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46화 (146/328)

[146화] 모두를 위한 거짓말

H&J 컨설팅 임원 회의실.

잉가 3댐 건설 공사, 송유관 건설 공사와 관련된 긴급회의는 정확히 10시 30분에 시작됐다.

정명훈 사장이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희가 갔어야 하는데, 오시라고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정 사장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속담을 모르세요?”

“하하, 그렇게 되는 겁니까?”

“정 사장, 긴급회의 안건이 무엇인지 궁금하니까, 어서 시작합시다.”

“저 대신 한겨울 부사장이 브리핑할 예정입니다.”

정명훈 사장은 겨울에게 발언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어젯밤에 마사카 우간다 부통령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겨울은 마사카 부통령, 부투야 실장과의 통화 내용을 회의 참석자들한테 상세하게 브리핑했다.

“…현재 이런 상황입니다. 여러분께서 묘안을 찾아 주십시오.”

겨울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조병석 실장이 질문을 던졌다.

“한 부사장님, 마사카 부통령이 H&J 컨설팅과의 계약을 고집부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돈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돈 때문이라뇨?”

“저희가 수주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건마다 1.5%의 커미션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상태입니다.”

조병석 실장은 재빨리 암산을 통해서 커미션이 얼마인지 계산해 봤다.

‘공사 예정 금액이 35억 달러이니까…….’

5,250만 달러.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조병석 실장은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겨울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한 부사장님, 커미션 1.5%를 우리 회사 또는 토탈 측에서 건네주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전적으로 찬성합니다만… 마사카 부통령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화해서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전화로 물어보기가 껄끄러운 점이 있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겨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겨울의 예측이 맞다면 상관없겠지만, 만약에 틀리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꼴이 된다.

이 문제를 무리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과 토탈이 조금씩 양보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맞아! 그게 있었지!”

송훈석 회장은 무릎을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자, 무안함을 느낀 송훈석 회장은 슬그머니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정 사장, 송유관 건설 공사는 H&J 컨설팅이 수주한 후, 우리 회사가 넘겨받는 것으로 가닥을 잡읍시다.”

유통 단계가 복잡할수록 유통 마진이 추가되어 제품 가격은 상승하고, 당연히 유통 업체의 이익률은 하락한다.

특히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제품 가격이 고정되어 있는 경우에 유통 업체의 이익률은 더욱 하락할 수밖에 없다.

송유관 건설공사도 마찬가지.

H&J 컨설팅이 끼어듦으로 인해서 대한건설의 이익을 나눠 먹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건설공사의 경우 이익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공사를 실행할 대한건설은 자칫 손해 볼 수도 있는 상황.

정명훈 사장은 이점을 언급하며 송훈석 회장에게 해결 방안을 물었다.

“토탈의 뿌요네 회장이 CNOOC의 텐궈리 회장한테 페널티 명목으로 10억 달러를 받아 냈다고 합니다. 이 중에 일부를 송유관 건설 공사에 투입해 달라고 요청하면, 큰 문제 없지 않을까요?”

“아,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송유관 건설 공사와 관련해서 뿌요네 회장과의 협상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H&J 컨설팅은 모른척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겨울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회장님, 우간다 정부는 송유관 건설 공사를 최대한 빨리 착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감안해 주십시오.”

“우리도 그러고 싶은데, 토탈이 아직까지 CNOOC의 지분을 매입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조병석 실장은 뿌요네 회장과 언제든지 통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놓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그에게 전화해서 협상 타결 소식을 전하고, CNOOC의 지분을 최대한 빨리 인수해 달라고 부탁한 상태였다.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하고, 송훈석 회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회장님, 제가 조금 전에 뿌요네 회장과 통화했는데, 곧 행동으로 나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이달 안에 CNOOC의 지분을 인수할 수 있도록 부탁해 보세요.”

“네, 회장님.”

잠시 대화가 끊어진 틈을 타서 정명훈 사장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 저희가 송유관 건설 공사와 잉가 3댐 공사를 수주하려면 타당성 검토부터 진행해야 하는데, 아직 대한 그룹 측에서 직원들을 보내 주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직원들이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이곳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줄게요.”

“네, 알겠습니다. 이제 잉가 3댐 공사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 봤으면 합니다.”

문세형 대한건설 사장은 잉가 3댐 공사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워낙 공사 규모가 크기 때문에 대한건설 단독으로는 댐 건설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

다른 건설 회사와 컨소시엄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그는 작년에 잉가 3댐 건설 공사 입찰에 공동으로 참여한 프랑스의 VINCH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중국의 CTG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퇴출됨으로 인해서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스페인의 ACS가 반발할 가능성이 아주 높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들이 잉가 3댐 건설 공사와 관련해서 소송이라도 걸게 되면, 원만하게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공사 착공 시기가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정 사장님, 잉가 3댐 공사를 착공하기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CTG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ACS가 반발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문세형 사장님, 해결 방안을 제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정명훈 사장보다 겨울의 입이 먼저 열렸다.

“네, 말씀해 보세요.”

“제가 답변 드리기기 전에 건설 공사의 경우 평균 이익률을 몇 %정도 되는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10% 정도로 보면 적당할 겁니다.”

“제가 부투야 실장님과 통화하면서, ACS가 반발할 가능성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부투야 실장님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계약 파기에 대한 위약금은 공사 예정 금액의 10%라고 하시면서, 계약 파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중국의 CTG가 제공했다고 하셨습니다.”

