하던 빌객스가 이내 깨달았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혹시 그 녀석 말하는 건가? 그, 왜, 다수의 각성자들이 사용하던 능력을 그 자리에서 보고 따라하던, 완전체 이상 수준으로 위험하던 그 녀석? 아마 여왕이었는데도 완전체 등급으로 따로 분류되었었지?”

“그래. 맞아.”

세상 모든 드라칸의 무리는 완벽하게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무리들이라도 생김새나 특질이 어느 정도는 다 다르기 마련이었다. 마치 인간들이 모두 저마다 다른 존재들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무리의 진화성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여왕체 자신이 강해지는 특이 개체도 있었지.’

놈은 상당히 기묘했다. 여왕체임에도 자신이 다스려야 할 무리의 가장 앞에서 인간들을 맞상대했다.

심지어 검을 손에 쥔 채로, 인간의 검술을 흉내내기라도 하듯이.

실제로 놈의 검술은 절정에 달한 위협적인 검사의 수준이었다. 무려 이시혁의 소대원들조차 한 발 뒤로 물러설 만큼.

상위체나 완전체와 같은 신체적인 스펙의 강함 따위가 없음에도 그러했다. 순수한 기술적인 강함이 무지막지한 개체라는 소리였다.

유성은 한껏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그네스. 잘 들어, 지금 난 진지하다.”

“대체 뭔데 그래? 아직도 난 감이 안 잡히고 있는데?”

말을 할 거라면 좀 더 서둘러보라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그녀의 모습에.

이내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약 그때의 에바형이라 명명되었던 그 여왕체를, 리브와 놓고 비교해본다면 어떻지?”

“뭐. 어떻고 자시고. 그 에바형은 덩치부터가 거의 기가스만큼이나 컸는데 비교할 게 뭐가 있어? 꼬마 놈과 비교할 것도 없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굳은 표정으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물었다.

“만약 그 에바형이라는 개체가 너와 다른 소대원들에게 사냥당하기 전에, 보다 발전된 수준의 여왕체를 낳았었다고 한다면? 더욱 인간에 근접한 세대를 낳았다면?”

“그게 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뭐라 대꾸를 하려던 빌객스의 말문이 그대로 막혔다. 그녀의 동공이 잠시간 유성을 말없이 응시했다.

“이런 미친.”

이내,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잠시간 어떠한 소리도 하지 않은 채로 방안 곳곳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녀는.

이내 유성을 돌아보더니 물었다.

“그 꼬맹이가 설마?”

* * *

“마력 반응은?”

한편. 그와 같은 시각.

전함, 메타트론의 통제실에서는 주변의 관측이 한창이었다.

“아직까지 주변에 관측되는 마력 반응은 없습니다. 상태, 양호합니다.”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도록.”

현재 그들이 진입한 곳은 지독한 열기가 들끓는 화산 지대였다.

언제고 화산이 폭발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다난한 위험이 존재하는 장소였지만, 진짜 위협은 그런 게 아니었다.

지표면의 깊숙한 아래.

지상에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그곳에, 정황상 이 근방에 드라칸들을 불러냈을 것임이 확실한 ‘게이트’ 의 존재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 화산지대의 아래 어딘가에는, 분명 여왕체와 그를 지키는 다수의 드라칸 무리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적진의 깊숙한 심장부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삑-!

그때, 돌연 통제실에 적색 신호가 울려 퍼졌다.

“무슨 소리지? 확인하도록!”

“1시 방향 7킬로미터 앞 방향에 대량의 마력 반응 확인!”

“드라칸입니다!!”

하지만 이내, 재차 그 마력 수치를 재검증한 직후 오퍼레이터의 눈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 아스트라 부함장님?”

“뭐지? 말해라.”

부름에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오퍼레이터는 지극히 위협스러운 것을 마주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굳어 있었다.

“이 마력 수치는, 예전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에서 마주했던 완전체 등급에 거의 준할 정도의 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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