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7화 (27/328)

[27화] 가자! 아프리카로

“오빠! 아프리카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겨울의 얘기를 들은 가을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으이고, 무식한 거 티내지 마라 좀. 그냥 아프리카가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이야.”

“지금 누가 누구 보고 무식하다는 거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한 거야?”

“현지 영어도 배우고,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뭐? 해외 주재원 수당 말하는 거야?”

겨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겨울은 연수원을 나오는 버스 안에서 이재성이 알려 줘서 해외 주재원 수당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가을은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닌가.

괜히 아는 척 자랑 좀 해보려다 실패한 겨울이 민망한 듯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수당이 얼마인지는 알고 있어?”

“그야 뭐…….”

겨울은 대답하던 중 문득 가을이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왜? 오빠가 머나먼 아프리카로 떠난다니까 속상해?”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아니면 월세 내주던 ATM 기계가 아프리카로 간다니까 아쉬운 거냐?”

“…….”

가을이 아무런 말도 않고 인상을 팍 찡그렸다.

겨울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정말로 걱정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것을.

그리고 한편으로는 돈 걱정도 되어서 자신의 장난에도 반박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지 마. 월세는 내가 꼬박꼬박 보내 줄게. 대한 그룹 입사하는 걸 그만큼 도와줬는데, 그 정도야 뭐.”

“미안해. 장학금이랑 과외비로 어떻게 해결할 수 없을까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됐어. 생활비만 해도 빠듯하잖아. 어차피 졸업도 얼마 안 남았고. 취미 생활할 돈은 있냐?”

“취미 생활은 무슨… 남는 돈은 다 저축하느라 그런 돈 없어.”

“저축?”

겨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휴, 진짜. 이러니까 내가 걱정이 돼, 안 돼?”

가을은 스마트폰을 꺼내 가계부 앱을 실행시킨 뒤 겨울에게 보여 주었다.

겨울은 숫자가 가득 적힌 화면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입과 지출이 매일, 시간 단위로 꼼꼼하게 적혀 있는 가계부.

매월마다 결산 내역도 있었다.

10만 원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매월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겨울은 가을이 매사에 꼼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꼼꼼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겨울은 애써 놀란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고작 10만 원 가지고… 됐어. 내가 월세보다 조금 넉넉히 자동이체 해 줄 테니까, 알아서 써.”

“아니, 그럼 오빠는 어쩌고.”

“난 뭐?”

“오빠는 가서 돈 안 써?”

“가서 숙소비랑 식비 말고 쓸 데가 있겠냐.”

윙윙―

때마침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하는 바람에 둘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액정에 떠있는 전화번호를 본 겨울은 지체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호영아.”

[오늘 축하주 한잔해야지?]

“당연하지. 몇 시에 볼까?”

[늘 보던 곳에서 6시, 어때?]

“알겠어. 이따 보자.”

* * *

삼겹살 집.

겨울은 호영과 가을의 등쌀을 이기지 못하고, 연수원에서 있던 일들을 하나둘씩 풀어놓았다.

“…이렇게 해서 우리 팀이 팀워크 경연 대회에서 압도적 1등을 차지했지.”

“올,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던데, 우리 겨울이 한 건 했네?”

“그건 아니고. 그냥 팀명 아이디어 하나 냈을 뿐이야. 다른 건 전부 팀원들한테 업혀 갔지.”

“야, 모든 일은 처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 모르냐?”

호영의 말에 가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아. 오빠가 ‘부릉부릉’이라는 팀명을 제안하지 않았으면, 그런 퍼포먼스는 탄생할 수 없었을 거야.”

“흠흠, 그런가?”

겨울이 쑥스러워하며 어색한 미소를 흘리고 있자, 호영이 질색하며 가을에게 달라붙었다.

“으… 가을아, 저 녀석 빼놓고 우리 둘이서 건배할까?”

“좋아.”

“건배!”

“야야, 나도 건배!”

겨울이 급히 맥주잔을 들며 같이 건배를 외쳤다.

가을은 노릇노릇하게 익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호영의 입에 넣어 주면서 말했다.

