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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284화 (284/328)

[284화] 의외로 빨리 끝난 협상 (2)

정명훈 사장은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자신들은 국제 가격 대비 1% 정도 더 할인된 6%를 목표 가격으로 설정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요키치 장관은 목표 가격보다 1% 많은 7% 할인된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협상이 그렇듯 시작부터 히든카드를 꺼내 들지는 않는다.

이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 측은 두 품목의 가격을 할인해 줄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키치 장관님의 화끈한 답변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도 장관님의 답변에 화답하는 의미로 화끈한 제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귀를 활짝 열어놓을 테니까, 빨리 말씀해 보십시오.”

“만약에 인도가 러시아로부터 석유와 천연가스를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이 수입할 경우, 가격은 어떻게 책정해 주시겠습니까?”

요키치 장관은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들이 인도를 방문한 목적은 두 품목의 수출 중단 사태를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인도는 이에 한술 더 떠서 두 품목의 수입을 확대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정 사장이 적은 물량은 아니라고 했으니까…….’

속으로 기분 좋은 상상하면서 정명훈 사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제가 답변하기 전에 두 품목의 물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석유는 4,200만 배럴, 천연가스는 1억 입방미터입니다.”

“상당히 많은 양이군요. 저희끼리 잠깐 대화를 나눠 보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정명훈 사장과 대화를 끝마친 요키치 장관은 베르첸카 보좌관과 러시아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베르첸카 보좌관, 방금 전에 정 사장이 언급한 물량까지 모두 더하면, 우리나라가 인도에 수출하는 두 품목의 양이 어떻게 되나?”

“월평균 석유는 6,200만 배럴, 천연가스는 2억 입방미터로 늘어납니다.”

“과연 인도가 이렇게 많은 물량을 수입할 수 있는 능력이 될까?”

“그 문제는 굳이 저희가 신경 쓸 바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지. 자네는 가격을 얼마 정도로 제시했으면 좋겠는가?”

“국제가격 대비 8.5% 할인된 가격이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알았어.”

베르첸카 보좌관과 상의를 끝낸 요키치 장관은 정명훈 사장에게 국제가격 대비 8.5%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다.

반면에 최소 9% 정도를 예상한 정명훈 사장은 아쉬운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요키치 장관님, 인도는 두 품목을 수입할 때 할인받은 금액을 모두 러시아를 위해서 사용하기로 결정한 상태입니다. 그 점을 감안해서 가격을 다시 한번 책정해 주십시오.”

“우리나라를 위해서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러시아산 무기를 수입하는 데 사용할 예정입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묻는 요키치 장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네, 그렇습니다.”

“정 사장님의 제안에 대해서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자고에프 대통령님께 보고 드린 후, 답변 드리겠습니다.”

그때, 겨울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요키치 장관님, 자고에프 대통령님께 저희의 제안을 보고드릴 때 하나만 더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제안을 말입니까?”

“인도와 중국은 최근에 국경 분쟁 등으로 인해서 사이가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러시아가 중국에 수출하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을 현실화시켜 주십시오.”

요키치 장관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자신들이 중국에 저렴한 가격으로 수출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데 겨울은 자신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중국과 얽혀 있는 상황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한 부사장님, 그 문제에 대해서 연초에 자고에프 대통령님의 지시를 받아서 중국 측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입니다.”

“중국은 러시아 측의 이의 제기에 대해서 전혀 콧방귀도 뀌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요키치 장관님, 중국이 러시아 측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방법을 알려 드릴까요?”

“그야 이를 말씀인가요.”

“극약처방을 사용하면 됩니다.”

베르첸카 보좌관은 겨울의 의도를 단숨에 파악했다.

즉, 중국이 두 품목의 수입 가격을 인상해 주지 않으면, 수출을 중단하겠다며 엄포를 놓으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 방법은 지난 1월에 이미 중국에 써먹었고, 결과적으로 얻은 소득은 하나도 없었다.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하고 당시에 중국과의 일들을 겨울에게 털어놓았다.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중국은 우리나라의 요구를 즉각 거부했습니다.”

“베르첸카 보좌관님, 요즘 중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알고 계십니까?”

“대충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을 역이용하면, 의외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겨울의 의도를 파악했다는 듯 그는 고개를 아래위로 크게 끄덕였다.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타서 사회를 보고 있던 김윤중 전무가 입을 열었다.

“요키치 장관님, 자고에프 대통령님께 보고하는 장소는 소회의실을 사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요키치 장관이 일행들과 함께 회의실 밖으로 나가자, 샤르마 장관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정명훈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정 사장님,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날 것 같습니까?”

“후후후, 글쎄요?”

소회실로 자리를 옮긴 요키치 장관은 베르첸카 보좌관, 자코프 대사와 긴급 대책 회의를 시작했다.

“인도 측이 원하는 할인 폭이 얼마나 될까?”

“저희가 할인해 주는 폭만큼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올 예정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인도에 10% 정도 할인해 준다고 가정할 경우에 금액이 얼마 정도 될까?”

“국제 유가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매월 7억 달러 정도 됩니다.”

“음… 무슨 말인지 알았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핸드폰을 들어 자고에프 대통령에게 전화 걸었다.

몇 번의 신호가 울린 후, 약간 화가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하아… 요키치 장관, 지금 몇 시인지 알고 있습니까?]

