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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94화 (94/200)

95화. 빌객스(6)

“대장이 여기에 있다는 건 대장도 죽었다는 의미이겠지?”

“그야 그렇지.”

“근데 대장은 어떻게 죽었어?”

“……뭐? 갑자기 그게 무슨 헛소리야?”

유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의미를 알 수가 없는 질문이었다.

그의 서늘한 시선에, 빌객스가 재촉했다.

“아니, 그렇게 쳐다보지만 말고. 대장도 죽었으니까 여기에 있는 거 아냐?”

“……하아, 그래. 하긴 너는 나보다 먼저 죽었으니 놈의 존재를 모를 만도 하겠지.”

“놈?”

빌객스가 의문을 표했다.

“뭐였길래 대장까지 죽었을 정도인 건데?”

“그건.”

유성은 이마를 짚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오래간만에 놈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놈은 묵시록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 생각만 해도 그저 막막할, 세상 모든 인류를 암담하게 만들었던 그것.

유성의 대답은 짧았다.

“그건 언터처블(Untouchable) 이라 부르는 놈이었다.”

“뭐야, 그게. 쓸데없이 이름이 장황하네. 지구 시절의 언어로 ‘언터처블’이라면 대충 건드릴 수 없는,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녀석이잖아?”

“그럴 수밖에. 녀석은…….”

잠시간 침묵하던 유성은 곧 말했다.

“완전체보다도 더욱 윗줄에 속한, 궁극체 등급의 괴물이었으니까.”

“오-.”

빌객스는 감탄인지 경악인지 모를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는 궁극체 등급의 언터처블이 등장하기도 전에 죽었다.

그러한 만큼 그 등급의 존재조차 모르는 게 당연했다.

빌객스는 흥미 가득한 표정을 드러내더니 물었다.

“녀석의 능력은 뭐였어?”

“놈, 언터처블은…… 조금 황당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걸 능력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애매한 걸 가지고 있더군.”

“그게 뭔데 그래? 말해 봐, 대장.”

“그래. 놈은 모든 개념을 지배하는 녀석이었어.”

“개념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쉽게 말해 주변의 모든 사물이 전부 놈이었다는 말이야. 녀석은 아주 작은 살점 하나만 있었어도 온 우주에 무한하게 증식하는 상식 그 너머의 괴물이었지. 물론 수십, 수백 개체로 분열까지도 서슴없이 해댔다.”

그 말에 빌객스마저 경악한 듯 질색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우왁, 미친. 그런 놈도 다 있어?”

“그래.”

“음? 어라. 잠깐만, 대장.”

질색하던 빌객스는 곧 턱을 쓰다듬었다.

녀석은 뭔가 묘한 것을 느끼기라도 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뭔데.”

“방금 전에 ‘아주 작은 살점’ 이라고 했던가?”

“그랬었지.”

“그 말은, 거의 죽일 뻔했다는 거 아냐? 맞지?”

그녀의 물음에, 유성은 나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거. 아무래도 진짜 괴물은 대장 같은데? 아하하.”

“닥쳐.”

“하하하! 칭찬이니까 욕하지 말라구. 역시 대장이야!”

유성은 새파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 입 지금 당장 다물지 않으면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응. 미안.”

그 말에 빌객스는 즉각 입을 닫았다.

조금 전까지의 요란한 웃음이 정말로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유성은 타인이라면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을 흘릴 존재 빌객스를 앞에 두고서도 대놓고 욕설을 지껄였다.

오히려 그 기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면, 빌객스 쪽에서 한 수 접어다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상하 우열은, 오히려 유성 그가 우위에 속한 듯했다.

유성, 아니, 이시혁.

그는 사실 타고난 능력이랄 게 딱히 없는 존재였다.

그의 주력은 예부터 어디까지나 근접의 무투술에 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강했다.

