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5. 행성 스카디안
400여명의 학생과 함께 100명이 훨씬 넘는 교관들이 케이튼 행성 전초기지에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기지장인 조세연 박사를 제외하면 5명밖에 되지 않는 기존의 관리 인원으로는 이들의 식사며 숙소 관리를 모두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헌터 학교의 훈련이 시작되는 방학이 되면 학생과 교관 이외에도 50명의 보조 인력들이 학생들보다 먼저 행성 케이튼으로 이동해서 미리 준비를 하고는 했다. 이들과 함께 엄청난 양의 부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소모 물품들도 미리 포털을 통과했다.
훈련과 관련된 참가 인원들의 왕복 포털 비용을 포함해서 헌터 학교의 방학 훈련이 한 번 있을 때마다 1학년에게만 백오십억 가량이 비용이 필요했다. 2학년만 되어도 참가 인원이 절반으로 줄고, 겨울 방학에는 3학년들의 행성 전지훈련이 없기는 했다. 그러나 여름 방학에는 3개 학년 모두가 외계의 행성을 향해 훈련을 떠났다. 실로 일개 고등학교의 규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돈이 헌터 교육을 위해 소비되는 것이다.
그 모든 돈이 헌터 양성소와 외계 문명 연구소, 그리고 헌터 협회에서 지원하는 돈으로 충당되었다. 그리고 이 돈은 다시 한국 전체에서 활동하는 행성 헌터들이 헌팅을 동해 벌어들인 돈에서 거둔 각종 세금과 기부금, 포털 이용료와 같은 수수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헌터 학교의 전지훈련 하나만 보아도 헌터들의 연간 수입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 * * * *
“진우, 정말 오랜만이다. 어때, 건강하게 잘 지냈지? 어머, 너 그 사이에 키가 더 큰 것 같다?”
“네. 그동안 잘 계셨어요? 지난 겨울보다 한 4cm 정도 더 자란 거 같아요. 저 때문에 지구에 오지도 못하고 그동안 힘드셨죠? 죄송해요.”
“이곳처럼 조용한 곳에 있는 게 뭐가 힘들겠니? 너하고 최현이 다녀간 뒤로 마수들도 전부 대수림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그동안 별 사고도 없었어. 힘든 거 없었다.”
신체 재구성을 거치면서 6cm를 훌쩍 자랐던 진우의 키는 그동안 4cm가 더 자라 184cm가 되었다. 키가 크고 근육이 완전히 모양과 자리를 잡으면서 진우는 꽤 남자다운 몸매를 가지게 되었다. 조세연 박사는 마치 자기가 키운 아들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흐뭇한 눈으로 진우를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나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시집도 안 간 여자가 그렇게 쳐다보니 진우는 고마운 한편 조금 난감하기도 했다.
교관들의 지휘에 따라 숙소를 배치 받고, 가져온 짐을 푸는 한편 필요한 장비를 기지에서 대여하는 등의 일을 처리하고 나니까 어느 새 저녁 시간이 되었다. 지구에서는 아침에 포털을 통과했지만 케이튼은 그때 이미 한낮이 지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훈련 첫날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기지에서 마련한 크롱 고기 정식에 학생들이 모두 환호성을 지른 저녁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진우는 최현과 함께 기지장실에 올라가 조세연 박사를 찾았다.
“저기, 이거.”
진우는 최현이 미리 건네준 영화와 소설 등이 가득 찬 헌터패드를 조세연에게 내밀었다.
“지난 6개월 동안 지구에서 인기를 끈 영화와 드라마, 소설 같은 것들이에요. 그동안 저 때문에 지구에 가지 못하셨을 테니까 심심할 때 보시라고 가져왔어요.”
사실은 모두 최현이 고르고 구매한 것들이었다. 진우가 여러 번 시간을 내서 쇼핑을 하려고 했지만, 조세연의 취향을 잘 안다는 이유로 결국 최현이 알아서 다 챙겼다.
“어머, 그래도 나 생각해 주는 건 진우밖에 없네. 동창이랍시고 메시지 한 번 보내지도 않는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야.”
최현이 움찔하더니 급하게 말을 했다.
“야, 그건 전부 내가.... 흠흠. 아니다. 나도 바빴어. 그러는 너는 뭐 연락한 적 있냐? 저도 안 하면서 바라기만 하기는.”
