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빌객스(5)
빌객스, 아니, 제5번 임시 소대원 아그네스 피어스.
그녀가 임시 소대원이었던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약했으니까. 그저, 드라칸들과 정면에서 맞붙기에는 약했기 때문이었다.
이 시대에서는 두려움을 사고 있는 괴물 같은 강함을 지닌 이 빌객스라는 여자조차, 진짜 괴물들인 드라칸과 싸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랄 정도로 약했으니까.
그 시대에는 이 정도의 강함조차도 희소하지는 않아도 어딜 가도 하나쯤은 있을 만큼이나 흔하게 널려 있었다.
전쟁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시대의 인간들은 강했다.
“…….”
유성은 돌연 입을 다물었다. 그는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재 그들은, 다수의 군인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안전장치가 풀려있는 총구가, 당장에라도 쏴질 듯이 겨눠지고 있었다.
빌객스는 이 태양계의 모든 인간들이 아는 최악의 범죄자다.
이 정도의 대응은 진작에 예상했다.
다만, 거기에는 빌객스만이 아니었다. 유성도 함께 포함되고 있었다.
지금 그는 빌객스와 더불어 함께 의심을 받고 있었다.
유성은 입을 다문 채로 생각했다.
‘모두가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 빌객스는 물론이고, 나 또한 마찬가지. 짧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아.’
이곳에는 보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에게는 빌객스와 단둘이서만 대화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시선은 방해가 되었다.
유성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곧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스트라 부함장님. 지켜보고 있으시겠죠? 저와 빌객스, 단둘의 독대를 요청합니다. 물론, 어떤 도청 따위도 허락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탁이되 명백한 우열 관계가 존재하는 식의 어투였다.
[지금 상황에서 유성, 자네는 명백한 의문의 존재다. 아니, 의심의 대상자라고 해야겠지. 무려 수십 년도 더 전에 활동하던 이와 어떻게 아는 사이이지?]
“각성기란 건 시간을 다루는 것마저도 가능한 능력이라고 말씀드리죠. 하지만 그 이상은, 저도 어렵습니다.”
그 이상은 유성도 말할 수가 없다.
애당초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뛴 존재라고 어떻게 말을 하는가.
그것은 누구 하나 믿지 못할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었다.
저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어떻게 오해하든 간에 상관없다.
이미 접점의 힌트는 충분했다.
대충, 시간을 건너뛰어 서로 만났다는 식으로 정도만 안다면 저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적어도 저는, 전함 메타트론을 적대할 생각이 일절 없습니다. 물론 빌객스도 동일한지는 저도 모르지만.”
예상대로 침묵은 꽤나 오래도록 이어졌다.
아마도 유성에 대한 지금까지의 신뢰와 지금의 돌발 상황에 대한 저울질 중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끝은 존재할 터였다.
지금 그들은 드라칸의 활동 영역 한복판에 떨어져 있었고, 유성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그때 돌연, 아스트라 부함장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빌객스가 날뛰기라도 하면?]
“……죄송하지만 부함장님. 당신도 보셨다시피 아시겠죠.”
[…….]
아스트라 부함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그 또한 유성이 뭐라 할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어차피 저는 물론이고 이 배의 어느 누구도 지금 저 녀석이 날뛰기 시작하면 막지 못합니다. 물론 부함장님이라면 빌객스와 아는 사이인 저조차도 의심하고 있겠지만, 이 상황에서라면 결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말대로였다.
지금 아스트라 부함장, 그리고 라프티리아 함장이 유성과 빌객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빌객스는 물론이고, 그녀와 아는 사이인 유성마저 의심하고 있을 터였으니까 말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빌객스였다.
그런 그녀와 아는 사이라는 것은, 어느 누가 보기에도 명백히 경계할 수밖에 없는 요소였다.
“그리고 분명하게 단언하죠. 일단 빌객스가 제 손에 들어온 이상, 이 녀석은 절대로 제멋대로 날뛰는 일이 없을 겁니다.”
거기에 덧붙였다.
“녀석이 날뛴다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처리하겠다. 전함에 위해를 가한다면 직접 쓰러뜨리겠다는 말이다.
그것은 확신이 어린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국 몇 마디의 말에 불과했다.
말이란 결국 이 혼란 속에서 그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깨트리려면 언제고 깨트릴 수 있다.
고작 몇 마디의 말만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빌객스를 풀어둔다는 것은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트라 부함장은-.
[……알았네.]
그는- 끝내 수락했다.
어차피 다른 방도가 그들에게는 없을 테니까.
그들에게는 유성이 필요했다.
그것이 지금이든. 아니면 차후에서든.
[다들 그곳에서 나오도록. 물론, 누구 하나 예외는 없다.]
부함장의 지시에, 총구를 겨누고 있던 군인들이 곧 일제히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유성은 리브를 불렀다.
‘리브. 외부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소리를 차단시켜 줘.’
[알았어, 아빠!]
유성은 곧장 리브에게 부탁했다.
그 즉시, 주변에 옅은 마력의 장막이 펼쳐지며 내부와 외부의 공간을 단절시켰다.
도청의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하하핫! 여기 사람들, 자기 분수를 아주 잘 알고 있잖아?”
“……빌객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곧장 무심한 얼굴로 돌아선 유성은, 싱글거리는 빌객스를 응시하며 말했다.
“방금 전 너와 나 사이의 거래는 분명 기억하겠지? 너는 내 부탁을 들어주고, 나는 네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그 과정 사이에 다른 이에게 피해는 주지 않아야 한다는 걸.”