“아, 맞다. 호영 오빠, 우리 오빠가 부모님 냉장고를 바꿔 준 거 알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얘가 무슨 돈이 있어서?”

호영이 급하게 삼겹살을 씹어 삼키며 대답했다.

“당사자한테 직접 물어봐.”

가을은 그렇게 말하고 삼겹살 한 쌈을 자신의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겨울은 설 연휴 기간에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 세배 대신 전화를 드렸다.

반갑게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대한 전자에서 갑자기 냉장고를 보내왔다면서 어찌된 영문인지부터 물어왔다.

냉장고를 선물받은 내역을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아서, 겨울은 회사에서 설 선물 겸 팀 1등 보상으로 받았다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 얘기를 듣고 어머니는 대한 그룹에 정말 취직 잘했다는 말을 몇 번에 걸쳐서 얘기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겨울은 빙그레 웃으며 냉장고를 선물받은 내용을 털어놓았다.

“…해서 우리 팀의 퍼포먼스가 대한 그룹을 홍보 영상에 사용될 예정이래. 냉장고는 그에 대한 기념품으로 선물받은 거고.”

“오, 어머니께서 좋아하셨겠다. 하긴 아들내미한테 냉장고 받고 안 좋아하실 부모님이 어디 있겠어. 효자네, 효자야.”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가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효자는 무슨… 오히려 불효자지.”

“엥? 왜? 냉장고에 무슨 하자라도 있어?

“아니. 냉장고는 완전 신품이야.”

“근데 왜?”

호영이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사하자마자 아프리카로 발령 났거든. 어휴…….”

“뭐?! 아프리카?!”

호영이 깜짝 놀라 외치는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한꺼번에 받았다.

주변 다른 손님들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 가을이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에 배치를 받았대.”

“하… 아프리카는 무슨… 겨울아, 이참에 대한 그룹 때려치우고 나하고 동업이나 하자.”

겨울은 가을을 한 번 찌릿 노려본 뒤 입을 열었다.

“호영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아프리카 대륙 맨 끝에 있는 나라잖아.”

“어. 그곳은 산업 기반도 탄탄하고 기후도 괜찮아서 다른 아프리카 지역하고는 다르대.”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어?”

“요하네스버그에 있다더라.”

“에이, 동업하기는 틀렸네.”

호영이 깨끗하게 미련을 접었다.

“부모님께는 죄송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시간 날 때 한 번 놀러나 와. 내가 풀코스로 대접해 줄게.”

* * *

같은 시각.

송지유도 송훈석 회장 부부와 함께 대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송훈석 회장의 아내인 홍여진 대한 미술관 관장이 푸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유야, 신입 사원 연수가 힘들지 않았니?”

“음, 생각보다 할 만했어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나름대로 즐겁기도 했고요.”

“호호, 그거 다행이구나. 참, 네가 수석을 차지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네 아빠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고 있니?”

“험험, 여보. 그 얘기는 왜 꺼내는 거요?”

무안함을 느꼈는지 송훈석 회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왜요? 내 말이 틀렸어요?”

“그게 아니라, 지유가 나를 푼수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그러지…….”

“그게 뭐 어때서요? 그리고 푼수 맞잖아요.”

“허허…….”

멋쩍은 웃음을 흘렸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지 송훈석 회장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남아 있었다.

“지유가 수석 했는데, 선물은 챙겨 줬어요?”

“선물은 무슨… 수석을 하는 게 이전에 지유가 한 부탁의 조건이라고 못 들었소?”

“축하해 주는 건 별개의 일이죠. 지유야, 뭐 받고 싶은 거 없니?”

송지유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의 호의는 감사하지만, 아버지가 말한 대로 이것은 둘 간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겨울이 스쳐 지나갔다.

“받고 싶은 건 없는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이제는 부탁이라는 말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뭐냐?”

“한겨울 씨가 더 이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아빠가 신경 써 주세요.”

“또 한겨울이야? 그놈이 어떤 불이익을 받았는데 그러냐?”

