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드라칸의 영역(3)
드라칸들은 시시각각 그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따라서 보다 높은 곳에서의 비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그들이 있는 지점의 높이까지 내려오지 못하는 것을 아는 이상, 그것이 타당했다.
메타트론이 전함으로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이점 중의 하나를 포기하고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상도 마찬가지라는 거지.’
때문에 유성도 현 상황이 어떠한지는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도 함장과 부함장은 이 아슬아슬한 높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상황에 따라서 지상과 상공으로 그때그때 회피하려는 속셈일 거다.’
그것이 가장 정석적인 방식의 진로다.
실제로 유성이 보기에도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선택이라 함은 치명적인 결점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자칫 무작정 그러한 선택을 하다간 결정적인 순간에 몰리고 몰려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유성.”
“음?”
돌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유성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그를 응시하고 있는 라피스가 있었다.
진지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녀가 물었다.
“정말로 몸은 이제 괜찮은 거야?”
그 말에 유성은 쓰게 웃으며 답했다.
“물론. 완치니까,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유성은 지금도 기억한다.
그 기억은 선명했다.
강하 도중, 라피스가 그에게 보내 오던 통신에 섞인 울먹거림을.
[유성! 유성, 괜찮아?!]
‘……라피스.’
[유성! 대답 좀 해! 제발!]
그때 유성의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라피스는 분명 울고 있었다.
라피스의 음성이 그토록 떨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그녀는 언제나 당돌하고 활기찼다.
자신감과 더불어 언제나 그것을 단단히 뒷받침하는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어. 라피스에게서는…… 불안함만이 느껴졌으니까.’
스윽.
그는 라피스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정말로 괜찮아. 고맙다.”
“뭐, 뭔 소리를 하, 하는 거야. 고, 고맙기는 무슨.”
하지만 대답하는 라피스의 음성이 가늘게 떨려왔다.
돌연 그녀는 돌아섰다.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돌아선 그녀는 어깨를 가늘게 떨었다. 이내 그녀는 발걸음을 돌려 멀어지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 난 마실 것 좀 가지러 갔다 올게. 가자, 리브.”
“알았어, 엄마!”
* * *
“저공 비행이라.”
현재 그들은 가능한 낮은 높이를 유지한 채로 저공 비행 중이었다.
지상이 불과 창밖으로 가깝게 내보였다.
아마도 그 거리는 불과 수백여 미터에 불과할 터였다.
‘드라칸 놈들. 한두 마리가 아니로군.’
지상에는 한 무리의 드라칸들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행렬이라도 이루듯 줄지어 늘어서서 움직이는 드라칸들.
개체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볼품없는 질량의 마력 수준으로 보아 양산체들임이 분명해 보였다.
부지런히도 마른 대지를 돌아다니고 있는 녀석들의 수는 한둘이 아니었다.
일렬로 선 채 줄줄이 따라가는 그 모습이란. 마치 일개미들의 행렬과도 같았다.
놈들의 둘러싸고 있는 껍질, 갑각질의 빛이 연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태어난 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 유생 수준의 개체들이었다.
놈들은 주변의 자원인 각종 동식물들을 짊어진 채로 움직이고 있었다.
주로 무리의 일꾼이나 다름없는 양산체들은, 저런 방식으로 자원을 채취한다.
물론 그것이 단순히 사냥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단지 마나 생명체인 드라칸들은.
동식물 등에 서려 있는 마나라는 에너지원을 채취한다. 바로 저런 식으로.
놈들에게 있어선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과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자원 덩어리에 불과했다.
마력이 서려 있기에,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저 채취할 자원으로만 본다는 의미였다.
“우와-!”
그 모습에 리브가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드라칸의 어린 여왕체, 리브.
사실상 태어난 이래로 줄곧 새로운 환경을 마주할 기회가 없던 리브다.
이제껏 녀석이 아는 환경은 오로지 함선 메티스의 극히 폐쇄된 일부의 공간뿐이었다.
