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금강의 창기사(4)
유성은 요즘 들어 매일같이 통제실로 나서야 했다. 적어도 오전 시간과 오후 시간으로 나누어서, 하루에 두 번 이상씩은 꼭 말이다.
빌객스에 대해서. 그녀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전적으로 관리하고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각성자인 그 하나뿐이었다.
아직까지 빌객스가 함선의 내부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건 사실이나, 그와는 별개로 분명 여전한 불안요소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세상 그 어떤 인간이라도, 얌전하다고 해 사자와 한 우리 안에서 함께 잠을 청하고 생활하기를 원하진 않을 터였다.
전함 메타트론의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대의 인간들에게 있어, 빌객스란 이름은 그 동화 속에서나 마주하던 두려움의 결정체나 다름없을 테니까.’
단지 그러한 대상과 한 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티를 내지 않는 것은, 그들이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명령을 이행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군인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진작 두려움에 도망이라도 칠 생각을 했겠지.
실제로 유성이 빌객스와 함께 군인들의 사이를 지나칠 때면, 어김없이 은연중에 두려움에 몸을 떨거나 마른침을 삼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일부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선 채로 굳을 정도이기도 했다.
그 하나하나의 행동이 모두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가 유독 주변의 감각에 뛰어난 마나 사용자이기 때문이었다.
보지 않아도 등 뒤의 사물마저 은연중에 읽힐 정도로 예민한 감각권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오늘도 빌객스의 행동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습니다, 아스트라 부함장님.”
“그런가.”
보고에 이 전함의 임시 함장직을 맡은 남자, 아스트라 부함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마치 무언가를 요구하기라도 하듯 손을 내밀었다.
그에 유성은 나름대로 적잖은 종이뭉치를 제출했다. 자필로 빼곡하게 무언가가 적힌 종이뭉치였다.
그것을 받아들며, 아스트라 부함장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라서 질리겠지만, 앞으로도 조금만 더 부탁하겠네. 유성.”
“알겠습니다.”
그가 내민 것은 빌객스와의 대화 내용과, 그녀가 무엇을 했고 어떠한 기색을 보였는지 등등의 것들이 적혀 있는 서류였다.
물론 유성이 제출한 문서와는 별개로 이미 통제실의 모두가 빌객스를 감시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흠.”
사락.
일련의 기록들을 살핀 아스트라 부함장은,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어제 별다른 일이라던가 기색은 보이지 않았던가?”
“네, 그렇습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빌객스는 얌전할 뿐, 이상은 엿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 전함 메타트론에서 빌객스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러한 존재를 통제하고 다루는 이가 있음 또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유성은, 사실상 빌객스를 통제할 수 있는 함내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대체 무엇을 구실로 빌객스가 유성의 말을 듣는지는 몰라도 그것만은 분명했다.
아스트라 부함장은 눈앞의 서류에 시선을 둔 채로 생각했다. 피로감에 잠겨 붉어진 그의 시선이 오래도록 한 장소에 꽂혔다.
‘빌객스라는 인물은 분명한 불안요소다. 지금 당장은 유성이 있어 얌전하지만, 그가 사라진다면 그녀는 얼마든지 제멋대로 행동하고도 남을 인물인 것만은 확실해.’
이미 요사이에 이어진 대화 방식이나 행동 패턴만을 보더라도 그녀가 자유분방한 인물이라는 것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전함의 거의 대부분을 들쑤시고 다녔다. 총을 들고서 위협하는 군인들의 통제가 있든 말든, 하등 알 바가 아니라는 듯 무슨 유람이라도 하듯이.
제 자신에 대한 통제심을 비롯하여 언제나 행동의 선이 뚜렷하게 정해진 유성.
그리고 안과 밖이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빌객스.
만약 유성이 없었다면, 이미 이 전함은 무슨 꼴을 당했어도 결코 이상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범죄자 빌객스는.
아니, 해적으로서 활동했던 빌객스는.
