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01화 (101/235)

101화

“진우야, 왜 그래? 뭔가 이상한 거니?”

약간 떨어진 곳에서 진우를 지켜보고 있던 최현이 그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더니 급히 다가오며 물었다.

“교감이 시작됐어요. 제 몸에 손대지 마세요.”

진우는 다급하게 최현을 향해 소리쳤다. 입이 잘 떨어지지가 않아 억지로 쥐어짜낸 목소리로 간신히 몇 마디를 하는 게 다였다. 그 말을 끝내자 더 이상은 입술을 떼기도 힘들 만큼 강한 압력이 전신으로 밀어닥쳤다.

최현은 당황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표정으로 봐서는 와카반의 움직이지 않는 마나가 진우를 공격한 것으로 보였다.

기록과 영상에 의하면 놈이 공격을 할 때에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대의 마나 전체가 굳어버린다고 했었다. 하지만 자신은 아직까지 움직이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때 최현의 눈에 와카반과 진우를 연결하는 가늘고 긴 금색의 실이 보였다.

최현은 아직 진우가 가진 금색 마나 크리스털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저게 진우와 와카반을 직접 연결하고 있는 건가?’

아무튼 진우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한 것으로 보아 현재로서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와카반과 연결된 상태에서만 놈의 마나에 의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였다. 최현은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검을 꺼내든 채 진우의 옆에서 그를 보호하며 사방을 살폈다.

분명 교감이 시작된 것 같은데, 겉으로 보아서는 진우의 표정이 변한 것 말고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시간이 사정없이 흘렀다.

*  * * * *

진우가 와카반의 곁에서 꼼짝도 못하고 붙잡혀 있다시피 한 시간도 벌써 세 시간이 흘렀다. 어느 새 정오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진우는 여전히 몸속의 마나를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속으로만 악전고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무슨 단단한 벽을 두드리는 기분이네.’

와카반의 마나는 분명히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다른 마나 크리스털처럼 생동하는 존재감이 아니라 막막할 정도의 견고함이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마나 크리스털은 각각 뜨거움과 차가움이라는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단단함이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카반의 마나가 진우에게 전해주는 느낌은 단순히 단단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그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철벽을 마주하고 서 있는 느낌을 주었다.

실제의 형상은 아니었지만 눈을 감고 명상에 든 진우의 심상 속에서는 금색 마나크리스털이 그 철벽에 끝을 대고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진우는 금색 크리스털을 통해 계속해서 그 철벽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심정으로 교감을 시도했다.

‘열어 봐라. 나랑 이야기 좀 하자.’

그렇게 진우가 몇 시간 동안 사력을 다해 움직이지 않는 마나에게 교감을 시도하고 있을 때, 문득 그동안 잠자코 있던 머리와 배의 마나 크리스털들이 활발하게 반응을 하는 게 느껴졌다. 그가 이미 주변의 기척에 대한 감각을 모두 잃고 완전한 무아지경의 상태에 들어간 뒤였다.

진우의 마나가 명상을 시도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음과 양의 마나로 나뉘더니 실처럼 변한 금색 크리스털을 타고 철벽처럼 버티고 서 있는 와카반의 마나에게로 부딪혀가기 시작했다.

톡, 톡, 톡, 톡.

처음에는 가벼운 노크였다. 하지만 상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마나의 두드림은 점점 거세고 강력하게 변해갔다.

쿵, 쿵, 쿵, 쿵

나중에는 얼마나 세게 두드리는지 진우의 몸 전체가 마치 타종을 하는 커다란 종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음과 양으로 나뉜 진우의 마나가 교대로 와카반의 철벽을 두드릴 때마다 그 반동으로 진우의 몸이 거세게 진동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나의 두드림이 강력해지면서 진우의 몸에 전해지는 반동 역시 갈수록 커졌다.

‘으윽.’

나중에는 진동을 이기지 못한 진우의 귀와 코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진우야.”

지켜보고 있던 최현은 진우의 몸이 일정한 주기로 진동을 할 때부터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그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큰 목소리로 진우를 불러댔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의 몸을 붙잡아 억지로 끌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손대지 말라는 진우의 부탁이 있었다.

입을 열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간신히 쥐어 짜낸 목소리였다. 그 때문에 최현은 차마 어쩌지도 못하고 계속 안절부절 하는 수밖에 없었다.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진우를 구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조차 와카반의 마나에 붙들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이 꺼멓게 죽어갔다.

