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마음대로 될까 모르겠군
인도 뉴델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요키치 석유장관이 수석보좌관인 베르첸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이지리아 정부가 발표한 것에 대한 조사 결과를 얘기해 봐.”
사실 베르첸카 보좌관은 나이지리아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석유 등의 자원들은 생산량이 일정하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수출 물량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나이지리아 정부는 7월부터 매월 2,300만 배럴의 석유와 1억 2,000만 입방미터의 천연가스를 인도에 수출한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고 신경 쓰지 않았지만, 요키치 장관의 지시를 받은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즉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나이지리아 주재 대사관에 조사해 달리고 요청했고, 러시아를 출발하기 직전에 결과를 통보받은 상태였다.
“조사해 봤는데,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자세하게 얘기해 봐.”
“먼저 석유 1,000만 배럴과 천연가스 5,000만 입방미터는 그동안 중국에 수출하던 물량이었는데,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함으로 인해서 수출을 중단키로 했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일본 석유 회사에 수출하던 물량이었답니다.”
“일본의 석유 회사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나?”
“두 품목을 기존 가격보다 싸게 수입하기 위해서 일본의 석유 회사가…….”
베르첸카 보좌관은 보고서에 적혀 있는 내용을 자세하게 보고했다.
“일본 석유 회사 놈들이 꼼수를 부렸다가 나이지리아 정부한테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았군.”
“저도 장관님과 생각이 같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인도에 수출하지 못하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중국에 수출하면 어떨까요?”
요키치 장관은 최근 중국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는 나라들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여러 가지 자원들을 원활하게 수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오죽하면 콧대 높기로 소문난 쑹쩐밍 에너지 장관이 석유와 천연가스를 추가로 수입하겠다는 친서를 보내올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요청을 덜커덕 수용할 수는 없었다.
“자네는 우리나라가 중국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조건을 알고 있나?”
순간, 베르첸카 보좌관은 정신이 번쩍 들어왔다.
과거에 자국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맏형이라는 이유로 중국 등의 나라에 자원들을 국제가격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수출했다.
하지만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면서, 1998년의 경제위기, 2008년의 금융위기 등을 연달아 겪으면서 국력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많이 쇠약해졌다.
이에 반해 개혁 개방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 중국은 이미 10년 전에 자국의 경제 규모를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그래서인지 최근 2∼3년 전부터 중국에 저렴하게 수출하는 자원들의 가격을 현실화하자는 주장들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연초에 우리 자고에프 대통령은 중국에 수출하는 자원 가격을 인상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중국 정부 측에서는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들의 요구를 일축한 상태였다.
그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자기가 중국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자고 제안했으니, 그게 먹힐 리 있겠는가.
사과하는 것이 도리였다.
“장관님, 제가 순간적으로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잘못을 시인했으니까,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네.”
“감사합니다, 장관님.”
“자네는 우리나라가 인도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반드시 수출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나?”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무기를 제일 많이 수입하는 나라 정도는 알고 있겠지?”
“인도로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군. 우리나라는 인도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한다는 점을 이용해서 무기류의 가격을 높게 받았어. 만약에 우리나라가 인도에 두 품목을 수출하지 못하면 무기류를 수출하는데 엄청나게 어려움을 겪겠지.”
“저도 장관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베르첸카 보좌관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H&J 컨설팅을 어떻게 상대할지 대책을 의논해 보자고.”
“무시 전략을 사용하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있나?”
“그 회사는 브로커에 불과합니다.”
“그 회사를 중간에 끼워 넣지 말고 인도를 직접 상대하자는 뜻인가?”
“네, 그렇습니다. 어차피 우리나라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나라는 인도니까요.”
“과연 우리 마음대로 될까 모르겠지만, 시도해 볼 필요가 있겠군.”
이 말과 함께 요키치 장관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요키치 장관님, 인도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샤르마 장관이 인사말을 건네며 악수하자는 의미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요키치 장관도 오른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샤르마 장관님, 환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세르게이 국방부 장관님은 오시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같이 올 예정이었으나, 자고에프 대통령이 인도와 석유, 천연가스의 수출 협상 상황을 지켜보고 방문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바람에 동행하지 못했다.
이러한 내용을 사실대로 얘기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살짝 돌려서 대답했다.
“자국에 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 사정이 발생하면, 저희 측에 통보해 주는 게 예의 아닙니까?”
요키치 장관은 거짓말을 늘어놓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은 인도로 출발하기 위해서 세르게이 장관도 전용기에 탑승한 상태였습니다. 출발하기 직전에 체첸 반군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테러를 일으켰다는 긴급보고를 받고, 부득불 자국에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고, 저런…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까?”
“조사 결과는 아직 보고받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시간이 제법 늦었습니다. 숙소로 이동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좋습니다.”
차창 밖을 내다보던 요키치 장관이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시선을 안으로 돌리며 샤르마 장관에게 물었다.
“장관님,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중입니까?”
“자코프 대사한테 통보했는데, 아직 보고받지 못하신 것 같군요.”
