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VIP가 실장이라고?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반투야가 물어 왔다.
“한겨울 씨, 제가 두 분과 함께 킨샤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브라이언 박사님께 들었습니까?”
“다음 주에 킨샤사에서 중요한 일정이 있다는 얘기밖에 들은 것이 없습니다.”
“사실은 두 분에게 반군 놈들에 대한 정보를 들어 보고 싶은 욕심에 같이 가자고 한 겁니다.”
겨울은 갑자기 고민에 빠져들었다.
반군들에 대한 정보는 거의 대부분이 은둔부에게 들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털어놓으면 그가 위험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존재를 마냥 숨길 수도 없었다.
만약 숨기다가 논리에 엄청난 허점이 발생하면, 반대로 반투야에게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젯밤에 브라이언 박사도 강하게 의심하지 않았는가.
겨울은 브라이언 박사와 한 약속을 굳게 믿고, 머리를 고속으로 회전시켜서 그럴싸한 거짓말을 생각해 냈다.
“반투야 씨, 저희에게서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두 분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해 주십시오.”
“…마을에 도착해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는 도중에 저희는 천막 근처에서 온몸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20대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그가 죽어가면서 저에게 한 얘기입니다. 사실 여부는 나중에 검증해 보실 필요가 있을 겁니다.”
“흐음, 그렇군요.”
“그의 이름은 얀쿠바라고 했습니다. 작년 초부터 반군 조직에 몸담고 있었다고 했고, 도망치는 중에 총에 맞았다고 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마을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서, 저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다가 숨이 멎었습니다. 반군 단체의 이름은 ‘자이르여 영원하라’라고 합니다.”
겨울은 은둔부에게 들은 얘기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확인한 사실 등을 섞어서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해 나갔다.
“…반군들의 조직원 수는 150명이 조금 넘는다고 했습니다.”
“네? 반군들의 숫자가 겨우 그거밖에 안 된다고요?”
사실 겨울도 은둔부의 말을 반신반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올해 초까지 반군 조직에 있었다고 말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반군들이 몇 명 늘었는지, 또 줄었는지까지 그가 자세하게 알고 있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저도 얀쿠바한테 들은 얘기입니다.”
그때, 운전석에 앉아 있던 은센기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반투야 씨, 저는 얀쿠바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어제 저녁때 마을을 습격한 반군들의 트럭은 모두 세 대였습니다. 그놈들이 트럭 짐칸에 30명 정도씩 탔다고 가정하면 거의 90명입니다. 놈들 전부가 출동한 것은 아닐 테니, 기지에 몇 명이나 남아 있었을 지를 생각해 보면 150명에 근접한 수가 나오지 않을까요?”
“음,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은센기는 말을 마치고 다시 운전대를 잡고 운전에 집중했다.
“한겨울 씨, 녀석들의 기지가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나중에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구글 지도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기지에 침투했을 당시 본 것을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어두운 밤이기도 했고, 폭우 때문에 제대로 못 봤다는 점을 감안하고 들어 주십시오. 전기가 부족해서인지 기지에는 불빛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긴 했지만, 군데군데 끊어져 있었고…….”
반투야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겨울과 은센기, 램버트 박사가 침투했던 창고의 설명에 특히 주목했다.
“한겨울 씨, 창고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됐습니까?”
“대략… 국경 없는 의사회의 메인 천막을 세 개 정도를 합쳐 놓은 크기였습니다.”
“창고 안에 무엇이 있던가요?”
“안쪽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나무 상자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국경 없는 의사회가 강탈당한 의약품 상자들이 문가에 있었습니다.”
“혹시 의약품 말고 다른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열어 보지는 못했습니까?”
“아쉽게도 그렇습니다. 워낙 경황이 없어서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은센기는 창고에서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겨울과 램버트 박사가 열심히 의약품을 배낭에 쓸어 담는 사이, 은센기는 창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 상자에 주의를 기울였다.
상자 하나를 선택해서 뚜껑을 열어 보려고 힘을 주었으나,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지 열리지 않았다.
때문에 상자의 무게가 엄청날 것 같다는 기억만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은센기는 창고에서 보고 겪은 것을 반투야에게 설명해 주었다.