만나자마자 나이에 맞지 않게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진우는 왠지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수림을 헤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지만, 그래도 최초로 마나를 각성하고 발현 단계까지 단숨에 도달하게 된 장소가 이곳이었다. 그에게는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서로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하며 아옹다옹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진우는 난처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 차례 다툼을 빙자한 인사가 끝나자 조세연 박사는 직접 차를 끓여 두 사람에게 내었다.
“그런데 훈련 인원 명단을 보니까 진우 너한테만 교관이 세 사람이나 배정되어 있던데? 왜 그렇게 된 거야? 명단 보고 처음에 깜짝 놀랐다.”
“아, 나르샤 교관도 진우하고 함께 훈련할 거야. 보조 교관 자격으로 함께 오기는 했는데, 사실은 멜리사 아줌마한테 진우하고 같이 훈련을 받으려고 온 거거든.”
진우를 대신해서 최현이 그동안 헌터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중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해서 죽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조세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한 학생한테 특혜나 다름없는 혜택이 주어진 셈인데, 용케 통과가 됐네? 교장 선생님이야 뭐 어차피 소장님하고 아주 친하니까 그렇다 치고, 그 좀생이 교감이 어떻게 그걸 눈감아 줬지? 또 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으면서 가로막았을 거 같은데.”
그 말에 최현이 쓴웃음을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잖아도 교감이 좀 많이 뭐라고 했어. 아마 교관으로 지명된 사람들이 조승운 영감하고 멜리사 할머니 같은 분이 아니었으면 끝까지 딴지를 걸었을 거야. 일도 형님만 해도 교감이 함부로 대하기는 약간 껄끄러운 사람이니까 결국 투덜대면서도 넘어간 거지. 아무튼 진우 이 녀석이 복을 타고 났긴 해.”
“참, 다른 건 그렇다 치고, 멜리사 아줌마는 어떻게 영국에서 여기까지 온 거니? 난 그 아줌마가 처음에 교관으로 이름이 올라온 걸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 나르샤 교관이라는 사람 때문에 온 건가? 진우 너 그 아줌마, 아니 너한테는 할머니겠구나. 암튼 그 양반하고 어떻게 알게 된 거니?”
진우는 그동안 나르샤 교관과 있었던 일을 비롯해서 멜리사 교관이 어떻게 해서 자신의 궁술 훈련을 맡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조세연은 한참을 웃었다.
“그럼 내일부터 훈련은 어떻게 할 건데? 여기 전체 훈련 일정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한테 해당되는 항목은 거의 없더라. 너는 전에 여기 왔을 때 저 무식한 놈한테 걸려서 그것보다 훨씬 힘든 훈련을 이미 다 받았잖아? 네가 지금 마나를 축적하려고 노력할 단계도 아니고 말이야.”
“무식하다니? 인류 최초로 발현 가능한 십대 헌터를 키운 게 누군데 무식하대? 세상 모든 교관들 가운데 나보다 더 위대한 교관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조세연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쯧쯧 찼다. 진우는 또 두 사람의 말싸움이 시작될까 봐 얼른 입을 열었다.
“아마 아침 일찍부터 그 세 분하고 나르샤 교관님과 저, 이렇게 다섯은 차를 타고 초원에 나가서 따로 훈련할 거 같아요. 참 그래서 조승운 교관님이 기지장님한테 트럭을 한 대 지원해달라고 부탁하겠다고 하셨어요. 나중에 기지장실에 한 번 오실 거예요.”
“그래, 그거야 뭐 별 문제없지. 알았어. 그렇게 할게.”
* * * * *
아직 케이튼의 태양이 뜨기도 전인 이른 새벽에 진우를 비롯한 다섯 사람은 기지를 출발해 초원을 향해 떠났다. 나르샤가 트럭을 운전하고 멜리사는 그 옆에 앉은 반면에 권일도와 진우는 초원 안에 있는 오아시스까지 구보를 해서 가기로 했다. 조승운은 여자들 사이에 끼어 타기 민망하다며 굳이 짐칸에 몸을 실었다.
누가 보면 미친 거 아니냐고 놀랄 만큼 전력 질주에 가까운 속도로 두 시간 가량 초원을 달린 두 사람은 해가 뜰 무렵 오아시스에 도착해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다. 뒤이어 천천히 따라온 트럭에서 제일 먼저 조승운 교관이 뛰어내렸다.
“매일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한 시간 가량 모두 함께 명상을 하도록 하자. 아침 식사 뒤에는 계획대로 검술과 격투술 훈련을 각각 세 시간씩 한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궁술 시험 세 시간이다. 그게 모두 끝나면 명상을 통해 소모한 마나를 회복하고 돌아가는 걸로 하지.”