그러한 녀석에게 있어, 이 행성 테라는 온통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들이 널린 환경이었다.
주변의 모든 환경과 풍경들이 그러했고, 저 아래 지상의 드라칸들의 존재조차도 마찬가지다.
“자, 리브.”
유성은 그러한 리브에게 탁자 한편에 놓여 있던 쌍안경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리브가 의문을 표했다.
“아빠, 이건 뭐야?”
“쌍안경이라고 부르는 물품이야. 주로 먼 거리의 사물을 관찰할 때 쓰이는 도구지.”
“오?”
그 말에 한층 커진 눈동자를 드러내는 리브에게.
유성이 그것의 착용 방법을 알려주었다.
“두 눈에다 가까이 가져가면, 주위 사물이 보다 크게 보일 거야.”
“어? 어어? 몬가몬가네?”
그러한 유성의 설명에, 곧 리브가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금세 감탄이 터져 나온다.
“와아. 더 잘 보여!”
어찌나 감탄을 했는지 아예 리브의 온몸에서부터 미세한 푸른 입자들이 흘러나오기까지 할 정도다.
리브의 몸이 옅은 마력을 뿜어내더니 하늘로 조금씩 떠올랐다.
그 모습에 유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관찰한다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나 보군. 물론 신기하기도 할 테고.’
리브는 마나 생명체인 드라칸이었다.
인간이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주로 드러내듯이. 드라칸 또한 제 나름의 방식으로 강렬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때때로 크게 흥분하는 경우 자신의 에너지를 주체 못 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리브의 경우와 같이 말이다.
유성은 아래 지상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 근방에는 유독 갓 태어난 유생 수준의 어린 드라칸 무리가 자주 보이는군. 어쩌면 이 근방에는 여왕체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대체로, 어린 녀석들의 경우에는 무리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이니.’
드라칸 무리를 구성하는 일원인 모든 드라칸들은, 여왕체의 자식들이다.
여왕체에게 있어 자식들이란 말 그대로 자식들이다.
그저 쓸모가 다하면 버리는, 한낱 소모품 따위가 아니었다.
모두가 여왕체의 자식들이기에, 그들을 한없이 아낀다.
하물며 그것이 어린 개체인 유생들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때문에 대체로 유생 개체들의 경우에는.
비교적 위험이 판별된 영역 내의 자원 채취를 주로 하는 경향이 있었다.
위험이 판별되지 않은 보다 먼 반경으로의 정찰과 채취는, 그보다 성장한 개체들이 맡고서 말이다.
물론 유성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섣불리 그러한 생각을 입 바깥으로 꺼내 들진 않았다.
지금 그들은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이유 따윈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연합의 기지로 향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장 코앞에 여왕체가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면야 굳이 이곳에서 늦장을 부리며 시간을 소모할 수만은 없었다.
“와아. 줄줄이 줄지어 다니네. 귀엽다!”
‘……귀엽다, 인가.’
유성은 한창 지상을 관찰하며 중얼거리는 리브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의 시선은 창문에 손을 가져다 댄 리브가 보였다.
리브는 창문 너머, 저 아래 지상에 보이는 드라칸들을 바라보며 창문을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쓰담쓰담~.”
그와 리브의 관점은 그렇게나 달랐다.
그에게 있어서는 한없이 그저 베어 넘길 것에 불과할 것들인 저 드라칸들이, 리브에게 있어서는 그저 어린 녀석들로만 비치고 있었다.
그저 가볍게 흘려 넘길 수도 있는 소리였으나.
그럼에도 그러한 내용을 눈앞에서 듣게 되는 유성에게 있어서는 결코 흘려 넘길 수 없는 주제였다.
결국 리브는 드라칸의 여왕체였다.
‘어쩌면 리브도 언젠가는 저런 드라칸 무리를 만들어 내려 할지도 모르지. 그때가 되면…….’
유성은 미간에 옅은 잔금을 모았다.
