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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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양봉장을 찾았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양봉장에 나와 계셨다.

“오늘은 두 분 다 나오셨네요.”

“네가 여긴 웬일이냐?”

아버지가 대뜸 말씀하셨다.

“왜요? 제가 오면 안 되나요?”

“너는 이제 목장 사람이 됐으니까.”

아버지 말에 어머니가 웃으셨다.

“네가 옆에 없어서 서운해하셔.”

어머니가 날 보며 말했다. 그동안 목장 일 때문에 정신이 없긴 했다.

“죄송해요. 요즘 좀 바빠서.”

“괜찮다. 덕분에 요거트는 잘 먹고 있으니까.”

아버지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부모님은 양봉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 가시려고요?”

“감나무밭으로 가려고.”

어머니가 장갑을 끼며 말했다.

“요즘 어떻게 된 건지 말벌이 안 보여. 벌들을 돌보는 게 한결 수월해졌지. 감나무밭을 볼 시간이 되고 말이야.”

양봉 농가의 가장 큰 적은 말벌이었다. 말벌만 해결되면 벌을 보살피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동굴에서 가져온 호박 보석이 양봉장을 지켜주고 있었다.

“올해도 곶감 농사는 지을 거지?”

아버지가 날 보고 물었다.

“당연히 지어야죠.”

“그래, 그래야지. 곶감 덕에 우리 집이 살아났으니까.”

아버지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지으며 말했다.

곶감을 시작으로 가족이 한데 모일 수 있었다.

나의 초심이기도 했다.

* * *

지리산 농부들의 회의 시간이었다.

목장에서 일하는 인원을 제외하곤 모두 모였다.

요거트 체험단이 주요 안건이었다.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한기탁에게 물었다.

“식품제조가공업 허가는 어떻게 됐나요?”

“허가받았습니다.”

“그럼, 유기농 인증은요?”

“진행 중입니다. 서류 제출부터 실사까지 절차가 좀 많아 시간이 걸리네요. 조만간 인증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농림부에서 올해부터 시행하는 일이라, 깐깐하게 진행하는 것 같습니다.”

축산업에 무항생제축산물 인증이 도입된 해였다.

“체험단 이벤트가 끝날 때 즈음에는 인증을 받을 수 있겠죠?”

“그 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한기탁은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인증이 끝나면 요거트에도 인증 마크를 넣을 수 있었다.

유기농 인증이 박힌 최초의 프리미엄 요거트가 될 것이다.

“체험단은 어떻게 됐죠?”

백민석 팀장에게 물었다.

“그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100명을 추가 모집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산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 뽑을 예정이고요. 그런데 이번에 뽑는 체험단은 연령과 성별을 제한할 예정입니다.”

“제한한다고요?”

어떤 제한인지 궁금했다.

“쇼핑몰팀에서 내부회의를 거쳐 나온 내용입니다. 변비가 심한 성별과 연령층을 분석했습니다. 20, 30대 직장인 여성들이 우리 상품의 주요한 고객이 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추가 인원은 부산 지역에 사는 20, 30대 직장인 여성으로 해주세요.”

백민석은 전보다 더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한 명의 팀원이지만, 팀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체험단에게 배포할 요거트는 어떻게 됐죠?”

한기탁에게 물었다. 경영지원팀에게 맡긴 일이었다.

“우선, 요거트의 네이밍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요거트는 분명 막걸리 효소를 사용한 요거트입니다. 그렇다고 이름에 막걸리란 이름을 붙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하는 만큼, 다른 이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럼, 이름을 어떻게 지었나요?”

“프리미엄 목장 요거트입니다.”

“프리미엄 목장 요거트요?”

“아직 시장에선 목장에서 나온 제품이 전무합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요거트는 모두 대형 가공업체에서 나온 상품들이죠. 목장에서 나온 프리미엄 요거트란 이름을 넣어서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거죠. 단일 목장에서 나온 프리미엄 요거트란 사실을.”

“단일 목장에서 나온 요거트를 각인시킨다. 좋은 생각이네요.”

“요거트에 쓸 디자인도 나왔고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라니요?”

“꿀이 문제입니다.”

한기탁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체험단에게 줄 요거트엔 직접 생산한 우유와 프로폴리스가 들어있습니다. 모두 충분한 양을 확보하고 있고요. 하지만 토종꿀은 양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테스트 기간엔 우리가 가진 토종꿀을 가지고 요거트를 만들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이라, 박문호와 협의한 상황을 공유할 시간이 없었다.

“서양벌 협회의 회장님과 합의를 했습니다. 필요한 만큼 꿀을 구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좋은 소식이네요. 솔직히 토종꿀 때문에 가격이 너무 비싸질까 봐 걱정했습니다.”

한기탁이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추가 체험단 모집이 끝나고, 배포할 일만 남았네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배송 문제는 어떻게 할 건가요? 곶감이나 꿀을 팔 때처럼 개별 배송할 생각이겠죠?”

백민석이 물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이번엔 소비자들이 직접 물건을 찾아가게 하죠.”

난 동료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의 마지막 안건이자, 그들과 함께 공유할 내용이었다.

“요거트를 직접 찾아가게 한다고요?”

한기탁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백민석을 포함한 다른 팀원들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요거트를 직접 찾아가게 할 계획입니다. 매일 신선한 요거트를 받아가게 하는 거죠.”

정가희에게 일주일 치의 요거트를 보내고 내린 결정이었다. 요거트는 신선도가 생명이었다.

지리산 농부 목장에서 나온 요거트는 방부제를 쓰지 않았다.

일주일 분의 요거트를 한꺼번에 보내주면 변질의 우려가 있었다.

체험단을 진행하면 변질이 됐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우리에겐 오프라인 매장이 없습니다. 무슨 수로 요거트를 나눠줄 생각이죠?”

한기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부산 지역에 매장을 둘 생각입니다.”

“매장이요? 설마 매장을 오픈할 생각인가요?”

“아닙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난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매장을 만든다는 소리죠?”

“부산에 있는 카페와 협업할 예정입니다. 오늘 카페 주인과 미팅이 예정돼 있습니다. 매장이 확보되면 바로 공유하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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