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11. 새로운 도전
진우가 이니스프리 행성에서 돌아왔을 때 지구는 12월 중순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소현을 만났지만 마침 그녀가 한창 학기말 고사를 코앞에 두고 있던 때여서 자주 시간을 내거나 데이트를 할 수는 없었다.
이미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던 소현이었기에 대다수의 일반 교과목에 대해서는 시험을 면제받거나 이미 통과한 상태라서 전투 훈련 과목에서만 패스를 받으면 되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소현은 머리에 비해 운동 신경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지난 세 학기 동안 헌터 반에 남아 있기 위해 갖은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네 번째 학기 역시 패스를 장담할 수 없는 간당간당한 처지에 몰려 있었다.
“네가 좀 도와주지 그러냐?”
인사도 할 겸 조승운 스승을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소현의 훈련 과목 통과가 걱정이라는 얘기를 했더니 조승운이 문득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도와 줄 방법이 마땅치가 않아서요. 대련을 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마나량을 갑자기 확 늘려줄 수도 없잖아요.”
진우는 최상급이었다. 반면에 소현은 그 동안의 외계 행성 전지훈련을 통해 체내에 쌓은 마나량이 이제 고작 50P가 될까 말까할 정도에 불과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적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우에 비해서는 비교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마나량이 적은 것도 문제였지만 마나 운용 능력의 차이가 워낙 컸다. 둘 사이에 워낙 실력차가 많이 나다 보니 대련을 하더라도 소현이 진우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대학교수가 유치원생을 가르친다고 해서 유치원 선생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나량이 적은 게 뭐가 문제냐? 그거 말고 마나 운용 방식을 가르쳐 주면 되지 않냐?”
그건 벌써 가르쳐 줬었다. 다만 소현이 배우지 못했을 뿐이었다.
마나를 음과 양으로 나누었다가 다시 합치는 것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정교한 마나 운용 방식은 조승운 스승의 비전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그걸 소현에게 가르쳐도 좋은지 미리 물어본 적이 있었다. 조승운이 쾌히 승락을 하자 나름 큰 기대를 가지고 소현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마나 운용 방식은 외우고 이해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마나 운용 방식은 직접 느끼고 깨닫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진우처럼 마나 친화력이 크고, 마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직접 볼 수 있지 않는 한 보통 사람들이 쉽게 터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소현은 머리 속으로는 진우가 말한 마나 운용 방식을 분명히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으로는 그것을 익히지 못했다. 배우는 본인도, 가르치는 진우도 서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술이나 궁술의 동작 같은 것은 시범을 통해 직접 보여줄 수 있지만, 각 동작을 실행할 때에 몸 속의 마나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은 진우로서도 불가능했다. 그런데 다시금 가르쳐보라는 조승운 스승의 말을 듣자 문득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 *
“그러니까 몸속의 마나에 정신을 집중시키고 명상 수련을 하란 말이지?”
“응.”
“그럼 네가 내 몸속의 마나를 직접 움직여 보겠다고?”
“그래. 하지만 마나를 전신의 세포 속으로 안착시키거나 그걸 다시 세포 밖으로 나오게 하는 건 전적으로 네가 해야 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네 몸속의 마나를 음과 양으로 나누어 이동시켰다가 다시 합쳐주는 것까지야. 그 앞과 뒤의 과정은 본인이 아니면 아무도 도와주거나 대신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말이야.”
진우와 소현은 지금 진우의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수련실에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마침 전투 훈련 통과 시험을 앞두고 있던 소현은 자신의 수련을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진우의 전화를 받고는 한달음에 그의 아파트로 달려왔다.
그만큼 그녀로서는 난생 처음 겪는 일종의 학습 부진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프거나 하지는 않은 거야?”
“내 경험으로는 고통스럽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아까도 얘기했듯이 나로서도 처음 시도하는 일이니까 조급하지 않게 아주 천천히 할 거야. 혹시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말을 하든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 그럼 바로 중지할 테니까. 알았지?”
소현은 진우의 여자 친구였다. 그녀는 자신의 남자 친구가 지구에서 가장 강한 헌터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헌터 학교를 다니기 전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자신이 직접 헌터 수업을 받다보니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진우가 직접 자신의 훈련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아파도 웬만하면 그냥 참을게. 나 이래 뵈도 참는 건 잘 하거든.”
하지만 진우는 그 말을 듣자 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프다는 건 마나의 흐름이 정상에서 벗어났다는 걸 뜻하는 거야. 그걸 그냥 참으면 자칫 마나의 운용이 잘못되어서 수련은커녕 몸만 상할 수 있어. 절대로 그냥 참지 말고 꼭 말을 하거나 신호를 보내야 해. 알겠지?”
“응.”
소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이 너무나 귀여웠다.
* * * * *
소현이 자신의 마나를 관조하며 명상에 들기 시작한 지 삼십분 가량 지나자 그녀의 몸속 마나가 조금씩 세포로부터 빠져나와 군데군데 고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몸속을 돌거나 하지는 않았다. 진우는 정신을 집중하고 그녀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느끼려고 노력했다.
