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환생하다
가까운 미래.
인류는, [드라칸]이라 부르는 존재와 종의 운명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드라칸.
녀석들은 지구가 아닌, 먼 우주에서 온 전혀 다른 존재였다.
놈들은 하나같이 생김새도, 특성도, 무엇 하나 공통점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유일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인류를 적대시한다는 점이었다.
* * *
삑-!!
계기판이 미친 듯이 경고음을 내뱉었다.
“큭, 젠장!”
욕설을 지껄이면서도, 이시혁은 조종간을 부여잡았다.
그는 손을 놓으면 당장에라도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
위아래, 좌우 할 것 없이 온 사방이 적으로 가득했다.
온통 새까만 광활한 어둠의 세계.
이곳은 우주 한복판이었다.
그곳에, 이시혁은 기가스에 탑승한 채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번-쩍!
사방에서 찬란한 빛이 날아들었다.
눈 부신 빛의 포격.
오로지 이시혁, 그가 탄 기가스 하나를 노리고 날아든 공격이었다.
“크윽!”
이를 악물고 조종간을 붙잡았다.
채 눈을 제대로 뜨고 있기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활로를 찾았다.
이시혁과 정신, 신경이 연결된 기가스는 비처럼 쏟아지는 공격들을 피해 내며 회피를 거듭했다.
우우웅.
연달은 무리한 움직임으로 기체가 진동했다.
기가스가 버거워하는 게 느껴진다.
이시혁은 이를 악물었다.
한 몸이나 다름없는 상태의 기체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것은.
이것은 철저한 사냥이었다. 몰이사냥 말이다.
[■■■!]
[■■■■-!!]
정신없는 전투의 연속.
어느새 이시혁은 수백, 아니, 수천에 달하는 드라칸에게 포위당했다.
놈들의 파도 한가운데에 완전히 갇혀 버렸다.
“후. 여기까지인가.”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전장에 남아 있는 기가스라고는 오로지 그 하나뿐이었다.
처음에는 동료들도 수두룩했지만.
소대원들은 이미 진작에 죽어 버렸다.
이시혁 그가 탑승하고 있는 기가스의 상태도 이미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삑-!
조종석의 모든 화면에서 적색 불이 들어왔다.
기체의 파손이 극심하다는 경고 신호였다.
“후.”
하지만 그의 얼굴은 일그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았다.
그저 쓰게 웃을 뿐.
이미 온 사방이 적들로 가득했다.
이 상황에서는 설령 기가스가 멀쩡하다 하더라도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고오오-!!
그때, 그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던 드라칸들이 입을 쩍 벌렸다.
눈 부신 빛이 놈들의 입에 맺혔다.
이 시커먼 우주 공간을 한순간 환하게 밝힐 정도의 밝기.
놈들은 하나하나가 전함에 비견될 정도로 거대했다.
그런 놈들이 한둘도 아니고 물경 수천이다.
“끝이로군.”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이시혁은 저 괴물들을 상대로 이제껏 버텨 왔었다.
매일매일이 불가능한 난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았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이었다.
지금 이 순간이 그의 마지막이 될 테니.
번-쩍!!
빛이 쏘아진다.
온 우주가 진동하듯 떨려왔다.
강대한 에너지의 파도.
조종석의 온 화면을 가득 메운 눈 부신 빛.
그 빛이 마침내 이시혁의 기가스에 닿는 순간.
그는 죽음을 몸으로 체감했다.
그것은.
마치 그 자신을 비롯한 온 세계가 빛으로 물드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이시혁은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군.’
조금 신기하다고.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라고 생각했다.
유성이라는 이름으로 환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 *
“수업 시작이다. 다들 일어나라.”
귀청을 때리는 교수의 음성.
졸고 있던 유성은 번쩍 눈을 떴다.
책상에 엎드려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 고개를 드는 게 보였다.
수업 시작이었다.
* * *
인류는 외계종 드라칸에게 패했다.
그렇기에 유성은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분명 확신했다.
인류는 그대로 멸망해 버릴 거라고.
하지만 인류는 살아남았다.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방법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설마 살아남은 인류 전체를 옮길 만큼 거대한 우주선을 끝내 완성할 줄이야.’
거대한 우주선.
사실 그것은, 드라칸과의 전쟁 초기부터 개발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현실성이 없었다.
태양계를 벗어날 정도의, 그것도 살아남은 인류 전체를 옮길 만큼 거대한 우주선을 제작한다니.
그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애초에 구상부터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으니 말이다.
설령 우주선을 제작한다 하더라도 문제였다.
대체 그것을 어떻게 지구에서 우주로 띄울 것인가?
때문에 유성은 결국에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그 계획은 성공했다.
그 계획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증거는 당장 눈앞에 존재했다.
‘이렇게 내가 다시금 환생해 숨을 쉬고 있으니까 말이지.’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봐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솔직히 인류는 꼼짝없이 멸망할 거라 생각했는데.’
당시 시대는 기껏해야 21세기 말 정도에 불과했다.
인류의 기술력이라고 해 봐야 태양계를 돌아다니는 게 고작이었다.
우주선을 완성할 기술은 있었지만.
장기 항해 따위는 꿈에서나 가능할 정도로 먼 허황된 이야기라는 의미다.
유성은 창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생존이 직결된 문제라면 결국에는 해내고 마는 거겠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곳은 지구로부터 멀고도 먼 또 다른 태양계였다.
이곳에서 인류는 다시금 시작했다.
드라칸의 위협이라곤 전혀 없는 행성 테라(Tera).
테라는 인류의 새로운 고향으로 자리 잡았다.
그곳에서 인류가 번성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제 인류는 과거보다 기술이 진보했다.
이시혁이었던 전생으로부터 무려 4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러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일 터다.