“그야 물론이지, 대장!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유성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댔다.
제 딴에는 나름대로 친밀함을 표하려는 듯했으나, 그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일전의 공격을 지금도 기억하는 그였다.
유성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지금 네 수준은?”
“대장도 이미 상대해 봐서 알잖아? 지금 내 수준으론 아마도 끽해 봐야 상위체 두셋 정도겠지. 완전체라면 하나도 간신히 상대할 거야. 물론, 그마저도 간신히 시간을 끄는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그 뛰어난 육체를 가지고서 그 정도라니. 형편없군.”
“하하하핫! 대장, 그건 너무 독설인걸. 하지만 그건 대장도 마찬가지잖아?”
그들은 서슴없이 완전체를 입에 담았다.
하지만 그들의 전생을 떠올린다면 이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 유성과 빌객스는, 이 인류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의 드라칸을 상대한 이들이었다.
팀의 대장이었던 유성은 말할 것도 없고, 소대원이던 빌객스 또한 당연했다.
그런 그녀가, 보통의 기갑 파일럿 수준과 동일할 거라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었다.
유성의 소대원들은 그 누구보다 많은 수의 드라칸들을 죽였던 팀이다.
인간들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
대전쟁 당시의 인류가 가진 무력의 기준치는, 지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그러한 마당에 고작 완전체 하나를 상대로 시간을 끄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은 사실상 조금의 단련조차 하지 않은 시간 낭비를 했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이 녀석이 무력적인 면을 가지고서 소대원으로 함께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로군. 물론 그만큼도 되지 않는 내가 남 말 할 처지가 아니기는 하지만.’
빌객스, 아니, 전생의 그녀는 팀을 보조하는 텔레포터로 활동했다.
공간을 가르고, 도약하고, 만에 하나의 상황에서 생사의 기로를 열어주는.
일종의 세이프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코 무력적인 측면에서 인정받은 이는 아니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서는 그런 그녀가 손에 꼽히는 강자로 통하지.’
처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인류 전체의 수준이 그만큼 뒤떨어졌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러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어 빌객스에게 물었다.
“그보다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건…… 설마 다른 녀석들도 이 시대에 와 있다는 건가?”
“그럴 리가 있나. 하하!”
빌객스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유성 또한 저도 모르게 피식 낮게 웃고야 말았다.
“하긴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랬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겠지.
그랬다면 애당초 빌객스가 혼자 있었을 리가 없었을 터였다.
빌객스는 자유분방한 성향의 소유자였다.
군과는 맞지 않는 성격이었고, 무단이탈도 서슴없이 행하는 인물이었다. 타고난 강력한 능력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처벌을 하거나 내쫓았을 것이다.
당시의 지구에서 마나 능력자는 지금과 달리 터무니없이 그 수가 적었다.
그들 하나하나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나마 그들 중 각성자의 비율이 높았기에 전쟁 속에서도 어떻게든 전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 무너지고도 남았다.
때문에 군에서는 이런 자유분방한 성정의 빌객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갖은 수를 써야만 했다.
그럼에도 수시로 군을 뛰쳐나갔으니 당시 유성의 소대원들은 녀석을 붙잡기 위해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빌객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녀석이었으니까.
그나저나 같은 시대에 만난 두 명의 환생자인가.
말로는 결코 표현하지 못할 우연이 한데 겹친 기묘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혹시 빌객스로 활동하면서 다른 각성자를 만나본 적이 있나?”
“각성자?”
그 말에 빌객스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대답했다.
“딱 한 번이야. 무슨 왕가 소속의 기사단이랬나…… 그곳의 기사단장이라던 녀석이 있었지. 다른 녀석들은 별것 아닌 것들뿐이었는데, 녀석은 달랐어. 그 녀석이 나서는 바람에 잡혀 버린 거야.”
“수준은?”
“별 볼 일 없어. 당연히 대장의 소대원급을 생각하면 곤란하고, 그보다 약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각성자 중에선 딱 평범한 수준.”
“그걸 감안해도 분명 상당하다는 소리로군. 널 잡을 정도로 말이지.”
유성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꽤나 곤란한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좋지 않은 소식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왕가의 단장이 고작 그 정도라면, 사실상 드라칸과의 전투에 대한 결과는 길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이 세계의 모든 인간들이, 조금의 발전조차 없었다는 것과 동일했으니.
아니, 어쩌면 그조차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상 ‘퇴화’를 했다는 것일지도 몰랐다.
세간에 마나 능력자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그 수가 늘어났지만.
역설적으로 그 한계치가 낮아졌다는 건가.
‘이미 상위체까지 튀어나온 마당에, 그 이상의 괴물들이라 해도 언제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그러한 상황에서 고작, 인간 측의 강자가 고작 그 정도 수준이 전부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으로 더욱 처참한 소리였다.
남아 있던 실낱같은 기대감마저 끊기는 것을 감지했다.
어쩌면 인류는, 이번에도 패배할지 몰랐다.
아니, 어쩌면.
종 자체가 절멸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보다, 대장. 대장. 대장. 대장.”
“……뭔데. 그렇게 귀찮게 질척거리지 마.”
유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달라붙는 빌객스를 떼어냈다.
아그네스, 아니, 빌객스는 이전부터 묘하게 자꾸 들러붙고 있었다.
그 어색함에 자꾸 밀어내고는 있지만 녀석은 싫지도 않은지 그의 옆에서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장난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순간 히죽 웃은 빌객스가 물었다.
“대장이 여기에 있다는 건 대장도 죽었다는 의미이겠지?”
“그야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