태양계의 외곽 곳곳을 제멋대로 누비며 연합의 함선마저 탈취하고 사람들을 죽였던 전력을 가진 특급 범죄자였으니.
* * *
사각. 사각.
라피스는 한창 리브의 몸을 꼼꼼히 이곳저곳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녀는 리브를 다소곳하게 세우고선 주의를 주었다.
“리브. 가만히 서 있어 볼래? 자꾸 움직이지 말고.”
“힝. 나 간지러워. 히히!”
“조금만 참아줘.”
태블릿 화면을 펼친 채로 라피스는 리브의 몸 이곳저곳을 손가락을 들어 쿡쿡 눌러 보았다.
“여긴 느낌이 어때? 뭔가 느낌이 들어?”
“어…… 아니?”
“그럼 여긴?”
“아, 엄마! 거긴 간지러워. 히히히!”
리브는 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배배 꼬아댔다.
“리브. 너무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서 봐.”
쿡. 쿡.
라피스가 손가락에 마력을 모아 이리저리 리브의 몸 구석구석을 쿡쿡 눌러보았다.
그때마다 리브는 간지러운지 몸을 비틀며 웃어댔다.
어찌나 간지러웠는지 아예 눈물기까지 눈가에 맺힌 게 보였을 정도였다.
“으음…….”
그때였다.
그녀의 숙소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누군가가 문 바깥에서부터 통신을 건네왔다.
[라피스. 지금 뭐 해? 바쁘지 않으면 들어가도 괜찮겠어?]
“아. 유성이구나. 들어와, 문 열어줄게.”
기잉-.
허락과 함께 자동문이 열리고, 유성이 안으로 들어섰다.
“아빠!”
리브는 유성의 등장을 반기기라도 하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유성은 들어서자마자부터 라피스와 리브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모습에 의문이 드리웠다.
이해 못 할 광경에 한쪽 눈을 치켜올리자, 곧 라피스 쪽에서부터 그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는 태블릿의 화면을 가리키더니 말했다.
“리브는 드라칸이기도 하니까. 혹시 드라칸의 신체에 대해서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조금 시도해보고 있었던 중이야. 몸의 구조가 다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
그 말에 유성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시도라고?
“…혹시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
“안 했어!”
대답은 즉각 터져 나왔다.
유성의 물음에 어째서인지 라피스의 반응은 조금 과했다.
그는 그저 조금 과한 수준으로 리브를 괴롭히지 않은가 싶어서 물어보았을 뿐인데, 라피스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얼굴마저 빨개졌다.
그러더니 곧 변명하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그저 인간의 모습을 하긴 했더라도 리브의 정체는 어찌되었든 드라칸이었으니까. 어쩌면 드라칸의 기관도 가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건드려봤을 뿐이야.”
“흠? 기관?”
그 말에는 유성 또한 흥미가 생겼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비록 겉모습은 인간의 형상을 취했을지언정, 그 내면은 어쩌면 전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보통의 일반인과 비교해본다면 리브는 그 외형만은 특별할 것 없는 어린아이일지도 모르나 결국 그 근본은 드라칸의 여왕체라는, 태생에서부터 완전히 다른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유성도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으므로 궁금하기는 했다.
다만 그 의문을 해소할 방법이 이제껏 없었기에 가만히 내버려 두고 있었을 뿐이다.
라피스가 건네어 준 태블릿 화면을 내려다보며, 유성이 물었다.
“그래서. 뭔가 알아낸 건 있고?”
“흠…… 글쎄. 있다면 있는 거고…… 없다면 없다고 해야 하려나.”
“뭐야. 그런 이상한 대답은.”
“적어도 인간 상태의 리브는 그저 평범한 인간과 똑같아. 신체 구조도 다를 건 없는 것 같기는 해. 단지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체내에 유독 마력이 짙은 한 장소가 있다는 것 정도거든.”
“마력이 짙다라.”
그 사이 리브는 쪼르르 달려와서 유성의 품에 안긴 상태였다. 얼굴을 부비적거리는 그 모습은 그저 애교를 부리는 듯했다.
