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72화 (272/328)

[272화] 몰디브에서의 마지막 날

“정 이사, 제약 회사들과의 협상이 늦어진다고 하지 않았어?”

TTM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겨울이 소파에 큰 대자로 널브러져서 숨만 쉬고 있는 호영에게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

“우리도 그럴 거라고 예상했는데, 중간에 돌발 상황이 발생했어.”

“돌발 상황이라니?”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은 싱 총리가 협상장에 쳐들어와서 제약 회사 CEO들을 거의 절반 정도 죽여 놨거든. 나는 싱 총리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싱 총리님의 카리스마가 그 정도였어?”

“말도 마. 그 잘난 제약 회사 CEO들이 잘못했다며 꼬리를 내리는데… 어휴, 내가 다 쫄았다니까?”

“아무튼 별다른 문제 없이 계약이 마무리됐다니 다행이네.”

“그나저나 우리는 언제 귀국할 예정이라는데?”

겨울은 TTM장에서의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호영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적어도 내일은 아니야.”

“왜? 이곳에서의 업무들은 이제 모두 클리어한 거 아니었나?”

“VIP들이 TTM 때문에 제대로 휴가를 즐기지 못했다면서 내일 제대로 휴가를 즐겨 보시겠단다.”

“어떻게?”

“몰디브에는 트롤링낚시가 유명하다더라.”

“트롤링낚시가 뭐야?”

“모터보트에 낚싯대를 고정시킨 뒤 미끼를 매달고 바다 위를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물고기를 낚는 낚시인데, 꽤 재미있대. 참치 잡는다고 다들 신나 있어.”

“이야! 재미있겠는데?”

호영의 얼굴에 피곤함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진 후였다.

“으음, 그런데 단점이 하나 있대.”

“그게 뭔데?”

“배 멀미를 심하게 할 수 있고, 재수 없으면 한 마리도 못 잡을 수도 있다더라.”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 모르냐?”

“그건 그렇고, 우리 모두가 탈 수 있는 모터보트가 있을까?”

“지금 신 실장님과 하 실장님이 알아보고 있다 하시는데,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아.”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나저나 루퍼트 장관님은 미국으로 돌아가셨니?”

루퍼트 장관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겨울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자오린 부총리를 몰래 만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임무가 실패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얘기해 줄 수 없었다.

“만약에 미국으로 돌아가신다면 전화 한 통화 정도는 해 주시겠지.”

“지금 전화 한 번 해 볼까?”

“아서라.”

“왜?”

“그분의 프라이버시를 지켜 줘야 할 것 같아서 그래.”

“혹시… 묘령의 여자와 밀회를 즐기고 있는 거 아냐?”

“하여간 이상한 쪽으로 촉은 밝아서.”

“뭐야! 사실이야?”

“사실이겠냐? 어휴, 나는 샤워나 해야겠다.”

“야! 얘기는 해 주고 가!”

* * *

그 시각.

루퍼트 장관은 살라 몰디브 대통령의 별장이 있는 섬의 모처에서 자오린 부총리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자오린 부총리님도 알고 계시다시피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시작당시부터 문제가 많았습니다.”

“루퍼트 장관님, 남의 아픈 상처를 후벼 파야 속이 시원합니까?”

예상했던 대로 자오린 부총리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어이쿠, 자오린 부총리님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 병 주고 약 주는 겁니까?”

“어찌됐든 미안합니다.”

“루퍼트 장관님,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 보세요.”

“자오린 부총리님, 용돈을 벌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용돈이라뇨?”

루퍼트 장관의 입에서 돈 얘기가 흘러나오자, 자오린 부총리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자오린 부총리님은 모르고 계시겠지만,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려는 나라들이 줄을 서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나라들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중국으로부터 빌린 돈을 상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입니다.”

“그래서요?”

“최근에 그 나라들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겠다며,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 달라고 떼를 쓰다시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그 나라들의 요청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그 나라들이 케냐와 모잠비크의 경우처럼 부채를 탕감 받으며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할 수 있도록 자오린 부총리님이 힘을 써 주십시오.”

