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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100화 (100/328)

[100화] 신념이 아니라 고집

다음 날 오전, H&E트레이딩 사무실.

호영은 약속대로 지난밤에 최종 견적서를 보내왔다.

양측이 서로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가장 중요한 계약서는 우편으로 주고받기로 결정했다.

물품 구입 대금은 H&E트레이딩과 SH무역 대표이사가 계약서에 사인하는 즉시 송금해 주기로 합의했다.

호영과 통화를 끝낸 겨울은 잔뜩 들뜬 표정으로 앉아 있는 가쿠타 과장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가 얼마씩 분배받아야 하는지 금액을 산출해 놓으셨나요?”

“한 대리님은 126만 달러, 은센기 사장님은 36만 달러, 저는 18만 달러를 분배받으면 됩니다.”

“세금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후 정산이기 때문에 본인이 각자 알아서 부담하면 됩니다.”

가쿠타 과장과 대화를 끝낸 겨울은 은센기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 시간 끌지 말고 지금 정리합시다.”

“넵, 알겠습니다.”

은센기는 은행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각자 지정한 계좌에 해당 금액을 송금했다.

운송비 절감액 7만 달러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예비비 명목으로 H&E트레이딩 계좌에 남겨 두었다.

“이제 더 이상 논의할 게 없으면, 점심이나 먹으러 갑시다.”

“오늘 점심은 제가 쏘겠습니다.”

“은센기 사장님, 이번에 돈을 제일 많이 번 사람이 누구죠?”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거금을 손에 쥔 세 사람은 마음껏 기분을 내고 싶었으나, 겨울과 가쿠타 과장이 남아공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식사를 끝내자마자 은질리 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은센기 사장님, 언제까지 택시 운전을 하실 생각입니까?”

“이제 회사에 넉넉한 운영자금이 생겼기 때문에 곧 그만둘 생각입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틈나는 대로 루암바 과장한테 무역 실무를 배우도록 하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한 대리님은 언제까지 대한 그룹에 다닐 생각입니까?”

“저는 대한 그룹에서 끝을 보기로 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버텨 볼 생각입니다.”

“저는 신념이 아니라 고집처럼 들리는 이유가 왜인지 모르겠네요.”

“하하, 그런가요?”

겨울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저는 한 대리님이 스스로 가둬 놓은 틀을 부수고, 뛰쳐나와서 저와 함께 사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은센기 사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한 대리님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인맥들만 잘 관리해도 대성할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은센기와 가쿠타 과장이 진지하게 말했으나, 겨울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겨울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은센기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 대리님, H&E트레이딩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한겨울의 H와 은센기의 성인 E의 합성어라는 사실을.

겨울은 은센기가 회사 이름을 H&E트레이딩이라고 작명했다고 연락을 취해 왔을 때 이를 눈치채고 단칼에 거절했다.

하지만 은센기는 이를 콧등으로도 듣지 않고, 기어이 H&E트레이딩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신청했다.

그에게 고집을 부린 이유를 캐물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멋쩍은 웃음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자기가 모르는 사연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H&E트레이딩을 은센기 사장님이 작명한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부투야 실장님이 작명해서 저한테 통보해 온 겁니다.”

“왜요?”

“저도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봤는데, 한 대리님이 조만간에 대한 그룹을 뛰쳐나올 일이 생길 거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

겨울의 머릿속에 지난주 화요일에 부투야 실장이 한 말이 불현 듯 떠올랐다.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퇴사를 권고했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넘겼지만, 지금은 자기가 모르는 무언가가 등 뒤에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은센기 사장님, 하늘이 두 쪽 나도 제가 대한 그룹을 뛰쳐나올 일은 없을 겁니다.”

“한 대리님, 저하고 내기하실래요?”

“내기요?”

“저는 한 대리님이 3개월 내로 대한 그룹을 그만두는 것에 1달러를 걸게요.”

“이왕이면 10달러로 판을 키웁시다.”

“콜!”

“저도 은센기 사장님한테 10달러를 걸게요.”

