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패키지 협상 전략 (3)
같은 시각.
영빈관 회의실에서는 세르게이 장관의 주재로 긴급 대책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장관님, S―400의 경우에는 자국이 시리아에 판매한 것을 근거로 가격을 산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푸코에프 국장, 시리아에 설치한 S―400의 경우는 성능 테스트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실제 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한 거야.”
“인도 측이 우리나라의 속사정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우리나라가 시리아에 판매한 S―400의 가격을 인도 측이 알고 있다고 봐야 하나?”
“인도 측이 아무 생각 없이 100억 달러를 제시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세르게이 장관님, 인도 정보국을 책임지고 있는 데사이 국장의 능력은 상상 이상입니다.”
푸코에프 국장의 뒤를 이어서 자코프 대사가 한마디 거들었다.
“푸코에프 국장, 우리가 S―400을 시리아 측에 얼마에 판매했지?”
“저희는 시리아 측에 두 개 포대를 판매했고, 평균적으로 18억 달러 정도에 판매했습니다.”
세르게이 장관은 암산을 통해서 인도 측에 판매해야 하는 S―400 5개 포대의 가격을 계산해 보았다.
90억 달러.
인도 측이 제시한 100억 달러에 맞추기 위해서는 SU―35 전투기 30대를 대당 3,300만 달러 정도에 판매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는 중국에 판매한 8,000만 달러보다 5,000만 달러를 깎아 줘야 하는 상황.
아무리 무기 가격이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하지만, 3,300만 달러라는 헐값에 SU―35 전투기를 판매할 수는 없다.
그때, 문득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푸코에프 국장, 전임 국방부 장관이 중국에 SU―35 전투기를 8,000만 달러에 판매한 이유를 알고 있나?”
“중국 놈들이 SU―35 전투기를 수입하자마자 분해해서 짝퉁을 만들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애초에 판매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판매하지 말았어야지.”
“중국의 시쥔량 주석이 자고에프 대통령님께 특별히 부탁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판매한 것입니다.”
즉, 중국이 짝퉁을 만들 것을 대비해서 바가지를 왕창 씌웠다는 뜻이었다.
“푸코에프 국장, 우리가 인도 측에 SU―35 전투기를 얼마에 판매하는 게 적당할까?”
“우리나라 공군은 제조 회사로부터 대당 1,600만 달러에 도입했는데, 이는 무기를 제외한 순수 전투기 가격입니다. 전투기에 장착하는 무기와 여유분을 감안하면, 최소 3,000만 달러는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도 측이 제시한 100억 달러가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는 뜻이네?”
“네, 그렇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인도 측의 제안을 수용한다면, 이익이 어느 정도 될까?”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겁니다.”
“알았네. 내가 생각을 조금 더 해 볼 테니까, 자네들은 식사하고 오라고.”
모두들 회의실을 빠져 나가자, 세르게이 장관은 의자에 온몸을 묻고 장고에 들어갔다.
“인도 측의 제안을 대통령님께 말씀드리면,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일 것이 빤할 텐데… 일단 H&J 컨설팅하고 상의해 봐야겠다.”
결심을 굳힌 세르게이 장관은 정명훈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세르게이 장관님.]
“정 사장님, 상의할 것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말씀해 보십시오.]
“저희가 대책 회의를 해 본 결과, 인도 측의 제안이 무리하지 않다고 결론 내린 상태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될 경우 우리나라의 이익이 거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제가 자고에프 대통령님께 컨펌받을 수 있도록 10% 정도 이익을 확보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장관님, 저는 러시아 측의 이익 10%는 너무 적다고 생각합니다.]
“네?! 적다니요?”
의외의 대답이 나오자, 세르게이 장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전화로 말씀드리기는 곤란한 점이 있기 때문에 지금 즉시 영빈관으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 사장님, 오시기 전에 하나만 말씀해 주십시오. 정말 우리나라에 10% 이상 이익을 확보해 주실 수 있습니까?”
[러시아 측에서 적극적인 협조해 줘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르지만, 그 이상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딸깍.
정명훈 사장이 전화를 끊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싱 총리가 말을 걸어왔다.
“정 사장님, 세르게이 장관이 뭐라고 했습니까?”
“S―400 5개 포대와 SU―35 전투기 30대를 구입 비용으로 인도 측이 제안한…….”
정명훈 사장은 호기심에 목말라하는 싱 총리에게 세르게이 국방장관과의 통화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정 사장님, 러시아 측에 어떤 방법으로 10% 이상 이익을 챙겨 줄 생각입니까?”
“총리님,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아직 러시아 측과 협의를 시작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저희의 구상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만 대답해 주세요. 우리나라가 추가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겁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중국 측에 부담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 참… 궁금해서 안 되겠네요. 나도 영빈관에 같이 가도 되겠죠?”
영빈관 회의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돌아온 요키치 장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르게이 장관의 표정이 30분 전에 비해 훨씬 밝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인도 측의 제안에 대해서 자고에프 대통령에게 컨펌을 받은 것 같았다.
“세르게이 장관님, 대통령님과 통화하셨습니까?”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묘안이라도 생각해 내신 겁니까?”
“그게 아니라 H&J 컨설팅 측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세르게이 장관의 얘기를 끝까지 들은 요키치 장관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정 사장이 10% 이상의 이익을 확보해 줄 수 있다고 했습니까?”
