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꼼수와 아이디어의 차이
“천 부회장님, 저한테 용건이 남아 있습니까?”
당연히 있었다.
다만, 최성진 부회장과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뿐.
천쥐펑 부회장은 초조한 마음으로 부투야 실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H&J 컨설팅의 정명훈 사장을 내일 오전에 만나 볼 수 있을까요?”
“내일 오전에는 우리나라와 잉가 3댐 건설공사 계약을 체결해야 하니까,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내일 오후는 어떻습니까?”
“내일 오전에 정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물어보고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천쥐펑 부회장과 대화를 끝낸 부투야 실장은 임지태 회장에게 말을 건넸다.
“임 회장님, 송훈석 회장을 만나고 난후에 체크아웃해도 되겠습니까?”
임지태 회장은 부투야 실장이 어떤 이유로 이 말을 꺼냈는지 알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부투야 실장과 수행원들은 지금쯤 체크아웃을 끝내고, 프랑스에 오늘 도착한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서 공항으로 출발했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버티고 있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체크아웃이 지연됨으로 인해서 하루치 숙박비가 추가로 발생하게 된 상황.
원인을 제공했으니 자신들이 하루치 숙박비를 부담하는 것이 맞았다.
“그러지 마시고 여유롭게 내일 체크아웃 하는 게 어떨까요?”
“적극 고려해 보겠습니다. 이제 저희는 송 회장을 만나러 가야 하니까, 멀리 안 나가보겠습니다.”
이제 볼일 끝났으면 돌아가라는 소리였다.
천쥐펑 부회장은 답답해서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아직 도로 확포장 공사건과 관련한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는 머리를 극한으로 짜낸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히 조치를 취하고, 부투야 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는 이제 일어나보겠습니다. 내일 오전에 꼭 연락 주십시오.”
천쥐펑 부회장의 대답에 부투야 실장은 당혹스러웠다.
자기가 돌아가라는 말을 꺼내면 이곳에 머무를 핑계거리를 만들어 낼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순순히 돌아가겠다고 하는 그를 붙잡을 수도 없고.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부투야 실장이 마지못해 천쥐펑 부회장 일행을 문 앞까지 배웅해주고, 소파에 돌아와 앉으니 마히무 장관이 입을 열었다.
“부투야 실장님, 이제 어떻게 하죠?”
“오늘은 25억 달러를 기부 받는 데에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윙윙―
그때, 부투야 실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떠있는 전화번호를 확인하자마자 지체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한 부사장님.”
[부투야 실장님, 다시 손님 맞을 준비하십시오.]
“그 말씀은… 천 부회장이 다시 돌아온다는 말씀인가요?”
[천 부회장이 앉아 있던 소파 구석을 잘 살펴보십시오.]
겨울이 시키는 대로 부투야 실장은 소파 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핸드폰이 소파 구석에 박혀 있었다.
“한 부사장님, 천 부회장이 나름대로 꼼수를 썼네요?”
[제 생각도 실장님과 같습니다. 평상복 차림으로 천 부회장을 맞이하면 의심할 수 있으니까, 외출복으로 갈아입으십시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나중에 통화합시다.”
뚝.
얼른 전화를 끊고, 두 명의 장관에게 재빨리 말을 걸었다.
“지금 즉시 숙소로 돌아가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대기하고 계세요.”
“네, 알겠습니다.”
* * *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던 최성진 부회장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자신들과는 달리 천쥐펑 부회장은 부투야 실장과의 용건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시간을 끌고 있었고.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부투야 실장의 축객령을 받자마자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가 이런 행동을 보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박철헌 사장이 한국어를 사용해서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부회장님, 천 부회장의 꼼수를 눈치 챘습니까?”
“꼼수라니?”
“그의 양손을 잘 보십시오.”
최성진 부회장은 천쥐펑 부회장의 꼼수를 단숨에 알아챘다.
