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70화 (170/328)

[170화] 대단한 사람들

며칠 뒤.

겨울은 어젯밤의 일을 보고하기 위해서 정명훈 사장을 찾아갔다.

“한 부사장, 아침부터 어쩐 일이야?”

“사장님께 모닝커피 얻어 마시러 왔습니다.”

“나도 한 잔 마시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네.”

“그럴 줄 알고 비서한테 사장님 것까지 주문하고 들어왔습니다.”

잠시 후, 비서가 커피를 내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정명훈 사장은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얘기해 봐.”

“어젯밤에 마사카 부통령님께 전화를 받았는데, 토탈이 CNOOC의 지분을 큰 어려움 없이 인수했답니다.”

“얼마에 인수했다고 하는데?”

“1달러라고 합니다.”

정명훈 사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우간다의 유전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CNOOC가 보유한 지분의 가치는 약 15억 달러 정도였다.

우간다와 탄자니아는 CNOOC 측에 송유관 건설 공사 지연과 관련해서 5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따라서 CNOOC는 5억 달러를 지불하고 남은 금액인 10억 달러 정도에 유전 개발 프로젝트의 지분을 토탈에 매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불과 1달러에 지분을 넘겼다고 한다.

뜸들이지 않고 그 이유를 직설적으로 물었다.

“마사카 부통령과 문두야 부통령이 백도어 설치 건에 대한 피해 보상으로 각각 5억 달러씩 청구했다고 합니다.”

“백도어 설치 건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로부터 이미 보상받지 않았나?”

“5억 달러는 텐궈리 회장 개인에게 청구하는 피해 보상이었답니다.”

“하여간 대단한 사람들이구먼.”

정명훈 사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도 사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15억 달러를 뿌요네 회장이 대신 부담해 줬다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대한 그룹은 예정대로 15억 달러에 지분을 인수하면 되겠네?”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드르륵―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부투야 실장이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현재 새벽 1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었다.

그가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왔다는 의미는 무언가 중요한 안건이 있다는 뜻이다.

즉시 정명훈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부투야 실장님.”

[한 부사장님, 배가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좋은 처방이 없습니까?]

겨울은 부투야 실장이 전화를 걸어온 이유를 단숨에 알아챘다.

그와 절친인 문두야 부통령이 CNOOC로부터 피해 보상금을 받았다고 거하게 자랑한 것이리라.

백도어와 관련해서 부투야 실장이 CTG로부터 피해 보상금을 받아 낼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두 가지.

CTG 본사가 있는 중국으로 쳐들어가거나, CTG 회장을 홈그라운드인 콩고민주공화국으로 불러들이는 방법이다.

그는 전자는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후자를 집중적으로 궁리했을 것이다.

결국 묘안을 찾지 못해서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고.

겨울은 짧게 방법을 생각해 내고, 부투야 실장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치료제가 하나 있기는 합니다만, 조금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빨리 말씀해 보세요.]

“잉가 3댐 공사의 계약 해지 계약서에 CTG 회장이 직접 사인해야 한다고 통보하십시오.”

[CTG 회장이 오지 않겠다고 버티면 어떻게 하죠?]

“천유런 외교부장에게 전화 한 통 해 주면, 후다닥 달려올 겁니다.”

[하하,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CNOOC의 사례가 CTG 측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재빨리 움직여야 할 겁니다.”

[그렇게 할게요.]

“이제 편안한 밤 되십시오.”

[나중에 통화할게요.]

뚝.

천유런 외교부장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 급하게 전화를 먼저 끊어 버린 것이리라.

그와 동시에 정명훈 사장이 겨울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는 CTG 회장이 크게 당할 차례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반가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사 대표로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일을 마무리하고 뒤늦게 한국으로 귀국한 하도진 이사였다.

“하 이사님, 어서 오십시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겨울은 그를 격하게 환영했다.

“부사장님, 그동안 잘 있었습니까?”

“덕분에요.”

겨울과 짧게 인사를 나눈 하도진 이사는 정명훈 사장에게 다가가서 정중한 자세로 인사했다.

“사장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하 이사, 오랜만에 악수나 한번 하자고.”

“네, 사장님.”

하도진 이사는 재빨리 정명훈 사장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정명훈 사장은 내선 전화로 비서에게 장대산 부사장과 이승훈 상무를 부르라고 지시 내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집무실에 도착했다.

초면인 그들을 서로 소개시키고 상석에 앉은 정명훈 사장은 활짝 웃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하 이사,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어?”

“아침에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곧바로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피곤하지 않아?”

“퍼스트 클래스에 앉아서 왔기 때문에 그다지 피곤하지 않습니다.”

정명훈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H&J 컨설팅의 해외 출장 규정은 대한 그룹과 동일하기 때문에 사장과 부사장을 제외한 임원들은 비즈니스 석을 이용해야 한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하도진 이사는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했지만.

“하 이사, 우리 회사 출장 규정은 알고 있지?”

하도진 이사는 어제 콩고민주공화국의 은질리 공항에서 겪은 황당한 사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비행기 탑승권을 발급받으려고 항공사 창구 직원에게 여권과 e티켓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창구 직원은 비즈니스석이 아니라 퍼스트 클래스 탑승권을 발급해 주었다.

창구 직원에게 탑승권이 잘못 발권됐다면서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문제없이 발권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영문도 모르고 퍼스트 클래스에 앉아서 우리나라까지 오게 되었다.

생각을 끝낸 하도진 이사는 공항에서의 일을 사실대로 보고했다.

“…이렇게 된 겁니다.”

“음, 그렇다는 말이지?”

겨울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자신도 지난 2월에 똑같은 경험을 겪었으니까.

“하 이사님, 제가 이유를 알려 드릴까요?”

