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90화 (190/235)

190화

결국 진우는 그날 무기를 사지 않고 그냥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다시 호텔로 찾아온 가제타를 만난 그는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받아들이는 쪽이 당분간이기는 하지만 자신에게 조금은 득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는 피엔다 행성에서 유명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이미 동조의 단계에 든 그였기 때문에 새삼 값비싼 무기를 사용해야 더 유리한 싸움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동조의 기술을 써서 만든 마나검이나 마나창이 무기 매장에서 파는 것들보다 훨씬 위력이 있었다. 더구나 자유롭게 소환하거나 없앨 수 있으니 사용하기에도 더 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우가 가제타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고스티스 축제에 참가하게 된 이후에는 어차피 유명세를 타게 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파토스와 가제타의 말에 의하면 고스티스 축제가 시작되면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마수와 대결하는 장면이 방송을 타게 되어 있었다.

진우로서는 고스티스 축제 참가 자체가 이번 방문의 주요 목적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원하든 원치 않든 나중에는 방송을 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는 첼스본의 기록을 넘어 최종 단계까지 도전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만약 그의 목표가 달성된다면 크리켄데르는 물론 피엔다 행성 전체에서 유명인이 되는 것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능한 한 마지막까지 동조의 기술을 쓰지 않고 용사의 관에 도전하고 싶다는 것도 그가 가제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이유였다. 진우는 당분간은 플레비크의 상급 전사가 혼자서 자신을 찾아오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상급 전사는 플레비크에서도 귀한 재원이었다. 과거 니코레임에 대한 정복을 시도했을 때, 그들은 두 명의 상급 전사가 차례로 레비스에게 당하자, 그동안의 전통을 깨고 한꺼번에 상급 전사 둘을 보내 함께 그를 상대하게 했다.

진우도 이미 두 명의 상급 전사를 상대해서 물리쳤다. 그렇다면 지금쯤 플레비크에서도 그를 상대할 다른 방법을 궁리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 방법이 정확히 어떤 것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에서 플레비크 인들을 상대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나중에야 피할 수 없을지 몰라도, 진우는 용사의 관 도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가능한 한 자신이 동조 단계에 들어선 헌터라는 것을 숨기고 싶었다.

동조의 기술을 쓰지 않을 경우 좋은 무기는 결정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500관까지 120일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돌파해야 하는 그의 입장에서는 하루에 여러 개의 단계를 깨야 했다. 그러다 보면 그의 지치지 않는 체력이나 마나량이 주변의 이목을 끌 게 분명했다.

진우는 어째서 자신이 지치지 않고 계속 다음 관에 도전할 수 있는 지를 남들에게 납득시킬 필요가 있었다. 잘 만든 무기를 사용한다면 덕분에 마나 소모를 줄일 수 있었다는 변명이 조금은 통할 것 같았다.

“잘 선택하셨어요. 그럼 이제 제 선물을 받아주실 수 있는 거지요?”

가제타는 그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생긋 웃으며 지난번에 가져왔던 상자를 다시 내밀었다. 진우는 덤덤히 상자를 받아들어 그녀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통역기 세트를 교체했다.

새로운 통역기는 착용감이나 성능에 있어서 확실히 전에 사용하던 것보다 좋기는 했다. 안경의 경우 격렬하게 몸을 움직일 때에는 머리에 고정시킬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고글에 비해 훨씬 편리하면서도 유용했다.

가제타는 계약이 체결되자 셔퍼를 통해 그에게 바로 계약금을 보냈다. 덕분에 다음날 혼자서 무기 매장에 들른 진우는 가지고 있는 크레딧을 탈탈 털어 비교적 마음에 드는 검과 활을 구입할 수 있었다.

활은 본래 사용하던 것처럼 접는 기능이 없다는 점이 다소 불편했지만 급할 경우에는 활과 활통을 땅에 던져놓을 생각이었다. 화살도 충분히 여유가 있을 만큼 사들인 그는 하루를 쉬면서 사들인 무기의 길을 들이는 한편, 가벼운 산책과 명상을 통해 몸을 점검했다.

이튿날, 진우는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은 뒤 용사의 관까지 걸어갔다. 피엔다 행성의 역사에 길이 남을 그의 용사의 관 도전이 시작되었다.

*  * * * *

“S급 용사 진우님, 5분 뒤에 116동에서 용사의 관 제1관 도전이 시작됩니다. 도전 준비를 해 주세요.”

셔퍼를 통해 전달된 안내를 들은 진우는 대기실에서 나와 116동 입구 앞에 섰다. 잠시 후 입구 위에 달린 표시등이 파란색으로 변하자 진우는 용사 자격증을 입구의 문 위에 있는 손바닥 만한 패드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문이 양옆으로 활짝 열렸다.

그의 앞에 사방이 20m 가량 되는 텅 빈 방이 보였다.

