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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63화 (63/328)

[63화]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

겨울과 정명훈 지점장이 반투야의 전화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최고급 사양의 킹스타를 판매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무케나 사장에게 부탁받은 코발트 광산 건에 대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정명훈 지점장의 아침 인사는 한결같았다.

“부지점장, 어젯밤에 반투야 씨한테 전화가 왔나?”

“그게…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으음, 반투야 씨가 립 서비스를 한 건 아닐까 싶네만…….”

그럴 가능성이야 있었지만, 당시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겨울은 아닐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킹스타를 구입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사과의 전화라도 걸어올 겁니다.”

“먼저 전화를 거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지?”

겨울도 그 생각을 수십 번도 더했다.

그러나 반투야가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끝내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알았어.”

이 말과 함께 정명훈 지점장은 핸드폰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임원 정기 인사가 오늘내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저기에 소식을 물어보려는 것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키고 업무를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

드르륵―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거래처에서 걸려온 전화라 생각한 겨울은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발신자는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투야였다.

“왔다!”

겨울이 큰 목소리로 외치자, 직원들의 시선이 모두 그를 향했다.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회의실에서 통화 중이던 정명훈 지점장이 급하게 뛰어나올 정도였다.

겨울은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반투야 씨.”

[한겨울 씨, 미안합니다. 바쁜 일을 처리하느라, 연락이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지난번에 약속한 킹스타를 구입하려는데… 견적은 산출됐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그러면 오후 2시까지 제가 입원해 있는 킨샤사 국립대학 병원 1201호 오시죠. 오실 때 콩고 지점을 책임지고 있는 분도 같이 모시고 오시면 좋고요.]

SUV 자동차 한 대를 구입하는데 지점장도 같이 부르다니.

겨울은 무언가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고,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물었다.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킹스타의 가격을 조금 깎았으면 좋겠는데, 한겨울 씨보다는 그분의 입김이 조금 더 셀 것 같아서 뵙자고 한 겁니다.]

“알겠습니다. 모시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후에 만납시다.]

순간, 겨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그에게 급히 말을 건넸다.

“아,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여쭤도 괜찮겠습니까?”

[네. 얘기해 보세요.]

“다른 VIP분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국경 없는 의사회가 정성스럽게 치료해 줘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분들은 아직도 그곳에 계십니까?”

[아닙니다. 지난주 목요일에 이곳으로 후송되어 왔습니다. 병원에 오시면, 아마 두 분을 만나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겨울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정명훈 지점장에게 이 사실을 즉시 보고했다.

“…해서 지점장님도 같이 와 달라고 합니다.”

“알았어. 같이 가 보자고.”

점심식사를 일찍 끝낸 겨울과 정명훈 지점장은 고급 홍삼 선물 세트 세 박스를 챙겨서 킨샤사 국립대학 병원으로 출발했다.

“지점장님,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인가?”

“SUV 자동차 공급업체 선정 발표가 미뤄지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정명훈 지점장도 그 점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콩고민주공화국 내무부는 지난주 목요일에 SUV 자동차 5,500대를 공급하는 업체를 발표했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별다른 이유를 공지하지 않고, 오늘까지 발표를 미루고 있었다.

어차피 도요타 자동차가 선정되겠지만, 혹시라는 마음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이번 주에는 발표하겠지, 뭐. SUV 자동차는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 손에 떨어질 일이 없으니까, 잊어버리자고.”

“네, 알겠습니다.”

윙윙―

그때, 정명훈 지점장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또 왜?”

[선배님, 방금 전에 따끈따끈한 소식을 들어서 전화했습니다.]

“무슨 소식?”

[아프리카 법인장으로 오시기로 예정되어 있던 이경수 상무님이 계열사로 이동하신답니다.]

“음? 그럼 우리 법인장으로는 누가 오신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임명될 거라고 합니다.]

“설마… 아프리카 사정을 전혀 모르시는 분이 오시는 건 아니겠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SUV 업체 선정이 계속 지연되는 이유가 뭐랍니까?]

“어휴, 그놈의 SUV… 나도 잘 몰라. 아무리 늦어도 오늘이나 내일이면 발표하겠지.”

[알겠습니다. 발표 나면 연락 주십시오.]

“어, 그렇게 할게.”

정명훈 지점장이 통화를 끝내자, 겨울이 급히 물었다.

“지점장님, 임원 인사 발표는 언제 합니까?”

“늦어도 이번 주에는 발표해야 할 거야.”

“지점장님이 이번에 이사로 승진하시겠죠?”

“글쎄… 모르지.”

정명훈 지점장은 덤덤함을 가장한 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킨샤사 국립병원 로비.

병원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정명훈 지점장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급하게 달려가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옆에 있던 겨울도 얼떨결에 그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조연석 대사님, 안녕하십니까?”

“정명훈 부장님도 오랜만입니다. 이분은 한겨울 씨겠네요?”

겨울은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콩고민주공화국에는 교민이 150명 정도, 상사직원, 그리고 봉사 단체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한국 사람이 적어도 500명이 이상 머무르고 있었다.

따라서 조연석 대사가 한국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과 조연석 대사는 길거리에서조차 마주친 적 없는, 그야말로 초면인 사이.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아봤다.

어떤 경위로 알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워낙 어려운 사람이라서 직접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런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정명훈 지점장이 대신 물어봐 주었다.