지구 시절보다 과학 기술이 발전한 인류는 다시금 우주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터전인 행성 테라를 중심으로, 태양계 곳곳에 여러 콜로니가 만들어졌다.
스페이스 콜로니(Space Colony).
일명 우주를 떠다니는 거대한 인공 행성.
유성은 콜로니에 살고 있는 주민 중 하나였다.
이제 인간은 우주에서조차 살 수 있을 만큼 문명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곳은 무려 수십만이 넘는 시민들이 살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수가 아닐 수 없다.
유성은 이 콜로니 아카데미의 학생이었다.
그는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를 떠올렸다.
‘실제로, 이 콜로니의 면적은 과거 한국 땅의 절반에 달하는 크기라고 할 정도였던가.’
인공 행성이라고는 하지만 있을 만한 것은 모두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이 있고, 저 멀리에는 바다도 존재했다.
흙과 중력, 바람과 대기 또한 있었다.
지구의 환경을 작게 축소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말 그대로 인공 행성이었다.
짝.
그때, 앞의 교탁에 선 교수가 박수를 쳐 주의를 환기시켰다.
유성 또한 딴생각을 멈추곤 교수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학생들을 둘러보던 교수가 말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다들 수고했다.”
그 말에 부리나케 학생들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교수 또한 서류를 정리하면서 덧붙였다.
“그리고 유성.”
“네, 교수님.”
그의 부름에 유성의 시선이 교수를 향했다.
교수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딴생각은 그만하고 다음부터는 집중하도록.”
“알겠습니다.”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큰 제재는 받지 않았다.
그는 이곳의 교수들도 인정하는 뛰어난 수재였으니까.
* * *
유성은 아카데미의 뒤편에 위치한 창고로 향했다.
산업용 기가스 연구학부.
유성이 속해 있는 학부였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리는 학생으로 유명했다.
이번에 그가 제작하고 있는 것은 바로 탑승형 기갑 병기, 일명 기가스의 제작이었다.
쿠웅! 쿠웅!
때마침, 창고에서 기가스 한 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묵직한 발걸음에 땅이 진동했다.
수많은 고철과 여느 기계의 부속품을 연달아 덧대어 제작한 듯, 조금 엉성한 외형의 기가스였다.
하지만 저것이야말로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유성을 인정한 이유였다.
왜냐하면 저것은.
바로 유성이 직접 제작한 작품이었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말이다.
기이잉-.
새파란 빛을 뿜는 기가스의 고개가 유성 쪽으로 돌아갔다.
“여어.”
기가스와 시선이 마주친 유성이 손을 흔들었다.
기이잉-.
그러자 기가스 또한 그 커다란 손을 움직여 마주 답해 주었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움직임이다.
유성은 기가스를 향해 물었다.
“어때, 라피스. 조종은 할 만해?”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아. 핫!]
자신만만한 어느 여학생의 음성이 들려왔다.
라피스. 기가스에 탑승한 여학생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대답이 화근이었는지, 순간 기가스의 한쪽 다리가 푹 가라앉았다.
바로 옆이 꽃밭이 있는 무른 땅이었기 때문이다.
[꺄악!]
중심을 잃은 기가스가 그대로 꽃밭으로 쓰러졌다.
쿵-!!
땅을 짙게 울릴 정도의 굉음이 울렸다.
요란한 소란이었다.
“뭐, 뭐야!”
“폭발? 뭐야?”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난데없는 소음에 놀라 창문을 통해 그 모습을 보았다.
“……이런.”
유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기가스가 쓰러지며 만들어 낸 처참한 광경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운도 나빴다.
하필이면 라피스가 넘어진 방향이, 꽃밭 쪽이었다.
그것도 교장이 직접 가꾸며 돌보기로 유명한 꽃밭이었다.
유성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거 아무래도 한 소리 듣게 생겼군, 라피스.”
[미, 미안. 유성……]
기가스의 고개가 축 늘어졌다.
* * *
잠깐의 소동이 끝난 이후.
다시금 창고로 기가스를 옮긴 유성은 그것을 손보고 있었다.
끼릭. 끼릭.
유성은 드라이버로 기가스의 발목 부근 나사를 조였다.
방금 전의 소란으로 인해 발목 부근이 약간 헐거워졌다.
유성은 탁자 옆에 놓여 있던 태블릿을 펼쳐 들었다.
태블릿 화면에는 기가스에 관한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온갖 그래프 막대와 복잡 미묘한 수치들이 보인다.
“음.”
유성은 그것을 보며, 기가스의 조정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비교했다.
이내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아. 꽤 어렵단 말이지. 기가스의 프로그램을 조정하는 작업이란 건.”
그는 고민 섞인 표정으로 책을 덮었다.
이번 생에서 유성은 그저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눈앞의 기가스를 직접 제작했다.
오로지 그 혼자서 말이다.
유성은 이 기가스의 이름을 [스크래퍼]라 지었다.
산업용, 혹은 콜로니의 건설 현장에서 사용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이번 생에서 그는 기가스 엔지니어로의 진로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전생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라고 할 수 있었다.
“…….”
문득 유성은 나사를 조이는 것을 멈추곤 상념에 잠겼다.
날은 화창했고, 따사로웠다.
‘그래도, 좋군.’
이곳에서 유성은 싸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과거의 그는 군인이었다.
기갑 파일럿으로서, 기가스에 탑승해 드라칸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금의 인류는 단 한 번도 드라칸을 목격한 적이 없다.
무려 400년 동안이나 말이다.
지금의 세상은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였다.
싸움과 증오, 기아와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변화는 적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의 정적인 삶.
그저 평범하게 직업을 얻고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
‘전쟁이 없는 삶. 드라칸의 흔적 따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
유성이 항상 꿈꿔 왔던.
평화롭기 그지없는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