“아프리카 법인으로 발령받도록 누군가 손을 쓴 것 같아요.”

“쯧.”

송훈석 회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보나마나 최성진 부회장이 움직였을 것이다.

최준하를 회사에서 쫓겨나게 만든 원인이 한겨울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테니까.

“그래. 내 좀 더 신경 쓰도록 하마.”

그렇게 말하며 송훈석 회장은 겨울이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 *

월요일 아침.

발령지인 아프리카로 출발하기 전까지는 대한 그룹 본사에 출근해서 OJT(On The Job Training) 교육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겨울은 월요일 아침 일찍 대한 그룹 인사팀에 마련된 교육장으로 출근해서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그런데 9시가 넘어가도록 해외 법인에 발령받은 신입 사원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이메일을 잘못 봤나?”

혼잣말을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이메일 내용을 다시 확인했으나, 분명히 8시 50분까지 25층에 위치한 교육장으로 오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겨울이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낯익은 사람이 교육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겨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홍성훈 부장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한겨울 씨, 회의가 길어져서 조금 늦었어요. 자리에 앉아서 얘기합시다.”

“네, 부장님.”

홍성훈 부장은 따뜻한 미소를 띤 채 겨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저… 홍성훈 부장님, 다른 신입 사원들은 안 오는 겁니까?”

“아, 제가 이야기를 안 했군요. 그들은 오전 10시에 올 겁니다.”

“네?”

“한겨울 씨에게는 따로 할 얘기가 있어 한 시간 더 일찍 오라고 전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한겨울 씨도 알고 있겠지만, 아프리카는 풍토병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장티푸스, 황열병, 콜레라, A형 간염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아, 그리고 모기가 많기 때문에 말라리아 약도 처방받아 가야 하고요.”

겨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환경이 쾌적한 편이라서 황열병 예방주사와 말라리아 약 정도만 처방받으면 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홍성훈 부장은 장티푸스를 포함한 네 가지 질병의 예방주사까지 맞으라고 독촉했다.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다 맞아야 합니까?”

홍성훈 부장은 속으로 뜨끔했다.

한겨울이 자신들의 계획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마, 저놈이 눈치챘을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아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홍성훈 부장은 재빨리 적당한 변명거리를 만들어 냈다.

“대한 그룹 아프리카 법인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관할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한겨울 씨도 아프리카 전역을 돌아다닐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겠죠.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예방주사를 접종하는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대한 종합병원에서 접종받으면 무상으로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습니다만, 만약에 다른 병원에서 접종받을 경우에는 영수증을 저한테 제출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른 OJT 교육은 신입 사원들이 도착하면 받는 것으로 합시다.”

“네, 부장님.”

* * *

해외 법인에 발령받은 신입 사원들은 모두 여덟 명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발령받은 사람은 겨울이 유일했다.

OJT 기간은 3월 23일까지, 총 4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일주일의 준비 과정을 거쳐서 4월 2일부터 현지에서 근무를 시작하도록 되어 있었다.

신입 사원들은 OJT 기간 동안에 해외 법인에서 수행해야 할 업무를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착실하게 익혀 나갔다.

겨울은 주말을 이용해서 시골 부모님께 인사를 다녀왔고, 교육받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날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드디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출발하는 날이 되었다.

겨울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데, 반가운 얼굴이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버스타고 가도 되는데, 왜 왔어?”

“좋으면 좋다고 그냥 얘기해라.”

“흐흐, 그래. 기분이 좋아서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 됐냐?”

“가을이는?”

“수업 있다고 학교 갔지.”

“자기 오빠가 아프리카로 가는데, 하루 정도 빼먹으면 안 되나?”

“이게 뭐 별거라고. 인사는 아침 일찍 했어.”

“하긴… 빨리 출발하자.”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호영은 또다시 매일 늘어놓던 농담을 꺼냈다.

“겨울아, 수틀리면 사표 내고 나와라. SH무역에 네 자리를 만들어 놓고 있을게.”

“인간아, 아주 악담을 해라.”

겨울이 가당찮은 듯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흙수저 성공 신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