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00화 (100/235)

100화

다음날 하루 동안 최현과 진우는 내내 황량한 암석지대 위를 지나 서쪽을 향해 계속 이동했다. 애초의 훈련 계획이 모두 어그러지는 바람에 진우는 적지 않게 짜증이 난 상태였다.

주변의 풍경이라도 좋으면 구경이나 하면서 마음을 달랠 텐데, 보이는 것이라고는 거친 돌멩이들과 풀 한 포기 제대로 보이지 않는 메마른 땅덩어리뿐이었다. 아침부터 별 말이 없더니 저녁이 가까워 오는데도 입이 잔뜩 나온 채로 계속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진우의 얼굴을 본 최현이 가볍게 웃으면서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어디 가시게요?”

차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는 것을 본 진우가 최현에게 물었다.

“와카반의 서식지에 가기 전에 식수를 충분히 보충하는 게 좋겠다. 원래는 수림에서 채울 생각이었는데 그냥 빠져나오느라고 식수가 조금 모자랄 것 같다.

와카반의 서식지에서 얼마나 있을지 모르니까 미리 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여기서 북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제법 커다란 강이 흐르는 계곡이 있어. 어차피 오늘 내로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힘들 테니까 가는 길에 그곳에 들러 물통도 채우고, 오늘 밤은 강가에서 하루 야영하기로 하자.”

최현이 말한 계곡은 무중력 트럭으로 두 시간 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와 진우가 탄 차가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암석지대의 언덕 올라가고 있을 때는 이미 해가 지평선 너머로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진우가 슬슬 헤드라이트를 켜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언덕을 넘어가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몸이 덜컥 흔들릴 정도로 급정거를 한 최현이 다시 천천히 차를 뒤로 뺐다.

“왜 그러세요?”

진우의 물음에 최현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가 벌써 강가에 텐트를 치고 있다.”

최현은 언덕 너머에서는 보이지 않을 곳까지 충분히 뒤로 물러선 뒤 무중력 트럭을 정지시키고는 차에서 뛰어내렸다. 진우는 그가 몸을 숙이고 언덕 위를 향해 올라가는 걸 보고는 자신도 차에서 내려 뒤를 따랐다.

“다른 사람들이 있어요?”

진우가 언덕 위로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살피고 있는 최현의 옆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최현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아무래도 다른 헌터들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것 같다.”

진우가 최현의 옆에 몸을 숙이고 앉아 고개만 빼어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의 눈에도 무중력 차량 여러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계곡의 거친 물결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흐르고 있는 강가에는 이미 텐트 서너 개가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 주위로 여러 사람이 몇 개의 텐트를 더 설치하느라고 한창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언덕 아래로 마나를 펼치던 진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최상급 헌터가 하나에, 상급 헌터도 둘이나 있는데요. 최소가 하급 헌터에요. 대략 이십 명이 조금 넘는 것 같은데 일행이 모두 마나 헌터네요.”

진우의 말을 들은 최현의 얼굴이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곳이 아무리 헌터들의 행성이라고 해도 저렇게 많은 인원들이 한꺼번에 사냥을 다니지는 않는데 이상하구나. 네 말대로라면 팀의 구성도 지나치게 고급 인력 위주야. 만약 저들이 의뢰를 받아 움직이는 거라면 누군가 엄청난 돈을 썼다는 얘긴데, 도대체 그게 누굴까.”

두 사람의 머리 속에 동시에 ‘험프리 그룹’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하지만 최현도 진우도 그걸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만약 짐작이 사실이라면 이번 훈련은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착잡한 표정으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진우의 어깨를 최현이 툭툭 치더니 아래를 향해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만 내려가자는 뜻이었다. 차가 있는 곳까지 다시 내려온 두 사람은 일단 차에 올라타서 언덕을 완전히 벗어났다. 언덕이 시작되는 입구에 있는 커다란 바위 옆에 차를 세운 최현이 진우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래? 그냥 돌아갈래, 아니면 와카반 서식지에 가 볼래?”

진우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사람들도 와카반의 서식지로 가는 게 틀림없겠죠?”

“그래. 특별한 마수도 없는 이곳에 이십 명이 넘는 인원이 왔다면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생각하기는 어렵겠지. 우리가 본 숫자도 많았지만 그게 이번에 동원된 인원들 전부라는 보장도 없는 게 사실이다. 혹시나 했지만 아무래도 저렇게 많은 인원이 여기에 온 걸로 보아 우리 말고도 와카반을 노리는 사람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어제 습격했던 녀석들도 우리가 와카반의 서식지로 간다는 걸 알고 그런 짓을 저질렀던 게 틀림없어. 굳이 험프리 호텔이 아니더라도 돈 많은 누군가가 와카반을 공격하기 위해 헌터들에게 대량으로 의뢰를 낸 것 같다.