진우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문이 닫히면서 허공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1관 관리자입니다. S급 용사 진우님, 제1관에 도전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네.”

다소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물어오는 말에 진우는 짧게 대답했다. 1관 관리자라고 했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일 것이 분명했다.

“용사의 관에 등장하는 마수들은 모두 실제와 같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큰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네.”

“중간에 도전을 포기하고 싶으시면 큰 목소리로 포기라고 외치시면 됩니다. 도전을 포기하실 경우 다음에 도전할 때에는 1관부터 다시 시작하셔야 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네.”

무미건조한 설명과 역시 성의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대답이 몇 차례 오가자 텅 빈 방안의 허공에 10여 대의 카메라가 등장했다. 주먹보다 조금 큰 카메라들은 바닥이나 벽에 붙어 있지 않고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대결 장면을 어떻게 촬영하나 했더니, 이런 식이었군.’

마수와의 대결이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와서 촬영을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우는 설마 카메라마저 용사의 관 시설을 이용해서 가상으로 구현해낼 줄은 몰랐다. 카메라가 나타나 자리를 잡자 1관 관리자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진우님과의 계약에 따라 트란메토이 방송국에서 도전 장면을 촬영합니다. 촬영에 동의하신 것이 분명합니까?”

“분명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크리켄데르 용사의 관 제1관 도전이 시작됩니다. 건투를 빕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텅 비어 있던 백색의 공간이 꾸물거리더니 초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변화가 끝난 초원의 모습은 시각적으로만 볼 때에는 본래 방의 크기를 훨씬 벗어날 만큼 넓어 보였다.

저 멀리 구릉을 넘어 사라지는 초원을 뒤로 하고 진우의 정면에 마수가 한 마리 서 있었다. 원거리 풍경은 가상임에 분명했지만 눈앞에서 사나운 이를 드러내며 버티고 서 있는 1m 가량의 마수는 공격을 당하면 실제로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실물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야 했다.

“레제라고 했나? 영상에서 본 것처럼 다리가 여덟 개 달린 개처럼 생겼네.”

레제는 최하급 마수였다. 진우는 검을 꺼내들고 레제가 달려들기를 기다렸다.

“미안하지만 오래 놀아주지는 못하겠다. 내가 당분간 좀 바쁘거든.”

아무리 500관 이하라고는 하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강한 마수들이 등장할 게 틀림없었다. 그 모든 마수들을 120일 이내에 처리하려면 초반에는 매 관을 돌파하는 속도를 최대한 올려둘 필요가 있었다. 진우는 최소한 중급 마수들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되도록 빠르게 마수들을 정리하고 도전을 완료하기로 했다.

“커엉~”

1관의 마수인 레제가 진우를 향해 짧게 울부짖으며 달려왔다. 녀석은 걸음은 빠르지만 도약력은 좋지 않은지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듯 달려오며 진우를 향해 충돌을 시도했다.

잘 발달된 근육이 도드라진 피부 전체가 금속광택으로 번들거렸다. 몸 크기에 비해 무겁다는 자료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정면으로 부딪혔을 때의 충격이 상당할 게 틀림없었다.

“하압”

진우는 달려드는 놈을 피하지 않고 상대의 머리를 향해 선 자세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레제는 진우의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달려드는 기세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고개를 옆으로 비틀어 머리가 직격당하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째앵~

그러나 진우의 검은 피하는 레제의 머리를 따라가 놈의 두개골을 반으로 가르며 깊숙이 박혀들었다. 녀석은 진우의 일 검에 머리가 쪼개지는 바람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다만 달려드는 속도를 이기지 못한 몸통이 살짝 옆으로 비켜난 진우를 지나쳐 주르륵 밀려나가더니 이십여 미터를 더 미끄러진 뒤에야 털썩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숨이 끊어진 놈의 몸통은 잠시 후 스르륵 사라지고 말았다. 마수의 몸이 사라지자 곧이어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S급 용사 진우님, 1관을 무사히 통과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다음 관에 도전하시겠습니까?”

“도전한다.”

“그럼 5분 후 제2관이 시작됩니다. 지금부터 제2관 관리자가 도전을 관리합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여전히 젊은 여자의 음성이기는 하지만 전과는 약간 다른 음색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왔다. 관마다 독립적인 시스템이 관리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2관 관리자입니다. S급 용사 진우님, 제2관에 도전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네.”

1관 도전 때와 비슷한 주의 사항이 반복해서 설명되고, 잠시 후 제2관이 시작되었다. 제2관의 풍경은 바닷가였다. 그는 카라빗이라는 이름의 갑각류 마수를 향해 다시금 검을 뽑아들었다.

*  * * * *

진우는 첫날 20관까지 도전을 성공시켰다. 짐작대로 각 관을 책임지는 관리 시스템이 다 다른지, 관이 하나씩 바뀔 때마다 관리자 역시 바뀌었다.