‘마나 운용 자체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구나.’
진우는 소현의 몸에 고인 마나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세포로부터 마나를 꺼냈다가 다시 안착시키는 과정만으로도 훈련이 되기는 했다.
그걸 반복하면 조금씩이기는 했지만 체내 마나 수용량이 늘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몸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만 있을 뿐 실제 전투에서 방어와 공격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소현의 마나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응?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하네?’
소현은 아직 한 번도 명상 도중에 무아지경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녀도 명상을 할 때마다 마나가 몸 전체에서 빠져나왔다가 다시 스며들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교관들로부터 그것이 가만있지 않고 일정한 흐름에 따라 움직여야지만 전문 헌터 이상의 단계까지 갈 수 있다는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의념을 집중시켜도 자신의 마나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랬던 마나가 지금은 체내에 단순히 고여 있기만 하던 상태를 벗어나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현은 처음 경험하는 마나의 움직임에 놀랐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체내에서 조금씩 자리를 바꾸는 마나의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마나는 처음 그녀의 각 내장 기관을 하나씩 탐색하듯 기웃거리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허리를 지나 양 발끝까지 내려갔다.
거기서 발바닥과 발뒤꿈치를 거쳐 다시 올라와 아랫배에서 잠시 멈추었다. 가느라단 물줄기들이 웅덩이에 고이기를 기다리듯 아랫배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마나의 양이 아주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마나들이 한번 흐름을 타고 움직이더니 한 군데로 모이고 있었다.
아랫배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던 마나는 어느 정도 이상의 양이 되자 다시 위로 올라와 목을 지나 정수리까지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소현은 마나가 움직임에 따라 혀와 코, 귀는 물론 눈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감각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이 정수리를 지나면서부터는 마치 뇌 전체가 시원한 물로 씻겨나가는 듯한 상쾌한 감각 속에 푹 빠졌다.
‘머리가 엄청 맑아지는 것 같아.’
머리를 지난 마나는 다시 소현의 두 가슴 사이 정중앙에 머물렀다.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이 진우의 몸에 자리잡았던 바로 그 장소였다.
‘마나 크리스털이 일부러 택한 곳이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그것이 진우의 생각이었다. 그는 평소 수련할 때에는 자신의 마나를 아랫배보다 약간 위쪽에 모았었다. 하지만 와카반의 마나가 일종의 마나 기관처럼 몸속에 자리를 잡은 뒤로는 위치를 바꾸어 그곳을 마나집결지로 삼았다. 그렇게 하자 수련의 속도나 효율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는 소현을 훈련시키면서 그녀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그곳을 개발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소현은 온몸이 새로 깨어나는 듯한 감각에 빠져들었지만 진우가 생각한 수련의 과정은 이제야 겨우 절반에 이르렀다. 수련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그녀의 마나를 음과 양으로 나누어야 할 순서였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진우는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소현의 마나를 다루면서 그것이 음과 양의 마나로 완전히 나뉠 때까지 기다렸다. 그 과정에서만 삼십 분 가량이 소요되었다.
그녀의 마나가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마나로 분리되면서 진우의 머리와 배에 있던 두 개의 마나 크리스털이 맹렬하게 교감을 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교감의 강도를 낮추었다. 진우 자신은 이제 습관처럼 순식간에 해치우는 마나의 분리였지만 소현의 마나를 다룰 때에는 자신이 최초로 마나 분리를 경험했을 때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였다.
그의 이마위로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소현은 자신의 몸 속 마나가 따뜻하고 시원한 두 가지 성질로 나뉘더니 차가운 것은 머리로 이동하고, 따듯한 것은 아랫배를 향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마나의 이동은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음양의 마나가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머리로 움직인 마나는 그동안 잠자고 있던 뇌세포를 일깨우고 손상되었던 세포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반대로 아랫배로 내려간 마나는 뱃속을 따뜻하게 해 주면서 온 몸의 세포를 단련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 소현을 주시하고 있는 진우에게는 그녀의 몸 전체에서 어느 순간부터 아주 미약한 오렌지 빛깔의 서광이 스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와는 또 다르구나.’
진우는 이니스프리에서의 수련 도중 최현으로부터 자신의 몸에서 가끔 우윳빛의 서광이 비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혹시 소현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정말로 서광이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서광의 색깔이 자신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마도 사람마다 고유의 특성에 따라 다른 빛이 나타나는가 보군.’
음과 양의 마나로 나뉘어 각각 소현의 머리와 아랫배에서 한참 동안 머물던 마나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각각 가슴 중앙을 향해 움직이더니 하나로 합쳐졌다. 그 순간 소현의 전신으로부터 방금 전보다 한층 강한 서광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소현은 느닷없이 전신이 하나로 관통되는 듯한 느낌과 함께 강렬한 황홀감에 빠져들었다.