일행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나르샤를 잠깐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나르샤는 진우하고 훈련하는 걸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알아서 자기 훈련을 해라. 진우는 이번 수련 자체를 모두 정식으로 중급1 과정으로 학교에 수강신청 한 거 알고 있지? 그게 개인 교관을 두고 훈련하는 걸 허락받는 조건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 뭐 통과 여부를 신경 쓰라는 게 아니라 그만큼 성실한 자세로 훈련하라는 거다. 자, 그럼 다들 시작하자.”
헌터 학교 교감인 최명도는 처음에 진우에게 개인 교관을 세 명이나 배치하는 것을 반대했다. 특정 학생에게 그런 특혜를 주는 것은 지나치다는 이유였다. 펄스너 교장의 설득 반, 명령 반의 권유에도 완고하게 이의를 제기하던 그는 결국 이번 진우의 여름 훈련 자체를 정규 전투 훈련 수업으로 신청하는 것을 조건으로 동의를 해 주었다. 검술, 격투술, 궁술을 각각 중급1 과목으로 신청하라는 뜻이었다.
교감은 초급도 아닌 중급 과목을 진우가 통과할 리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애초에 진우가 초급2 과목을 통과한 방식에는 조금 문제가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내놓고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진우가 초급 과목을 모두 통과한 데에는 분명히 어떤 비리가 있을 것이라는 강한 의심을 갖고 있었다. 만약 이번에도 진우가 중급 과목을 통과한다면 그는 반드시 비리의 증거를 찾아 진우는 물론, 그의 교관들에게도 혹독한 불이익을 줄 생각이었다.
간혹 입학 전에 미리 오랫동안 무술을 연마했던 신입생들 중에는 첫 학기의 초급1 과목을 학기말이 되기도 전에 통과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헌터 학교의 전투 훈련 수업 난이도가 만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본래 무술을 익혔던 학생들은 대체로 초급1을 무난하게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정태만 하더라도 창술은 끝까지 고생하기는 했지만, 격투술은 얼굴의 피멍이 사라질 때쯤 해서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학기말을 보름 정도 남겨 놓고 통과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도 초급 2부터는 통과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고, 중급에 들어가면 학기말이 되도록 통과에 성공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게 나왔다. 상급의 경우에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교관과의 대련에서 승리하지 않는 한 조기 통과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나를 사용하지 않을 뿐, 교관들은 체내에 축적된 마나로 인해 신체의 기능이 일반인들과는 이미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된 사람들이었다. 헌터 학교 역사상 몇 명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그런 교관들을 아직 전문 헌터조차 되지 못한 학생들이 이긴 경우는 없었다.
진우는 멜리사에게서 초급2 과정을 수강 신청 한 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통과 승인을 받았다. 게다가 같은 날 검술과 격투술조차 초급2 과정이 통과 승인을 받았다. 만약 통과를 허락한 교관이 조승운이나 멜리사, 권일도같은 쟁쟁한 교관들이 아니었으면, 학교에서는 다른 교관들을 동원해 반드시 재검증을 했을 것이다.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모두들 지나치게 빠른 통과 승인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멜리사의 경우에는 노골적으로 진우에 대한 사적인 배려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최명도 교감은 이 일에는 비리가 있는 게 틀림없다며, 멜리사의 교관 임용 자체를 취소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러나 최명도 교감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네 사람은, 진우 자신을 포함하여 중급 과목의 통과 여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애초에 헌터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준의 훈련을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조승우 교관이 미리 얘기했던 대로의 훈련 일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다섯 사람은 명상 훈련에 들어갔다. 케이튼 행성의 마나가 낯익은 느낌으로 진우의 몸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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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를 이용한 검술 훈련은 지구에서부터 해 왔던 것이었지만, 케이튼에서의 훈련은 분위기부터가 전혀 달랐다. 무엇보다 지구에서는 하지 않던 마나를 활용한 대련이 추가되었다. 지구에서는 진우나 조승운 교관 모두 훈련 도중 손실되는 마나를 최대한 아껴야 했기 때문에 함부로 대련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진우 혼자 동작을 연습할 때에는 검에 마나를 불어 넣었지만, 대련에서는 두 사람 모두 마나를 쓰지 않았다.