그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할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부투야 실장의 숙소에 놓고 왔다고 핑계를 대면서 자신들을 떼어 놓을 생각인 그의 처사에 헛웃음이 나왔다.
도로 확포장 공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미련을 보일 필요는 없지만, 왜 이렇게 배가 아픈지.
어느새 가슴 밑바닥에 슬그머니 심술이 자리 잡았다.
얼른 표정을 숨기고 천쥐펑 부회장에게 물었다.
“천 부회장님, 지금 저녁 식사를 하러 갈까요?”
“해가 아직도 중천에 떠있어서 그런지 밥 생각이 나지 않네요.”
“그럼 언제가 좋을까요?”
딩동.
아주 공교로운 시간에 엘리베이터가 로비에 멈추는 바람에 두 사람의 대화는 자동적으로 중단되었다.
최성진 부회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천쥐펑 부회장과 대화를 이어 가려 했으나, 리스롱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부회장님, 핸드폰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야 내 손에…….”
천쥐펑 부회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주머니 등을 찾아보는 모습을 연출했다.
“부회장님, 부투야 실장님의 숙소에 핸드폰을 놓고 오신 것 아닙니까?”
“빨리 전화해 보세요.”
리스롱 사장은 즉시 천쥐펑 부회장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어 상대방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뒤 버튼을 눌렀다.
“리 사장, 전화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부투야 실장인데, 핸드폰이 그곳에 있답니다.”
“휴우, 천만다행이네요.”
“제가 올라가서 핸드폰을 가지고 올까요?”
“아닙니다. 내가 직접 가는 게 맞아요.”
리스롱 사장과 대화를 종료한 천쥐펑 부회장은 미안한 표정으로 최성진 부회장에게 말을 걸었다.
“최 부회장님, 뒤따라갈 테니까, 먼저 호텔로 돌아가십시오.”
최성진 부회장은 그를 또다시 놀려 줄까 하다가 이쯤에서 발을 빼기로 했다.
“그나저나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두 시간 뒤에 저녁 식사는 제 숙소에서 룸서비스로 시켜 먹는 것으로 하십시다.”
“네. 알았습니다.”
천쥐펑 부회장과 리스롱 사장을 태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임지태 회장이 입을 열었다.
“매형, 우리들은 꼼수라고 알고 있는 것에 비해서, 저 인간은 나름대로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아무래도 그렇겠지.”
“저 인간이 부투야 실장의 주머니에 얼마를 찔러 줄까요?”
“부투야 실장이 어떻게 요리하는가에 달려 있겠지. 우리는 신경 쓰지 말자고.”
미련을 툭툭 털어 내고 발길을 돌리는 최성진 부회장이었다.
* * *
“부투야 실장님, 핸드폰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쥐펑 부회장이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제 저한테 하고 싶은 말씀을 빨리해 보세요,”
“하하, 알고 있었습니까?”
“모르고 있는 편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닙니까?”
“시간이 없으신 것 같으니까 결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에 추가로 기부하기를 원합니다.”
“또요?!”
부투야 실장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하하, 그렇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천쥐펑 부회장과 대화를 중단한 부투야 실장은 시간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들어서 누군가에게 전화 걸었다.
[부투야 실장님, 프랑스에 도착하셨습니까?]
“네. 방금 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나가 보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송 회장님, 저녁 식사 약속을 한 시간 정도 늦췄으면 좋겠는데, 가능하십니까?”
[제가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프랑스 주재 대사가 긴급히 보고할 것이 있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8시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송 회장님, 정말 미안합니다.”
딸깍.
전화를 끊은 부투야 실장은 숙소로 돌아가 대기하고 있던 마히무 장관과 왈라카 장관을 긴급하게 호출했다.
전화기를 내려놓는 그를 보면서 천쥐펑 부회장이 궁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부투야 실장님, 송 회장에게 거짓말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사실 저희는 오늘 저녁 무렵에 프랑스에 도착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 부회장이 저희를 어제 만나자고 요청하는 바람에 일정을 하루 앞당겨 온 상태입니다.”