루퍼트 장관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덤덤하게 말하고 있지만, 자오린 부총리는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루퍼트 장관님,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된 업무를 컨트롤하는 곳은 외교부입니다. 때문에 제가 월권하며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저희가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천 외교부장은 곧 실각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외교부장이 임명될 때까지 자오린 부총리님이 그 역할을 수행해 주십시오.”

“음…….”

자오린 부총리는 특유의 버릇대로 의자의 팔걸이를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타다닥, 타다닥.

루퍼트 장관은 그의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아마도 뒷돈을 챙길 방법을 고심하느라 고속으로 회전하고 있을 것이다.

잠시 후, 드디어 생각을 끝냈는지 자오린 부총리가 주위를 둘러보며 들릴락 말락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루퍼트 장관님, 저한테 인센티브는 몇 %를 줄 생각입니까?”

“케냐와 모잠비크의 경우와 똑같은 비율로 지급해 드릴 생각입니다.”

즉,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부채를 50% 탕감시켜 주면 부채금액의 5%를, 전액 탕감시켜 주면 10%를 인센티브로 주겠다는 얘기였다.

“네?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자오린 부총리님, 현재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나라가 모두 21개국이고, 부채가 2,850억 달러입니다. 만약에 이들 나라가 부채를 모두 탕감 받으면, 인센티브가 모두 285억 달러입니다.”

“루퍼트 장관님, 제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모든 나라들의 부채를 탕감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그 점을 고려해 주십시오.”

“음…인센티브를 5%씩 상향조정하는 것은 어떨까요?”

“화끈하게 10%씩 올립시다.”

사실 루퍼트 장관은 내심 20%까지 올려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해도 80%라는 엄청난 액수의 부채를 탕감 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오린 부총리의 요구를 쉽게 수용해 줄 생각은 없었다.

“그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조건인지 말씀해 보세요.”

“최대한 길게 일대일로 프로젝트 탈퇴 협상에 수석대표로 참석해 주십시오.”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자오린 부총리님, 이제 합의서를 작성하실까요?”

합의서를 빠르게 작성해서 곱게 품속에 갈무리한 루퍼트 장관은 은밀한 장소를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별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로 눈길을 돌렸다.

“오늘 밤은 별이 유난히 많구나. 아차차,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 말과 함께 누군가에게 급히 전화 걸었다.

[장관님, 어떻게 됐습니까?]

“하하하, 자오린 부총리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역시 돈이 무섭긴 무섭네요.]

“저도 한 부사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미국으로 언제 복귀할 예정입니까?]

“오늘 밤에 돌아가려고 말레 국제공항에 전용기를 대기시켜 놨습니다.”

[내일 하루 휴가를 즐기시고, 모레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은 이벤트 거리라도 있는 겁니까?”

[내일 오전에 VIP들과 함께 참치 트롤링낚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순간, 루퍼트 장관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며 겨울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한 부사장님, 아프리카에서 오신 손님들을 제가 모셔다드리면 됩니까?”

[장관님이 그런 선행을 베풀면, VIP들이 상당히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하하, 내일 오전에 만나겠습니다.”

다음 날 오전.

겨울 일행은 선착장에서 여러 대의 모터보트를 나눠 타고 인도양의 푸른 바다를 향해 출발했다.

하도진 실장은 모터보트에 승선한 사람들에게 급하게 구입한 멀미약을 나눠 주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한 시간여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니, 드넓은 망망대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갈매기다!”

망루에서 망원경으로 바다를 사방으로 관찰하고 있던 선원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휘청!

그와 동시에 모터보트가 거의 90도 가까이 방향을 틀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모터보트는 갈매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고, 그대부터 선원들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낚싯대에 ‘팽’ 소리와 함께 낚싯줄이 빠르게 풀려 나갔다.

“피시!”

선원의 외침을 듣고, 겨울은 재빨리 달려가서 낚싯대를 잡고 낚싯줄을 감기 시작했다.