“저들에게는 와카반의 마나 스톤이나 마나 크리스털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는 뜻인가요?”

“글쎄다.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지. 하지만 저들도 나름대로 방법이 있으니까 저렇게 많은 인원을 동원하지 않았겠냐? 그리고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의뢰자는 우리가 끼어들면 자신들이 성공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면 일부러 헌터들을 시켜 우리를 막아설 이유가 없으니까.”

말을 마친 최현이 다시 진우를 향해 물었다.

“어쨌든 여기서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와카반이 있는 곳으로 가 볼 테냐?”

가고 싶었다. 상해까지 가서 포털을 탈 때야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있었지만, 아무튼 남의 나라 포털을 이용하면서까지 이곳으로 온 이유가 와카반을 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와카반을 보고 싶어요. 말씀하신 대로 놈의 마나를 경험하는 게 수련에 도움을 줄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유일한 방법은 저들보다 우리가 먼저 와카반의 서식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놈의 마나를 경험하는 것뿐이라면 얼른 교감을 시도해 보고 저들이 오기 전에 빠져나오면 된다.

설사 우리가 몸을 빼기 전에 저들이 도착하다고 하더라도 헌터의 관례대로라면 일단은 사냥터나 사냥감에 대한 선점의 권리를 주장할 수가 있으니까. 물론 어제 우리를 공격했던 일당들과 저들이 한 패라면 우리의 선점 권리를 인정해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설마 저렇게 많은 헌터들이 모두 그놈들이랑 똑같은 놈들일 리야 없겠지.”

헌터들은 범죄자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인군자도 아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헌터들이 이미 사냥을 하고 있는 곳에는 다른 헌터들이 기웃거리는 게 아니었다.

그건 여차하는 경우 뒤통수를 치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관행에 어긋나는 짓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시비를 거는 놈들이 있다는 걸 경험한 게 바로 어제였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말썽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기대였다.

진우의 얼굴에 미련이 가시지 않는 것을 지켜보던 최현이 아무런 말 없이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하긴 이대로 맥없이 물러나는 것도 우스운 일이기는 하다. 그러니 되도록 와카반의 서식지에 가서 놈의 마나를 잠깐 경험해 보고 일찍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 하자. 하지만 그러려면 오늘 밤은 잠 잘 생각 말고 밤새 달려야 하겠다. 여기서는 헤드라이트를 켜기 어려우니까,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최대한 지평선 너머까지 달려보도록 하자. 그 뒤로는 헤드라이트를 켜도 저들에게 들키지는 않을 거다.

최현과 진우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씩 웃었다. 두 사람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수십 명이나 되는 헌터들과 시비가 붙는다면 무사히 몸을 빼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만약 저들이 와카반을 사냥해 버린다면 그의 마나를 경험한다는 건 앞으로 영영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다소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잠깐 와카반의 마나와 교감을 시도해 보고 일찌감치 몸을 피하기로 했다. 설사 발견이 된다고 하더라도 저들의 목적이 정말로 와카반을 사냥하는 것이라면 굳이 자리를 뜨는 두 사람을 악착같이 쫒아올 이유가 없었다. 다만 진우의 머리를 맴도는 한 가지 불안이 있기는 했다.

‘도대체 우리가 와카반을 사냥하는 자리에 있다는 게 무슨 방해가 된다는 거지?’

*  * * * *

최현은 밤새 트럭을 운전하면서 옆자리에 앉은 진우에게 불편하더라도 좌석 시트에 등을 기대고 잠을 자라고 했다. 진우는 운전하는 그를 놔두고 잠을 자기가 미안해서 극구 사양했지만 결국은 최현의 말을 듣기로 했다.

최상급인 그로서는 하루 정도 날을 샌다고 해서 특별히 피로를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되도록 몸의 상태를 최선으로 만들어야지 와카반의 마나를 느끼기에도 좋다는 최현의 말에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기로 했다. 얼마나 긴 시간이 될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최현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대신 돌아오는 길에는 그가 운전을 하기로 했다.

두 사람이 와카반의 서식지에 도착한 것은 이미 해가 떠오른 뒤였다. 아침 햇살 아래 드러난 와카반의 서식지는 황량함 그 자체였다.

비교적 평탄하긴 하지만 땅과 바위뿐인 지형 위에 메두사의 눈을 보고 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처럼 군데군데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풀 한 포기 없는 메마른 암석지대였다.

“저게 와카반이다.”

최현이 손을 들어 가리킨 곳에 길이 20m에 폭이 5m 가량 되어 보이는 거대한 바위가 땅 위에 엎드려 있었다.

“진짜 거북이처럼 생겼네요.”

와카반을 본 진우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와카반은 무늬가 없는 볼록한 등판을 가진 채 껍질 속으로 고개를 집어 넣은 거대한 육지 거북이처럼 보였다.