라피스가 그런 리브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손에 든 무언가를 내보였다.
“자. 이거 잘 보고 있어.”
“그건…… 의료장비인가? 인체를 들여다보기 위한 투시 장비?”
“응. 맞아.”
그렇게 대답하며, 라피스가 기계를 통해 리브를 향하자.
리브의 몸 안 장기들이 투명하게 비쳤다. 내부의 뼈와 각종 장기들, 인체를 구성할만한 그것들이 완벽하게 보이고 있었다.
시대상이 극도로 발전함에 따라, 일부의 의료 장비들은 이처럼 상당한 발전을 보였다.
지금에 와서 기기들 중의 일부는 이런 식으로 단지 기계를 비추는 것만으로 사람의 내부 구조도를 직접적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그들은 펄떡거리며 율동하는 장기의 모습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리브의 내부 신체 구조를 확인한 유성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보통의 인간과 별다를 게 없군. 마나가 조금 많다는 것만 제외하면, 뼈나 장기 모두가 인간의 것과 유사해.”
“하지만 봐봐. 여기 심장 부분을.”
라피스는 설명과 함께, 리브의 신체 일부를 크게 확대했다.
그러자 유독 다량의 마력을 보유한 심장의 형상이 뚜렷하게 화면 속에 드러났다.
“…뭐야, 이건.”
그 직후, 유성은 제 눈을 의심했다.
그가 마주한 것은. 전혀 의외의 결과였다.
리브의 심장에 숨겨진 것은 다름 아닌 아주 작은 크기의 결석과 같은 형상의 무언가였다.
라피스는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꼭 보석이 심장에 박혀 있는 것 같지?”
“그, 렇네.”
유성은 더듬거리며 답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다고 해야 할 터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어도 그와 있어서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물질이었으니까. 실제로 그의 몸에도 또한, 이미 형성이 끝마쳐진 물질체였다.
‘이건 마나 사용자가 마침내 각성자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가지게 되는 결정체다.’
* * *
이전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해 왔다.
지난 생애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성이 쓰러뜨린 드라칸의 수는 산을 쌓아도 모자랄 정도로 많았다.
그는 셀 수 없이 수많은 적들을 쓰러뜨렸고 그 과정에서 살해한 드라칸의 여왕체 또한 상당수였다.
그리고 유성이 마주해왔던 그 어떠한 드라칸의 여왕체도, 리브와 비슷한 구석을 가진 녀석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단 한 마리도 말이다.
유성도 리브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러한 예가 있었던가? 아니, 없어. 비슷한 예조차도 없었다. 내가 아는 한에는 말이지.’
인간의 형상을 지닌 녀석은 있었으나 완벽한 인체를 지닌 녀석은 없었다.
공간을 가르거나 시간선을 넘나드는 개체도 있었으나 기가스를 강화하는 리브 같은 능력을 가진 개체 또한 당연히 없었다.
그런 녀석들이 있었다면 유성 그가 모를 수가 없을 터.
유성은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많은 드라칸들을 베어 넘겼다.
그는 인류가 드라칸을 마주하고서 다른 태양계로 이주하기 직전의 순간까지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버티며 놈들을 상대했다.
사실상, 이시혁이라는 인물은 인류가 드라칸과 함께 해온 ‘역사’ 그 자체.
그렇기에 단언할 수 있었다.
리브라는 존재는 확실하게 이질적이라는 것을.
제아무리 드라칸의 여왕체라고 할지라도 이토록 특별한 능력을 보유할 수는 없었다.
결국 여왕체는 드라칸 무리의 모체. 그 어머니로서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에 국한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리고 뜻하지 않게도, 이번 기회에 우연히 들여다본 리브의 내면에 형성된 ‘각성석’ 의 존재는 더더욱 충격적인 결과를 시사하고 있었다.
‘드라칸들이라는 건. 설마 인간들마저도 완전히 잡아 흡수할 수 있는 존재였다는 건가? 인간이 지닌 종 본연의 가능성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