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빌객스(2)
놈은 상위체였다.
드라칸 무리가 낳은, 가장 일반적인 양산체나 전투체 따위가 아닌 뛰어난 개체. 전투체보다도 한 등급 윗줄에 속한, 태생적으로 특별한 등급.
그러한 상대인 놈에게 통하는 일격은 오로지 마력을 잔뜩 머금은 일격뿐이다.
일반적인 포화로는 놈에게 제대로 된 데미지조차 줄 수 없다.
방금 전 고속으로 접근하던 놈에게 전함 메타트론이 포화를 날렸음에도 잔뜩 그슬린 생채기 정도만 남겼듯이 말이다.
쾅! 콰앙-!
먼 거리에서부터 놈을 노리고서 라피스의 기가스, 스크래퍼가 연달아 포격을 날려댔다.
놈은 그 거체를 가지고서도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을 보이며 수백 미터 높이의 상공 위를 종횡무진 날아다녔다.
압도적인 회피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회피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만은 없다.
반드시 그 틈은 보이기 마련이었다.
불규칙적인 비행을 선보이던 녀석이, 한순간이나마 멈춰 섰다.
‘바로 지금……!’
순간의 기회를 포착한 유성이, 푸른 동공을 빛내며 쏘아졌다.
로켓 대검을 움켜쥔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가 놈을 향해 검격을 날렸다.
팅-! 티딩!
“……이 자식. 전신이 갑옷이군.”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놈의 단단한 갑각질의 재질과, 마력이 서린 단단한 다리들이 그의 공격을 무슨 가벼운 것이라도 되는 듯 튕겨내고 있었다.
몸체 자체가 지독할 정도로 단단한, 말 그대로 갑충(甲蟲) 이었다.
놈에게는 어떠한 이점도 없었다.
기술도, 경험도. 그 무엇도 없었다.
예전 유성 그가 상대했던 두 마리의 상위체들, 화이트 레이븐이나 다크 레이븐과 같이 뛰어난 지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술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놈에게는.
가장 원시적인 밑바탕이 되는, 압도적인 육체의 전투 능력이 있었다.
상위체들 중 어느 놈 하나 쉬운 놈이 없다지만, 이 녀석 또한 거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타고난 능력이 정말 괴물 같은 놈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유성에게는 방법이 있다.
그는 전력으로 소리쳤다.
“리브-!”
번-쩍!!
유성의 외침과 동시에.
라피스의 기가스인 스크래퍼로부터 푸른빛의 에너지 덩어리가 쏘아지듯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마치 벼락이 유성 그를 향해 내려치는 듯한 강렬한 광경이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적.
놈이 위협적이라면, 그 대응법은 간단하다.
힘은, 더욱 강대한 힘을 통해 찍어 누르기만 하면 된다.
가장 원초적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유성에게는, 그만한 힘을 가지고서 보조해 줄 존재가 있었다.
[하하. 나 불렀어?]
우우웅-!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의 내부 핵.
그곳에 자리 잡은 강력한 마력원을 느끼며, 유성이 의식을 전달했다.
‘부탁해, 리브.’
[물론이야, 아빠!]
유성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드라칸, 놈은 강력한 마나 능력으로 신체를 강화한 상대다.
그렇다면, 유성 또한 그에 준하는 힘으로 상대하면 될 일이다.
리브가 설령 아직 어린 드라칸 여왕체라고 할지라도 태생적으로 타고난 그 강력한 능력은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강대하다.
유성은 그의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의 마력 핵에 공급되기 시작하는 막대한 양의 마나 에너지를 느끼며 자신의 육체가 이전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강화되고 있음을 알았다.
유성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놈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하던 그가 다시금 눈을 떴을 때.
‘각성기(覺醒技).’
그의 눈은 찬란한 빛을 발하는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사고가속(思考加速). 발동.’
그 순간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시야 아래에 놓이기 시작한다.
세상 모든 것들이 눈에 띄게 느려져 간다.
포효하며 그를 노리던 상위체 드라칸도. 전함 메타트론과 스크래퍼의 포격들도. 그리고 지상의 원거리형 드라칸들도.
그리고 유성 그 자신 육체 또한 말이다.
모든 것이 마치 정지하기라도 한 듯이 느려졌다.