최현이 직접 와카반이라고 말을 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돌들이 희한한 모습으로 쌓여져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겉으로 보이는 놈의 몸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윗덩어리들로 온통 덮여 있었다.

“나도 저 녀석이 장소를 이동하기 위해 느리게 움직이는 모습을 망원경으로 확인하지 않았으면 절대로 마수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소문을 들은 게 있어서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기만 하다 돌아왔었다.”

최현의 말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직접 보지 않는 한 겉모양만 보고 녀석을 마수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어 보였다.

‘무슨 이야기 속에 나오는 골렘도 아니고. 저게 마수라니.’

두 사람은 만일을 대비해서 무중력 트럭을 와카반으로부터 500m 가량 떨어진 곳에 세워두고는 물과 식량을 비롯한 간단한 야영 도구가 담긴 배낭을 둘러메고 와카반에게 접근했다. 진우는 녀석으로부터 50m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가가서 그곳에 놓여 있던 키 큰 바위 위로 올라갔다.

바위가 제법 높았던지라 그곳에 올라서니 와카반의 볼록한 등판이 뚜렷하게 보였다.

“여기서 마나 교감을 시도해 볼게요.”

그러자 최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배낭에서 물 병 하나를 꺼내 진우에게로 던져 주었다. 진우는 그것을 받아 옆에다 놓고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히 명상에 들어갔다. 최현은 바위 그늘에 기대 앉아 주변을 살피면서 조용히 기다렸다.

진우는 먼저 30분가량 명상을 통해 자신의 몸속에 있는 마나를 한 번 안정시켰다. 체내의 마나가 음과 양의 마나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지는 과정을 통해 전신의 마나가 새로워지더니 몸 전체로 흩어지면서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 상태에서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거북이 모양의 커다란 돌무덤처럼 보이는 와카반을 향해 마나 교감을 시도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이 지났다.

‘마나가 정말 있기는 한 건가?’

처음 느낌은 마수는커녕 아무런 마나도 없는 그냥 돌덩어리라는 것이었다. 보통의 마나 크리스털은 평소에 겉으로는 아무런 마나도 발산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교감을 시도하면 미약하나마 마나의 존재를 느낄 수는 있었다.

비록 와카반과는 50m 정도 떨어진 거리이기는 했지만 그동안 진우도 수련을 통해 마나에 대한 교감 능력이 크게 향상되어 있었다. 그 정도의 거리라면 마나 크리스털처럼 막대한 마나를 지닌 존재일 경우 충분히 교감을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진우는 한 시간 동안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교감의 기미를 느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조금 더 가까이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전혀 마나 교감이 안 돼요.”

진우가 바위에서 다시 내려오며 최현에게 말했다. 최현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기록에 의하면 공격을 하지 않는 한 문제는 없다고 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조금 위험하지 않겠냐?”

“20m 정도까지만 접근해 보죠. 그 정도면 무슨 일이 생겨도 피하거나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 영상을 통해 본 결과에 의하면 최상급 헌터일 경우 설사 마나가 묶이는 일을 당할 지라도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이는 게 가능해 보이기는 했다. 놈의 공격 속도로 볼 때 그 정도 거리에서는 만약의 경우에도 진우가 무슨 큰일을 당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진우는 와카반과 20m 정도 떨어진 곳까지 접근하여 다시 마나 교감을 시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 시간 정도가 지나도록 아무런 마나의 존재나 움직임을 느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저 녀석이 와카반이 맞을 텐데. 움직이지 않는 마나라더니, 놈이 스스로 움직이기 전에는 마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어려운 건가?’

그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허리에 차고 있던 검집이 강하게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왜?’

금색 마나 크리스털이 검 밖으로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신호였다. 진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검 손잡이의 마개를 열었다. 그러자 금색 마나 크리스털이 알아서 검을 스르르 빠져나오더니 꿈틀거리며 몸을 길게 늘이기 시작했다.

진우는 이 녀석이 무슨 짓을 하려나 싶어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거북이 모양의 돌무더기가 있는 곳까지 실처럼 몸을 길게 늘인 금색 마나 크리스털이 돌들이 쌓여있는 사이의 틈새로 미끄러지듯 기어들어가 버렸다. 순간 진우는 온몸을 옥죄이는 강한 마나를 느꼈다.

‘으윽.’

그것은 마치 거대한 압착기가 몸의 전후좌우는 물론 상하까지 빈틈없이 에워싸고 강하게 짓누르는 압력이었다. 갑작스러운 압력에 온몸이 기름틀에 짓눌린 깻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삽시간에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아울러 몸속의 마나가 마치 돌덩어리가 된 것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리기 시작했다. 진우의 얼굴 위로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100회네요. 올해가 가기 전에 과연 백 회를 넘길 수 있을까 했는데, 어느덧 슬쩍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날카로운 지적을 아끼지 않아주신 분들에게도 모두 감사를 드립니다. 행복한 시간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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