‘아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이 딱 벌려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것은 그녀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강렬한 감각이었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온갖 감각이 한 순간에 소멸해 버렸다.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무아지경이었다.
‘저건?’
진우는 자신의 몸에서 적지 않은 마나가 빠져나와 소현의 정수리를 통해 그녀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목격했다. 전체 양으로 보아서는 자신이 지닌 마나의 1할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양이었지만, 그것만 해도 무려 800P가 넘는 양이었다.
상급 헌터 한 명이 가지고 있는 총 마나량에 버금가는 마나가 진우의 몸으로부터 소현의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비치는 서광이 한결 강해졌다.
한참 동안 계속되던 마나 전이 현상이 모두 끝났을 때는 어느덧 수련을 시작한 지 세 시간이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서 눈을 뜬 소현의 얼굴에서 마치 윤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피부가 훨씬 고와졌던 것이다.
하지만 눈을 뜨고 얼마되지 않아 소현은 자신의 몸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에 코를 대고 킁킁 거리더니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 말았다.
“저기, 진우야. 나 몸을 좀 씻어야 할 것 같은데. 너희 집에 가서 샤워 좀 해도 될까?”
몸에서 악취가 난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고는 해도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가서 샤워를 하겠다는 말을 하자니 소현의 입장에서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진우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예전에 케이튼에서 겪었던 것과 비슷한 일이 소현에게도 일어났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때에 비하면 지금 소현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는 오히려 애교로 봐 줄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한 수준이었다.
“먼저 올라가서 샤워하고 있어. 나는 근처 백화점에 들러서 네가 입을만한 옷을 좀 사올게.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천천히 씻고 있어도 돼.”
진우는 눈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소현에서 집 열쇠를 주면서 말했다. 그가 서둘러 수련실을 나가려고 하자 소현이 작은 목소리로 그의 등 뒤에서 진우를 불렀다.
“저, 저기. 속옷도 좀 부탁할게.”
“알았어.”
진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만 들어 대답한 뒤 수련실을 나갔다. 소현은 붉게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을 들키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재빨리 수련실을 나가 진우의 집으로 뛰어갔다.
* * * * *
무려 한 시간이 넘게 걸린 소현의 샤워가 끝나자 진우는 그녀를 데리고 헌터 양성소의 타르코스 소장을 보러 갔다. 미리 전화로 연락을 해둔 터라 타르코스 소장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곳에서 소현과 진우는 각자 자신의 몸속에 있는 체내 마나량을 측정했다. 진우도 지구로 귀환한 뒤 아직 마나량 측정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우 군은 그동안 또 발전이 있었군. 이제 체내 마나량이 8300대에 이르렀네. 역시 놀라워.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소현 양이야. 지난 방학 때에 외계 행성 전지훈련을 다녀왔을 때만 해도 47P에 불과 했었는데, 지금은 335P로 나왔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좀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
소현은 자신의 체내 마나량 측정 결과를 전해 듣고 기겁을 하다시피 놀랐다. 수련을 끝낸 다음 마나가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설마 그렇게 많이 늘었을 줄은 몰랐다. 더구나 지구는 마나가 전혀 없는 곳이었다.
그녀는 토끼 눈을 뜨고 진우를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마나를 얻었다면 그 마나가 올 곳이라고는 진우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우는 소현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측정 결과에 놀라고 있었다. 소현의 수련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으로부터 일 할 가량의 마나가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래서 내심 7000대의 마나만 남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지구로 귀환하기 전에 짐작했던 것과 별 차이 없는 마나가 남아 있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소모된 마나가 그새 보충되었다는 뜻이었다.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 때문인 것 같군.’
그렇지 않다면 마나 제로의 지구에서 이미 소모되어 사라진 마나가 저절로 채워질 리가 없었다. 진우는 그 사실이 가지는 의미를 금세 깨달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속에 엄청난 마나 저장고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와카반의 마나 크리스털이 그의 몸속에서 마나 기관화되면서 마나의 성질이 바뀌어 진우가 본래 가지고 있던 마나와 동화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몸의 주인도 스스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소모된 마나가 보충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소현이 내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비율이 삼분의 일 정도 된다는 뜻이고.’
800P 가량의 마나가 스며들어 체내에 온전히 남은 것이 300P가 조금 못 되는 양이었다. 아마 나머지는 결국 소현에게 흡수되지 못하고 그냥 대기 중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통설에 의하면 원칙적으로 헌터가 타인의 마나를 흡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현은 분명 자신의 마나를 삼분의 일의 효율로 흡수했다. 그것이 소현과 자신의 마나 특성이 유사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자신의 마나가 특이해서 그런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효율이 얼마가 됐든지 소현이 자신의 마나를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진우와 소현이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 옆에서 타르코스 소장이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어제 잠을 좀 설쳤더니 오늘은 하루종일 병든 닭처럼 졸았습니다. 새해 첫날부터 잠에 취해 사는군요. 건강한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선작, 추천, 쿠폰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