직감적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감각적으로 해석하는 그 타고난 능력. 그것은, 다른 형제들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각성자들의 마나 구성 원리를 즉각적으로 해석하여 흉내 내는 그 말도 안 되는 고차원적인 수준의 재능은, 다른 각성자들마저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한 마디로, 각성자보다도 한층 위에 속한 마나 사용자가 바로 그였다.

유성은, 아니, 이시혁은-.

인류 측에서조차 이질적인 강함을 지닌 기갑 파일럿이었다.

그의 형제들마저 뛰어넘는.

“…….”

그러한 유성을.

빌객스는 그저 웃는 얼굴로 마주할 뿐이었다.

* * *

“아하하!”

“……저리 비켜.”

“에이. 좋으면서 괜히 아닌 척 밀치기는!”

그 날을 기점으로, 유성과 빌객스는 줄곧 붙어 다녔다.

물론 유성이 그녀를 데리고 다니는 쪽은 아니었다.

주로 빌객스가 달라붙는 쪽이었다.

유성은 몇 번이고 짜증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밀쳐냈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끝끝내 달라붙었다.

그러한 모습은 금세 전함 메타트론의 모든 이들에게 얘기가 흘러 들어갔다.

원래부터도 존재 자체가 좋지 못한 방향으로 유명했던 범죄자 빌객스의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군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물론 그것은.

라피스와 리브에게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

라피스는 멀리서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찌 되었든, 그녀가 보기에 의외로 유성과 빌객스는 그 사이가 좋아 보였다.

유성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빌객스는 내내 웃고 떠들었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미소를 띤 얼굴이 떠나질 않는 게 보인다.

그건 눈이 부실 정도로 대단한 미인의 웃음이었다.

그러한 빌객스의 등장과 더불어.

드물게도 라프티리아 함장이 모두에게 지시를 직접 내려졌다.

그것은 꽤나 드문 특별 지시였다.

[빌객스 리 아스타치오에 대한 경계는 하되, 적대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말도록.]

빌객스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경계해서였다.

하지만 그러한 라프티리아 함장의 지시는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의외로 빌객스는 얌전했다.

그녀는 이곳의 모든 이들에 대한 경계심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내보이는 것을 제외한다면 조금도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겉으로만 보이는 기세나 외형만으로는 전혀 그 악명 높은 범죄자를 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오히려 시선을 빼앗길 정도의 굉장한 미인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모두가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 빌객스가 유성과 맞붙으며 모두에게 내보인 그 실력은, 분명 진짜였다.

이 배의 모든 이들이 빌객스를 연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벼운 성격이든, 아니면 쾌활하든. 어쨌거나 그녀는 분명 범죄자였다.

그것도 수감할 어둠조차도 내지 못할, 함 내의 모두를 언제고 도륙할 위험을 가진.

“허어억.”

고오오-.

간혹 빌객스가 새카만 연기를 두른 채 복도를 지나가면, 일부는 소스라치게 놀라 물러서기도 했다.

섬뜩한 연기가 넘실거리는 그 광경이란.

마치 인간이 아닌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러므로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곳의 인원들 대부분이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을 마주하고서도, 정작 빌객스 그녀는 조금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해한다.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들이었다.

이곳의 군인들 중에는 빌객스의 악행을 어린 시절의 동화처럼 듣고 자란 이들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녀는 이 시대에서 나고 자란 이래로 줄곧 타인의 두려움을 받았다.

“그나저나 너 올해로 나이가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알기로는 꽤나 오래전에 이 시대에 등장하지 않았나?”

“하하! 알잖아? 각성자가 되면 죽게 되는 그날까지 늙지 않는 거? 아마도 한 칠, 팔십 살 정도? 나이를 세는 건 진작 포기했지!”

유성이 기억하기로 빌객스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벌써 반세기가 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외형은 기껏해야 이십 대 남짓한 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보다도 더 아랫줄에 위치한 초반쯤이라고 해야 할까.

