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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194화 (194/328)

[194화]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

설영석 이사는 피가 바싹바싹 마르는 심정이었다.

자기에게 부여된 역할은 최성진 부회장과 마사카 부통령이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는 것이다.

그를 만나서 최성진 부회장의 의사를 전달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코빼기조차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겨울에게 부탁하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그게 말처럼 쉽겠는가.

그래서 혹시나 그와 마주칠까 하는 마음으로 오전부터 지금까지 로비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부회장님이 오시려면 다섯 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지? 진짜로 한겨울한테 부탁해야 하나?”

그때, 낯이 익은 사람이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가만… 내가 저 사람을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지?”

기억을 더듬어 가던 설영석 이사는 그가 누구인지 기억해 냈다.

그는 다름 아니라 마사카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아론다 무세베니였다.

그의 신분을 알아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기 때문에 뛰다시피 그에게 달려가서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무세베니 실장님 아니십니까?”

무세베니 실장은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사실 자기와 칼리마니 실장은 겨울에게 받은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서 한 시간 가까이 호텔 로비를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설영석 이사는 자신들이 누구인지 모르는 듯 지금껏 말을 걸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마냥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더니, 이제야 알아채고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누구시죠?”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 그룹 전략기획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설영석 이사라고 합니다.”

“전략기획실이라면… 조병석 실장님이 책임자로 있는 조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는 설 이사님과 인사를 나눈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저를 알아보셨습니까?”

사실 설영석 이사가 무세베니 실장을 알아본 것은 인터넷에서 마사카 부통령에 대해 검색하다가 우연찮게 사진을 봤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얘기하면 기분 나빠 할 것이 빤하기 때문에 숨기기로 하고, 재빨리 머리를 혹사시켜서 그럴 듯한 답변거리를 만들어 냈다.

“저희 대한 그룹의 임원이면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실장님, 같이 계신 분을 소개시켜 주실 수 있습니까?”

무세베니 실장은 설영석 이사가 자기에게 거짓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칼리마니 실장 또한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평소 같았으면 한마디 해 주고도 남았지만, 뜻한 바가 있었기에 모른 척하고 넘어갔다.

그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칼리마니 실장이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대한 그룹 임원이시면, 나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도대체 이놈은 누구야?’

설영석 이사는 속으로 한마디 내뱉고, 칼리마니 실장과 대화를 시작했다.

“대한 그룹 임원이라고 해도 모든 사람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VIP들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흐음, 저는 VIP가 아니라서 모른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만, 도대체 누구십니까?”

“저는 탄자니아의 문두야 부통령님을 모시고 있는 누페 칼리마니 비서실장이라고 합니다.”

그의 대답에, 설영석 이사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탄자니아는 국토 면적, 인구, GDP등 모든 면에 있어서 우간다보다 높은 순위에 자리하고 있다.

우간다의 무세베니 실장은 알아보고 칼리마니 실장은 알아보지 못했으니, 입이 열 개, 아니, 백 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칼리마니 실장님, 제 실수를 용서해 주십시오.”

설영석 이사가 정중한 자세로 허리를 숙여 용서를 구했다.

사실 칼리마니 실장은 이렇듯 설영석 이사를 모질게 다룰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한 배경에는 기선을 잡기 위한 이유가 가장 컸다.

어차피 그와는 당분간 친하게 지내야 하기 때문에 이쯤에서 그의 사과를 받아 줄 필요가 있었다.

“설 이사님께서 사과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칼리마니 실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길가고 있는 저희를 불러 세운 이유가 뭡니까?”

이제부터가 진짜 메인 게임이었다.

“제가 두 분께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이러지 말고 커피숍으로 이동해서 대화를 나눠 보실까요?”

“제가 원하던 바였습니다.”

호텔 커피숍.

커피를 주문하고 막간을 이용해서, 설영석 이사가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질문했다.

“칼리마니 실장님은 언제 프랑스에 입국하셨습니까?”

“어제 저녁 무렵에 문두야 부통령님과 같이 입국했습니다.”

“송유관 건설공사 계약 때문이시겠네요?”

“그 목적이 가장 크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잠시 후,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무세베니 부통령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 이사님, 이제 저희한테 하고 싶은 얘기를 해 보세요.”

“사실은 대한 그룹의 최성진 부회장님께서 마사카 부통령님과 문두야 부통령님을 별도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최 부회장님이 프랑스에 입국하셨습니까?”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입니다.”

“최 부회장님이 두 분을 만나려고 하는 이유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송유관 건설공사를 따서 YCM건설에 넘겨주기 위함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

“일정이 빡빡하신 분들이 과연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미팅 목적도 모르는 상태인데.”

예상한 대로 무세베니 실장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설영석 이사는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통령들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있는 두 사람이 반대하면, 최성진 부회장과의 미팅은 절대로 성사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두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돈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줄 만한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천금 같은 기회를 발로 걷어찰 수는 없는 노릇.

“무세베니 실장님, 제가 친하게 지내고 있는 분이 지금 프랑스에 와 계십니다. 그분께 미팅 목적을 여쭤보고 알려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그분이 누구신데요?”

“대한 그룹에서 사장까지 역임하다가, 작년에 정년퇴직하신 박철헌 사장입니다.”

