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03화 (203/328)

[203화] 알면서 왜 물어?

“기분 좋았냐?”

부투야 실장을 마중하러 샤를 드골 국제공항으로 이동하던 차 안에서 호영이 겨울에게 씨익 웃으며 물었다.

“알면서 왜 물어?”

“양 과장님이 너한테만 특혜를 베푼 이유가 뭘까?”

겨울도 그 점이 의문스러워서 이리저리 생각해 본 결과,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낯간지러운 얘기지만, 나한테 잘 보이기 위함 아닐까 싶다.”

“양 과장님이 너한테 잘 보일 이유가 뭐가 있는데?”

“양 과장님과 지유 씨가 고종사촌 지간이거든.”

“뭐야? 양 과장님도 로열패밀리였어?”

“대한 그룹 2대 주주의 아들이란다.”

“아, 어쩐지. 송지유에게 허물없이 대한다 했더니.”

“이 얘기는 나한테 들었다고 얘기하지 마라.”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윙윙―

그때, 호영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액정에 표시되어 있는 전화번호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은센기 사장님.”

[호영 씨, 프랑스 파리의 경치는 어떻습니까?]

“예상한 대로 엄청납니다.”

[이야, 부럽네요.]

“부러우시면 이곳으로 오면 되잖아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비자가 없어요.]

호영은 순간적으로 아차 했다.

은센기 사장이 프랑스에 오기 위해서는 비자 발급이 필수라는 사실을 깜빡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으니, 사과하는 것이 맞았다.

“어이구, 제가 실언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그건 그렇고 저한테 전화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뻘쭘한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호영이 재빨리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조금 전에 마사카 부통령님과 문두야 부통령님께 전화 받았는데, 정수기를 대량으로 발주할 예정이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설마… 6억 달러를 모두 정수기를 발주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에 그렇게 되면 대박일 텐데.’

마음속으로 흐뭇한 상상하면서 은센기 사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알고 있지만,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한 부사장을 바꿔줄 테니까, 직접 물어보세요.”

[네. 바꿔 주세요.]

호영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겨울은 은센기 사장과 통화를 시작했다.

“은센기 사장님,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우간다와 탄자니아가 정부차원에서 정수기를 대량으로 발주…….]

겨울은 현재 어떤 상황인지 단숨에 이해했다.

두 나라는 최성진 부회장에게 받은 3억 달러를 정수기를 발주하는 데 사용할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마사카 부통령과 문두야 부통령이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 낸 결과이기 때문에 자기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자격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 변수가 남아 있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은센기 사장님, 정수기 발주 건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주세요.”

[왜요? 아직 발주가 확정되지 않았나요?]

“두 나라가 정수기를 구입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한 것은 맞지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그럽니다.”

[그렇다면 발주가 확정될 때까지 모른 척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편이 속 편할 겁니다.”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자, 호영이 재빨리 질문을 던져 왔다.

“상황이 변한다는 얘기는 무슨 의미야?”

“최성진 부회장이 헛돈으로 6억 달러를 쓴 걸 알게 되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그런 상황을 우려해서 정부 계좌로 돈을 받은 거 아니었나?”

“그래도 빈틈이 있을지 모르잖아.”

“최 부회장한테 기부 증서라도 받아 놓으라고 하면 안 될까?”

“공항에서 만나면 얘기를 꺼내 보자고.”

* * *

같은 시각.

프랑스 파리로 향하고 있는 송훈석 회장의 전용기 안에서는 부투야 실장이 툼바 마히무 산업부 장관, 카반다 왈라카 수자원 장관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히무 장관님, 잉가 3댐 공사와 관련해서 예산은 확보된 상태입니까?”

“IBRD(세계은행, 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에서 140억 달러를 지원받기로 확정된 상태입니다.”

“음, 그렇군요.”

“실장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이는데, 걱정거리라도 있습니까?”

당연히 있었다.

자신들과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직접 계약을 체결하면 문제가 없지만, H&J 컨설팅과 계약함으로 인해서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다.

잉가 3댐 건설공사는 난공사이고, 공사 기간도 상당히 길기 때문에 이익이 상당히 박한 편이다.

그런데 이 적은 이익을 대한 그룹 컨소시엄과 H&J 컨설팅과 나눌 경우, 공사를 직접 실행하는 대한 그룹 컨소시엄은 자칫하면 적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

모두가 만족하기 위해서는 잉가 3댐 건설공사 예산을 150억 달러 정도로 늘리면 되지만, 모자란 10억 달러를 조성할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상태였다.

생각을 끝낸 부투야 실장은 자신의 걱정거리를 두 장관에게 밝혔다.

“…현재 이런 상황입니다.”

왈라카 수자원 장관은 10억 달러를 조성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렸다.

아이디어를 재빨리 정리한 후, 부투야 실장에게 이를 밝혔다.

“실장님, 우간다와 탄자니아가 YCM 그룹의 임지태 회장에게 각각 3억 달러를 기부 받은 실제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YCM건설이 송유관 건설공사를 수주하기 목적으로 뇌물을 찔러 준 거잖아요.”

“저희도 잉가 3댐 건설공사를 이용하면 어떨까요?”

“왈라카 장관님은 YCM 그룹이 아무 대가 없이 10억 달러를 자국에 기부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려울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히무 장관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실장님, 한 부사장님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안 될까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기장의 안내 방송이 시작되었다.

[임종권 기장입니다. 저희는 잠시 후에 목적지인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 * *

샤를 드골 국제공항 입국장에 위치한 카페에서는 겨울, 호영, 문두야 부통령, 마사카 부통령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문두야 부통령님, 진짜로 정수기를 대량으로 발주할 예정입니까?”