“좋습니다.”

그때부터 세 사람의 다소 황당한 내기가 시작되었다.

* * *

며칠 뒤.

겨울은 바통고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선급금 126만 달러 중에서 약간의 자금을 남겨 놓고 테슬라 주식 1만 105주를 과감하게 매입했다.

덕분에 겨울이 보유한 테슬라 주식은 1만 1,000주로 늘었고, 자산은 140만 달러가 넘어갔다.

윙윙―

겨울이 노트북 모니터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호영이 걸어온 전화였다.

다행히 FTA팀 사무실에는 가쿠타 과장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오늘 오전에 은센기 사장이 사인해서 보내온 계약서를 받았고, 물품 대금도 송금받았어.]

“네가 특별히 신경 좀 써 주라.”

[그렇지 않아도 사장님이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야.]

“사장님께서 너무 오버하시는 거 아니야?”

[9,0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의 대통령한테 수출하는 물품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냐?]

“나중을 바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나?”

[무역 회사로서 당연히 기본이지. 그건 그렇고, 이번 설은 어떻게 보낼 거야?]

올해 설은 주말이 끼어 있어서 5일 연휴로, 이틀만 휴가를 내면 무려 9일 가까이 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 이유로 겨울은 한국에 다녀올까 생각하다가, 콩고민주공화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바람에 이곳에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

“이곳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보내야지, 별수 있나.”

[에구, 불쌍한 놈.]

“그럼 네가 놀러 오던가.”

[그럴까?]

“너희 아버지가 퍽도 보내 주겠다.”

[하긴…….]

“우리 부모님께 세배하는 거 잊지 말고.”

그때, 고영규 팀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제 일해야 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어, 그래.]

* * *

같은 시각.

정명훈 법인장은 관리팀장인 추성민 이사와 마케팅 지원팀장인 이용수 부장에게서 업무 보고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이 팀장, 1월 실적은 어떻게 마감할 것 같아?”

“매출은 전년 1월 대비 20% 신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익률은 콩고 지점의 핸드폰 1만 대 수출 건으로 인해서 30% 이상 신장할 것 같습니다.”

“핸드폰을 벌써 수출했다는 말이야?”

“사장님께서 특별히 신경 써 주신 결과로 어제 납품 완료했습니다.”

이용수 팀장과 대화를 중단한 정명훈 법인장은 즉시 김종학 콩고 지점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네, 법인장님.]

“탄자니아와 우간다 정부에 핸드폰을 납품하느라 수고했어.”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두 나라의 분위기는 어때?”

[정중동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언제 본격적으로 행동으로 옮길 것 같은가?”

[제가 문두야 부통령님과 통화했는데, 변수가 생겨서 조금 지연될 것 같다고 합니다.]

“어떤 변수인지 물어봤나?”

[좋은 일인 것 같은데 말을 아끼시더라고요.]

“수고했어. 설 잘 보내고.”

[네, 법인장님.]

김종학 지점장과 통화를 끝낸 정명훈 법인장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이용수 팀장한테 지시를 내렸다.

“고영규 팀장과 한겨울 대리를 부르도록.”

“네, 법인장님.”

똑똑.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고영규 팀장과 겨울이 도착했음을 보고했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정명훈 법인장에게 정중하게 목례하고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잠시 기다렸다가, 정명훈 법인장이 고영규 팀장에게 말을 건넸다.

“고 팀장은 이번 설에 뭐할 건가?”

“한국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한 대리는?”

“이곳에서 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정신없이 바빠질 텐데, 이번 기회에 한국에 다녀오지 그래?”

“저도 그러고 싶은데,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있어서요.”

“그게 뭔데?”

겨울은 오늘처럼 정명훈 지점장에게 보고할 날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시나리오를 하나 구상해 놓고 있었다.

현재 겨울이 추진하는 일은 회사 업무는 개인적인 업무도 혼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말 한 마디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였다.

“지난 주말에 바통고 대통령이 불러서 콩고민주공화국에 다녀왔습니다.”