진우의 몸이 떨리기 시작한 뒤로도 다시 한 시간이 지났다. 겉으로 보기에도 진우의 얼굴은 오래 전부터 창백하게 변해 곧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도 진우는 몸뿐만이 아니라 내부의 마나 전체가 끊임없이 진동하는 충격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네가 문을 열든지, 내가 쓰러지든지 끝까지 해보자.’

진우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제는 자신으로서도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금색 마나 크리스털은 철벽으로부터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자신의 힘으로는 지금의 교감을 억지로 끊기도 어려웠다. 교감에 성공을 하든지, 아니면 금색 마나 크리스털이 제 풀에 떨어져 나오든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몸이 붕괴되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으로든 결판이 나기 전에는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나를 믿고, 자신을 믿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열려라.’

이미 무아지경에 든 지는 오래였다. 진우가 최후의 최후까지 정신력을 짜내어 철벽에 대고 그렇게 고함을 치듯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드디어 금색 마나 크리스털이 붙어 있던 철벽이 조금씩 얇아지면서 움푹 패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적이 아니라 친구다. 문을 열고 받아들여.’

진우는 무너지려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르고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 철벽에 대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그 마음을 느꼈는지 철벽은 아주 느린 속도로 패어 들어가면서 계속 얇아졌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에 대한 감각도 흐려졌을 때 드디어 철벽에 구멍이 뚫리면서 그 안에 수정처럼 보이는 노란 색의 단단한 결정이 살짝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이제까지 철벽에 끝을 대고 있던 금색 마나 크리스털이 다시 죽 늘어나면서 그 결정에 가서 철썩 붙었다.

물론 모든 것이 심상으로만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헉.”

진우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다급한 신음소리가 나왔다. 온 몸을 통해 엄청난 마나가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순식간에 음과 양으로 나뉘어 있던 진우의 마나를 점령하더니 그것을 강제로 융합시켜 버렸다. 그리고는 점령군처럼 진우의 몸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마치 자신이 살 곳을 검사하듯 진우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녔다.

‘마나 크리스털의 마나가 직접 전해지다니...’

이제까지 세 개의 마나 크리스털을 얻었지만, 어떤 것도 담고 있는 마나를 진우에게 직접 전해주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그가 운용하는 마나의 움직임과 교감하여 그 흐름을 도와주거나 증폭시켜 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와카반의 마나는 처음부터 자신의 마나를 직접 가지고 그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진우로서는 마치 상대의 마나에게 몸을 빼앗긴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진우는 침착하게 몸 안에 들어온 와카반의 마나와 교감을 시도했다. 새로 들어온 마나가 아무리 개선장군처럼 행동하더라도 엄연히 몸의 주인은 자신이었다.

단순히 마나를 전해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몸을 함부로 마나 크리스털 따위에게 내어줄 수는 없었다. 진우는 세 마나 크리스털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늘 마나를 운용하던 방식대로 침착하게 끌고 갔다. 그러면서 새로 들어온 마나에게 타협을 요구했다.

‘내 방식을 따르든가, 아니면 도로 나가라. 이게 바로 나의 마나다.’

녀석은 처음에는 주인이 살던 집을 강제로 뺏고 들어올 것처럼 제멋대로 굴더니 곧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금색 크리스털이 처음에 진우의 마나를 자기 맘대로 증폭시키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진우의 흐름에 동조하던 것과 비슷한 흐름이었다.

진우와 와카반의 마나 사이에 연인들의 밀고 당기기와 비슷한 힘겨루기가 계속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싸움은 진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갔다. 그는 이미 금색 마나 크리스털을 통해 이런 일에 대해 한 번의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진우는 힘겨운 가운데에서도 차츰 능숙하게 와카반의 마나를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  * * * *

“응?”

진우가 한참 와카반의 마나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때, 최현은 멀리서 다가오는 여러 대의 무중력 자동차를 발견했다. 진우의 몸에서 흐르던 피가 멎고, 안색이 안정되어 가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최현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결국 헌터들이 오는 건가?”

원래 계획은 와카반과 간단하게 교감을 시도해 보고 시간이 되기 전에 물러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우가 와카반에게 꼼짝없이 붙들려서 움직이지 못하는 바람에 물러날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시간이 너무 지나면서 내심 포기하고 있기는 했지만, 정작 다른 헌터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마음 속에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얼마 되지 않아 무려 열 대 가량의 무중력 자동차가 진우와 최현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여러 대의 차문이 동시에 열리면서 헌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무려 사십 명 가량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이런, 다른 손님이 와 있었군. 와카반에 대해 이미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던 거요?”