그러한 세계 속에서, 오로지 그의 정신만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후-.]
숨을 내쉬었다.
긴 숨을 내쉬는 것조차,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졌다.
숨을 내쉬는 그 소리. 그것을 마치 크게 확대하기라도 한 듯이 아주 크게 들려왔다.
두근. 두근.
유성 그 자신이 내쉬는 숨소리마저, 마치 태풍 소리처럼 크게 확대되어 들려왔다.
심장의 박동과 기가스의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음까지도.
뚜렷하기 그지없었다.
세상 모든 것들이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독하게도 느려졌다.
각성기, 사고가속.
이것은 유성 그가 인지하는 뇌를 빠르게 가열시켜 주변의 모든 것들을 한없이 느리게 인지하는 것.
그 누구도 이 세계에 간섭할 순 없다.
오직, 오직 그만이.
사고가 한없이 가속한 지금의 유성 그만이.
이 느려진 시간선 속에 속한 유일한 단 하나의 존재였다.
쿠오오오-.
유성은 상위체 드라칸의 공격을 마주하고 있었다.
놈의 칼날과도 같은 다리가 하품이 나올 정도로 아주 느리게 그의 머리 위쪽을 스치듯 지나치고, 그는 그것을 간발의 차로 회피했다.
다른 어떠한 공격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놈의 나머지 다리들조차, 그에게 닿을 듯 가까이 근접하면서도 결코 닿지 않았다.
말 그대로, 완벽에 가까운 회피 능력이었다.
‘회피와 공격. 놈의 빈틈에, 검을 꽂아 넣는다.’
콰드-드득-.
갑충이라 불러야 마땅할 놈의 단단한 뱃가죽을 꿰뚫고 대검이 박혀 들었다.
그 살이 깨부숴지고 대검이 박혀드는 소음조차, 한없이 느리게만 들려왔다.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 이 모든 접전들은, 불과 눈을 감았다 뜰 만큼이나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들 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광경들이었으니까.
너무도 빠르게 이어지는 접전의 연속들이기에.
놈 본인조차도 아직까지 제 몸에 박힌 대검의 데미지조차도 인식하지 못했으리라.
‘적중했다.’
하지만 그것들의 공격을 회피했다는 것을 확신하기가 무섭게 유성은 곧장 각성기의 사용을 꺼트렸다.
그 직후, 황금빛을 발하던 눈동자가 다시금 원상태로 돌아왔다.
멈춘 듯이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금 빨라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유성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찰나. 정말로 찰나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벌어진 순간의 연속들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원상태로 돌아옴과 함께, 치명상을 입은 놈의 거체가 삐거덕거리며 푸른 체액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일격에 놈의 몸체가 무너질 듯 뒤틀렸다.
놈이 버거워하고 있었다.
유성은 놈을 쓰러트리기까지 그리 멀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쩌억.
하지만 그 순간, 그들 유성과 놈의 뒤편에서부터 뭔가가 ‘나타’났다.
공간이 쩍, 하고 찢어지듯 벌어지며.
시커먼 그 내부에서부터 나타난 것은-.
‘저건? 기가스?’
그 모습을 포착한 유성의 표정이 한껏 굳었다.
그것은 칠흑의 기운으로 감싸여진 기가스였다.
그 의문의 기가스에서부터 뽑힌 검날이, 상위체의 몸체에 그대로 파고들었다.
[■■■■■■?!]
[으하하하!!]
나타난 난입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녀석’은 웃고 있었다.
처음부터 오로지 유성이 상대하던 상위체 놈만이 표적이라는 듯 볼 것도 없이 놈을 관통했다.
그토록 단단한 갑각질로 이루어진 놈의 외피를 꿰뚫고서, 녀석의 검세가 반대편으로 뚫고 나왔다.
뻥 뚫린 드라칸의 구멍에서부터, 푸른 체액이 터져 나왔다.
유성은 물론이고 라피스마저 난데없는 난입자의 등장에 당황했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당황을 드러냈다.
[저, 저건 또 뭐야? 기가스잖아? EF-04? 저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이곳에는 우리들만 있던 게 아니었어?]
“…….”
유성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그저 상위체를 향해 달려든 상대방을 관찰하듯 응시할 뿐이었다.