“빨리 말씀해 주십시오. 궁금해 죽겠습니다.”

“지난 2월 말에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만났던 프리먼 서기관을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그동안 고생했다면서, 귀국 선물로 비행기 티켓을 업그레이드해 준 겁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제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십시오.”

자신의 역할을 끝낸 겨울이 2선으로 물러났다.

정명훈 사장이 즉시 물었다.

“하 이사, 나한테 보고할 것이 있나?”

“연합군들이 중국에 수출하고 있는 자원들의 리스트를 제가 가지고 왔습니다.”

“물량은 어떤데?”

“제법 됩니다.”

“연합군들은 중국과 언제 거래를 중단할 예정이야?”

“6월 말입니다.”

6월 말이라는 대답에 정명훈 사장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석유를 포함한 자원들은 공산품을 수출입하는 것보다 절차도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따라서 남은 3개월 동안에 인도와 대한 그룹에 자원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

문제는 인도 측 카운터 파트너가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정명훈 사장은 장대산 부사장한테 말을 건넸다.

“장 부사장, 해리슨 상원의원님께 아직 연락이 없었나?”

“오늘이나 내일 중에 연락해 준다고 했습니다.”

“알았어. 그리고 C&B 코리아와 김윤중 사장에 대한 조사는 모두 끝났나?”

“보고서를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야. 중요한 내용만 간략하게 얘기해 봐.”

“김윤중 사장은 한국석유공사에…….”

하지만 겨울에게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에 장대산 부사장의 보고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액정에 뜬 전화번호를 확인한 겨울은 급하게 입을 열었다.

“국가 번호가 91이면 어느 나라입니까?”

“인도입니다.”

이승훈 상무가 재빨리 대답했다.

겨울은 해리슨 상원의원이 연결해 준 인도 측 카운터 파트너라고 판단 내리고,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겨울입니다.”

[한 부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인도 정부에서 상공부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로히트 샤르마라고 합니다.]

역시 겨울의 추측이 맞았다.

“반갑습니다, 샤르마 장관님.”

[한 부사장님, 정말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해리슨 상원의원님과의 관계를 증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겨울은 가장 임팩트가 있는 것이 무엇일까 짧게 생각한 후,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장관님, 해리슨 상원의원님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겨울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와 촬영한 사진을 여러 장 보내 주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네, 샤르마 장관님.”

[사진 속의 인물들을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휠체어에 앉아 계신 분은 알고 계실 것이고, 체격이 좋은 분이 루퍼트 국무부 장관님, 그 옆에 서 계신 분은 해인스 상무부 장관입니다. 그리고 한국인들 중에서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이 H&J 컨설팅의 대표이사인 정명훈 사장님, 키가 큰 사람이 저, 옆에 서 있는 사람이 해리슨 상원의원님의 외아들인 장대산 부사장입니다.”

[한 부사장님, 세 분들과의 친분 관계는 어떻습니까?]

친분관계라…….

얼마든지 허세를 부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기 때문에 겨울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해리슨 상원의원님과 해인스 장관님은 수시로 통화할 수 있는 사이고, 루퍼트 장관님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제 자원 거래와 관련해서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눴으면 하는데 괜찮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해리슨 상원의원께서는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자원들을 국제가격보다 낮게 수입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가격이 저렴합니까?]

겨울은 오코사 실장 등으로부터 가이드라인을 받아 놓은 상태였지만, 순진하게 그것까지 얘기해 줄 마음은 없었다.

협상 과정에서 가격은 얼마든지 변동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셀러와 직접 만나서 협상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셀러가 누구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나이지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알제리, 탄자니아, 우간다 정부입니다.”

[한 부사장님은 그 나라들과 어떤 관계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알제리를 제외한 네 나라의 대통령님들과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는 사이입니다.”

[설마… 허언은 아니겠지요?]

샤르마 장관의 목소리에 의심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겨울은 배가 점점 산으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라서 거둬들일 수는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판을 키워 보기로 결정했다.

“지금부터 한 시간 이내에 네 나라의 대통령님들이 장관님께 전화를 걸어 주실 겁니다.”

[한 부사장님, 지금 아프리카 대륙은 새벽 시간입니다.]

“제가 방금 전에 그분들과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는 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좋습니다. 한 부사장님의 능력을 믿어 보겠습니다.]

샤르마 장관과 통화를 끝낸 겨울은 곧바로 부투야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현재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내 드릴 테니까, 실장님께서 힘을 써 주십시오.”

[샤르마 장관이 생각보다 의심이 많은 것 같네요.]

“저도 실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알아서 조치를 취해 놓을게요.]

“고맙습니다.”

[제가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하, 그렇게 되나요?”

겨울은 부투야 실장과 몇 마디 대화를 더 주고받은 후, 통화를 종료했다.

“이 상무는 나가서 일 보고, 하 이사는 직원들과 상견례를 끝내고 다시 돌아와.”

“네, 사장님.”

장대산 부사장은 그 막간을 이용해서 C&B 코리아와 김윤중 사장에 대해서 조사한 것을 정명훈 사장과 겨울에게 빠르게 설명해 나갔다.

결론적으로 의심을 살 만한 구석은 없었다.

두 사람이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사이, 하도진 이사는 뭐가 그리 급한지 벌컥 문을 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당연히 정명훈 사장에게 한마디 들었다.

“하 이사, 직원들과 상견례 한 거 맞아?”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고, 조직 책임자들과는 오늘 저녁때 회식하기로 했습니다.”

“나하고 한 부사장, 장 부사장도 참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그럼 장소를 좋은 곳으로 예약해야겠네요?”

“왜?”

“사장님께서 쏘실 거잖아요.”

능청스러움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하도진 이사였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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