즉, ACS는 CTG 측에 위약금으로 14억 달러를 요구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ACS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10%의 이익을 챙겨 갈 수 있다.

단, CTG 측이 잘못을 인정하고, 실제로 페널티를 부담해 준다는 전제 조건하에서.

그 문제는 두 회사가 알아서 해결할 일이지, 제3자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었다.

“아, 무슨 말인지 감 잡았습니다.”

“바통고 대통령님께서는 상반기 중에 착공하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저희가 콩고민주공화국 측과 계약을 빨리 체결할 수 있도록 대한건설 측에서 적극적으로 백업해 주십시오.”

“아무리 늦어도 4월까지는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상반기 중에 착공할 수 있습니까?”

“서두르면 가능할겁니다.”

윙윙―

그때, 겨울의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오코사 실장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의 전화는 반드시 받아야 했다.

겨울은 회의 참석자들한테 양해를 구하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코사 실장님, 나이지리아는 아직 새벽 시간 아닙니까?”

[부사장님, 중국과의 협상에 가장 힘을 많이 쓴 나라는 우리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코사 실장의 목소리에는 서운한 감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겨울은 그가 섭섭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마사카 부통령과 부투야 실장이 자기에게 요구한 조건이 그의 귀에 들어간 것이리라.

그의 서운함을 풀어 주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이지리아가 제일 시급하다고 한 프로젝트가 뭐였더라? 맞아, 그게 있었지!’

겨울은 모두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송훈석 회장님하고 나이지리아에서 시급하게 진행해야 할 프로젝트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오코사 실장의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국 건설사가 철수하면, 곧바로 대한건설이 현장을 실사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고 있겠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4월까지는 우리나라에서 내쫓아 버리겠습니다.]

“그럼 송 회장님께 5월 초에 현장을 실사할 수 있도록 부탁해 놓겠습니다.”

[하하, 알았어요.]

“내일 협정서 체결이 끝나면 전화 주십시오.”

[그렇게 할게요.]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자, 송훈석 회장이 질문해 왔다.

“한 부사장, 오코사 실장과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나요?”

“현재 라고스에서 아부자까지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중국 건설사가 시공하고 있는 중인데, 대한건설에서 곧바로 공사를 넘겨받아서 시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겨울은 오코사 실장과 통화한 내용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나이지리아 고속도로 공사를 제일 먼저 시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암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요.”

“라고스 항구 재정비 공사도 곧 시행해야 할 겁니다.”

“일감이 산더미처럼 몰려오니까, 겁이 덜컥 나네요.”

“협상이 타결되면, 더 많은 일감이 몰려들기 시작할 겁니다.”

“우리한테 할당된 일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화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감이나 많이 몰아주세요.”

“그 문제는 저희 회사 사장님께 말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울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정명훈 사장은 만족한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대한 그룹이 저희 회사에 도움 주신만큼 보답해 드릴 테니까, 염려 마십시오.”

“하하, 고마워요.”

“말이 나온 김에 추가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저희 회사에 총무팀과 인사팀을 신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원들을 추가로 선발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 줄 테니까, 염려 마세요.”

“손님들을 위해서 점심 식사는 저희가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정 사장,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욕해요.”

“하하, 알겠습니다.”

* * *

“우리가 빈손으로 찾아가도 될까?”

겨울의 사무실을 방문하기 위해 이동 중인 SH무역의 정상호 사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호영에게 물었다.

“사장님, 겨울이가 우리 회사에 올 때 뭐라도 들고 오는 거 봤습니까?”

“이 녀석아… 우리는 을이고, H&J 컨설팅은 갑이잖아.”

“겨울이가 갑을 관계를 따지는 거 봤어요?”

“하긴… 네 말이 맞다.”

문득 호영의 머릿속에 어제 오후의 일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은센기 사장과 통화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아냈다.

VIP들이 선급금까지 주면서 H&E 트레이딩을 통해 정수기를 수입하려는 이유가 겨울이 때문이란다.

그에게 커다란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그러면서 은센기 사장은 이 얘기가 정명훈 사장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호영은 은센기 사장한테 들은 얘기를 정상호 사장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겨울을 위해서라도 정수기 수출은 5만 대 건을 제외하고, 절대로 언급하시면 안 돼요.”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은센기 사장을 맞이할 준비는 모두 끝이 났니?”

“네. 원효석 실장님께서 완벽하게 스케줄을 수립해 놓으셨어요.”

“그런데 가쿠타 부장 숙소는 어떻게 해야 하나?”

“H&J 컨설팅에서 가쿠타 부장한테 사택 개념으로 오피스텔을 무상으로 제공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룸을 하나 더 예약해 놔.”

“그렇게 할게요.”

“그나저나 은센기 사장이 다른 선물 리스트를 가지고 오지 않을까?”

호영이도 그게 궁금해서 은센기 사장을 이리저리 건드려 보았지만,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무언가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한데… 입을 꾹 다물고 있더라고요.”

“혹시 겨울에게 먼저 컨펌 받고 우리한테 선물 리스트를 주려고 한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아프리카 대륙에 더도 말고 5억 달러만 더 수출했으면 좋겠다.”

“걱정 마세요.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달성해 볼게요.”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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