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치열한 수 싸움의 승자 (1)
원래 부투야 실장은 숙소인 크리용 호텔까지 승용차를 타고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긴급으로 상의할 것이 있어서 겨울이 타고 있는 승합차에 탑승했다.
문두야 부통령과 마사카 부통령도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승합차에 탑승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9인승 승합차는 콩나물시루처럼 꽉 들어찼다.
부투야 부통령은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와 관련한 문제를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적어도 10억 달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정명훈 사장도 그 점이 우려돼서 송훈석 회장과 대화를 나눠 보았으나,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해법은 간단했다.
공기 단축.
대한건설은 잉가 3댐 건설공사를 적어도 2년 이상 빨리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모든 시나리오를 맞춰 놓고 있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대한건설의 이익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부투야 실장님, 우리나라에 걱정도 팔자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정 사장님, 이미 해법을 마련해 놓았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제 말이 맞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대한건설은 잉가 3댐 건설공사를 최대한 빨리…….”
부투야 실장도 대한건설이 그 방법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해결 방안이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 하루 앞도 모르는 상황인데, 먼 미래의 일을 어떻게 예측하겠는가.
만약에 돌발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공사 기간은 하염없이 늘어날 수도 있다.
“정 사장님, 대한건설은 돌발 사고를 감안하고도 공사 기간을 2년이나 단축시킨다는 겁니까?”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 이유가 뭘까요?”
뒷좌석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겨울은 뭔가 이상한 점을 감지했다.
부투야 실장은 센스가 상당히 빠른 사람이기 때문에 정명훈 사장의 얘기를 충분히 이해하고 남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거리를 계속 입에 올리는 것은 뭔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우간다와 탄자니아가 최성진 부회장에게 각각 3억 달러씩 기부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쳤다.
콩고민주공화국도 최성진 부회장에게 기부금을 받아 낼 방법을 알려 달라고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의 의도를 눈치챘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부투야 실장님, 나중에 거하게 한턱 쏘실 수 있죠?”
“한 부사장님이 원하면 오늘 당장이라도 쏠 수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침울하던 부투야 실장의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YCM 그룹은 반드시 기부라는 형식을 사용해서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려고 시도할 겁니다.”
“그렇게 장담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최 부회장이 우간다와 탄자니아에 3억 달러씩 기부한 이유와 같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요. 제가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오늘 최 부회장을 만나면…….”
겨울의 설명을 끝까지 들은 부투야 실장은 이해되지 않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한 부사장님,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YCM 그룹은 중국의 대형 건설사 중에 하나인 완커건설을 파트너로 선정했습니다. 천쥐펑 부회장이 내일 중에 이곳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완커건설 정도의 정보력이면, CTG가 계약해지 당한 이유를 알고 있지 않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완커건설이 잉가 3댐 건설공사에 참여한다고요?”
“만약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으면, 싫다고 했을 겁니다.”
“아, 무슨 얘기인지 알았습니다.”
“칼자루는 부투야 실장님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십시오.”
“하하, 알겠습니다.”
부투야 실장과 대화를 마무리한 겨울은 문두야 부통령에게 말을 걸었다.
“기부 증서는 부투야 실장님이 받을 때 같이 받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이제 부투야 실장님께 오늘 계획을 알려 주십시오.”
문두야 부통령은 저녁 식사부터 술자리까지의 계획을 상세하게 알려 주고 신신당부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합니다.”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오늘 진귀한 와인을 원 없이 마셔 봅시다.”
“하하, 그렇게 합시다.”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타서 장대산 부사장이 입을 열었다.
“방금 전에 문자를 하나 받았는데, 최성진 부회장이 크리용 호텔에 도착해 있다고 합니다.”
겨울은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투야 실장과 최성진 부회장 일행은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그가 크리용 호텔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미심쩍은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서 장대산 부사장한테 말을 걸었다.
“장 부사장님, 최 부회장이 크리용 호텔에 혼자 나타났습니까?”
“일행들을 모두 데리고 나타났다고 합니다.”
“음, 그렇군요.”
“한 부사장님, 최 부회장이 그곳에 나타난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부투야 실장님이 아니라 정명훈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부투야 실장이 오늘 들어왔다는 것을 송 회장님께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요?”
“그런 것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로비를 벌이려고 들겠죠.”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최 부회장과 인사만 나누고 헤어지면 상관없지만, 그들이 저녁 식사 장소까지 동행하게 된다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생길까요?”
장대산 부사장보다 부투야 실장의 입이 먼저 열렸다.
“YCM건설은 송유관 건설공사도 수주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화가 분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뿐 아니라 저희가 수립한 계획을 전면 재수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사만 나누고 헤어지면 되겠네요?”
“아니요.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정명훈 사장도 겨울의 생각과 일치했다.
최성진 부회장이 자기에게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고 권유할 경우에 거절할 명분이 없었으니까.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부투야 실장님, 저희는 중간에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 * *
크리용 호텔 로비에 위치한 커피숍에서는 최성진 부회장이 임지태 회장, 박철헌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매형, 부투야 실장을 만나러 이곳까지 올 이유가 뭡니까?”
“나는 부투야 실장이 아니라, 정명훈 사장을 만나러 온 거야.”
임지태 회장은 최성진 부회장의 의도를 이제야 정확하게 간파했다.