진우는 처음에 조승운 교관과 대련하면서 검에 불어넣은 마나를 통제하는 데 애를 먹었다. 혼자 동작을 연습하면서 마나를 통제하는 것과, 실제로 검과 검을 부딪치는 순간에도 검에 불어넣은 마나가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난이도가 달랐다.
“이제는 검을 신체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훈련 초기라면 그게 허세만 부리는 꼴이 되겠지만, 마나를 발현하는 헌터라면 얘기가 다르다. 검을 잡든, 도를 잡든, 아니면 창이나 도끼를 잡든, 손에 든 모든 무기가 곧 자신의 신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의식과 의지를 손에 든 도구에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무엇을 쥐든 마나가 무기 끝까지 닿으면서도 온전히 내 의지의 통제 아래에 머물 수 있다. 마나가 무기에 이른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나가 있는 곳이 곧 모두 내 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일체감을 느껴야 한다. 그런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상급 검사라고 할 수 있다.”
권일도가 주로 문답의 형식을 통해 진우를 일깨우려고 노력했다면, 조승운은 강의를 통해 진우를 이해시키려고 했다. 그는 이해를 통해 깨달음을 얻되, 그 깨달음에 의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과 마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고 했다. 그 점에 있어서 두 사람이 하는 얘기는 결국 하나로 통했다. 천 개의 시냇물이 하나의 바다에 이르듯, 진우는 그렇게 두 사람의 얘기를 관통하는 흐름을 차츰 깨우쳐 나갔다.
권일도와의 대련 역시 전과는 양세가 전혀 달라졌다. 마나를 두른 몸을 서로 부딪치는 대련을 통해, 진우는 마나와 마나가 사납게 충돌하는 느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조승운과의 대련에서는 검이라는 도구를 통해 짧은 접점에서 모든 마나가 순간순간 날카롭게 서로를 물어뜯었다면, 권일도와 대련 할 때에는 두 사람을 감싼 일정한 공간 자체가 사나운 마나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 대련이 아니라 목숨을 건 혈투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은 치열한 공방을 계속하며 서로를 부수기 위해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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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현 가능한 마나 헌터들끼리의 대련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호강시키는구나. 어떠냐. 아직도 진우 때문에 원망스럽고 분하냐?”
멜리사의 말에 나르샤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직접 보기 전에는 실감을 할 수 없었다.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자기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뛰어난 궁술 솜씨를 보여줄 때에는, 마치 자신이 지난 세월 쏟아 부었던 노력이 한꺼번에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너무나 억울해 눈물을 흘리며 원통해 했었다.
스승이 직접 찾아와 그 녀석이 사실은 발현 단계의 마나 헌터라고 말을 해 주었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인류 최초의 십대 마나 헌터가 탄생했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 이렇게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릴 정도의 느낌이 전해지는 대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질투라기보다는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부러웠다. 자신도 저 사람들처럼 마나를 발현시킨 활과 화살을 들고 스승과 함께 초원을 누비고 싶었다. 그런 장면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마음이 황홀했다.
진짜 재능이란 저런 것이로구나. 나르샤는 진우에 대한 질투와 원망이 조금씩 엷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새로운 기대와 포부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자신도 저런 경지를 누려보고 싶었다. 자신이 쏜 화살이 푸른 마나를 가득 담은 채 투명한 허공을 뚫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쥐고 있던 활이 바르르 떨렸다. 그런 나르샤의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멜리사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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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현 단계의 헌터들끼리의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련 모습을 보는 것은 사실 흔치 않은 기회였다. 대련은 보통 같은 선생 밑의 제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스승이 제자를 상대로 가르침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헌터가 발현이 가능하게 되는 나이는 빨라도 20대 후반, 늦으면 30대 후반인데, 이것도 재능이 있다는 전제에서나 가능한 얘기였다. 그 나이 대의 헌터들이 독립하여 활동하지 않고 여전히 스승 밑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독립도 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마나를 발현시키는 단계에 도달한다는 것은 더욱 더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멜리사와 나르샤는 지금 그 귀하다는 발현 단계의 헌터들이 진지하게 대련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상대하는 교관 쪽은 각각 상급과 최상급이었다. 나르샤에게는 이들의 대련을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 쌓이고 있었다. 대기를 뚫고 전해지는 마나의 파장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나가 가득한 검과 몸이 서로 부딪치는 가운데 역동적으로 회오리치는 마나의 느낌이 몸을 울릴 지경이었다. 가슴이 자꾸 뛰고, 몸속의 마나가 그녀의 감정과 의지를 따라 조금씩 배어나와 함께 물결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전의 징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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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파트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