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드라칸의 영역(2)
그로부터 반나절이 더 지나서야 유성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짧은 시간에 불과하지만, 육체가 순조롭게 회복을 끝마쳤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토록 안고 가야 할 치명적인 후유증을 입었음에도, 끝끝내 그의 육체는 완벽한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유성의 회복은 타인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할 만큼이나 빨랐다.
외투를 걸친 그가 곧장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통제실’이었다.
“저 왔습니다, 부함장님.”
한창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던 아스트라 부함장이, 고개를 들었다.
“왔나? 여기까지 불러서 미안하군. 몸은 좀 어떤가?”
“덕분에 많이 나아졌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사실상의 완치라고 해도 될 정도겠죠.”
꽈악.
그 말을 증명하듯, 주먹을 쥐어 보였다.
세게 쥐어진 그의 주먹 안에서부터, 새파란 기운이 한데 뭉쳐 빛나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아스트라 부함장이 이채를 발했다.
“확실히 대단하기는 하군.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았었는데, 벌써 부상을 털고 일어난 건가. 솔직히 말해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야.”
아스트라 부함장의 말에, 유성은 드러내고 있던 마력을 가라앉히며 답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수일 동안은 가능한 활동을 자제해야겠죠. 물론, 지금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 거라 보지는 않습니다만.”
“미안하군. 그래도 우리 쪽에서도 최대한 노력해 보겠네.”
쓰게 웃은 아스트라 부함장이 말했다.
“그런데 라프티리아 함장님께선 어딘가 가셨나 보군요. 보이질 않는 것을 보니.”
그렇게 말하며, 유성은 고개를 돌렸다.
평소라면 언제나 통제실에 있었을 라프티리아 함장이다.
그런 그녀가, 오늘은 보이질 않고 있었다.
“연합의 상부와 따로 면담 중이시지. 지금쯤 한창 군과 합류할 장소를 모색 중이실 거야.”
“그렇습니까.”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되는 반응이었다.
유성이 모든 세세한 과정들을 기억하지 않으나, 현재 그들은 마지막 순간 강하 지점이 크게 엇갈린 상태였다.
대규모 이송 함선인 메티스는 원래의 강하 지점으로 안착했으나, 그들 유성을 포함한 전함 메타트론의 경우에는 그 방향이 크게 틀어졌다.
강하 지점이 크게 엇갈린 탓에, 현재 이곳은 원래의 예정에는 전혀 없던 장소였다.
고오오오-.
전함 메타트론은 이동하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이던 지상을 잠시간 응시하던 유성이 물었다.
“현재 저희들이 강하한 지점은 정확히 어디쯤입니까?”
그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수 초간 뜸을 들이던 그는 돌연 입을 열었다.
“장소라…… 사실, 지금 우리들은 생각 이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아. 유성 생도.”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그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모니터를 밝히며 말을 이었다.
화면에는 거대한 지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현재 우리들이 있는 곳은 드라칸의 서식이 활발하게 포착된 생식 지역이다. 쉽게 말해, 놈들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게이트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지.”
“…….”
유성은 그 말에 입을 닫았다.
그러한 그의 기색을 느낀 듯, 리브가 물어왔다.
[아빠. 그런데 그게 뭐가 그렇게 안 좋아?]
‘이들은 오로지 나 하나 때문에 이곳으로 강하 지점을 바꿨어. 불시착을 했다는 소리야. 본래라면 우리들은 전원 군 시설로 곧장 향했어야 정상이었거든.’
그들은 군인이다.
설령 유성이 이제껏 제아무리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이탈로 인해 그들 전체가 위험한 상황에 봉착하는 지금과 같은 선택은 하면 안 되었다.
단 하나의 인간을 위해서 군인이 행동한다는 것은, 그였었다면 결코 하지 않을 만한 행위였다.
말 그대로 치명적인. 전함에 탄 모든 인간들의 목숨을 가지고 하는 큰 도박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분명 나라면 그랬을 거다. 결코 그런 모험 따윈 하지 않았겠지.’
유성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행위였다. 하지만 이들은 기꺼이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
그것도 불과 강하 지점이 틀어지는 그 짧은 찰나의 시간 동안, 죽느냐 사느냐의 목숨을 건 도박을 말이다.
‘그 결정을 내린 것은 라프티리아 함장 그녀였다. 그녀는…… 어쩌면 잠깐 사이에 수십 가지가 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
이곳이 드라칸의 생식이 활발히 확인된 장소라면, 죽음의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모두가 죽는다 할지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한 위험을 모를 이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이 굳이 그러한 위험을 감내했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유성은 바보가 아니다.
이들이 아무런 위험의 감수조차 없이 그 자신을 구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작 생도 하나를 그 위험을 감수해 가며 이 드라칸들의 서식처 한복판에까지 무턱대고 강하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제아무리 그가 이제껏 전장에서 많은 역할을 해 오며 함선 메티스와 이들을 구해 왔다지만, 군의 통제를 받는 군인은 절대로 함부로 개인행동 따위를 할 수가 없다.
군인은 군의 소속이다.
한낱 개개인의 감정 따위로 움직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이들이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나 하나에게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소리인 거겠지.’
희소한 기갑 파일럿.
마나 사용자 수십 명을 압도하는 가치를 지닌 일인군단.
그리고-. 어쩌면, 이 태양계 전체의 인류 모두를 뒤져봐도 몇 되지 않을.
극소수의 강대한 각성자.
그것이 유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를 모른 척 저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제 가치가 지금 시점에 반드시 필요할 걸 알고 있군요, 함장님께서는.”