“은센기 씨, 상자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는 못 봤습니까?”
“뭐라고 적혀 있기는 했습니다만… 읽을 수 없는 문자였습니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실망한 목소리로 대답한 후, 반투야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하는 그였다.
그 모습을 본 은센기가 말했다.
“반투야 씨, 통화가 가능한 지역에 도착하면 알려드릴 테니까, 쉬고 계십시오.”
“아, 감사합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반투야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에 빠져들었다.
겨울도 곧 피곤이 몰려왔기 때문에 의자를 젖히고 휴식을 취했다.
제법 긴 시간이 지난 후.
은센기가 몸을 흔드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 겨울이 의자를 바로하고 앉았다.
“겨울 씨, 반투야 씨를 깨워 주세요.”
“네.”
말을 듣는 즉시 겨울은 몸을 뒤로 돌려 멀쩡한 반투야의 오른쪽 다리를 톡톡 건드려 깨웠다.
“반투야 씨, 반투야 씨. 이제 일어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으음… 이제 핸드폰 통화가 가능한 지역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의자를 일으켜 세운 반투야는 은센기한테 말을 건넸다.
“은센기 씨, 여기서 트시카파까지 몇 시간이나 더 걸릴까요?”
“쉬지 않고 가면… 한 세 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럼 저녁 여섯 시쯤에 도착할 수 있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은센기와 짧은 대화를 끝마친 반투야는 핸드폰을 꺼내서 누군가와 급하게 통화를 시작했고, 그 후에도 여러 사람과의 통화가 한참동안이나 이어졌다.
모든 통화를 끝낸 반투야는 아픈 다리를 보며 인상을 찡그리더니, 다시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을 청했다.
트시카파로 이동하는 도중, 그들은 기름을 보충하기 위해 주유소에 들렸다.
주유를 하는 사이에 오랜 운전으로 피곤이 쌓인 은센기와 겨울이 교대했다.
은센기는 몹시 피곤했는지, 조수석에 앉자마자 의자를 뒤로 젖히고 곧바로 꿈나라로 달려갔다.
링링링―
시간이 제법 흘렀을 무렵, 반투야의 핸드폰이 요란한 알람 소리를 토해 냈다.
그 탓에 조용한 침묵에 빠져 있던 차 안이 다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난 두 사람은 의자를 세워 자세를 바로 했다.
반투야는 굳은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크게 킨 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겨울에게 말을 걸었다.
“트시카파 시에 진입하기 전에 경찰차가 눈에 보이면 멈춰 주십시오.”
“네? 무슨 일 있습니까?”
“아뇨. 경찰차에 옮겨 탈 예정이라서요. 두 분은 그 뒤에 경찰차를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찰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겨울은 깜빡이를 켜고 경찰차 뒤에 정차했다.
재빨리 문을 열고 내린 은센기는 반투야가 불편 없이 차에서 내릴 수 있도록 부축했고, 겨울도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그들을 목격했는지, 경찰차에서 내린 세 사람이 급히 달려왔다.
그러고는 갑자기 부동자세로 반투야에게 거수경례하는 세 사람.
“안녕하십니까! 저는 트시카파 경찰서의 서장인 윌리마…….”
세 사람은 차례로 반투야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반투야는 그들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겨울과 은센기를 그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기를 잠시.
반투야는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경찰차에 올라탔고, 겨울과 은센기는 약속대로 경찰차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경찰차는 트시카파 시내로 진입하지 않고 외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트시카파 경찰서가 도시 외곽에 있었던가요?”
“아뇨… 저는 시내에 위치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 경찰차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도시 외곽에 위치한 군부대로 이동하는 것 같아요.”
은센기의 말이 맞았다.
경찰차는 5분이 지나지 않아서 군부대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이 운전하는 차도 엉겁결에 그들의 뒤를 따랐다.
반투야가 타고 있는 경찰차가 커다란 건물 앞에 정차하자, 겨울도 즉시 그 뒤에 차를 세웠다.
군인들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뛰어나오며 반투야를 맞이하는 진풍경이 두 사람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은센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울에게 말을 걸었다.
