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은 병원이 아닌 지역 장례식장에서 했다. 난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받았다.
조문객들이 발걸음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절을 하고 같은 말을 골백번도 더 했다. 대부분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이었다. 그들의 젖은 눈과 떨리는 손에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부모님의 조문객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지만, 내 지인은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다.
지금까지 헛산 기분이 들어 씁쓸했다.
마지막 날도 조문객들로 정신이 없었다. 사흘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당장 쓰러질 것처럼 피곤했지만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덕명아. 좀 쉬어라.”
어머니는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때 마침 조문객이 왔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였다. 여자는 분향을 마치고 인사를 했다.
“상심이 크시죠.”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부모님과 인연이 있는 조문객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똑똑히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는지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그녀와 함께 식사하는 장소로 이동했다.
마주 앉는 순간에도 그녀가 위로의 말을 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저 기억 안 나세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여자의 얼굴이 제법 진지했다.
난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봤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글쎄요.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당신이 절 살렸어요.”
“제가요?”
“비가 오던 밤 지하철역에서.”
그녀의 말에 불현듯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었다. 막차가 끊길 무렵 벌어진 사건이었다. 선로 밑에 사람이 떨어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난 선로 밑으로 몸을 날렸다.
머릿속에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선로 밖으로 사람을 꺼냈다. 그녀는 곧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출구를 향해 도망치듯 뛰어갔다.
말 못 할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는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었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기도 했다.
그날 일을 떠올리자 신기하게도 여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였다.
“이제 기억이 나는 얼굴이네요.”
“말씀하시니까. 기억이 나네요.”
“오늘 제가 이곳을 찾은 건, 조문만 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일로?”
“그날의 신세를 갚고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정중히 사양했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사라진 사람이었다. 느닷없이 나타나 신세를 갚겠다니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여자는 순순히 물러날 기색이 아니었다. 난 장례식장에서 사소한 언쟁도 벌이고 싶지 않았다.
“편하실 대로 하시죠.”
“감사합니다.”
그제야 여자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낡고 오래된 책이었다. 표지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제 작은 성의입니다.”
“무슨 책이죠?”
책 표지를 바라보고 물었다. 제목을 읽을 수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문자였다. 책장을 펼치려 하자 여자는 황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혼자 있을 때 펴 보세요. 부탁입니다.”
난 그녀의 말을 따랐다. 돈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큰 액수는 아닐 거라고 여겼다.
낯선 방문자와의 만남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한 시간 뒤에 장지로 떠나는 일만이 남았다.
“덕명아. 잠깐 눈 좀 붙여라.”
엄마는 나를 위해 잠시 쉴 공간을 마련하셨다. 이번엔 사양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지쳐 있었다.
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이불이 깔려 있었다. 잠시라도 제대로 잘 수 있게 미리 준비하신 것 같았다. 막상 자리에 눕자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조문 왔던 여자가 떠나질 않았다. 그때는 우리는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았다. 여자가 어떻게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궁금했다.
신세를 갚겠다고 건넨 책도 뭔가 의심스러웠다. 난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책을 꺼냈다. 헌책 특유의 바닐라 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돈인가? 아님······.’
책장을 펼치는 순간 책이 흙처럼 바스러졌다. 고운 입자로 변한 종이 부스러기가 허공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놀란 마음에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이 감기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