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308화 (308/328)

[308화] 생각지 못한 선물 (4)

“어제 저녁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무섭게 달린 이유가 뭐야?”

겨울이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호영에게 말을 걸었다.

“몸 생각해서 그랬지 뭐.”

“몸을 생각하면, 천천히 마셔야 하는 거 아니야?”

“오늘밤에도 술자리가 예정되어 있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빨리 취해서 아예 뻗어 버릴 생각이었던 거야?”

“어.”

“그런데 뻗지 않고 끝까지 버틴 이유가 뭐야?”

“안동소주가 생각보다 정말 맛있더라고. 이번 기회에 실컷 마셔 보려고 버텼지.”

“으이구, 무식하기는.”

호영에게 타박을 준 겨울은 시선을 옮기며 하도진 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실장님, 제가 어제 오후에 한 말이 맞았죠?”

하도진 실장은 러시아 사람들이 폭음을 즐긴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어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안동소주를 담은 호리병에는 800㎖의 소주가 들어간다.

때문에 360㎖ 소주로 계산하면 440병이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런데 자고에프 대통령을 비롯한 각료들은 그렇게 많은 안동소주를 불과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깨끗하게 해치워 버렸다.

그 결과, 자신들은 식당에서 별도로 준비한 소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고.

“네. 안동소주 200병을 추가로 공수하지 않았으면, 오늘 저녁때 일반 소주를 마실 뻔했습니다.”

“혹시 모를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최정훈 사장님께 우리나라의 전통주를 추가로 확보해달라고 전화하세요.”

그때,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호영이 할 말이 있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하 실장님, 제가 어젯밤에 최 사장님께 미리 부탁해 놨으니까, 따로 전화하실 필요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호영은 무언가 생각난 듯 시선을 겨울에게 옮기며 말을 걸었다.

“한 부사장, 내가 이른 새벽에 우리 회사 사장님께 전화 받았는데, 오늘 저녁 무렵에 모스크바에 도착하신다고 하더라.”

“뭐야? 인도와 무기 수출 계약을 벌써 체결했다는 거야?”

“논의해야 할 것이 워낙 많기 때문에 계약서에 사인하려면 최소 한 달 이상은 걸릴 거라고 말씀하셨어.”

“그렇다면, 러시아에는 왜 오시는 거야?”

“나도 그 점이 궁금해서 여쭤봤는데, 어젯밤에 메흐타 장관이 최대한 빨리 러시아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더라.”

인도 국방부는 러시아로부터 S―400 5개 포대와 SU―35 전투기 30대를 도입하기로 합의서를 체결했고, 본 계약은 러시아와 중국의 자원거래 TTM이 끝난 후에 체결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메흐타 장관이 정상호 사장을 러시아로 불러들였다는 의미는 오늘 중으로 TTM이 완료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내일부터는 인도와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와 관련한 TTM을 진행해야 한다는 건가?”

“우리 사장님 말씀으로는 TTM 없이 곧바로 본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더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메흐타 장관과 세르게이 장관 사이에 물밑대화가 있었다는 뜻인가?”

“그것밖에 더 있겠냐?”

윙윙―

그때, 하도진 실장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상대방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통화를 종료했다.

“실장님, 신 실장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장님 숙소에 메흐타 장관과 데사이 국장이 찾아오셨답니다.”

“빨리 가 봅시다.”

겨울 일행이 정명훈 사장의 숙소에 도착하니, 그곳은 이미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호영이 빈자리를 찾아 앉으며 메흐타 장관에게 가볍게 농담 한 마디를 건넸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격언을 알고 계시죠?”

“그럼요.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한테도 기쁜 소식을 알려 주십시오.”

메흐타 장관은 그동안의 일을 기억에 떠올리며 호영의 요청에 대답했다.

“저희와 세르게이 장관은 3일 전부터 S―400 5개 포대와 SU―35 전투기 30대를 도입 건과 관련한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세르게이 장관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두 무기의 수출 가격을 105억 달러는 받아야겠다고 주장했고, 저희는 100억 달러 이상 지급할 수 없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어제 오전에 자고에프 대통령이 협상장에 불쑥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잔뜩 호기심을 느낀 호영이 상체를 메흐타 장관에게 기울이며 물었다.

“자고에프 대통령은 세르게이 장관에게 우리나라의 요구를 전폭 수용해 주라는 지시를 내리고 협상장을 떠나갔습니다.”

“그렇다면 100억 달러에 두 무기를 도입할 수 있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메흐타 장관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정말 기쁘다는 듯 메흐타 장관이 선홍색 잇몸을 드러내며 큰 목소리로 웃었다.

“장관님, 본계약은 언제 체결하기로 했습니까?”

“내일 오후 3시에 러시아 국방부에서 체결하기로 했습니다.”

“내일 밤에 축하주를 마셔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요.”

“정 이사님,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어제 갔던 한국 음식점을 또다시 가면 안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만, 특별히 그래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어젯밤에 숯불에 구워먹은 양고기를 다시 한번 먹어 봤으면 해서입니다.”

사실 호영은 메흐타 장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식사의 메인 요리는 뭐니 뭐니 해도 숯불에 구운 양고기였으니까.

“장관님, 어제 저희가 식사한 한국 음식점은 전통요리 전문점입니다. 숯불에 구운 양고기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숯불구이 전문점에서 먹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알고 있는 곳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내일 그곳을 예약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숯불에 구워먹는 돼지고기 삼겹살과 갈비도 양고기에 필적할 만큼 맛있습니다.”

“내일 세 가지 고기를 모두 맛보면 되겠네요.”

“역시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참고적으로 내일 저녁 식사는 정 사장님이 쏘기로 하셨습니다.”