“저어, 겨울 씨… 반투야 씨가 의외로 거물인 것 같지 않아요?”
“…그런 것 같네요. 일단 내리죠.”
상황실에 들어온 반투야는 당연하다는 듯 상석에 앉았고, 어깨에 별을 두 개나 단 장군과 경찰서장이 양옆에 앉았다.
겨울과 은센기는 그들의 맞은편에 슬그머니 앉았다.
반투야는 겨울과 은센기를 장군과 경찰서장에게 차례로 소개시켜 주었다.
소개가 끝나자, 반투야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야쿠보 사령관님, 어제 저녁부터 밤까지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지 한겨울 씨와 은센기 씨한테 자세히 들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야쿠보 사령관이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반투야는 고개를 돌려 겨울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한겨울 씨, 이제 얘기해 주세요.”
“어… 네, 반투야 씨.”
겨울은 어제 발생한 사건을 시간 순으로 설명해 나갔다.
“저는 대한민국의 서울에 본사를 둔 대한 그룹의 아프리카 콩고 지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제 오전에 카낭가에 살고 있는…….”
그런데 얘기를 시작하자마자 작은 문제에 직면했다.
야쿠보 사령관을 포함한 군인들의 질문 공세가 시작된 탓이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설명을 이어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보다 못한 반투야가 결국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지금부터 한겨울 씨와 은센기 씨의 설명이 끝날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질문할 수 없습니다.”
“네! 실장님!”
“야쿠보 사령관!”
“죄, 죄송합니다!”
반투야의 호통 소리에 놀란 야쿠보 사령관이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겨울은 반투야의 직위가 실장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워낙 분위기가 살벌해서 어떠한 내색도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반투야가 겨울에게 말을 건넸다.
“한겨울 씨, 계속 설명해 주세요.”
“아, 네. VIP분들과 마을 주민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군들이 강탈해 간 의약품을 되찾아 오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겨울과 은센기는 서로 돌아가며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무사히 필수 의약품을 되찾아 올 수 있었습니다. 저어, 지금부터는 질문하셔도 괜찮습니다.”
“큼큼, 그럼 먼저 질문하겠습니다. 혹시 반군 기지의 위치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네. 노트북을 가져다주시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겨울은 그들이 가져온 컴퓨터를 받아 구글 지도에 접속했다.
그러고는 지도를 확대해 가며 반군 기지의 위치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길을 따라서 10분 정도 직진하면, 반군 기지가 보일 겁니다.”
“흐음, 반군 기지의 경계 상태는 어떻습니까?”
“여기저기에 경계 초소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창고 안에서 본 상자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크기가 다르다는 사실만 확인했습니다. 아마 은센기 씨가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겁니다.”
겨울의 뒤를 이어서 은센기가 나무 상자에 대해서 사실대로 전했다.
“…상자에 인쇄된 문구는 적어도 영어와 프랑스어는 아니었습니다.”
“나무 상자 옆에 끈이 매달려 있지 않았습니까?”
“어? 네… 확실히 그랬던 거 같습니다.”
야쿠보 사령관이 누군가에게 손짓하자, 스크린에 나무 상자 하나가 비춰졌다.
“혹시 창고에서 본 상자에 인쇄되어 있는 글자와 비교해서 어떻습니까?”
러시아어.
즉, 반군들에게 탈취당한 무기들은 러시아에서 수입한 무기라는 얘기였다.
겨울은 아는 척을 해 봐야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에 은센기의 입이 열렸다.
“똑같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답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바로 뒤이어 반투야가 야쿠보 사령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얘기해 보세요.”
“며칠 전에 앙골라 국경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가 무장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서 무기고가 털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저희는 앙골라 반군들의 소행으로 알고…….”
야쿠보 사령관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두 분의 정보가 아니었으면, 앙골라와 전쟁을 치를 뻔했습니다.”
“야쿠보 사령관, 반군 놈들을 소탕하고 무기와 의약품을 되찾는 데 몇 시간이면 될까요?”
“열두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반군 놈들을 소탕하셔야 할 겁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