“네, 그렇기는 합니다만…….”
원하는 것이 있다는 듯 요키치 장관이 의도적으로 끝말을 흐렸다.
“싱 총리께서 러시아에서 오신 손님들의 숙소를 영빈관으로 제공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아, 그렇군요. 인도 정부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 별말씀을요. 오늘은 영빈관에서 편하게 쉬시고, 내일 오전에 H&J 컨설팅 사람들을 만나보십시오.”
“저는 양국의 문제에 H&J 컨설팅을 개입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샤르마 장관은 요키치 장관이 이런 제안을 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고, 적당한 답변거리도 만들어 놓고 있었다.
“H&J 컨설팅은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이어 맨데이트입니다. 그리고 싱 총리께서 귀국과의 자원 및 무기 거래에 관련한 모든 권한을 그들에게 위임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과 협상하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그들과 협상을 잘 풀어 가면, 러시아도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장관님께서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일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겁니다.”
“하여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미팅 장소는 영빈관 회의실이 괜찮을 듯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주시겠습니까?”
“내일 오전 10시에 뵙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영빈관에 여장을 풀자마자, 요키치 장관은 자코프 대사, 베르첸카 보좌관에게 샤르마 장관과 나눈 대화 내용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생각지도 못한 성과가 무엇을 뜻하는지 의견들을 내 보라고.”
“장관님, 인도 정부가 자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의 수입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요?”
“음… 그렇다는 말이지?”
그때, 자코프 대사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장관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
기분이 상했다는 듯 요키치 장관의 말투에 가시가 실려 있었다.
“서너 시간 전부터 인도 언론들이 속보기사를 쏟아 내고 있는 중입니다. 인도 정부가 자국에서 수입하던 석유와 천연가스를 나이지리아에서 수입한다는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신경 쓰이는 기사들이 몇 개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얘기해 봐.”
“그동안에 우리나라가 인도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면서 갑질을 행사했고 무기류 또한 강매했다는 내용들입니다.”
요키치 장관은 자코프 대사의 보고가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에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음, 첩첩산중이로군. 그런데 당신은 샤르마 장관이 말한 ‘생각지도 못한 성과’가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되는 것이 있나?”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잘 모르겠습니다.”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고. 그런데 당신은 손가락이라도 부러졌어?”
“저는 장관님께서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숙소가 영빈관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샤르마 장관에게 들어야 하겠냐고. 위성전화는 폼으로 있는 거야?”
자코프 대사는 샤르마 장관에게 숙소가 변경됐다는 통보를 받자마자 요키치 장관에게 보고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도 언론들이 자국과 관련한 속보 기사들을 쏟아 내는 바람에 기사 내용을 본국에 보고하느라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얘기하면 요키치 장관도 이해할 것이라 판단했다.
“사실은…….”
* * *
같은 시각.
샤르마 장관은 데사이 국장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총리공관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데사이 국장님, 세르게이 국방부 장관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체첸반군이 테러를 일으켜서 오지 못했다는 요키치 장관의 말은 거짓말로 확인됐습니다.”
“그렇다면 요키치 장관이 저희한테 거짓말한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저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한 부사장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일단 알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겨울에게 전화 걸었고, 몇 번의 신호가 울린 끝에 귀에 익은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네, 장관님.]
“조금 전에 요키치 장관을 영빈관에 내려놓고 왔습니다만, 이상한 게 하나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어떤 점이 이상합니까?]
“세르게이 국방부 장관도 우리나라를 방문한다고 했는데,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샤르마 장관은 요키치 장관, 데사이 국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자세하게 전했다.
[장관님, 세르게이 국방부 장관이 인도에 오지 않은 이유는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러시아가 인도에 무기류를 지속적으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수출이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품목의 수출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으니,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그가 우리나라에 오지 않으면, 수립해 놓은 전략에 차질이 생기잖아요.”
[세르게이 장관은 아무리 늦어도 내일 밤이나 모레 오전에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계획을 수립해 놓았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제 말이 맞겠지요?”
[물론입니다. 완벽하게 수립해 놓았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저는 총리님께 그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내일 영빈관에서 뵙겠습니다.]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자, 귀를 쫑긋 세워 놓고 있던 호영이 말을 걸어왔다.
“세르게이 장관이 인도에 오지 않은 진짜 이유가 뭘까?”
“자고에프 대통령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세르게이 장관을 이곳으로 어떤 방법으로 부를 예정인데?”
“이제부터 계획을 수립해 봐야지.”
“그럼 조금 전에 샤르마 장관한테 한 얘기는 뭐야?”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 누구누구를 부르면 되냐?”
“다른 사람은 쉬라고 내버려 두고, 우리 둘이서 머리를 쥐어짜 보자.”
즉, 이미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한 부사장, 바에 올라가서 가볍게 한잔하며 계획을 수립하는 게 어떨까?”
“네가 산다면, 기꺼이 가 주지.”
“나보다 훨씬 돈 많은 놈이 짜게 굴기는.”
결국 호영에게 한소리 듣는 겨울이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