“그래?”

“중국의 국영기업인 CTG가 바통고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관리들한테 화웨이의 최신 핸드폰을 선물로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핸드폰을 받아야 할지 말지에 대해서 제 의견을 듣고 싶었답니다.”

“CTG라면… 스페인의 ACS와 컨소시엄을 맺어서 잉가 3댐을 건설을 수주한 회사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저는 탄자니아와 우간다 그리고 나이지라의 사례를 들려주며…….”

“잠깐. 나이지리아는 또 뭔가?”

정명훈 법인장이 겨울의 말을 중간에 끊고 물어 왔다.

“아이고.”

겨울이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나이지리아와 관련된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하고, 콩고민주공화국에 대한 얘기를 마저 해 봐.”

“핸드폰 선물을 받고 백도어가 설치되어 있으면 탄자니아 등과 합세해서 중국에 공동 대응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정명훈 법인장은 문두야 부통령이 언급한 변수가 다름 아니라 콩고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바통고 대통령은 CTG 측으로부터 핸드폰 선물을 받았나?”

“어제 1차로 100대를 받았는데, 모두 백도어가 설치되어 있었답니다.”

“중국 놈들이 아주 무덤을 파고 있구먼.”

“저도 법인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잠시 말이 끊긴 틈을 타서 추성민 이사가 입을 열었다.

“한 대리, 조언의 대가로 바통고 대통령님한테 선물받은 건 없었나?”

“선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신 것은 없었고, 부투야 실장한테 잉가 3댐의 착공시기를 최대한 늦추라고 지시한 상태입니다.”

“하하하, 그렇다는 말이지?”

추성민 이사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고영규 팀장에게 말을 건넸다.

“고 팀장은 좋겠네?”

고영규 팀장은 기쁜 마음에 법인장실을 겅중겅중 뛰어다니고 싶은 심정이었다.

FTA 팀의 올해 수주 목표는 모두 50억 달러.

탄자니아와 우간다에서의 핸드폰 기지국 업그레이드와 증설 공사의 규모가 약 50억 달러 정도였다.

별일 없으면 올해 수주 목표는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오랜만에 스트레스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무려 140억 달러짜리 잉가 3댐 공사가 자신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려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올해의 목표치를 훌쩍 넘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부장 승진도 따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다.

고영규 팀장은 활짝 웃으며 추성민 이사의 질문에 대답했다.

“한 대리를 업어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뒷설거지는 고 팀장이 해야 하는 거 알고 있지?”

“네, 물론입니다.”

“올해 FTA 팀이 거하게 사고 한 번 쳐 보라고.”

“네, 이사님!”

고영규 팀장의 우렁찬 목소리에 정명훈 법인장은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겨울에게 고개를 돌렸다.

“한 대리, 이제 나이지리아 건에 대해서 얘기해 봐.”

“나이지리아 바하리 대통령님은 탄자니아의 마지리 대통령님께서 소개시켜 줬습니다.”

겨울은 바하리 대통령과 있었던 일화를 간략하게 보고했다.

“…저한테 부탁 하나를 들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바하리 대통령님께 무엇을 부탁할 생각인가?”

“나이지리아에서 시장 점유율 1위인 MTN이 상반기 중에 핸드폰 기지국 증설과 업그레이드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공사를 달라고 할 생각입니다.”

“지난주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

“구두로만 약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이지리아 건은 우리가 확실한 무언가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비밀로 하자고.”

“네, 법인장님.”

“그리고 설날 아침에 우리 집에 떡국 먹으러 오고.”

“네, 알겠습니다.”

“추 이사만 남고, 모두 돌아가서 일 봐.”

모두 내보내고 추성민 이사와 둘만 남게 된 자리에서 정명훈 법인장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추 이사, 내가 어젯밤에 콩고민주공화국의 부투야 실장님께 전화를 받았어.”

“그분께서 뭐라고 했는데요?”

“이제 한 대리를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게 어떻겠냐고 노골적으로 요청하더라고.”

“법인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한 대리를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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