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번개보다 빠른 업무처리 능력
부투야 실장은 바통고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잉가 3댐 건설 공사를 대한 그룹 컨소시엄에 넘겨줄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단, CTG 측이 자신들에게 선물할 핸드폰에 백도어가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 하에서.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입찰이 끝난 후, CTG 측에서 3개월이 넘은 시점에 감사의 선물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어느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행위였기 때문에.
짧게 생각을 끝낸 부투야 실장은 바통고 대통령의 지시에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대통령님.”
“우리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중국으로부터 빌린 돈이 얼마입니까?”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75억 달러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채를 탕감받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한 대리님의 입에서 나온 얘기가 절대로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특별히 입조심 하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카손가 부총리를 포함한 접견실에 있는 사람들이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다른 얘기를 잠깐 해 봅시다.”
“네, 말씀하십시오.”
“부투야 실장은 오늘 계약서를 작성할 때 김 선물 세트도 포함시키도록 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겨울은 김 선물 세트 납품이 성사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가쿠타 과장이 미래의 비즈니스 거리를 발굴하기 위해서 김 선물 세트를 선물한 것뿐인데.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김 선물 세트의 공급 가격부터 알아야 하는데, 알고 있는 정보가 전무한 상태였다.
겨울은 재빨리 손을 들어서 발언권을 요청했다.
“대통령님, 김 선물 세트와 관련한 계약서는 나중에 작성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저희가 대통령님께 선물한 김과는 브랜드가 다를 수 있고, 가격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김 선물 세트가 홍삼과 우황청심원 선물 세트 가격보다 비쌉니까?”
비싼 김을 찾으면 얼마든지 찾겠지만, 과한 것은 오히려 반감을 키울 수 있었다.
“아닙니다. 그 가격보다는 저렴할 겁니다.”
“그럼 뭐가 문제라는… 흐음,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일어날 테니까, 나머지 대화는 부투야 실장과 나누도록 하세요.”
바통고 대통령은 겨울이 선물로 준 김을 손에 들고 카손가 부총리 등과 함께 접견실을 빠져 나갔다.
이제 접견실에는 부투야 실장과 겨울 일행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겨울이 황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부투야 실장님,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얘기해 보세요.”
“김 선물 세트의 가격을 산출할 시간을 한 시간 정도만 주십시오.”
“한 시간이면 충분할까요?”
부투야 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시간 안에 어떻게든 견적서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알았어요. 한 시간 뒤에 오겠습니다.”
부투야 실장이 접견실 문을 열고 나가자, 겨울은 가쿠타 과장, 은센기와 함께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저는 김 선물 세트의 공급 가격을 파악해 볼 테니까, 가쿠타 과장님은 운송비용등 각종 부대비용을 산출해 보세요.”
“운송은 어떤 방법을 택할까요?”
김 선물 세트는 무게는 무겁지 않지만 부피가 크기 때문에 항공으로 운송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가능성이 있었다.
“컨테이너로 운송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겁니다.”
“한 대리님, 홍삼 선물 세트도 컨테이너로 운송하는 게 어떨까요?”
“가격 차이가 얼마나 될까요?”
“제가 저번에 재미 삼아 산출해 봤는데, 항공으로 운송하는 것보다 약 7만 달러 정도 저렴하게 산출되었습니다.”
7만 달러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럼 그렇게 추진하죠.”
“네, 한 대리님.”
“은센기 사장님은 루암바 과장한테 전화해서 김을 촬영한 사진을 저한테 보내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윙윙―
은센기에게 받은 김 이미지 사진을 호영에게 전송하자마자, 불과 1분이 지나지 않아서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겨울은 지체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호영아.”
[나한테 보내 준 이미지는 뭐냐?]
“방금 전에 김을 만 세트나 주문받았는데, 내가 보내 준 김 이미지를 근거로 해서 견적 좀 뽑아 줘.”
[언제까지?]
“아무리 늦어도 30분 이내에.”
[홍삼과 우황청심원 선물 세트와 같이 계약할 예정이야?]
그의 질문에 겨울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호영의 성격대로라면 시간을 개떡같이 준다면서 버럭 성질부터 내고도 남았을 텐데, 예상과는 다르게 상당히 여유로운 반응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분 이내에 견적을 뽑아 줄 수는 있어?”
[내가 묻는 말에 먼저 대답해.]
“어.”
[우선 네가 보내 준 사진에 있는 김은 너무 싸구려야. 바통고 대통령님의 생신 선물로는 어울리지 않지.]
“네가 김에 대해 알아?”
[인간아, 우리 회사가 무역 회사잖아. 김을 외국에 얼마나 많이 수출하고 있는지 알고 있냐?]
천만다행이었다.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실행력이 빠른 호영이라도 30분 안에 견적을 산출하지 못했을 테니까.
“김이 그렇게 많이 수출되고 있어?”
[우리 회사에서 김을 수출하고 있는 국가가 모두 52개야. 다른 무역 회사들까지 감안하면, 100개 국가는 넘을 거야.]
“알겠어.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내가 적당한 김 선물 세트를 몇 개 뽑아서 보내 줄 테니까, 알아서 선택해.]
“오케이.”
[기타 결제 조건 등은 홍삼과 우황청심원 선물 세트와 똑같지?]
“아마도 그럴 거야.”
[선물 세트가 확정되면 나한테 전화해 줘.]
“그렇게 할게.”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서 호영은 김 선물 세트 사진과 프랑스어로 작성된 설명서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선물 세트의 가격대는 100달러부터 200달러까지 모두 다섯 종류였다.