“내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정명훈 사장이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H&J 컨설팅은 셀러와 바이어 맨데이트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무려 3억 달러라는 커미션을 받게 되었잖아요.”

“생각해 보니 그렇군. 메흐타 장관님, 제가 내일 거하게 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잘 먹겠습니다.”

* * *

러시아와 중국의 마지막 날 TTM은 예정대로 오후 4시에 시작되었다.

이미 양측이 합의를 끝내 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본계약 체결은 거칠 것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제 비밀유지 계약서와 커미션 계약서를 작성하는 단계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바이어 측은 시쥔량 주석을 대리한 자오린 부총리와 R&C 에너지의 도바초프 사장만 계약서에 사인하면 되지만, 셀러 측은 자고에프 대통령을 비롯해서 무려 열 명이 사인하는 절차를 거쳐야한다.

비밀유지 계약서와 커미션 계약서에 사인하기 위해서 자고에프 대통령이 TTM 장소에 올 수는 없었기 때문에 블로딘 총리와 요키치 장관이 계약서를 가지고 크레물린 궁전으로 출발했다.

그들이 돌아오려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걸리기 때문에 양측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자 부총리님, 오늘 저녁 식사 장소를 숯불구이 전문점을 예약했는데, 괜찮겠습니까?”

“정 사장님, 정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어제 저녁 식사 장소에서 우연찮게 숯불구이 전문점 사장님을 만났고, 최고급 소고기와 한국의 명주 중에 하나인 안동소주를 넉넉하게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하하, 벌써부터 오늘 저녁이 기다려지는군요.”

윙윙―

그때,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요키치 장관이 걸어온 전화였다.

이곳에서 전화 받을 수는 없어서 겨울은 재빨리 밖으로 이동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장관님.”

[지금 대통령님께서 굉장히 화가 많이 난 상황입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제대로 해명하지 않으면, 큰 불상사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

“장관님, 자고에프 대통령님께서 저한테 선물로 준 커미션 0.5%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겨울은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고,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고 있는 상태였다.

“저는 H&J 컨설팅의 최대주주이고, 저희 회사가 지급받는 커미션의 61%가 제몫입니다. 그에 비해 제가 커미션을 배분한 다섯 사람들 중에서 정 사장님을 제외한 네 사람은 단순히 월급쟁이에 불과합니다. 그들도 러시아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보상이 너무 적다고 판단해서 제 몫을 나눠 준 것입니다. 자고에프 대통령님이 저를 생각해서 특별히 주신 선물을 임의대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씀드려 주십시오.”

[한 부사장이 그렇게 깊은 뜻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대, 대통령님께서 어떻게…….”

깜짝 놀란 겨울이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요키치 장관이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고 있었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대통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해가 풀렸으니까, 지금 즉시 비밀유지 계약서와 커미션 계약서에 사인해서 보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 식사는 최고급 소고기 숯불구이에 안동소주라면서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자고에프 대통령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겨울이 일부러 끝말을 흐렸다.

[오늘 저녁 이후의 일정이 비어서요.]

“하하, 그럼 숯불구이 전문점에서 뵙겠습니다.”

[하하하, 나중에 봅시다.]

겨울이 통화를 끝내고 문을 열고 들어오자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호영이 재빨리 질문을 던졌다.

“한 부사장, 긴급 상황이라도 발생한 겁니까?”

“오늘 저녁때 숯불구이 전문점에 자고에프 대통령님이 오신다고 합니다.”

“아이고, 큰일 났네.”

핸드폰을 손에 쥔 호영이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의 모습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던 자오린 부총리가 겨울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자고에프 대통령님이 숯불구이 전문점에 오시는 것이 문제라도 됩니까?”

“러시아 정부의 각료들까지 데리고 오시기 때문에 소고기부터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오늘 밤에 부총리님의 지갑에 구멍 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하하하, 지갑을 두둑이 채워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여간 알겠습니다.”

정말 이상했다.

자고에프 대통령은 겨울과의 통화에서 분명 비밀유지 계약서와 커미션 계약서에 곧 사인해서 보내겠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한 시간이 가까워 오도록 블로딘 총리와 요키치 장관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저녁 식사 장소로 출발해야 하는 상황.

전화를 걸어볼까 하는 사이, 두 사람이 비즈니스 룸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블로딘 총리는 비어 있는 의자에 앉으며 사과의 말을 꺼냈다.

“자고에프 대통령님의 지시로 커미션 계약서를 조금 수정하느라 늦었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어떤 내용을 수정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전체적인 내용은 수정하지 않았고, 자고에프 대통령님께 배정된 몫을 일부 조정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저희는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완료했습니다. 이제 H&J 컨설팅 측과 정호영 이사만 커미션 계약서에 사인하면 됩니다.”

정해진 순서에 의해 커미션 계약서에 사인하던 호영은 멈칫했다.

자고에프 대통령에게 배정된 커미션이 2%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1.5%로 줄어 있었기 때문이다.

잔뜩 호기심을 품으며 커미션 계약서를 뒤로 넘기다가 낯익은 사람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후후후, 그래서 30분이나 늦으셨군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커미션 계약서에 사인을 끝마치고 겨울에게 말을 걸었다.

“한 부사장님, 뭐하고 있습니까?”

“보시다시피 의자에 앉아 있잖아요.”

“식사하러 출발해야 하니까, 빨리 커미션 계약서에 사인하세요.”

“네? 제가 왜요?”

“알면서 왜 그러십니까?”

* * *

역시 오늘 저녁 식사도 사회자인 호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금부터 숯불에 구운 소고기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여러분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소고기는 불만 닿으면 먹어도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숯불에 살짝 익혀야…….”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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