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문제의 3억 달러
“저희 YCM 그룹은 3억 달러에 인수할 예정이었습니다.”
마사카 부통령도 두 사람이 은밀하게 신호를 주고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최성진 부회장이 손가락 세 개를 펼치기에 임지태 회장이 30억 달러라고 대답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그는 3억 달러라고 대답했다.
그가 아무리 우간다 유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3억 달러는 적어도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3억 달러를 언급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물었다.
“임 회장님, 진짜로 3억 달러에 인수할 생각이었습니까?”
순간, 임지태 회장은 3억 달러가 아닌 30억 달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뱉은 말을 주어 담기에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어떻게 변명할지 두뇌를 풀가동하고 있는 사이, 최성진 부회장이 살짝 발을 건드려 왔다.
그에게 공을 넘기라는 의도라고 인식한 임지태 회장은 천만다행이라 생각하고, 마사카 부통령의 질문에 대답했다.
“사실 CNOOC가 반납한 지분의 인수 건에 대해서는 최성진 부회장님이 진두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저보다는 최 부회장님께 여쭤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최성진 회장은 임지태 회장에게 시원하게 욕이라도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기는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변명거리를 생각해서 대응하라고 발을 건드린 것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신호를 잘못 해석하고 뜨거운 감자를 자기에게 던져 버리다니.
졸지에 넘겨받은 뜨거운 감자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마사카 부통령이 질문을 던져 왔다.
“최 부회장님, 임 회장님의 말씀이 맞습니까?”
최성진 부회장은 짧은 순간 동안 머리를 극한으로 굴려 봤으나 뾰족한 해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임지태 회장에게 책임을 또다시 넘길 수도 없는 노릇.
어차피 뒷정리는 자신의 몫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설마하니 지분을 대한 그룹에서 인수하려고 움직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겠지요?”
최성진 부회장은 딜레마에 빠졌다.
몰랐다고 대답하면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꼴이고, 알고 있었다고 대답하면 대한 그룹을 배반한 꼴이 된다.
이리 가도 낭떠러지, 저리 가도 낭떠러지였다.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하다가 정면 돌파하기로 결정 내렸다.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계셨으면서, 그렇게 행동하셨다고요?”
마사카 부통령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최성진 부회장은 그의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조금 전에 생각해 놓은 얘기를 꺼내 들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조금 그렇습니다만, 사실 저하고 송훈석 회장은 대한 그룹 경영권을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얘기가 득이 될지, 실이 되어 돌아올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었다.
“송 회장님을 물 먹이기 위해서, YCM 그룹이 지분을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겁니까?”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이번에는 송 회장님께 패하셨네요?”
“어찌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사실 마사카 부통령은 CNOOC가 보유한 지분의 거래 건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와 관련한 대화를 계속 이어 가고 있던 이유는 송유관 건설공사 건으로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하기 위함이었다.
이제야 송유관 건설공사건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최성진 부회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최 부회장님, 다음번에도 질 것 같은데요?”
최성진 부회장은 마사카 부통령이 무엇을 언급하는지 단숨에 눈치챘다.
자기도 송유관 건설공사에 대한 얘기를 언제 꺼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불감청고소원으로 그가 먼저 언급해 주었다.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마사카 부통령의 질문에 대답했다.
“송유관 건설공사건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혹시 YCM 그룹이 우리나라와 탄자니아, 우간다에 진출하기 위한 묘안이 송유관 건설공사와 관련 건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최 부회장님께서는 YCM 그룹이 송유관 건설공사를 수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어떻게요?”
“두 분의 부통령님께서 저희의 손을 들어 주시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최 부회장님께서 잘못 알고 계신 게 하나 있는데, 우리나라와 탄자니아는 송유관 건설공사 건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우간다 유전 개발에 대한 지분은 토탈과 대한 그룹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우간다는 지분이 0%이기 때문에 송유관 건설공사 건에 대해서 발언할 권리가 없습니다.”
마사카 부통령에 이어서 문두야 부통령도 한마디 보탰다.
최성진 부회장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송유관 건설공사와 관련한 얘기를 꺼내면 저들이 옳다구나 하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해야 두 사람에게 떡고물이 떨어질 테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 인간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아직 기름칠을 하지 않아서겠지?’
자문자답을 끝낸 최성진 부회장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반대로 묻겠습니다. 두 분께서는 송유관 건설공사를 대한건설이 수주할 것으로 예상하고 계십니까?”
“대한 그룹이 CNOOC가 보유한 지분을 인수한 이유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에 두 분께서 송유관 건설공사를 대한건설이 수주하는 것을 반대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마치 벽하고 대화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면, 힘들게 프랑스까지 날아온 보람이 없어진다.
이제 칼집에서 고이 잠들고 있는 절대보검을 꺼내 들 때였다.
“두 분께서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근사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문두야 부통령은 온몸에 솜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젯밤에 겨울이 자신들에게 한 얘기가 최성진 부회장의 입에서 그대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겨울에게 해법을 들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표정한 얼굴로 그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어떤 부탁인지 말씀해 보세요.”
“YCM건설이 송유관 건설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두 분께서 도와주십시오.”