“대통령님, 워낙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가서 이른 시간에 전화 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얘기해 보세요.]

“지금 인도 측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저희의 예상과는 달리…….”

하지만 요키치 장관의 보고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요키치 장관, 그게 사실입니까?]

“네, 대통령님. 저희가 할인해 주는 금액만큼 자국산 무기를 구입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가격을 10% 정도 할인해 주면, 우리나라가 인도에 수출할 수 있는 무기의 금액이 얼마 정도 됩니까?]

“평균 85억 달러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10% 할인해 주도록 하세요.]

“대통령님, 죄송합니다만 다른 전제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주기 어려운 조건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제 판단대로 결정하기에는 조금 까다로운 편입니다.”

[얼른 얘기해 보세요.]

“최근 인도와 중국은 국경 분쟁으로…….”

요키치 장관은 회의실에서의 대화를 상세하게 보고했다.

[우리도 인도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은데, 중국 놈들이 들어먹지 않는다고 얘기해 주세요.]

“대통령님, 그 문제와 관련해서 제가 묘안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말해 보세요.]

“중국에 자원들의 가격을 현실화시켜 주지 않으면,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선전포고를 날리는 겁니다.”

[음? 그 방법은 이미 써 봤잖아요?]

예상한 대로 자고에프 대통령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님, 최근에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는 나라들이 점차 증가함으로 인해서 자원들의 수입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만약에 우리나라까지 자원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 중국은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으하하하!]

진심으로 기분이 좋다는 듯 자고에프 대통령이 화통한 웃음을 터트렸다.

“대통령님, 제가 귀국하는 즉시, 가격 현실화 작전에 돌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요키치 장관,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에 수출하는 자원들의 가격을 현실화하면, 수출 금액이 어느 정도 늘어납니까?]

“연초에 계산해 놓은 금액은 연간 200억 달러였습니다.”

[3개월 안에 자원들의 가격을 현실화시켜 주겠다고 인도 측에 약속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세르게이 국방부장관은 인도에 보내야 합니까?]

그 순간, 어젯밤에 샤르마 장관에게 들은 얘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통령님, 우리나라와 인도의 사이에 H&J 컨설팅이라는 회사가 끼어 있는데, 싱 총리가 이 회사에 자원 및 무기 거래에 관련한 모든 권한을 위임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무기 거래와 관련한 협상을 시작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H&J 컨설팅이 한국 회사입니까?]

“네, 대통령님. 그들은 우리나라와 한국의 사이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저희 편을 은근슬쩍 들어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즉시 세르게이 장관을 인도로 출발시킬 테니까,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놓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정말 고마워한다고 전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딸깍.

요키치 장관이 전화를 끊자, 귀를 쫑긋 세워 놓고 있던 베르첸카 보좌관이 말을 걸어왔다.

“장관님,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수고는 뭘. H&J 컨설팅 사람들과 내일까지 협상을 이어 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봐.”

“갑자기 왜요?”

“오늘 저녁 무렵에 세르게이 국방부장관이 올 예정이야.”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자코프 대사가 발언권을 요청했다.

“장관님, 이미 결론이 나 있는 상황인데 협상을 끄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방법인 듯싶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는 거야?”

“낮술, 어떻습니까?”

“호오, 그게 좋겠군. 알고 있는 곳이 있나?”

“이곳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정통 러시아 음식점이 있습니다.”

“흐흐흐, 보드카로 끝을 보자는 뜻인가?”

“네, 그렇습니다.”

회의실로 돌아온 요키치 장관은 자고에프 대통령에게 컨펌받은 내용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중국에 수출하는 자원들의 가격은 3개월 안에 현실화시켜 드리겠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지만, 러시아 측의 제안을 대승적으로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가격 현실화 건에 대해서는 페널티 금액이 삽입된 합의서를 작성해 주셨으면 하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순간, 요키치 장관은 아차 했다.

H&J 컨설팅 측이 이와 같은 요구를 해 올 것이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고에프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합의서 얘기를 꺼낼 수도 없고.

‘설마 대통령님께서 약속을 어기지는 않겠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정명훈 사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정 사장님, 페널티 금액을 말씀해 보십시오.”

“상징적인 의미로 1억 달러 어떻습니까?”

“네? 그 정도로 괜찮겠습니까?”

가격을 현실화하는 건은 러시아와 중국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에 제삼자가 왈가왈부할 권한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이 합의서를 요구한 것은 중국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샤르마 장관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

그는 10억 달러 이상의 페널티 금액을 요구했으나, 러시아 측이 반발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줄이고 줄인 끝에 1억 달러로 낮춘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가격의 현실화가 빨라지면 질수록 이익이기 때문에 사실 합의서가 필요 없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 놓으려는 겁니다.”

“아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제 얼추 합의가 끝난 것 같은데, 계약서와 합의서 작성 절차에 돌입했으면 합니다.”

“정 사장님, 그 문제는 실무자들한테 맡겨 놓고, 저희는 점심 식사나 하러 가는 게 어떻습니까?”

“이제 겨우 11시 30분밖에 안 지났습니다만.”

“교통체증 때문에 이동하는 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출발하는 게 좋을 겁니다.”

“뭐, 그렇다면야 좋습니다.”

결과적으로 협상 개시 한 시간 반도 지나지 않아서 모든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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