뒤이어 호영의 낚싯대도 ‘팽’ 소리와 함께 낚싯줄이 풀려 나갔다.

호영 또한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와서 낚싯줄을 힘겹게 감았다.

트롤링낚시를 처음 체험하는 겨울은 참치 낚시가 이렇게 힘들 거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했다.

낚시에 걸린 참치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마치 바윗돌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아득함이 느껴졌다.

“정 이사, 이놈 힘이 정말 엄청난 것 같아.”

“나는 지금 하마 한 마리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다.”

휘익!

두 사람은 20여 분간의 사력을 다한 끝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참치를 끌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겨울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포효한 뒤, 벌러덩 갑판위에 누워 버렸다.

“아이고, 힘들어.”

“나도 이하동문이다.”

호영이도 겨울의 곁에 누워 앓는 소리를 냈다.

그 사이, 선원들은 두 사람이 낚은 참치의 피를 빼고 내장을 제거한 후, 아이스박스 안에 넣었다.

그렇지 않으면 높은 기온과 습도로 인해서 참치가 부패된다고 한다.

어느새 기운을 회복한 호영은 일어나 앉으며 호기롭게 말했다.

“흐흐, 한 마리 더 잡을까?”

“장 부사장님과 하 실장님한테도 참치 트롤링낚시의 참맛을 느끼도록 해 주자.”

“아차! 내가 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네.”

결국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장대산 부사장과 하도진 실장도 참치를 낚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만선의 행복감을 맛보며 항구로 출발했다.

“하 실장님, 저희가 잡은 참치는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오늘 저녁때 호텔 측에서 참치 회를 떠 주기로 했습니다.”

“참치 회에는 소주가 제격인데, 아쉽네요.”

“호텔 측에서 많이는 아니더라도 소주를 준비해 놓았다고 합니다.”

“몰디브는 식당에서 술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 않나요?”

“살라 대통령님이 이번에 한해서 특별히 허용해 주셨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호텔 대연회장.

겨울은 그동안 냉동 참치 회를 먹고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갓 잡아 올린 생물 참치는 냉동 참치와는 차원이 달랐다.

특히 횟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신지훈 실장의 표정이 유난이 즐거워 보였는데, 사람들에게 참치 회 먹는 법을 일러 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참치 회에 약간의 고추냉이를 올려놓고 간장을 찍어 드셔 보십시오. 초장에 찍어 먹는 것보다 맛이 훨씬 좋아질 겁니다.”

호영은 신지훈 실장이 알려 준 대로 참치 회를 간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확실히 알고 있던 맛과 차원이 달랐다.

“신 실장님, 풍미가 훨씬 좋아지는 것 같은데요?”

“그래? 나도 한 번 먹어 볼까?”

“역시 참치 회의 맛이 좋아지는 것 같은데요?”

“참치 회에 술을 곁들여 마시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하하하, 그건 국룰이죠.”

유쾌하게 참치 파티가 끝나갈 무렵에 얼큰하게 술이 오른 루퍼트 장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프리카에서 오신 VIP 분들께 공지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예약해 놓은 비행기 티켓은 모두 취소해 주십시오.”

“루퍼트 장관님, 전용기로 저희를 아프리카까지 데려다주실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와!”

오코사 실장 등이 지르는 함성 소리가 연회장에 가득 들어찼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은센기 사장이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VIP분들은 좋겠다.”

그의 얘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호영이 아니었다.

“은센기 사장님, 제가 루퍼트 장관님께 말씀드려 놓을 테니까, 전용기를 타고 귀국하세요.”

“그래도 될까요?”

“만약에 안 태워 준다고 하면, 저 또는 한 부사장한테 전화주세요. 확실하게 조치를 취해 줄게요.”

“하하, 고마워요.”

“다음 달 말에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봅시다.”

“우리나라에 오시면 화끈하게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흐흐흐,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몰디브에서의 기분 좋은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흙수저 성공 신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