대개의 경우 각성자의 외형은 각성자의 경지에 들어선 시기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빌객스는 아마도 이십 대 초반, 그 정도에 각성자의 경지에 들어섰을 것이었다.

그 이래로 줄곧 그녀는 이러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겠지.

세간에 기록이 될 만큼 압도적인 나이에 각성자로서 능력을 획득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럼에도 유성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것이 놀라운 시대는 지금뿐이지.’

현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빌객스 리 아스타치오라는 이름은 꽤나 유명했다.

물론 결코 좋은 의미에서는 아니었다.

다들 그녀라는 존재를 동화책의 악당쯤으로 여겼다.

실제로 이곳에서 빌객스를 마주하고 깜짝 놀라는 군인들의 일부는, 그녀에 대한 악행을 듣고서 자란 이들도 여럿일 터였다.

물론 그중에는 유성과 라피스 또한 있었다.

나고 자라며 들어온 동화책의 악당.

그것이 바로 빌객스이니, 저들이 눈에 띄게 그녀를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만은 아니었다.

“하아.”

유성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빌객스가 의문을 드러냈다.

“음? 왜 그래, 대장?”

“이 세계에 부활한 지도 한참이 되었는데도 고작 그 정도 수준이라니. 한심할 뿐이라서.”

“대장도 줄곧 수련 따윈 하지 않았다며? 그거랑 같은 거야.”

“…….”

그 태연한 대꾸에 유성은 잠시간 빌객스를 응시하다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하긴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였다.

그로서도 할 말은 없었다.

어쨌거나 사실은 사실이었다.

애당초 400년이나 지속된 평화를 맞이했던 인류가, 뜬금없이 자신의 대에 와서 난데없이 드라칸과 마주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만약 거기에 같은 시대에 다시 만난 두 명의 환생자가 있기까지 하다면.

이것은 마치 누가 조작하기라도 한 듯한 장난 같은 순간이었다.

먼저 앞장서서 복도를 걷는 유성의 팔목에, 빌객스가 팔짱을 꼈다.

그에 유성은 다시금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매몰차게 그녀를 밀쳤다.

“떨어져, 빌객스.”

“아. 그러지 말고! 같이 좀 다녀!”

유성은 일방적으로 싫은 기색을 드러내며 빌객스를 계속해서 밀쳐내려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빌객스는 끈질겼다.

빌객스 리 아스타치오. 그녀는 여자였다.

그것도 누구나 시선을 빼앗길 만한 엄청난 미인.

그런 여자가 유성의 곁에 자꾸 달라붙고 있으니, 슬슬 라피스로서도 없던 걱정이 생겨나려는 판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바람이 불지 않는 함 내에 있음에도 칠흑의 마력이 일렁거리며 머리칼이 살랑살랑 흔들려대고 있었다.

은연중에 형용 못할 신비로운 기색마저 드러나기도 했다.

물론, 대다수의 인물들은 결코 빌객스를 여자로 보지 않았다.

그 대신 짙은 경계의 눈초리로 보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빌객스는 어디까지나 언제 터질지 모를 범죄자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고서도 라피스에게는 분명 주의의 대상이었다.

“…….”

유성은 무심한 얼굴로 주위의 시선에 대한 기류들을 하나하나 읽어 냈다.

개중에는 일부 익숙한 이들이 있었다.

아닌 척하고는 있었지만 이미 몇 번은 군인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있던 이들이었다.

‘저 셋은 나와 빌객스를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다. 아스트라 부함장의 감시역들인가?’

“하아.”

둘을 바라보는 라피스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속이 답답했다. 물론 그러한 기색을 직접 내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 멀리 멀어지는 둘의 모습에 그녀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엄마.”

“……왜 그래, 리브.”

“이대로라면 좀 위험할지도 몰라.”

“……뭐, 뭐?”

그 말에 라피스는 저도 모르게 리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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