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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128화 (128/328)

[128화] 설마 나까지?

다음 날, 아침.

겨울은 냉장고에 들어 있던 페트병을 꺼내서 꿀꺽꿀꺽 단숨에 삼켜 버리고,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침대로 올라가 뻗어 버렸다.

“아이고, 속 쓰려 죽겠네.”

한참 동안 멍 때리며 침대에 누워 있던 겨울은 어젯밤의 술자리를 기억에 떠올렸다.

어젯밤에 USB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술을 마시는 것을 극도로 자제했다.

하지만 부투야 실장이 정명훈 법인장과 자신의 송별식이 너무 밋밋하다면서 발동을 거는 바람에 예상치 않게 빠른 시간 안에 필름이 끊겨 버렸다.

깨어나 보니 이곳이었고.

“아차, 내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하도진 부지점장과 만나서 아침을 같이 먹기로 한 약속이 생각났다.

대충 샤워를 끝내고 짐을 챙겨서 로비로 내려가니, 하도진 부지점장이 퀭한 얼굴로 겨울을 반겼다.

“한 대리, 어서와.”

“부지점장님, 얼굴이 말이 아니신데요?”

“나는 한 대리처럼 팔팔한 20대가 아니야.”

“하하, 20대인 저도 죽겠습니다.”

“우리 모닝커피나 한 잔 할까?”

“네? 아침은요?”

“속이 쓰려서 아침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

“빈속에 커피 마시면 속이 더 쓰리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싫다는 말이야?”

“아이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호텔 커피 전문점.

플라스틱 컵에 들어 있는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하도진 부지점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이유를 얘기해 봐.”

겨울은 어젯밤에 술자리에서 하도진 부지점장도 나이지리아에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일사천리로 정명훈 법인장의 승낙까지 받아 냈다.

당연히 하도진 부지점장이 자기에게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으나, 그때는 이미 술에 만취한 상태였다.

어쩔 수없이 아침 먹으면서 얘기해 주겠다고 미뤄 놓았는데, 그는 잊어버리지 않고 이유를 물어오고 있었다.

겨울은 다시 한번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고, 하도진 부지점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부지점장님이 앞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담당하시려면, 바하리 대통령님하고 오코사 실장님과 인사를 나누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요.”

“어제 법인장님이 했던 얘기와 다르잖아.”

“법인장님은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의 업무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자주 오지 못할 겁니다. 저 역시도 다른 대륙의 나라들에도 출장 다녀야 해서 아프리카 대륙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할 거고요.”

“아프리카 대륙이 아닌 다른 대륙의 나라들에도 발을 뻗을 예정이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나라가 70개국입니다.”

하도진 부지점장은 H&J Investment의 설립 목적을 이제야 명확하게 깨달았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시작 당시부터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붕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미국이 개입함으로 인해서 더 빨리 붕괴될 것이고.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붕괴되면, 참여한 나라에는 필연적으로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 혼란을 틈타 보란 듯이 개입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판단한 듯했다.

대책을 강구하던 중에 겨울과 정명훈 법인장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한다는 정보를 취득하고, 해리슨 상원의원은 두 사람을 미국으로 초청해서 이런저런 시험 끝에 합격점을 준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에게 미국의 역할을 대신 수행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투자회사를 H&J 컨설팅에 계열사로 편입시켜 준 것이리라.

긴 상념을 거두어들인 하도진 부지점장은 겨울과 대화를 계속했다.

“우리 회사가 70개국하고만 비즈니스를 진행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한 말씀입니다.”

“알았어. 나하고 김 지점장님이 아프리카 대륙을 총괄 관리하면 되겠네?”

“당분간 그렇게 하셔야 할 겁니다.”

“당분간이라니?”

하도진 부지점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우리 회사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대륙에도 발을 뻗힐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현지 사정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전문가를 채용하면 되잖아.”

“그들을 관리 감독할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알았어. 그건 그렇고, 우리 회사의 일감이 갑자기 많아져서 일손이 부족할 때에는 어떻게 할 거야?”

“그래서 저희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회사들로부터 일시적으로 인원들을 지원받을 생각입니다.”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예정이라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대한 그룹에서 우리의 카운터 파트너 회사는 대한 건설인가?”

“아닙니다. 전략기획실에서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하하하, 그렇다는 말이지?”

하도진 부지점장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겨울의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곧바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부지점장님, 설영석 이사라는 분이 아직도 전략기획실에 근무하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하더라고.”

“앞으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네요?”

“후후, 그렇게 되겠지.”

그때, 40대로 보이는 흑인 남자가 겨울과 하도진 부지점장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한겨울 부사장님. 저는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는 제임스 프리먼 서기관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프리먼 서기관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있으니까, 앉아서 대화를 나눠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하도진 부지점장의 옆자리에 앉아, 겨울에게 말을 건넸다.

“제 옆에 앉아 계신 분을 소개시켜 주실 수 있습니까?”

“이분의 이름은…….”

겨울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프리먼 서기관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님, 정말 죄송한 말씀인데, 하도진 부지점장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저희가 설립 예정인 H&J 컨설팅과 H&J Investment의 핵심 멤버 중에 한 분이십니다.”

