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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안기혁 감독.
그는 U―20 대표팀을 오랜 시간 맡아왔다.
하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성적을 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 2011 U―20 월드컵이 개최되기 전까지만 해도 입지가 불안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팀에 합류한 선수 때문이었다.
“정말 놀라운 아이야……!”
안기혁 감독이 입을 벌린 채, 훈련에 참여 중인 신재욱을 바라봤다.
팀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선수인데, 훈련 때마다 가장 열심히 참여하며 모범이 되는 선수였다.
실력도 가장 뛰어났다.
달리기를 제외하면 각종 훈련 시간에서 대부분 1등을 차지했다.
더구나 연습경기가 시작되면 신재욱은 그야말로 여포가 됐다.
다른 선수들보다 몇 단계는 위에 있는 듯한 움직임으로 매번 안기혁 감독을 놀라게 했다.
더 놀라운 건 실전에서도 연습 때와 같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프랑스전에선 훈련 때보다 더 잘했지.”
이처럼 신재욱이라는 확실한 에이스를 지녔기에.
안기혁 감독은 자신감이 생겼다.
8강을 넘어 4강까지도 바라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물론 그 전에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콜롬비아를 잡고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콜롬비아.
이번 U―20 개최국이자, 한국과 같은 A조에서 엄청난 컨디션을 보여주며 프랑스와 말리를 전부 잡아낸 강팀이었다.
즉,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에서 2승을 거두고 있는 팀이었다.
“컨디션이 좋은 콜롬비아라……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긴 하지.”
안기혁 감독은 고민했었다.
사실 콜롬비아전엔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해줄 수도 있다.
이미 16강을 확정 지은 상태였으니까.
1패가 추가된다고 해서 16강에 오르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렇게 하면 경기에선 질 가능성이 커지겠지만, 가장 중요한 16강전엔 주전 선수들의 컨디션이 살아날 수 있다.
“감독 여러 명을 데리고 와서 물어봐도 대부분 이 콜롬비아전을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할 거야.”
그러나.
안기혁 감독은 이내 쓰게 웃었다.
“이놈의 고집 좀 버려야 하는데, 잘 안 되네.”
머리로는 콜롬비아전을 포기하는 게 좋다는 걸 알지만.
가슴으로는 한 경기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콜롬비아를 상대로 조금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주전 선수들을 투입한다고 해도 쉬운 승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프랑스전보다도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콜롬비아는 개최국이기 때문에 시차 적응이 필요 없고, 익숙한 곳에서 축구를 하기에 컨디션이 매우 좋다는 이점이 있는 팀이니까.
그래도 만약 콜롬비아를 이긴다면 아주 중요한 걸 얻을 수 있게 된다.
안기혁 감독은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거야.”
경기에 나서는 선수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분명 콜롬비아에게 컨디션이나 전력에서 밀리는 건 맞지만, 안기혁 감독은 이상하게 질 것 같지가 않았다.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길 수 있어. 우린 신재욱이 있잖아.”
같은 시각.
훈련에 참여하던 신재욱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하루 푹 쉬었다고 많이 회복됐네.’
프랑스전에서의 활동량이 너무 많았었기 때문에, 조금 걱정했던 게 사실이었다.
만약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으면 콜롬비아전에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어려서인지는 몰라도 다행히 회복이 빨리 되고 있었다.
더불어 팀의 분위기도 한층 나아졌다.
선수들은 의사소통을 더욱 활발하게 했고, 자연스레 조직력도 좋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 청소년 대표팀의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비가 개선되고 있었다.
‘김준기의 수비가 좋아졌어.’
프랑스전까지만 해도 아쉬운 실수를 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던 김준기였는데.
오늘 펼쳐지고 있는 훈련에선 다른 선수가 된 것처럼 플레이가 좋아졌다.
수비는 단단했고, 실수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신재욱은 김준기가 변화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과하더니 마음이 편해졌나 보네.’
화장실에서 맞은 이후로 김준기는 신재욱의 눈치를 봐왔다.
오롯이 집중해야 하는 경기에서 동료의 눈치를 보고 있으니, 제 실력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젠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감 있게 축구를 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원래 가지고 있었던 실력도 발휘된 것이다.
‘좋은 변화야. 수비가 든든하면 나도 더 공격적으로 할 수 있잖아. 체력도 아낄 수 있고.’
지난 프랑스전에선 신재욱이 고생을 했었다.
수비가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는 동료 수비수들을 위해 신재욱이 직접 내려가서 수비에 많은 가담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다 보니 체력 소모도 컸었던 것이고.
하지만 오늘 동료 수비수들이 보여주고 있는 실력이 나온다면, 어떤 상대를 만나도 허무하게 뚫리진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재욱은.
‘이러면 정말…… 콜롬비아전도 할만하겠는데?’
콜롬비아전이 기다려졌다.
* * *
― 대한민국과 콜롬비아의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하고 있습니다! 이 두 팀의 경기가 A조 마지막 경기죠?
― 그렇습니다. A조 마지막 경기이자, A조의 1위 팀이 가려지는 경기죠.
― 이번 U―20 월드컵에서 콜롬비아의 기세가 굉장히 무섭지 않습니까?
― 하하! 기세가 엄청난 팀이죠. 원래부터도 강팀이었지만, 자신들의 국가에서 펼쳐지는 대회의 이점 때문에 더욱 강한 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실제로 프랑스를 4 대 1로 압도하고, 말리를 상대로도 2 대 0 승리를 만들어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선수들도 이번 대회에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콜롬비아가 이긴 말리와 프랑스를 우리 선수들도 이겨냈거든요!
― 기세가 너무나도 좋은 두 팀이 맞붙는 것이기 때문에, 초반부터 아주 치열한 경기가 될 것 같습니다!