“대사님, 한겨울 씨를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방금 전에 이 나라의 고위 관료들을 병문안하고 왔는데, 그 사람들이 대한 그룹의 한겨울 씨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더군요. 그래서 넘겨짚어 본 겁니다.”

“아, 그렇군요. 혹시 그분들 중에서 성이 반투야라는 분은 없었습니까?”

“글쎄요?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반투야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정명훈 지점장은 반투야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성도 바꿨다는 판단을 했다.

“대사님, 비슷한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까?”

“조금 있으면 만나게 될 텐데, 굳이 저한테 들을 필요가 있을까요?”

조연석 대사가 얘기해 주기 싫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했다.

정명훈 지점장은 그의 태도가 살짝 의문스러웠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정 부장님,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본인들이 직접 한겨울 씨한테 정체를 밝힌다고 해서 저도 입을 다물고 있는 중이거든요.”

“아하, 그런 이유였군요. 굳이 캐물어 죄송합니다.”

정명훈 지점장과 대화를 마무리한 조연석 대사는 시선을 겨울에게 옮겨 따뜻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겨울 씨, 덕분에 우리 대한민국과 콩고민주공화국이 더욱 가까워지게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는 할 도리를 다했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과감하게 내던지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쑥스러워하지 마시고, 충분히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목숨을 내던지다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정명훈 지점장이 화들짝 놀라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니, 대사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음? 한겨울 씨한테 얘기를 듣지 못했습니까?”

“국경 없는 의사회를 도와서 마을 주민들을 도왔다는 얘기밖에 들은 게 없습니다.”

“하하하, 한겨울 씨는 입도 무거운 사람이었군요.”

조연석 대사는 기분이 아주 좋은지 선홍색 잇몸을 드러내며 큰 목소리로 웃었다.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빠를 듯합니다. 저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대사님.”

조연석 대사를 떠나보낸 정명훈 지점장은 겨울에게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겨울은 엉뚱한 얘기만을 꺼내 놓았다.

“지점장님,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됐습니다.”

“어? 하, 그러네. 아무튼 나중에 얘기하자고.”

겨울은 대한 종합병원 VIP 병실에 입원한 적이 있었기에 킨샤사 국립대학 병원의 VIP 병실도 그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대한 종합병원의 VIP 병실의 크기가 승용차 정도라면, 이 병원의 VIP 병실은 미니버스 정도의 크기였다.

겨울이 VIP 병실의 크기에 대해서 놀라서 멈칫하는 사이에 정명훈 지점장이 살짝 옆구리를 찔러 왔다.

“죄송합니다.”

정명훈 지점장에게 무의식적으로 사과하고 겨울은 병상에 앉아 있는 반투야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홍삼 선물 세트를 빈 의자에 올려놓으며 말을 건넸다.

“반투야 씨, 몸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분이 콩고 지점의 책임자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분은…….”

겨울은 반투야에게 정명훈 지점장을 정식으로 소개시켜 주었다.

“제 소개를 하기 전에 한겨울 씨한테 사과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저는 성이 반투야가 아니라 부투야이고, 이름은 키부토입니다.”

정명훈 지점장은 키부토 부투야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그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챘다.

그는 비밀정보국의 고위 관료가 아니라, 카바나 바통고 대통령의 최측근인 비서실장이었다.

“부투야 비서실장님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정명훈 지점장의 인사에 부투야 실장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자신이 바통고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것은 불과 보름 전.

때문에 알아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상태였다.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도 거의 모르고 있을 정도인데, 정명훈 지점장은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는 정명훈 지점장을 향해 호기심 섞인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떻게 저를 알고 있습니까?”

“얼마 전에 지인과 식사를 같이했는데, 그 자리에서 바통고 대통령님의 신임 비서실장님 얘기가 언급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부투야 실장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투야 실장님, 대한민국의 특산품 중에서 홍삼이라는 게 있는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그럼요.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설마 저한테 주려고 가지고 온 게 홍삼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 홍삼의 주요 효능 중에 하나가 기력 회복입니다. 정기적으로 복용하시면, 탁월한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말과 함께 정명훈 지점장은 홍삼 선물 세트 한 박스를 부투야 실장에게 건네주었다.

“그냥 오셔도 되는데, 이렇게 선물을 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두 박스는 다른 두 분께 전해 드렸으면 합니다.”

순간, 겨울의 눈에 부투야 실장의 살짝 아쉬워하는 눈빛이 포착되었다.

겨울은 그 눈빛을 그가 남은 두 박스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때문에 즉시 의자에 놓은 나머지 두 박스도 들어 그의 옆에 내려놓았다.

“부투야 실장님, 홍삼을 많이 드실수록 기력이 빨리 회복된다고 합니다.”

“음? 다른 두 분께 드릴 선물은 어떻게 하고요?”

“저희 회사 사무실에 여분의 선물 세트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직원에게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됩니다.”

“음… 이 선물은 두 분께 드리고, 오늘 저녁이나 내일 오전에 다시 방문해 주셨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어쩐지 거절하고 싶지 않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하, 이것 참… 민망하군요. 제가 홍삼 선물 세트에 욕심을 내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알고 있어도 모르고 있는 척해야 할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이라고 겨울은 생각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제 어머님의 기력이 많이 쇠한 것 같아서, 선물로 드리려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여하튼 두 분께 뜻깊은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이제 두 분을 이곳으로 불러 볼까요?”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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