나타난 것은 정체불명의 ‘기가스’였다.
이 근방에서 오로지 인간이라고는 전함 메타트론에 탑승한 인원들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
놈, 드라칸이 푸른 피를 토하면서도 대응하려 했으나, 기가스에 올라탄 상대방은 놈의 팔을 그대로 붙잡았다.
그러곤, 놈의 양팔을 붙잡아 비틀어 뜯어 버리며 한순간에 무력화시키고는 그대로 머리통에 검날을 박아 넣었다.
누가 어찌할 새도 없이.
그 강력한 상위체 등급의 드라칸이 형편없이 무력화되어 숨통이 끊어졌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기세를 머금은.
철저한 오체분시의 사냥이었다.
기잉-!
상위체를 순식간에 쓰러뜨린 정체불명의 기가스.
놈이 짙은 칠흑의 마기를 연기처럼 뿜어내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유성과 그 칠흑의 기가스.
그 둘은, 서로가 서로를 마주한 채로 대치했다.
곧 유성 쪽에서부터 먼저 녀석에게로 통신을 보냈다.
[너. 정체가 뭐지?]
[…….]
[대답하라.]
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통신 채널은 분명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놈은 한 마디도 없었다.
기세를 풀지도 않았다.
그 정체불명의 기가스에서부터 흩날리는 시커먼 ‘흑연’이, 놈을 더욱 섬뜩하게 보이게 했다.
녀석은 조금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통신 따위는 조금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스릉-.
대신 녀석은 유성을 마주한 채로 언제고 달려들기라도 할 듯 검을 세워들 뿐이었다.
명백한 전투 태세였다.
‘……위험하다. 이 자식, 설마 나와 싸우려는 건가?’
유성은 그러한 느낌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차디찬 기류를 느꼈다.
고오오오-.
저 정체불명의 난입자는 유성을 상대로 맹렬한 기세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조금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로 응시하고 있었다.
정황상으로는 유성 그를 도와준 것이나 다름없을지라도, 그와는 별개로 저 기세가 결코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공기의 흐름이 팽팽하기 그지없었다.
언제 맞붙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기류가 빡빡하게 조였다.
[…….]
[…….]
놈은 유성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와 마찬가지로 유성 그 또한 놈을 노려보고 있었다.
서로를 탐색하기라도 하듯 훑는 서늘한 시선이 느껴져 왔다.
[뭐, 뭐야. 저 기가스는?]
[오지 마, 라피스!]
그 말에 라피스의 스크래퍼는 그 자리에 움찔 멈춰 섰다.
[대, 대체 뭔데?]
그녀에게서부터 당황한 기색이 느껴져 왔다.
인간이 인간을 적대한다.
분명 드물지만, 영 없는 경우도 아니었다.
하물며 드라칸이라는 인류 공통의 대적(大敵)을 상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을 적대하는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흔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심심찮게 벌어졌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일 뿐이지. 지금은 그런 경우가 드문 시대야.’
유성의 생각대로였다.
이 시대의 평화에 젖어 버린 인류에게는 그리 익숙한 단어가 아니었다.
당장 라피스가 크게 놀라 당황했던 것처럼, 이들은 그런 것에 결코 익숙지 않았다.
유성은 전방의 상대방을 향해 팽팽한 경계심을 끌어올린 채.
조금도 경계를 늦추지 않은 상태 그대로 전함 메타트론과 통신을 연결하고서 물었다.
“부함장님. 지금 눈앞에 나타난 저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잠시 기다려 보게. 지금 우리 쪽에서 확인 중이야. 현재 분석 중인 파일을 유성 자네의 모니터 화면으로 보내고 있네.”
아스트라 부함장의 말처럼, 유성의 모니터 화면에 파일들이 전송되고 있었다.
[식별번호 LV-205 407 00159.]
[소속 : 행성 테라의 시리우스 대감옥, 일명 심연.]
[등록 파일럿 : 기갑 파일럿인 간수 알렉산드로 드코치니프.]
[해당 기체의 등록 파일럿, 87시간 전, 사망으로 확인됨.]
‘대감옥, 심연의 간수가 사용하는 기가스라고? 그런데…… 잠깐.’
그런데, 그 내용이 결코 심상치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눈앞에 있는 화면에 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