관리자들은 진우가 도전을 선택할 때마다 한결같이 똑같은 주의사항을 되풀이해서 알려주었다. 다만 10관이 넘어가자 “무리한 도전은 심각한 장애를 유발시킬 수 있고....”라는 말로 시작되는 장황한 주의사항이 더 추가되었다. 진우는 마나와 체력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이만 하면 초반의 하루 목표량을 충분히 달성했다는 생각에 20관을 끝으로 일단 도전을 멈추고 용사의 관을 나왔다.

촬영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남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가 있었다.

진우가 용사의 관을 나와 호텔에 도착했을 때에는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 있었다. 20관을 돌파하는데 4시간이 조금 넘게 소요된 셈이었다.

실제 마수와의 대결에 소요된 시간보다는 중간에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10관까지 도전이 끝났을 때에는 건물을 한 번 바꾸어야 했는데, 그때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가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샤워를 마쳤을 때 가제타에게서 셔퍼로 전화가 왔다.

“가제타에요. 오늘 20관까지 도전을 성공시켰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수고하셨어요.”

“수고는요. 저한테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서 오늘은 도전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다소 무리하게 달렸습니다.”

“풋. 아직 영상을 차분히 다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제가 볼 때에는 그다지 무리하시는 것 같아 보이지 않던데요.”

“보시기에만 그런 겁니다. 살짝 무리했습니다.”

자신이 도전하던 모습이 이미 방송국에 전달된 모양이었다. 아마 촬영과 전송까지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저리하는 듯했다.

“그럼 계속 수고해 주세요. 좋은 성과를 기다릴게요.”

고스티스 축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는 좋은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 리 없는데도 가제타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  * * * *

아직은 도전 단계가 낮은 관계로 용사의 관은 계속 붐볐다. 진우는 첫날 도전이 끝난 다음날 하루를 쉬고 이틀째에 다시 21관부터 도전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도전에서도 그는 하루 만에 40관까지 도전을 성공시켰다. 도전을 끝내고 하루를 쉰 다음에 다시 도전에 나서는 방식으로 매일 이십 관씩 돌파해 나가자, 열흘이 채 되기도 전에 100관을 돌파할 수 있었다.

그가 도전을 성공하고 호텔로 돌아올 때마다 가제타는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축하의 말을 전했다. 자신 말고도 여러 명의 기대주들이 있다고는 했지만, 유난히 자신의 도전 장면을 챙겨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가제타의 태도에 성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진우로서는 그저 번거로울 뿐이었다.

100관까지 도전을 끝내는 동안 등장한 마수들은 죄다 최하급 마수였다. 물론 같은 최하급 마수라고 할지라도 상대하기 쉬운 녀석과 어려운 녀석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때로는 마수가 지닌 독특한 특성으로 인해 용사에 따라서는 상성 상 다소 까다롭게 느껴질 것 같은 녀석들도 등장했다. 그러나 진우에게는 모두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상대에 불과했다. 다만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마수들이 실제 필드에서 상대하던 녀석들보다는 조금 쉬운 것 같은데?”

백 마리의 마수를 상대하는 동안 진우가 실제로 여러 행성에서 헌팅을 할 때 상대했던 경험이 있는 마수들도 몇 마리 있었다. 그런데 녀석들이 어딘가 현실의 마수보다는 조금씩 약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은 마수들이 모두 최하급이라서 그런지 그 차이가 뚜렷하지 않았지만, 마수들의 속도나 위력, 습성 같은 것들에서 약간씩 위화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실제가 아니라 인공적으로 구현이 된 녀석들이라서 그런가?”

진우는 세 번째 도전에 나섰을 때부터는 용사의 관에서 마수들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를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마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매 관마다 마수들이 구현될 때 방 안에서 적지 않은 양의 마나들이 뿜어져 나와 인공적으로 마수의 형체를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마수들이 구현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나가 마수로 형상화되는 구체적인 방식을 면밀하게 관찰하기 어려웠다.

단계가 높아지고, 등장하는 마수가 더 강력해질수록 구현되는 속도가 조금씩 늘어나기는 했다. 고스티스 축제가 시작되면 그 속도는 더욱 느려질 게 틀림없었다.

“마수들의 등급이 올라가면서 구현 속도가 느려지면 조금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지.”

만약 마나를 이용해서 마수의 형체를 구현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피엔다 행성에서 마수를 공략하는 것 말고도 의외의 수련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 단계가 몇 관일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앞으로도 도전할 수 있는 관은 많이 남아 있었다.

진우는 당분간 최대한 빠른 속도로 관을 돌파한 뒤에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최대한 마수가 구현되는 방식을 살피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날씨가 많이 춥네요. 주변에 감기, 몸살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