“저희가 최 부회장님을 도와줬는데도 대한건설이 송유관 건설공사를 수주하면 선물을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당연한 것을 왜 묻는데?’
최성진 회장은 이번에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최 부회장님이 어떤 선물을 주실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저희는 대한 그룹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설영석 이사는 두 사람이 철벽방어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송훈석 회장이 자신들보다 먼저 두 사람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이라고.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은 대한 그룹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이리라.
두 사람을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박철헌 사장에게 한국어를 사용해서 작은 목소리로 생각을 밝혔다.
“사장님, 송 회장보다 화끈하게 뇌물을 주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설 이사, 저 인간들이 부회장님께 더 많은 뇌물을 받아 내려고 수작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부회장님도 알고 계시겠죠?”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알고 있는데, 부회장님이 모를 리가 있을까?”
두 사람이 속닥대는 동안에도 문두야 부통령과 최성진 부회장과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제가 문두야 부통령님을 만난 기념으로 선물을 드리면 받아 주시겠습니까?”
“저한테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받겠습니다.”
“마사카 부통령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의의 선물이면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저희끼리 의논할 동안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저희가 자리를 비워 드릴까요?”
“아닙니다.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면 되니까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마사카 부통령과 대화를 마무리한 최성진 부회장은 박철헌 사장에게 한국어로 말을 건넸다.
“박 사장, 송 회장이 저 인간들한테 뇌물을 얼마나 찔러 줬을까?”
“두 인간들이 송 회장을 적극 두둔하는 것으로 봐서, 적지 않은 뇌물을 준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잉가 3댐 건설공사 수주를 생각해서라도 과감하게 지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칼리마니 실장한테 들었는데, 두 인간들이 콩고민주공화국의 부투야 비서실장과 상당히 친하답니다. 특히 문두야 부통령은 부투야 실장과 대학교 동기동창이랍니다.”
“음…….”
최성진 부회장이 말끝을 흐리며 생각에 잠겼다.
임지태 회장을 비롯한 한국 사람들은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생각을 끝냈는지 최성진 부회장이 입을 열었다.
“박 사장, 스위스에 비자금이 얼마나 있지?”
“40억 달러 정도 있습니다.”
“알았어.”
짧게 대답한 최성진 부회장은 문두야 부통령에게 말을 건넸다.
“제가 두 분께 드릴 선물을 미처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두 분의 계좌 번호를 알려 주시면, 지금 즉시 선물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문두야 부통령은 최성진 부회장이 송금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자신들에게 선물을 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대충 감 잡았다.
그는 송유관 건설공사를 YCM건설이 수주하지 못할 경우, 자신들의 목을 조르기 위해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함이리라.
절대로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의 흉계를 깨트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는 사이, 칼리마니 실장이 스와힐리어를 사용해서 말을 걸어왔다.
“부통령님, 방금 전에 한 부사장님께 문자가 왔는데, 선물을 저희와 전혀 관계없는 은행 계좌로 받으라고 합니다.”
역시 겨울도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어떤 계좌가 좋을까?”
“정부 계좌가 어떨까요?”
“정부 계좌?”
“나중에 최 부회장이 뇌물 건으로 시비를 걸어오면, 우리나라에 기부금을 준다고 해서 받았다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맞아! 그 방법이 있는지 몰랐군.”
“마사카 부통령님께도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문두야 부통령과 마사카 부통령에게 계좌 번호를 건네받은 최성진 부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금주가 두 사람이 아니라 각각 탄자니아 정부와 우간다 정부였기 때문이다.
‘이 인간들은 정부 계좌를 이용해서 떳떳하게 뇌물을 받고 있나 보군. 그런다고 해서 내가 당신들한테 뇌물을 줬다는 증거가 사라지지는 않아.’
제멋대로 해석한 최성진 부회장은 박철헌 사장에게 노트북을 건네받은 후, 각각 3억 달러씩 송금했다.
일련의 과정이 끝낸 후, 문두야 부통령에게 말을 걸었다.
“확인해 보시면 알겠지만, 3억 달러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기껏해야 1,000만 달러 정도의 뇌물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문두야 부통령은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무려 3억 달러라니.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마디 하려는 순간, 칼리마니 실장이 스와힐리어로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최 부회장이 보내온 3억 달러에는 부투야 실장님을 소개시켜 주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음, 그렇다는 말이지?”
“네. 그리고 작전을 변경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기존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칼리마니 실장에게서 변경된 작전을 전해 들은 문두야 부통령은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 최성진 부회장에게 말을 걸었다.
“최 부회장님께서 저희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의미로 두 가지 약속을 해 드리겠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와 우간다는 송유관 건설공사와 관련해서 무조건 중립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3억 달러의 대가가 고작 중립이라니.
최성진 부회장은 실망감이 몰려왔지만, 한편으로는 그것만이라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두 인간이 송훈석 회장의 편을 계속 들어 준다면, 송유관 건설공사는 절대로 YCM건설이 수주할 수 없을 테니까.
“문두야 부통령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두 번째 약속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최 부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송유관 건설공사와 관련해서 결정권은 토탈의 뿌요네 회장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그분과 미팅을 가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드리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