무세베니 실장은 설영석 이사가 또다시 거짓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임원들은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

즉, 능력이 뛰어나면 나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회사에서 퇴임시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와 반대로 능력이 없으면, 불과 몇 달 만에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임원들이다.

그러나 두 부통령이 최성진 부회장과 만나야 하기 때문에 무세베니 실장은 모른 척하고 말을 이어 갔다.

“지금 박 사장님께 전화해서 여쭤보세요.”

설영석 이사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사실 자기가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두 사람에게 건네줄 돈을 조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무세베니 실장은 이 자리에서 전화해 보라고 권유하고 있었으니.

또다시 두뇌를 극한까지 회전시켜서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만들어 냈다.

“박 사장님께서는 지금 볼일이 있어서 영국에 가신 상태입니다. 두 시간 정도 후에 프랑스에 도착할 예정이니까, 그때 여쭤보고 답변해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제가 두 분의 연락처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명함을 교환하면 어떨까요?”

“좋습니다.”

두 사람과 헤어진 설영석 이사는 곧바로 숙소로 올라와서 박철헌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 이사, 어떻게 됐나?]

박철헌 사장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실려 있었다.

“방금 전에 마사카 부통령, 문두야 부통령의 비서실장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두 사람이 뭐라고 했나?”

“조금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설영석 이사는 두 사람들과 만나서 나눈 대화의 내용을 자세하게 보고했다.

언제나 그렇듯 자기에게 불리한 얘기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두 사람한테 뇌물을 건네줬으면 좋겠습니다.”

[뇌물이라…….]

박철헌 사장은 생각할 것이 있는지 끝말을 흐렸다.

아마도 그의 머릿속은 이해득실과 방법을 따져 보느라 고심 중에 있을 것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박철헌 사장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설 이사, 두 사람한테 얼마를 줬으면 좋겠는가?]

“적어도 10만 달러 정도는 줘야 하지 않을까요?”

[흐음, 가지고 있는 현금이 없는데… 송금시켜 주면 안 될까?]

“부회장님과의 미팅을 성사시켜 주는 조건으로 뇌물을 주는 꼴이기 때문에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

박철헌 사장의 짜증내는 소리가 귓속 깊이 들려왔다.

“사장님, YCM 그룹의 유럽 법인에 도움을 요청하면 안 될까요?”

[맞아! 그 방법이 있었지?]

그의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돈이 준비되면 저한테 전화 주십시오. 두 사람을 사장님이 묵고 계시는 호텔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알았어.]

“혹시 모르니까, 돈은 여유롭게 준비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그럼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더 하실 말씀이 남아 있습니까?”

[망나니 놈은 제대로 감시하고 있지?]

사실 설영석 이사가 전화를 빨리 끊으려고 한 이유는 골칫덩어리인 최준하 때문이다.

그가 도망치도록 잔뜩 바람을 불어넣은 장본인이 자기였으니까.

이런 일에 대비해 수립해 놓은 시나리오를 다시 한번 떠올린 후, 박철헌 사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조금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는데?]

“망나니 놈이 메모지를 한 장 남겨 놓고 스위스로 도망쳤습니다.”

[뭐라고? 내가 설 이사한테 뭐라고 지시했는지 기억하고 있나?]

“저도 그놈을 감시하느라 했는데, 지하주차장을 통해서 도망치는 바람에 붙잡지 못했습니다.”

[하아… 그나저나 메모지에는 뭐라고 적혀 있었나?]

“휴일을 맞이해서 스위스에 여행 다녀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이고…….]

박철헌 사장의 낙담하는 소리가 귓속 깊이 박혔다.

설영석 이사는 이때다 싶어 잽싸게 말을 이어 붙였다.

“망나니 놈이 없는 편이 저희한테 더 도움 되지 않을까요?”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부회장님의 역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어차피 일요일에는 돌아올 예정이니까, 사실대로 보고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별수 있나.]

뚝.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박철헌 사장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후후후… 최준하, 나를 무시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 절감해 보라고.”

* * *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무세베니 실장과 칼리마니 실장은 겨울의 숙소를 찾아와서 로비에서의 일들을 상세하게 전달했다.

“…두 시간 정도 후에 연락이 올 것 같습니다.”

“설 이사는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는 것 같네요.”

“하하,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은 임무도 지금처럼 완벽하게 수행해 주십시오.”

“그야 물론입니다.”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타서 무세베니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한 부사장님, 설 이사가 YCM 그룹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제가 대신 답변해도 되겠습니까?”

겨울보다 하도진 실장의 입이 먼저 열렸다.

“네, 말씀하십시오.”

“설 이사는 기회주의자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본인에게 손해가 될 것 같아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말씀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하 실장님은 설 이사의 성격에 대해서 어떻게 잘 알고 계십니까?”

“몇 년 전에 그 인간과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무세베니 실장은 하도진 실장이 설영석 이사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고 판단했다.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하도진 실장의 입에서 ‘그 인간’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기 때문에.

겨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최측근인 그에게 잘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하 실장님, 제가 설 이사를 혼내 줄까요?”

“아닙니다. 그놈은 제가 직접 혼낼 예정입니다. 그러니 실장님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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