“우리나라가 물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한 부사장님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정수기는 언제까지 공급해야 합니까?”

“잘 알고 계시지 않나요?”

“아이고.”

겨울보다 호영의 반응이 먼저 나왔다.

“정호영 씨, 저는 한국 사람들의 스피드를 믿고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정수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하하, 알았어요.”

“이제 한 부사장님과 말씀 나누십시오.”

원하는 것을 얻어낸 호영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문두야 부통령님, 최 부회장에게 클레임을 걸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확인서를 받아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아도 기부 증서를 받아 놓을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한편, 마사카 부통령은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비록 잉가 3댐 건설공사는 H&J 컨설팅이 수주할 예정이지만, 공사는 대한건설 컨소시엄에서 진행해야 한다.

따라서 송훈석 회장은 아니더라도 문세형 사장만큼은 공항에 나와서 부투야 실장을 맞이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대한 그룹에서는 아무도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겨울은 이유를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제가 공항에 나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약이라뇨?”

“대한 그룹에서는 부투야 실장님이 내일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송 회장님 또는 문 사장님이 부투야 실장님을 만나는 모습을 최 회장 측에서 보게 되면, 대형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겨울의 뒤를 이어서 호영이 한마디 보탰다.

“아, 제가 그 점을 깜빡 잊고 있었네요.”

“이제 입국장으로 나가서 부투야 실장님을 기다릴까요?”

부투야 실장이 탄 전용기가 공항에 착륙하기 몇 분을 남겨 놓고 정명훈 사장을 포함한 H&J 컨설팅 식구들이 모두 공항에 도착했다.

정명훈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하도진 실장이 겨울에게 다가오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 왔다.

“3번 출구 쪽에 YCM 그룹의 성진수 실장이 있습니다.”

“큰일 날 뻔했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가 성 실장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은 알고 있을까요?”

“알고 있으면 저렇게 얼굴을 드러내 놓고 의자에 앉아 있지는 않겠죠?”

“하긴, 부사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네요.”

순간, 겨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평소대로 부투야 실장을 맞이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서 얼른 정명훈 사장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저는 2선으로 빠져 있을 테니까, 부투야 실장을 사장님께서 맞이하십시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예상한 대로 정명훈 사장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겨울은 그의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최 부회장은 사장님이 부투야 실장과 상당히 친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 내가 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네. 그나저나 부투야 실장한테는 따로 연락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제가 조금 있다가 문자 보내 주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신지훈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사장님,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문제인데?”

“최성진 부회장은 부투야 실장이 오늘 프랑스에 도착한 사실을 송 회장님이 모르기를 바라는데, 저희가 얘기할 수도 있잖아요.”

“그 문제는 우리가 아니라 최 부회장이 신경 써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보니 사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네요.”

잠시 후, 부투야 실장을 포함한 수행원들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정명훈 사장이 대표로 그들을 맞이했다.

“부투야 실장님, 프랑스 방문을 환영합니다.”

“정 사장님, 우리 포옹은 그렇고 악수나 진하게 할까요?”

“네, 좋습니다.”

정명훈 사장과 인사를 나눈 부투야 실장은 문두야 부통령, 마사카 부통령과 인사를 나눈 후, 하도진 실장의 소개로 이번이 초면인 신지훈 실장, 호영과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빠르게 숙소인 크리용 호텔로 출발했다.

그들이 공항을 떠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서 이를 지켜본 성진수 실장은 임지태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 실장, 부투야 실장은 무사히 도착했나?]

“네. 조금 전에 도착했고, H&J 컨설팅의 정명훈 사장이 호스트 자격으로 그를 맞이했습니다.”

[정 사장이 부투야 실장과 친하다는 말이 맞다는 뜻이겠지?]

“저도 회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알았어. 성 실장은 곧바로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이동해서 손님들을 맞을 준비하라고.]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찜찜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뭐가 말인가?]

“정 사장이 송 회장한테 부투야 실장이 오늘 도착했다는 사실을 얘기하면 어떻게 하죠?”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임지태 회장에게서 아무 얘기가 들려오지 않았다.

성진수 실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말을 걸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성 실장, 나중에 통화하자고.]

뚝.

급하게 전화를 끊는 임지태 회장은 성진수 실장과의 통화 내용을 최성진 부회장에게 그대로 보고했다.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짧게 대답한 최성진 부회장은 급하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 부회장님께 전화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방금 전에 부투야 실장은 무사히 도착했고, 지금은 여장을 풀기 위해서 호텔로 이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마사카 부통령님, 부투야 실장님을 맞이하러 H&J 컨설팅의 정명훈 사장이 공항에 나갔습니까?”

[호스트가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실례 아닌가요?]

“정 사장한테 부탁 하나만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공항에서 부투야 실장을 만난 것을 비밀로 해 달라는 부탁이겠죠?]

“네,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하고 문두야 부통령이 정 사장한테 부탁해 놓은 상태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한테 빚을 하나 졌으니까, 나중에 갚아 주십시오.]

‘이 새끼야, 나한테 3억 달러를 받아 처먹은 사실은 벌써 잊었냐?’

이 말이 입속에서 맴돌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야 물론입니다.”

[레스토랑에서 뵙겠습니다.]

딸깍.

최성진 부회장이 핸드폰을 소파에 집어 던지며 적나라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에이, 양아치보다 더한 새끼.”

흙수저 성공 신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