“그럼 송 회장은 부투야 실장님이 프랑스에 계시는 걸 모르고 있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딩동.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마침 일어나 있던 부투야 실장이 숙소 문을 열어 주었다.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마히무 장관이 들어서다 말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실장님, 천 부회장님이 또 오셨네요?”
“그렇게 됐어요.”
마히무 장관이 자리에 앉자마자, 부투야 실장이 입을 열었다.
“완커건설이 우리나라에 추가로 기부하겠답니다.”
“왜요?”
천쥐펑 부회장은 마히무 장관이 자신의 얘기를 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의심 가득한 눈으로 부투야 실장에게 질문부터 던지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판단 내리고 재빨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히무 장관님, 저희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할 예정이니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둬 주십시오.”
“천 부회장님, 우리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합시다. 완커건설이 우리나라에 13억 달러를 기부한 것에 정말로 순수한 마음만 담겨 있습니까?”
“…….”
마히무 장관의 핵심을 찌르는 추궁은 제법 날카로웠다.
천쥐펑 부회장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잉가 3댐 건설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목적이 훨씬 강합니다.”
“솔직하게 말씀하시니까 오히려 기분이 좋네요. 저희가 H&J 컨설팅 측에 완커건설과 YCM건설이 25억 달러를 기부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어필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완커건설 측에서도 H&J 컨설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셔야 할 겁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부투야 실장님과 대화 나누십시오.”
마히무 장관이 주어진 역할을 화끈하게 수행하고 이선으로 물러났다.
“천 부회장님, 우리나라에 기부하려는 목적을 먼저 밝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다.
천쥐펑 부회장은 재빨리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저희는 킨샤사와 루붐바시를 연결하는 도로 확포장 공사를 수주하고 싶습니다.”
“그 정보는 어디서 취득하셨습니까?”
“CTG 측으로부터 정보를 취득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부투야 실장님, 도로 확포장 공사에 상당히 많은 공사비가 투입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산은 확보하셨습니까?”
부투야 실장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도로 확포장 공사에 투입되는 공사비를 H&J Investment가 지원해 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으나, 아직 정명훈 사장에게 확답 받은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레짐작하고 마음대로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 마히무 장관이 귓속말로 말을 걸어왔다.
“실장님, 방금 정명훈 사장님께 문자 받았는데, 과감하게 지르랍니다.”
“또 다른 내용은 없었습니까?”
“H&J Investment가 아닌 IBRD에서 지원받는 것으로 얘기해 달랍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마히무 장관과 짧은 대화를 끝마친 부투야 실장은 천쥐펑 부회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마히무 장관의 말에 의하면, IBRD에서 공사비 전액을 지원해 주기로 했답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겠군요.”
“제가 드리는 말씀을 명심하고 기부를 결정해 주십시오.”
“네, 말씀하십시오.”
“저희는 도로 확포장 공사는 완커건설이 아닌 H&J 컨설팅과 계약할 예정입니다.”
즉, 결정권은 H&J 컨설팅에 있다는 얘기였다.
“부투야 실장님, 저희가 기부했다는 사실만 H&J 컨설팅 측에 어필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그 정도 부탁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에 얼마를 기부해 주실 생각입니까?”
천취펑 부회장은 이곳에 오기 전에 친형인 천쥐한 회장에게 도로 확포장 공사와 잉가 3댐 건설공사에 대해서 보고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뇌물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도로 확포장 공사와 관련해서는 35억 달러를 컨펌 받아 놓은 상태였다.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부투야 실장 앞에 서니 이상하게 그 금액이 적게 느껴졌다.
‘도로 확포장 공사할 때 불량 자재를 조금 더 사용하면 되겠지 뭐,’
자기 마음대로 결론을 내린 그는 부투야 실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40억 달러 어떻습니까?”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