믿어도 된다는 말이었다.

프리먼 서기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겨울과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한 부사장님, 지금 상황이 상당히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어떤 상황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중국 정부는 오코사 실장과의 협상을 이번 주 안에 끝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유런 외교부장이 오늘 나이지리아에 도착하면, 본격적인 협상은 수요일인 내일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면 주말까지는 불과 4일.

이 짧은 시간에 협상을 타결한다는 말은 코끼리가 냉장고 안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 터였다.

겨울은 자신의 생각을 프리먼 서기관에게 밝혔다.

“천유런 외교부장이 협상에 대한 모든 전권을 가지고 나이지리아로 향하는 것이 확인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랐다.

만약에 천유런 외교부장이 모든 연합군이 인정할만한 협상 카드를 꺼낸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협상은 타결될 수 있기 때문에.

“프리먼 서기관님, 미국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저희도 협상이 타결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중국에 2차로 전쟁을 선포할 나라들이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협상 타결 시기는 언제쯤이 적당할까요?”

“본국에서는 3월 15일 이후가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제가 오코사 실장님을 만나서, 미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래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도진 부지점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프리먼 서기관님, 중국이 연합군의 결속을 깨트리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할 텐데,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해 놓으셨습니까?”

“한 부사장님과 하 부지점장님께서 연합군이 단일대오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만,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저희의 핸드폰을 중국 정보기관이 도감청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할 겁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프리먼 서기관은 핸드폰을 들고 커피 전문점 밖으로 이동했다.

그 막간을 이용해서 하도진 부지점장이 겨울에게 급하게 말을 걸었다.

“한 대리, 프리먼 서기관이 미국 대사관 소속인지 신분증을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왜?”

“미국 정부에서 저하고 법인장님을 은밀하게 경호하고 있는 중입니다.”

“프리먼 서기관이 한 대리를 경호하고 있는 중이라고 봐야 하나”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한 대리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인지 몰랐어.”

“부지점장님도 곧 미국 정부로부터 은밀하게 경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설마… 나까지?”

“부지점장님은 우리 회사의 핵심 임원이잖아요.”

“하하, 그렇게 되나?”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밖으로 나간 프리먼 서기관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하도진 부지점장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하 부지점장님, 번호를 제 핸드폰에 입력해 주십시오.”

“한 부사장 핸드폰 번호는요?”

“제 핸드폰에 이미 입력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하도진 부지점장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입력한 후, 프리먼 서기관에게 건네주었다.

“여러분이 나이지리아에 도착하면, 저희 대사관 직원이 연락을 취할 겁니다. 그 직원을 만나서 핸드폰을 건네받으시면 될 겁니다.”

“도감청이 불가능한 핸드폰이겠죠?”

“네, 그렇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프리먼 서기관이 겨울에게 살짝 고개 숙여 목례한 후, 커피 전문점 밖으로 퇴장했다.

그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본 겨울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하도진 부지점장에게 말을 건넸다.

“부지점장님이 연합군의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 알고 계시죠?”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하도짐 부지점장이 손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하고 법인장님은 곧 우리나라로 돌아갈 예정이잖아요.”

“알았어.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 볼게.”

“알제리는 부투야 실장님께 부탁해 놓으시면 될 겁니다.”

“그렇게 할게.”

약속한 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로비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역시 퀭한 얼굴의 정명훈 법인장 등과 만난 뒤, 나이지리아로 떠나기 위해 은질리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명훈 법인장이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겨울에게 말을 걸었다.

“가쿠타 과장은 어디 갔어?”

“대사관에 취업 비자 신청하러 갔습니다.”

“부투야 실장님께 전화해야 하는 거 아니야?”

“장대산 씨가 이미 조치를 취해 놨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USB들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궁금하지?”

“네.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현재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진행 중에 있거나 진행 예정인 프로젝트는 모두 17건이고, 금액은 320억 달러야. 이중에는 잉가 3댐 건설 공사도 포함되어 있어.”

겨울은 기쁘다기보다 걱정이 먼저 앞섰다.

H&J Investment가 미국 정부로부터 1차로 투자받기로 한 자금은 1,000억 달러였고, 이중에 320억 달러를 콩고민주공화국에 투자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다른 나라에 투자해야할 것까지 감안하면, 1,000억 달러는 금방 소진될 것이 분명하다.

이 속도대로라면 투자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오늘 새벽에 해인스 상무부 장관하고 통화했는데, 돈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네, 알겠습니다.”

“USB는 나중에 한가할 때 건네줄게.”

“네, 법인장님.”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타서 하도진 부지점장이 입을 열었다.

“저하고 한 대리가 호텔 안에 있는 커피 전문점에 앉아 있는데…….”

하도진 부지점장은 프리먼 서기관과 만나서 나눈 대화 내용을 비교적 상세하게 보고했다.

“…앞으로는 도감청이 불가능한 핸드폰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 부지점장은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아프리카에 머물러 있도록 하고, 추 이사와 김 지점장은 우리와 통화할 때 특별히 신경 쓰도록 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추 이사는 하 부지점장의 후임으로 입이 무거운 직원을 발령 내도록 하라고.”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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