송유관 건설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부투야 실장이 프랑스에 일찍 들어온 사실을 숨겨 달라고 부탁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매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 사장을 저녁 식사 장소까지 데리고 가야겠네요?”
“그러기 위해서는 처남이 제대로 바람 잡아야 할 거야.”
“염려 마십시오.”
그때, 말없이 로비를 응시하고 있는 박철헌 사장이 최성진 부회장의 눈에 들어왔다.
“박 사장,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야?”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서 부투야 실장에게 뇌물을 얼마를 줘야 할지 생각해 보고 있었습니다.”
“박 사장은 얼마 정도를 줬으면 좋겠어?”
“부회장님이 마사카 부통령과 문두야 부통령에게 준 뇌물 금액을 더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뇌물 금액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박철헌 사장의 생각을 단숨에 읽었다.
부투야 실장은 두 인간들이 자기에게 얼마를 받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최소 비슷한 비율의 금액을 원할 것이다.
적게 줬다가는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 애로 사항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부투야 실장이 송유관 건설공사와 관련한 뇌물 금액을 3억 달러가 아니라, 6억 달러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박 사장, 만약에 내가 두 인간들한테 준 뇌물 금액을 합산할 경우에 부투야 실장한테 얼마를 줘야 하지?”
“계산상으로는 24억 달러를 줘야 합니다.”
“우리가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할 경우, 이익은 어느 정도가 될까?”
“해외 건설공사 같은 경우에는 10%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즉, 10억 달러 적자라는 얘기였다.
“아이고…….”
현실을 파악한 최성진 부회장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임지태 회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매형,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도 모르겠어.”
“완커건설의 천쥐펑 부회장한테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임지태 회장의 제안을 받은 최성진 부회장은 핸드폰을 들어서 중국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20분.
평상시 같았으면 절대로 전화할 수 없는 시간대였지만, 제 코가 석자니 어쩔 수 없었다.
[최 부회장님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예상보다 목소리가 맑았다.
“천 부회장님, 아직까지 주무시지 않고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프랑스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아침 일찍 있어서 방금 전에 일어났습니다.]
“언제쯤 이곳에 도착할 예정입니까?”
[프랑스 시간으로 정오 무렵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설마 그것 때문에 전화하신 것은 아니시겠죠?]
“사실은 난감한 상황이 하나 발생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말씀해 보세요.]
“저희가 잉가 3댐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는…….”
최성진 부회장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자세하게 밝혔다.
[별것 아닌 문제로 고민하시는군요.]
“천 부회장님, 해법이 있습니까?”
[우리가 뇌물 준 금액만큼 설계 변경을 통해서 공사비를 늘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내일 공항에서 뵙겠습니다.”
[그럽시다.]
딸깍.
전화를 끊은 최성진 부회장은 천쥐펑 부회장과의 통화 내용을 두 사람에게 설명해 주었다.
“매형, 송유관 건설공사도 금액을 늘리면 되겠네요?”
“송유관 건설공사는 발주처가 토탈 컨소시엄이기 때문에 불가능할 거야.”
“아차, 제가 그 생각을 못 했네요.”
그때, 로비를 쳐다보고 있던 박철헌 사장이 입을 열었다.
“부회장님, 부투야 실장이 도착했습니다.”
“빨리 나가 보자고.”
부투야 실장에게 다가가던 최성진 부회장은 실망감이 물밀 듯 밀려왔다.
당연히 있어야 할 정명훈 사장을 비롯한 한국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혼잣말을 내뱉으며 부투야 실장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문두야 부통령이 흠칫 놀라는 척하며 다가오는 최성진 부회장에게 말을 걸었다.
“최 부회장님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부투야 실장님과 빨리 인사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거짓말을 하세요.’
속으로 한마디 해 주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그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 그렇군요. 이분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상견례가 끝나자, 부투야 실장 등은 여장을 풀기 위해서 객실로 올라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이 내려올 동안에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누기로 결정했다.
커피숍.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최성진 부회장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사카 부통령님, 정명훈 사장과는 공항에서 헤어졌습니까?”
“네. 송훈석 회장님과 저녁 식사가 예정되어 있다면서 먼저 갔습니다.”
“부투야 실장님이 프랑스에 온 사실을 송 회장에게 얘기하지는 않을까요?”
“그 얘기를 꺼내면, 부투야 실장이 난감한 상황에 빠지기 때문에 절대로 얘기하지 않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최성진 부회장은 안도의 한숨을 조용히 내뱉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정명훈 사장도 콩고민주공화국과 수월한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부투야 실장에게 잘 보여야 하니까.
마사카 부통령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 말을 이어 갔다.
“아차, 뿌요네 회장을 저녁 식사 장소에 불렀습니다.”
“네? 술자리에서 만나기로 한 게 아닙니까?”
“저는 최 부회장님이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제가 좋아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뿌요네 회장이 부투야 실장과 어떤 관계인지 얘기해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최성진 부회장은 자신의 멍청함에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마사카 부통령이 뿌요네 회장을 저녁 식사에 부른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뿌요네 회장을 로비스트로 활용할 생각인 것이리라.
뿌요네 회장이 부투야 실장에게 지원사격 해 주면 자신들이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 훨씬 수월할 테니까.
그런 사실도 모르고 싫다는 내색을 팍팍 풍겼으니.
얼른 사과하는 것이 먼저였다.
“마사카 부통령님, 그런 깊은 뜻이 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