어쩌면, 그때가 되면 그는 자신의 의지로 리브를 처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자신의 손으로 저 리브를 말이다.
드라칸은 결국 드라칸이다.
그 외형이 제아무리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한들, 근본적인 종의 태생 자체가 한없이 다른 존재다.
그리고 언젠가.
리브가 그러한 드라칸으로서의 본성을 드러낸다면, 유성은-.
녀석을 베어 버릴 수밖에 없다.
‘리브는…… 아니, 녀석은…… 결국 드라칸이니까.’
그때였다.
쿠구궁-!
세찬 진동이 느껴지더니 전함이 크게 뒤흔들렸다.
“앗!”
“이런.”
그대로 기우뚱하며 넘어지려던 리브를, 유성이 받아들었다.
유성의 몸에 기댄 채로, 리브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헤헤, 고마워. 아빠.”
“별말씀을.”
가볍게 대꾸하며 유성은 실금 같은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하지만 금세 그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밝게 웃는 리브의 얼굴을 보자니, 마음이 심란하다.
하지만 유성은 그것을 외면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들었다.
그는 곧장 복도로 나섰다.
“무슨 일이야!”
“공격? 공격인가?”
사방에서 난리였다.
복도는 소란스러웠다.
바쁘게 뛰어다니는 군인들의 표정이 다급해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상황이라도 발생한 건가?’
“스읍. 뭐, 뭐야?”
그때, 한창 침대에 누운 채로 잠들어 있었던 라피스가 벌떡 일어났다.
입가에 선한 침자국을 닦아내기까지 하는 것이, 깊이도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소란스러운 복도의 모습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유성이 돌아보고는 말했다.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뭔가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가 않아. 함 내에 진동이 울-.”
쿠구궁-!
그 순간, 유성의 말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다시금 굉음이 울렸다.
깜짝 놀란 라피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리브도 눈을 깜빡이며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쿵! 쿠궁.
바깥에서부터 연신 폭음과 함께 진동이 울려대고 있었다.
그들은 바깥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창문 너머의 지상을 확인했다.
저 아득한 아래의 지상.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아래 지상에서부터 쏘아지고 있는 푸른빛의 마력을 한껏 머금은 강렬한 포격이었다.
‘습격? 설마 원거리형 드라칸인가?’
유성의 안색이 빠르게 굳어졌다.
“리브! 라피스!”
“응, 아빠.”
“으, 응?”
“지금 바로 나가야 할 것 같아. 통제실로 가자.”
그 말에 라피스는 황급히 제복을 걸쳤고 리브는 보이지 않는 영체 상태로 자신을 바꾸었다.
* * *
쿠구궁-.
그때, 함선 전체가 통째로 울리는 강렬한 진동이 터져 나왔다.
난데없는 소동에 사방에서부터 군인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옷가지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상태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무슨 일입니까?!”
“습격! 습격이다! 드라칸들이 출몰했어!”
위잉-!
요란한 소음이 복도를 타고 흘렀다.
길게 이어지는 복도.
그곳을 뛰어가는 유성과 라피스, 그리고 리브의 시선에 창문 너머로 푸른 섬광들이 무수하게 저 아래 지상에서부터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원거리형 드라칸들의 마력 포격이었다.
쿠오오오-!
지상에서부터 쏘아지는 푸른빛의 마력 섬광들.
그것들이 연신 전함 메타트론의 몸체를 두들기고 있었다.
함 내는 당장에라도 붕괴될 것처럼 정신없이 뒤흔들렸다.
“으, 읏……?”
그 섬뜩한 광경을 목격한 라피스가 잔뜩 당황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창문에서부터 주춤주춤 떨어졌다.
그것은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로 섬짓한 광경이었다.
라피스는 다리를 떨면서 물었다.
“고, 공격이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닌데? 자칫하다간 전함째로 침몰하는 거 아냐?”
유성은 그런 라피스의 어깨를 두들겼다.
“너무 당황하지 마, 라피스. 고작 이 정도로 명색이 전함이 가라앉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