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92화 (192/328)

[192화] 공평한 조건의 내기

겨울은 몹시 궁금했다.

아무리 시간이 늦었다고 하지만, 어째서 토탈 그룹의 본사 회의실을 제쳐 두고 뿌요네 회장의 저택에서 미팅을 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의 저택에 도착해서 상황을 파악한 겨울은 곧바로 궁금증을 거둬들였다.

저택에는 30명은 족히 입장할 수 있는 크기의 회의실이 떡하니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진정한 부자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지정된 자리에 착석했다.

옆자리에 앉은 호영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겨울아, 우리나라에 이 정도로 넓은 저택을 소유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 명은 정확하게 알고 있어.”

“대통령님? 그분은 저택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5년 동안 전세 사는 거잖아.”

“알고 있었네?”

“당연한 거 아니냐. 그나저나 우리도 이렇게 큰 저택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음,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언제? 해가 서쪽에서 뜰 때?”

겨울과 호영이 전혀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뿌요네 회장이 직원들과 함께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상석에 앉은 그는 회의 참석자들과 빠르게 악수를 한 후, 침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드립니다. 시간 관계상 상견례는 건너뛰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 자리는 송유관 건설공사 계약을 위해서 마련된 자리입니다. 송유관 건설공사에 대해서 파비앙 페농 아프리카 대륙 담당 사장이 간단하게 브리핑할 예정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페농 사장이 회의 참석자들에게 정중한 자세로 인사한 후, 입을 열었다.

“송유관은 우간다의 호이마에서 탄자니아의 탕가를 잇는 1,450㎞ 길이의 세계 최대 규모의 가열 송유관입니다. 관의 크기는 61㎝로 매일 216,000 배럴의 석유를…….”

페농 사장은 알고 있는 지식을 총 동원해서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서 설명했다.

“…책정된 공사비는 모두 약 35억 달러입니다. 이제 질문 받겠습니다.”

“가열 송유관이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 송유관을 가열한다는 뜻입니다. 송유관 중간마다 발전기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공사비가 상승하는 단점이 있지만, 석유의 흐름이 빨라져서 많은 양의 석유를 수송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6월에 진행하기로 예정된 입찰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저희와 H&J 컨설팅이 계약 체결 완료하는 즉시 입찰 취소 공고를 띄울 예정입니다.”

그 후에도 페농 사장은 회의 참석자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했다.

질의응답을 끝낸 페농 사장이 자리에 착석하자, 뿌요네 회장이 말을 이어 받았다.

“저희는 H&J 컨설팅 측에 송유관 건설비용으로 38억 5,000만 달러를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명훈 사장은 뿌요네 회장의 화끈한 제안에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이 중 3억 5,000만 달러가 자신들의 이익이었다.

물론, 우간다와 탄자니아 측에 각각 1.5%의 커미션을 지급하면 이익이 약간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2억 4,000만 달러가 넘는 이익이 발생한다.

하지만 송유관 건설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서 H&J 컨설팅이 수행한 일이 거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

양심에 털이나지 않은 이상 뿌요네 회장의 제안을 덥석 수용할 수는 없었다.

“뿌요네 회장님, 저희한테 배정된 이익이 너무 많습니다.”

“저희가 정 사장님한테 도움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명훈 사장은 지난 2월 미국 출장 당시에 뿌요네 회장에게 CNOOC 측으로부터 페널티 10억 달러를 받아 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는 일러 준 대로 프랑스로 돌아가자마자 CNOOC 측에 페널티 10억 달러를 청구했고, 지난 3월 초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페널티를 받아 냈다.

뿌요네 회장은 이 페널티의 일부를 덜어 내서 자신들에게 돌려줄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회장님의 성의는 정말 고맙습니다만, 그래도 3억 5,000만 달러는 너무 많습니다.”

사실 뿌요네 회장은 송유관 건설공사비로 36억 7,500만 달러로 책정해 놓고 있었다.

마카사 부통령에게 공사비의 1.5%를 커미션으로 지급한다고 하더라도 1억 2,000만 달러 이상 이익이 남기 때문에.

하지만 오늘 점심 식사 도중에 생긴 일 때문에 생각을 바꿔 먹었다.

정명훈 사장은 마사카 부통령뿐만 아니라 문두야 부통령에게도 커미션을 지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H&J 컨설팅의 이익은 7,000만 달러 수준으로 줄어든다.

H&J 컨설팅은 미래를 함께할 파트너였다.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에 이번에 화끈하게 공사비를 38억 5,000만 달러로 상향시켜 준 것이다.

짧게 생각을 끝낸 뿌요네 회장은 정명훈 사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정 사장님, 저희가 38억 5,000만 달러를 모두 지급해 드릴 테니까,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네. 말씀해 보십시오.”

“저희는 현재 모잠비크 정부와 해상 가스전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고, 5월부터 해상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상업 생산할 예정입니다. 문제는 아직까지 천연가스를 수입해 줄 바이어를 찾지 못했습니다.”

“인도에 연결시켜 주면 되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희가 제안하는 조건을 수용해 주신다면, 적극 도와줄 용의가 있습니다.”

“어떤 조건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천연가스를 국제가격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해 주셔야 합니다.”

“가격 협상에 대한 전권을 H&J 컨설팅 측에 일임하면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문제없습니다.”