일행의 앞으로 오십이 넘어 보이는 서양인 한 명이 조금은 어색한 영어로 최현을 향해 물었다.

“아닙니다. 아직 공격은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냥이 아니라 수련을 하러 온 겁니다. 와카반의 마나가 특이하다고 해서 근처에서 명상을 하며 녀석의 마나를 느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흠... 여기까지 와서 수련을 하고 있었던 거요? 그런데 어떡한다. 우리는 와카반을 잡으러 온 팀이요. 곧 사냥을 시작해야 하는데... 아, 참. 먼저 인사부터 합시다. 나는 네덜란드에서 온 헌터인 다비드 요헴이라고 하오. 보아하니 아시아 분인 거 같은데?”

다행히 일행의 대표로 보이는 인물은 최현과 진우에게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현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자신을 소개했다.

“한국에서 온 헌터인 최현이라고 합니다. 묘한 곳에서 만나기는 했지만 반갑습니다.”

그러자 요헴이 씩 웃으며 말을 받았다.

“확실히 묘한 곳이라는 말이 맞기는 하군요. 그리고 상황도 조금 묘하기도 하고. 그런데 와카반의 마나를 느끼려는 수련은 얼마나 더 하려는 거요? 우리도 너무 늦지 않게 녀석에 대한 공격을 시도해야 해서 말이요. 마냥 기다려주기는 사정이 조금 그런데. 의뢰를 받아 움직이는 참이라서 말이요.”

그때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하긴. 당연히 공격을 시작해야지요. 그게 여기 모인 모든 헌터들에게 우리가 큰돈을 들여 의뢰를 한 이유가 아닙니까? 저희 험프리 호텔은 준비가 되는 대로 헌터 여러분이 신속하게 공격을 시작할 것을 요구합니다.”

최현은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사납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사나운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사람이 거기에 서 있었다. 도널드 만하임이었다.

“역시 당신들이 꾸민 일이었나?”

그러자 만하임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냉기가 철철 흐르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꾸민 일이라니? 우리가 뭘 꾸몄다는 말이요? 험프리 호텔은 와카반을 공략하기 위해 무려 사십 명이나 되는 헌터들에게 의뢰를 했소.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말이오. 헌터에게 사냥을 의뢰하는 게 무슨 잘못된 일이기라도 하단 말이요?”

최현의 이빨이 뿌드득 하는 소리를 냈다. 자신들을 설득하다가 안 되니까 함정에 빠트릴 흉계를 꾸몄던 놈들이었다.

여차하면 제거하려까지 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비록 의뢰를 받고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주위에 녀석의 편을 들어줄 헌터가 무려 사십 명이나 있었다.

나중에 보복을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함부로 성질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게다가 진우는 여전히 와카반의 마나에 꼼짝없이 묶여 있는 상태였다.

“지금 우리 헌터 하나가 와카반의 마나와 교감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요. 수련의 일종이기는 하나 일단 그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으면 좋겠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요. 일이 끝나는 대로 우리는 바로 이곳을 떠나겠소.”

최현은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양해를 부탁했다. 만하임이 아니라 요헴이라고 자신을 밝힌 헌터를 비롯해 주변을 둘러싼 헌터들을 보며 한 말이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우리는 이곳에 있는 헌터들에게 시간을 정해 놓고 의뢰를 한 거요. 한 시간이 늦춰지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그 만큼 늘 가능성이 있지. 우리가 그런 손해를 감수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소?”

최현의 입에서 다시 한 번 이빨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가슴 속에 계속 참을 인자를 새기며 다시 말을 했다.

“이곳은 우리가 먼저 도착한 거 아닙니까? 사냥터를 선점한 헌터에게 먼저 양보를 하는 게 헌터들의 관례입니다. 설마 지금 그걸 무시하겠다는 겁니까?”

그러자 만하임이 다시 콧방귀를 끼었다.

“어이가 없군. 조금 전에 당신 입으로 분명히 아직 공격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소. 공격도 하지 않은 주제에 무슨 선점권을 주장한다는 말이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려 줄 이유가 없소.”

그는 최현의 말을 딱 잘라 끊고는 요헴을 보며 말을 했다.

“요헴 대장. 험프리 호텔은 계약에 따라 와카반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기를 요구합니다. 이 요구는 분명히 계약서에 의한 정당한 요구라는 것은 잘 알지 않소. 지금 당장 공격을 해 주시오.”

그러자 요헴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난감하게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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