“……자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 몰라도, 분명 사실이지. 한낱 전함 몇 척보다도 자네 하나의 값어치가 더 위라는 걸. 함장님은 결정을 내리고서 행동하신 것일 뿐일세.”
“…….”
유성은 눈을 감았다.
앞이 막막하다.
이제, 그의 세계는 오로지 하나의 길만이 남았다.
유성은 쓰게 웃으며 자조적으로 고개를 떨궜다.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제 존재가 드러나는 건 시간 문제겠군요. 라피스마저 소위로 특진한 마당에 함 내에 등록되지 않은 인물이라고는 오로지 저뿐이니.”
당장은 유성의 존재가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함 메타트론이 라프티리아 함장의 독단 명령에 따라 움직인 이상, 그에 따른 이유는 금세 밝혀지게 될 터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유성의 존재는 결코 숨길 수 없을 터였다.
그는 반드시 세상에 그 강함을 드러내게 된다.
당장 그리 머지않은, 앞으로의 미래였다.
“……미안하군, 유성. 이런 말을 해 봐야 믿을지 모르겠지만-.”
아스트라 부함장은 유성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자네가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네. 돌아가서, 평범한 학생이 되길 바랐지.”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함 메타트론과 그곳에 승선한 모든 이들의 가치를 따져 봐도, 애당초 각성자와는 감히 저울질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이들을 움직인 원동력이었을 터였다.
거기에 이제까지 유성 그가 해 왔던 도움들까지 생각한다면.
분명 어느 정도의 감정적인 것들도 약간 정도는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유성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온 세상이 난리가 난 판국에 내가 한가하게 대학에나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멍청한 거지. 결국 이들은 내가 기갑 파일럿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서 이렇게 행동하는 거야.’
이미 세계는 전화에 휩싸일 조짐을 드러내고 있었다.
태양계의 바깥쪽에 속한 콜로니들뿐만이 아니라, 그들 인류가 사는 중심이 되는 행성인 테라에까지 드라칸이 출몰하기 시작한 지금.
그들의 전쟁은 더더욱 심화될 여지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상황은 급속도로 가속화되고 있었다.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이들은 군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
손에 총기 한 자루를 들고, 전장에서 양산체와 싸우도록 떠밀릴지도 몰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식을 파괴하는 유성이라는 기갑 파일럿의 존재는,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가치를 머금고 있었다.
드라칸의 출몰을 이 이상 막아낼 수 없는 앞으로의 불확실한 미래. 그리고 놈들과의 대전쟁이 다시금 시작될 조짐까지.
그러한 것들을 모두 종합하고 나서야, 이들은 유성을 최종적으로 구하려 한 것일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이들에게는 결국 유성을 구할 만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았다.
그것이 명령에 따르는 군인의 방식이었고, 대처였다.
그러니 유성은 이들에게 감사는 하되 결코 고마운 감정을 느끼면 안 되었다.
‘이들의 행동이란, 어디까지나 계산과 저울질을 더한 것에 불과한 것일 테니까 말이야.’
꽈악.
유성은 주먹을 쥐었다.
드물게 동요한 그의 감정을 따라 은은한 마력이 그의 주먹에서부터 흘러나왔다.
좋든 싫든, 이제 유성의 미래는 정해졌다.
그에게 정상적인 일반인으로서의 진로 따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터다.
* * *
드라칸의 존재.
그로 인해, 함선 메타트론은 그만큼의 제약을 받아야만 했다.
유성과 라피스는 함께 바깥의 경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금이 갈라진 메마른 대지.
그러한 대지의 위를, 전함 메타트론이 비교적 낮은 높이를 유지한 채로 부유 중이었다.
유성은 수백 미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지상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꽤나 낮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는걸. 저공 비행이라니. 불과 수백 미터가 채 안 되겠어.”
“부함장님이 말하길, 1킬로미터 정도가 한계래. 물론 더 높이 날면 그만큼 움직이는 속도도 빨라지겠지만…….”
그런 둘의 곁으로, 또 하나의 기척이 나타났다.
리브였다.
[엄마. 그럼 그만큼 높이 날면 되는 거 아니야? 빠르면 좋잖아! 왜 이렇게 낮게 날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응?]
리브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전함은 이 이상으로 높게 날 수는 없었다.
그들을 위협하는, 실질적인 존재가 저 위쪽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늘을 유영하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비행형의 드라칸들이 말이다.
“지금 이 이상의 높이는, 대기권을 활동하는 비행형 드라칸의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 물론, 지금도 이미 어느 정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하고.”
“하긴, 그것도 그렇겠지.”
유성은 라피스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머리 위, 대기권.
그곳에는 지금도 드라칸 놈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당장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함 내의 관측 장비를 사용해 주변 대기권을 조금만 확대해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 전투기의 형상을 한 기괴함에 가까운 드라칸 놈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관측할 수 있었다.
즉, 놈들은 이 순간 이 시점에도 대기권을 돌아다니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놈들이 아직까지도 유성과 그들 함선 메타트론의 존재를 알고도 넘기는 것은, 그것들이 결코 얌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보고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행성 내의 대기권에 서식하는 비행형의 드라칸들은, 내부를 이루는 부피가 가벼운 탓에 일정 높이 이하의 장소로는 내려올 수가 없다. 한 번 내려오면, 두 번 다시 대기권으로 다시 올라갈 능력이 없을 테니까.’
그것이 대기권에 다수의 드라칸들이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분간의 평화가 지속되는 이유였다.
때문에 지금 함선 메타트론은 높게 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