그때, 문두야 부통령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정 사장님, 제가 페추스 칠리마 모잠비크 부통령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명훈 사장은 문두야 부통령의 의도를 단숨에 캐치했다.

연합군과 인도 정부와의 TTM에 칠리마 부통령을 참석시키려는 의도이리라.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네, 맞습니다.”

“칠리마 부통령님께 환영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인도에 수출할 수 있는 자원 리스트를 먼저 제공해 달라고 요청해 주십시오. 당연히 천연가스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리스트는 언제까지 제공하라고 얘기할까요?”

“TTM을 시작하기 전에 인도 정부로부터 컨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문두야 부통령과 대화를 종료한 정명훈 사장은 뿌요네 회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회장님, 혹시 4월 말, 또는 5월 초에 시간을 잠깐 내주실 수 있습니까?”

“TTM에 참석해 달라는 뜻이겠죠?”

“네, 그렇습니다.”

“적어도 일주일 전에만 연락 주시면, 어떻게든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송유관 건설공사와 관련해서 저희 또는 대한건설 측에 요청할 내용이 있습니까?”

“저희 고객인 우간다와 탄자니아 정부는 송유관 건설공사를 최대한 빨리 착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해 주십시오.”

그의 말에 송유관 건설공사를 책임지고 있는 문세형 사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뿌요네 회장님,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아무리 늦어도 6월까지는 공사를 착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문 사장님, 송유관 건설공사는 언제쯤 완공할 수 있습니까?”

“송유관 건설공사 기간 동안에 우간다와 탄자니아 정부의 정국이 안정되어 있고, 두 나라에서 우수한 인력을 투입해 준다면 착공 후 48개월 안에 공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뿌요네 회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송유관 건설공사와 관련해서 CSCEC의 리아오윈 회장은 자기에게 96개월을 제시했다.

그러니 아무리 대한건설이 시공능력이 우수하다 하더라도, CSCEC에 비해서 절반 이상 공기를 단축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문 사장님, 정말로 48개월 안에 송유관 건설공사를 완료할 수 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뿌요네 회장은 기분이 급속도로 좋아졌다.

조금 전까지 그는 96개월 이후부터 수익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세형 사장은 비록 두 가지 조건을 전제하긴 했지만, 48개월 안에 공사를 완료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렇게 되면 예상대비 48개월 빠르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뿌요네 회장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문 사장님, 저하고 내기 하실래요?”

“어떤 내기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착공 후 48개월 안에 송유관 건설공사를 완료하면, 제가 2억 달러를 성과급으로 지급해드리겠습니다. 만약에 공기를 지키지 못하면 지체보상금으로 1억 달러를 부담해 주십시오.”

문세형 사장은 뿌요네 회장의 제안을 즉각 수용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결정권은 자기에게 있지 않았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송훈석 회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뿌요네 회장님, 내기는 서로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체보상금으로 2억 달러를 지불하겠다는 뜻입니까?”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내기가 성립됐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까, 이제 계약서를 작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비밀유지계약서(NCNDA, Non Circumvention and Non Disclosure Agreement)와 커미션계약서(IMFPA, Irrevocable Master Fee Protection Agency)도 같이 작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H&J 컨설팅 측에서는 신지훈 실장이, 토탈 컨소시엄 측에서는 페농 사장이 대표로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두 회사의 경영진과 마사카 부통령, 문두야 부통령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 모두 계약서 작성하는 업무에 투입되었다.

계약서에 사인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세 시간 이상은 족히 걸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회의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겨울은 최성진 부회장과 YCM 그룹을 물 먹이기 위한 계획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았다.

그러다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뿌요네 회장에게 역할을 부여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요네 회장님, 최성진 부회장과 YCM 그룹의 대리인 자격으로 박철헌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입국해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그 사람을 한 번 만나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가 그자를 만나서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누면 될까요?”

“회장님께서는…….”

겨울의 얘기를 듣고 뿌요네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전까지 자기는 겨울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걸.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겨울은 지극히 평범한 역할을 부여했다.

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토탈 컨소시엄이 이미 H&J 컨설팅에 송유관 건설공사를 넘겨준 상태이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뿌요네 회장은 겨울의 의도를 단숨에 이해했다.

만약에 자기가 설레발쳐서 박철헌 사장의 의심을 사기라도 한다면,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겨울은 지금 이 점을 고려해서 자기에게 평범한 역할만을 맡긴 것이리라.

“한 부사장님, 나한테 부여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보겠습니다.”

* * *

한편, 박철헌 사장은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최성진 부회장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핸드폰을 들어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10분.

서머타임으로 인해서 한국과 프랑스의 시차가 일곱 시간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전화가 걸려오겠군.”

윙윙―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이 진동했다.

누가 전화를 걸어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부회장님.”

[박 사장, 지금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고 있으니까 발언에 신중을 기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YCM 그룹의 임지태 회장님께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와 잉가 3댐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서 차례로 브리핑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먼저 송유관 건설공사는 우간다의…….”

박철헌 사장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두 건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상세하게 보고했다.

[박 사장, YCM건설이 두 건의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떻게 될까?]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 봐야 하겠지만, 상당히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알았어. 조금 있다가 임 회장님하고 내가 프랑스로 출발할게.]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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