겨울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200달러짜리 김 선물 세트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다.
“은센기 사장님, 가쿠타 과장님, 김 선물 세트 사진과 설명서를 받았는데, 어느 게 적당할지 의견을 주십시오.”
“어디, 보여 주세요.”
겨울은 노트북을 조작해서 이미지를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보여 주었다.
“저는 150달러짜리가 제일 적당한 것 같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부투야 실장님께 사진을 보여 주고 컨펌받는 게 어떻겠습니까?”
가쿠타 과장의 의견이 타당했다.
김 선물 세트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바이어한테 있으니까.
“좋습니다. 정호영 씨가 보내온 자료를 토대로 해서 모두 다섯 개의 견적을 산출하도록 하죠.”
가쿠타 과장은 능숙한 실력을 발휘해서 불과 30분 만에 최종 견적을 산출해 냈다.
그야말로 번개보다 빠른 업무처리 속도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도 있었다.
접견실에 프린트기가 없어서 이미지와 설명서, 그리고 견적서를 출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 대리님, 사진과 설명서를 저한테 보내 주세요.”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간 가쿠타 과장은 5분 정도 지난 후에 접견실로 돌아왔다.
그는 비어 있는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최종 견적서를 겨울에게 건네주었다.
“한 대리님, 한 번 살펴보십시오.”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최종견적서를 꼼꼼히 살펴본 겨울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퍼펙트한데요?”
“하하, 고맙습니다.”
“그건 그렇고, 홍삼과 우황청심원 선물 세트의 견적서는 수정하지 않았나요?”
“이미 부투야 실장님께 가격 컨펌을 받았는데, 굳이 수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요. 나중에 얘기가 나오면 그때 가서 언급하는 게 어떨까요?”
겨울도 가쿠타 과장의 의견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고 즉각 동의했다.
* * *
부투야 실장은 겨울이 자신에게 한 시간을 달라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한국 사람들의 빠른 업무처리 속도를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시간은 무리라고 예상했다.
게다가 한국은 토요일 밤이었다.
하지만 겨울은 보란 듯이 최종 견적서를 떡하니 자신에게 건네주었다.
그렇다고 내용이 부실한 것도 아니었다.
정성을 들인 듯 고급스러운 김 선물 세트의 이미지와 프랑스어로 표기된 설명서는 또 뭐란 말인가.
그는 호기심이 치솟아 올라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한 대리님, 바통고 대통령님이 김 선물 세트를 구입해 줄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까?”
겨울은 부투야 실장의 오해를 해명하는 것이 급선무라 여겼다.
그의 오해를 제때 풀어 주지 않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데 적잖은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었다.
“사실은 한국에 SH무역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제 친구가 그 회사에 다니는데…….”
겨울은 선물 세트의 사진과 설명서를 입수하게 된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럼 SH 무역이 우리에게 홍삼과 우황청심원 선물 세트를 공급하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사실 부투야 실장은 은센기로부터 홍삼과 우황청심원 선물 세트의 견적을 받고 나서 검증 과정을 거쳤다.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대사한테 홍삼과 우황청심원 선물 세트의 이미지 사진을 보내주고, 가격을 파악해 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하루 뒤, 한국 주재 대사는 은센기에게 받은 견적 가격보다 최소 10% 이상 비싼 가격을 보내왔다.
그 당시에 어떤 방법으로 견적을 이렇게나 싸게 산출했는지 궁금함을 품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해소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대리님, SH 무역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분과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이유를 제가 알 수 있을까요?”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럽니다.”
“제가 의사를 먼저 타진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겨울은 즉시 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벌써 확정한 거야?]
“그게 아니라 카바나 바통고 대통령님의 비서실장이신 키부토 부투야 님이 너하고 통화하고 싶다고 해서.”
[뭐, 뭐라고?]
호영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겨울은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긴장을 풀어 주는 데 주력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 인식하지 말고, 바이어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해.”
[그게 마음대로 되냐?]
“처음에는 조금 떨리지만,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후우, 알았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통화해 볼게.]
“잘 생각했어.”
[그건 그렇고, 부투야 실장님이 나하고 통화하고 싶은 이유가 뭐라고 하든?]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김 선물 세트와 관련해서 물어볼 게 있는 것 같은데…….”
[프랑스어로 통화해야겠지?]
호영이가 프랑스어도 구사할 수 있다니, 정말 의외였다.
“그렇게 하면 좋아하시겠지.”
[알았어. 바꿔 줘.]
겨울은 부투야 실장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SH 무역에 근무하고 있는 정호영이라고 합니다.]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유창한 프랑스어.
부투야 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카바나 바통고 대통령님을 모시고 있는 키부토 부투야라고 합니다.”
[한겨울 대리한테 전화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전화로 인사드려서 죄송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그나저나 프랑스어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신데, 혹시 전공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대학 시절에 경영학을 전공했고, 프랑스어는 익혀 두면 좋을 것 같아서 틈틈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한겨울 대리님과는 친합니까?”
[한 대리와 제일 친한 친구가 저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호영의 말에 확신이 실려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는 것은 실례라고 여기고 부투야 실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정호영 씨는 좋은 친구를 둬서 좋겠네요.”
[한 대리를 좋게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보다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은 제가 한국 대사를 통해서 홍삼과 우황청심원 선물 세트의 가격을 파악해 봤는데, SH무역에서 제시한 가격보다 10% 이상 가격이 비쌌습니다. 저희한테 저렴하게 견적을 제시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 대리가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결제조건에 있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