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비즈니스는 전쟁이다
무대 위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간 겨울은 한쪽 편에 세워져 있는 화이트보드에 자신의 이름을 큼지막하게 썼다.
그러고는 무대 중앙으로 이동해서 신입사원들에게 정중한 자세로 인사한 후, 마이크 전원을 켰다.
“신입사원 여러분,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는 이름을 보셨다시피 저는 H&J 컨설팅에서 부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한겨울이라고 합니다. 오늘 특강은 여러분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쌍방향 소통을 하면서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특강 도중에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서슴지 마시고 질문해 주십시오.”
겨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객석 중간에 앉아 있던 신입사원이 손을 번쩍 들었다.
“부사장님, 저는 오진수라고 합니다. 썰렁한 질문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부사장님이 한겨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겨울은 오진수가 어떤 이유로 이런 질문을 던져 왔는지 대충 감 잡았다.
그도 자기처럼 이름으로 인해서 상당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리라.
“오진수 씨도 대충 눈치 채셨겠지만, 저는 1월에 태어났습니다.”
“부사장님은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받았습니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 또한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잊어버렸습니다. 오진수 씨도 저처럼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까?”
“저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별명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은 그 별명을 부르는 사람들은 없겠죠?”
“학창시절의 친구들은 만나면 아직도 그 별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한때의 즐거웠던 추억이라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해질 겁니다.”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누군가 손을 번쩍 들며 발언권을 요청했다.
“부사장님, 저는 백성진이라고 합니다. H&J Investment에 근무하고 있는 한가을 씨와는 어떤 관계인지 알고 싶습니다.”
“제 여동생입니다만…….”
겨울이 백성진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살짝 끝말을 흐렸다.
“저는 한가을 씨의 같은 과 대학 2년 선배입니다. 한가을 씨와 사귀려면, 부사장님의 허락을 받아야합니까?”
“굳이 저한테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백성진 씨의 직속 선배의 허락은 받아야 할 겁니다.”
“부사장님, 그분이 누구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저쪽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올라있는 이재성 대리한테 허락을 받으십시오.”
“…….”
“이 대리, 강력한 연적이 생긴 것 같은데, 한마디 해 주세요.”
겨울의 지시를 받은 이재성 대리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입사원 여러분도 알고 계시다시피 연수성적 하위 10%인 30명은 최종 불합격처리 됩니다. 백성진 씨가 30명 안에 포함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이재성 대리가 폭탄을 터트리고 자리에 앉자, 잔뜩 풀이 죽어 있는 백성진을 향해 겨울이 덕담을 건넸다.
“백성진 씨, 저는 개인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선배가 괴롭힌다고 해서 절대로 기죽지 마시고 원하는 사랑을 쟁취하기를 빕니다.”
“네, 알겠습니다!”
백성진의 우렁찬 목소리가 대강당 곳곳에 울려 퍼졌다.
“이제 개인적인 질문은 그만 받겠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저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본 분들이 있습니까?”
“부사장님이 축구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할 때 TV에서 몇 번 봤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7년 전까지 제법 잘나가던 유명한 축구선수였습니다.”
“축구를 그만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7년 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주말을 맞이해서 고향에 갔다가 시외버스를 타고…….”
겨울은 당시에 일어난 사건을 덤덤한 목소리로 풀어나갔다.
“…부상을 너무 심하게 당해서 결국 재활을 실패하고 강제로 은퇴당했습니다.”
“아이고, 저런.”
“그 사건 이후로 제법 잘나갔던 제 인생은 180도로 변했습니다. 운동하느라 소홀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으나, 이미 때는 늦은 후였습니다. 그래도 취직해서 돈을 벌어 보겠다는 욕심으로 여기저기에 입사원서를 제출해 보았지만 저를 받아 주는 회사는 한곳도 없었습니다. 여동생이 자취하는 집에서 눈칫밥을 먹어 가며 생활하던 도중에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어떤 일이었습니까?”
“횡단보도를 건너던 도중에 스포츠카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황급히 피했는데, 귀에 헤드폰을 끼고 있는 여학생 한 명이 미처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큰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생각에 제가 전력을 다해 달려가서 여학생을 밀어냈습니다.”
“와!”
뜻하지 않게 신입사원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이 대강당에 가득 울려 퍼졌다.
겨울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정신을 잃은 저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다행히도 머리에 약간의 상처만 있었고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에 교통사고를 낸 사람이 사과하기 위해서 저를 찾아왔는데, 한눈에 반할 만한 미인이었습니다.”
“영화배우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녀는 바로 대한 그룹 송훈석 회장님의 외동딸인 송지유 씨였습니다.”
“와우 대박.”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저는 돈으로 보상받는 것 대신에 대한 그룹에 입사시켜 달라고 송지유 씨한테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제 스펙이 워낙 형편없어서 송훈석 회장님은 강력하게 반대했고, 결국 면접시험의 기회만 얻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송 회장님이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송 회장님은 머리에 약간의 찰과상밖에 없던 저에게 병원 특실을 제공했고, 면접시험 볼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은 면접 시험장에서의 일, 조건부 합격의 내용, 신입사원 연수 과정에서 있던 일을 축약해서 풀어 갔다.