한국과 콜롬비아 선수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이들 모두 승부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면, 신재욱은 조금 달랐다.
강렬하게 서로를 노려보는 선수들과는 달리, 덤덤한 표정으로 상대 선수들의 얼굴을 관찰했다.
‘컨디션이 괜찮아 보이네.’
콜롬비아 선수들은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홈에서 하는 경기라는 이점을 얻어가는 팀다웠다.
신재욱은 이번엔 동료들의 얼굴을 살폈다.
‘쟤네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괜찮아 보이고.’
상대만큼은 아니지만, 동료들의 컨디션도 좋아 보였다.
양 팀 선수들의 컨디션을 확인한 지금.
“가보자!”
“이겨버리자!”
“우린 프랑스도 이겼잖아? 콜롬비아도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쟤네 잡고 우리가 조 1위 하자!”
동료들의 기합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보기 좋구만.’
그 모습을 본 신재욱은 씨익 웃었다.
지금처럼 동료들의 기세가 강렬하게 느껴질 때면 기분이 좋아졌다. 더 열심히 뛰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이러면 어쩔 수 없네. 오늘도 체력 다 털릴 때까지 뛰어야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신재욱은 다시 한번 상대 선수들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있는 상대 선수들의 정보를 되새겼다.
늘 해오던 것이었다.
지금처럼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상대 선수들의 정보를 되새기면, 상대를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뚫어내거나,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때였다.
삐이이이익!
경기가 시작됐다.
먼저 공을 잡은 팀은 콜롬비아였다.
콜롬비아는 처음부터 특유의 빠른 템포를 살린 전술을 들고나왔다.
프랑스와 말리를 잡아낸 그 전술이었다.
― 콜롬비아 선수들의 템포가 굉장히 빠른데요? 우리 선수들은 이런 콜롬비아의 속도에 적응해야 할 텐데요!
― 앞선 경기들을 보면 콜롬비아는 이렇게 중원에서 빠르게 공을 돌리다가 결국엔 측면을 노릴 거거든요? 그때 우리 선수들은 절대 쉽게 뚫려서는 안 됩니다.
해설들의 말 그대로였다.
중원에서 공을 주고받던 콜롬비아는 기습적인 타이밍에 측면을 노렸다.
한국 선수들을 중원으로 끌어들인 다음에 찔러넣는 전진 패스.
하지만 한국의 대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러한 콜롬비아의 전술을 이미 예상했으니까.
측면 공격을 막아내는 것에 많은 대비를 해왔으니까.
그러나 예상하고 대응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경기장 위에서 실제로 맞붙은 콜롬비아의 윙어들은 스피드와 드리블이 너무 뛰어났다.
한국의 풀백인 민동기와 추정태가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실력이었다.
― 민동기가 뚫렸습니다! 아…… 위험합니다! 콜롬비아의 측면 공격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기가 무섭게 돌파를 허용하네요!
민동기가 뚫려버린 지금.
콜롬비아의 윙어 산티아고는 뒤에서 달려오는 동료를 노린 컷백 패스를 뿌렸다.
터엉!
패스는 정확했다.
달려오는 콜롬비아의 선수의 발 앞으로 흘렀다.
아주 좋은 슈팅 기회.
한국으로선 큰 위기였다.
게다가 하필이면 공을 받은 선수가 콜롬비아에서 슈팅 능력이 가장 뛰어난 선수였다.
“이런 건 그냥 넣지.”
하메스 로드리게스.
현재 포르투갈 리그 최고의 팀 중 하나인 FC 포르투에서 팀의 핵심 선수일 정도로 천재이자, 콜롬비아 청소년 대표팀에서도 에이스 역할을 하는 선수.
그런 하메스 로드리게스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왼발을 휘둘렀다.
퍼어엉!
발등으로 강하게 때려내는 공이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한국 U―20 대표팀의 골키퍼 채민석이 몸을 날려봤지만.
그가 반응했을 땐 공은 이미 한국의 골망을 흔들고 있었다.
철렁!
선제골을 넣은 하메스 로드리게스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여유와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 아…… 아쉽습니다. 이 하메스 로드리게스 선수의 왼발은 정말 조심해야 했는데…… 제대로 걸렸네요.
― 하메스 로드리게스 선수…… 엄청난 선수네요. 이번 U―20 월드컵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선수다운 슈팅이었습니다.
반면 한국의 분위기는 찬물이라도 끼얹어진 듯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제 막 열정적으로 뛰기 시작했는데, 바로 골을 허용해버린 상황.
선수들로서는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신재욱이 나섰다.
짝! 짝!
손뼉을 크게 치며 동료들의 시선을 끈 그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한숨 쉬지 말고 고개 들어요! 지금부터 내가 5분 안에 동점 골 넣을 거니까 죽기 살기로 뛰어서 도와줘요. 알겠어요?”
막내의 외침이었다.
듣는 선배들로선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행동.
그러나 그 외침을 들은 선수들은 오히려 자신감을 얻었다.
신재욱은 단순히 막내가 아닌, 팀의 에이스였으니까.
팀의 에이스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직접 골을 넣어주겠다고까지 말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
한국의 선수들은 다짐했다.
‘신재욱이라면 정말 넣어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신재욱이라면……! 좋아! 재욱이가 견제를 덜 받게끔 최대한 도와주자.’
‘쟨 괴물이니까 아무리 콜롬비아라고 해도 막기 힘들 거야. 그래, 죽기 살기로 뛰어보자!’
‘5분 안에 동점 골 넣겠다고? 흐흐! 저 미친놈! 근데 신재욱이면…… 진짜 성공할 수도 있겠어. 에잇! 내가 최대한 어그로 끌어봐야겠다.’
모든 걸 쏟아부어서라도 신재욱을 지원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