“네. 그렇다니까요.”
“어떤 방법인지 듣지 못했습니까?”
“우리가 적극적인 협조를 해 줘야 한다는 얘기밖에 들은 것이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방법일까요?”
“조금 있으면 도착할거니까, 그때 물어보도록 합시다.”
윙윙―
그때, 자코프 대사에게 전화가 결려왔고, 상대방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통화를 종료했다.
“세르게이 장관님, 방금 전에 랑가탄 총리 비서실장한테 전화가 왔는데, 싱 총리가 5분 후에 영빈관에 도착하신답니다.”
“빨리 나가봅시다.”
영빈관 현관.
세르게이 장관이 러시아 측을 대표해서 싱 총리를 맞이했다.
“저희가 싱 총리님을 예방하러 총리 공관에 갔어야 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오히려 제가 미안할 따름입니다.”
“자세한 대화는 회의실에서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상석에 자리한 싱 총리는 주위를 둘러본 후, 푸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러시아 측에서 우리나라를 위해서 많은 양보를 해 줬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총리님, 감사의 말씀은 오히려 저희가 드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허허허,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총리님께서 갑자기 이곳을 방문하신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즉, 방문 목적을 밝히라는 얘기였다.
“정명훈 사장이 중국을 혼내 줄 방법을 알려준다고 해서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네? 중국이라뇨?”
“이제부터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작부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정명훈 사장이 급하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중국을 혼내 줄 방법을 말씀드리기 전에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인도 측은 러시아 측에 S―400 5개 포대와 SU―35 전투기 30대를 100억 달러에 구입하겠다고 제안한 상태입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측은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최소 10%의 이익을 보전해 달라고 저희 측에 요청한 상황입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제부터 러시아 측이 최소 27%, 아니 그 이상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27%가 넘는다고요!”
세르게이 장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도대체 어떤 방법인지 빨리 말씀해 주십시오.”
정명훈 사장은 세르게이 장관의 채근을 뒤로하고 요키치 장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러시아가 중국에 수출하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연간 수출액이 1,800억 달러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가격 변동에 따라서 금액 차이는 있습니다만, 얼추 그 정도 됩니다.”
“러시아 측은 중국에 수출하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해서 셀러 맨데이트인 저희한테 1.5%의 커미션, 즉 27억 달러를 지급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동의하십니까?”
“당연히 동의합니다.”
“저희는 셀러와 바이어의 협상에 따라서 커미션 비율과 지급 주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요키치 장관은 정명훈 사장의 의도를 이제야 정확하게 파악했다.
커미션 27억 달러를 자신들이 아닌 중국으로부터 받을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27억 달러를 절감하는 셈.
그렇기 때문에 인도에 S―400 5개 포대와 SU―35 전투기 30대를 100억 달러에 수출해도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그것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은 자국은 매년 27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정 사장님의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냅니다.”
“요키치 장관님이 적극 도와주셔야 가능하다는 거 알고 계시죠?”
“우리나라를 위하는 일인데, 당연한 것 아닙니까?”
두 사람의 선문답을 듣고 있던 세르게이 장관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요키치 장관님, 우리한테도 자세한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셀러는 맨데이트한테 커미션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요키치 장관은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한테 정명훈 사장의 아이디어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국방부는 이익이 발생하지 않겠지만, 저희 석유부는 27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이제 감 잡았습니다.”
반면, 싱 총리는 아쉬운 마음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요키치 장관님, 정 사장께서 커미션 지급 비율도 양측이 합의를 통해서 변경할 수 있다고 했는데, 시원하게 5% 정도로 올리면 어떻겠습니까?”
“하하하,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요키치 장관이 선홍빛 잇몸을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싱 총리는 확답을 받기 위해 다시 한번 물었다.
“세르게이 장관님, 다시 한번 여쭙겠습니다. 우리나라가 S―400 5개 포대와 SU―35 전투기 30대를 100억 달러에 도입할 수 있는 것이 맞습니까?”
“싱 총리님, 아직 자고에프 대통령님께 컨펌받지 못했습니다. 잠시만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소회의실로 이동한 세르게이 장관은 자고에프 대통령에게 전화 걸었다.
[세르게이 장관, 협상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네, 대통령님. 조금 전에 인도 측과 잠정합의한 내용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얼른 얘기해 보세요.]
“인도 측은 S―400 5개 포대와 SU―35 전투기 30대를 100억 달러 수입하기를 원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존에 수입하던 무기들은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무기들에 비해서 10% 저렴하게 수입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인도 측에 S―400 5개 포대와 SU―35 전투기 30대를 100억 달러 수출하면, 이익이 남습니까?]
예상한 대로 자고에프 대통령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H&J 컨설팅 측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는 덕분에 이익률이 상당히 높아질 것 같습니다.”
[어떤 아이디어인지 빨리 얘기해 보세요.]
“H&J 컨설팅 측에서는 자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석유와…….”
세르게이 장관은 정명훈 사장, 요키치 장관에게 들은 얘기를 보고하면서 자신의 의견까지 곁들였다.
“…오늘은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에 만족하고, 본 계약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TTM이 끝나는 즉시 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 같네요. 세르게이 장관, 정말 수고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싱 총리께 내가 안부전한다고 전해 주고, 정 사장한테는 다음 주에 우리나라에서 꼭 만나자고 전해 주세요.]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