짝짝짝.
겨울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신입사원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신호로 다른 사람들도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겨울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은 제가 여러분께 대한 그룹에 입사한 과정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한 것에는 목적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목적이 무엇인지 맞추는 신입사원에게는 제 권한을 이용해서 화끈하게 특별점수 1,000점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대강당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특별점수 1,000점은 H&J 컨설팅에 최종 입사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으니까.
“너무 막연한 것 같아서 결정적인 힌트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힌트는 책 제목입니다.”
“도전과 끈기입니다.”
“도전정신입니다.”
“운 좋은 남자입니다.”
“운 좋은 놈이 성공…….”
여기저기서 신입사원들이 손을 들고 정답을 말하기 시작했으나, 불행하게도 겨울이 원하는 정답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객석 우측에 앉아 있던 신입사원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분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김석진입니다.”
“정답입니다.”
“와!”
김석진이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신입사원이 손을 번쩍 들고 발언권을 요청했다.
“부사장님, 김석진 씨는 반칙했습니다.”
“어떤 반칙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세요.”
“저희와는 달리 김석진 씨는 핸드폰으로 책 제목을 검색했습니다.”
“음…….”
겨울이 끝말을 흐리며 생각에 잠기자, 대강당에는 뜻하지 않게 깊은 침묵이 찾아왔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생각을 끝냈는지 겨울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남우영 팀장, 신입사원들이 핸드폰을 소지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까?”
“아닙니다. 소지할 수 있고 무음, 또는 전원을 꺼 놓으라고 공지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핸드폰으로 책 제목을 검색해도 아무 문제가 없겠네요?”
“부사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김석진 씨는 반칙하지 않았으니까, 약속대로 특별점수 1,000점을 주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남우영 팀장과 대화를 마무리한 겨울은 시선을 신입사원들에게 옮기며 말을 이어 나갔다.
“여러분은 비즈니스는 전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네! 들어 봤습니다.”
“편의상 저희의 경쟁사, 또는 경쟁 국가를 적이라고 지칭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저희 회사에 입사하면, 싫든 좋든 비즈니스라는 전쟁터에 뛰어들어 가야합니다. 비즈니스와 전쟁이 다른 점은 일정한 규칙을 정해 놓고 싸운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비즈니스 전쟁이 시작되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편법과 불법이 사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부사장님,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작년 8월에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보다콤이라는 다국적 통신사가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와 증설을 위한 국제입찰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대한 그룹과 중국의 화웨이가 정면으로 맞붙었죠.”
겨울은 입찰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스파이들을 역이용한 끝에 저희가 입찰을 가지고 올 수 있었습니다.”
“부사장님, 화웨이에 매수된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뇌물수수죄를 적용받아서 교도소 신세를 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말로가 좋지 않았군요.”
“여러분한테도 적들이 마수를 뻗쳐 올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완전범죄는 없다는 점을 명심하시고, 적들의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치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제가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즈니스 전쟁은 생각지 않던 방법으로 인해서 승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따라서 편법과 불법이 아닌 정상적인 방법은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를 적극 권장합니다.”
“네, 부사장님.”
“시간 관계상 특강은 이쯤에서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는 우리 회사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해 주십시오.”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여자 신입사원이 손을 치켜들며 발언권을 요청했다.
“부사장님, 저는 한지혜라고 합니다. H&J 컨설팅은 연봉보다 성과급이 훨씬 많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성과급이 대략 얼마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저보다는 인사팀장께 듣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겨울이 남우영 인사팀장한테 발언할 기회를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몸을 뒤로 돌리며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입사원 여러분께는 6월 말일자로 1억 8,000만 원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네?!”
신입사원들 모두가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나타냈다.
입사한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엄청나게 많은 돈을 성과급으로 준다면 놀라지 않을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네. 오늘 아침에 사장님께서 그렇게 결정하셨습니다. 단, 저희 회사에 최종합격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는 1년에 3억이 넘는 돈이 퇴직금으로 적립될 예정입니다.”
“10년을 근무하면 30억을 퇴직금으로 준다는 말입니까?”
“저희가 관여해서 체결한 계약이 종료되거나 추가될 수 있기 때문에 퇴직금은 변동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희가 관여해서 체결한 계약들은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10년이고 20년이고 계약이 지속될 예정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남우영 팀장의 뒤를 이어서 겨울이 한마디 거들었다.
“부사장님, 성과급은 반드시 퇴사할 때 받은 겁니까?”
“예를 들어 결혼을 해야 하는데, 목돈이 필요하면 중간에 정산 받을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신입사원의 질문은 그 후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이윽고 신입사원들의 질문이 뜸해지자, 남우영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지사항을 전달했다.
“부사장님의 마무리 말씀을 듣고 특강을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신입사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네, 좋습니다.”
남우영 팀장에게 고맙다는 신호를 보내 준 겨울은 천천히 말문을 틔웠다.
“긴 시간 동안 말주변 없는 제 얘기를 들어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신입사원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입니다.”
겨울은 신입사원들을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말을 끊었다가 이어 나갔다.
“모두 최종관문을 통과해서 저희 H&J 컨설팅의 식구가 됩시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