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4화 (24/328)

[24화] MVP

다음 날.

축구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모두 네 번 이겨야 했다.

겨울이 속한 3반 축구팀은 오전에 진행된 7반과의 1차 예선전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주었다.

6대 2.

이토록 압도적인 결과를 낸 데에는 3반의 전략에 이유가 있었다.

의외로 3반의 전략은 간단했다.

‘공이 들어오면 모조리 한겨울에게 패스한다’였다.

청소년 국가 대표로까지 뽑힌 겨울의 피지컬은 아직까지도 살아 있었다.

한쪽 다리가 조금 불편해 전성기 때와 같은 실력은 아니었지만, 축구를 취미로 즐기는 신입 사원들을 압도적으로 이기기에는 충분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2차 예선전도 겨울이 명불허전의 실력을 보여 주며 2반을 압살하고 있었다.

관중석에서 3반을 목청껏 응원하고 있던 조강희가 송지유에게 말을 건넸다.

“언니, 겨울 오빠 정말 듬직하지 않아요?”

“듬직하지. 겨울 씨뿐만 아니라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 모두가 듬직한 것 같아.”

“겨울 오빠의 축구 실력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책임감도 끝내주는 건 어제 처음 알았어요.”

송지유도 그 점에 대해서는 조강희와 생각이 같았다.

어젯밤, 겨울은 축구만큼은 반드시 우승시켜 준다며 약속했고, 뱉은 말을 책임지기 위해서 지금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운동장을 휘젓고 다니는 중이었다.

스스로 자신한 만큼 겨울의 축구 실력은 대단했는데, 괜히 ‘한날두’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축구는 자신의 3반이 우승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3반이 종합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OX 퀴즈를 우승해야만 했다.

OX 퀴즈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많이 따라 주어야 하는 종목이었다.

겨울은 연수 성적 TOP 10에 들어 있는 자신과 조강희, 이재성, 강일성에게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였지만, 그녀는 솔직히 자신 없었다.

제법 길던 상념을 끝낸 송지유는 조강희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강희야, OX 퀴즈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종합 우승은 어렵겠지?”

“그럼 OX 퀴즈 말고 다른 경기를 우승하면 되죠.”

배구는 진즉에 예선 탈락했다.

OX 퀴즈를 제외하고 남아 있는 경기는 줄다리기와 계주.

“둘 중에 우리가 어느 종목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글쎄요. 히든카드가 하나 있어서 아마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히든카드? 그게 뭔데?”

“호호, 내일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삑, 삐익!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도중, 드디어 2차 예선전이 끝났다.

“헉헉… 아이고, 죽겠다.”

온몸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이재성이 그라운드에 벌렁 드러누웠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

평소에 운동과 담쌓던 사람들이 하루에 두 경기를 소화했으니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겨울이 이재성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재성 씨, 수고 많이 했어요.”

“겨울 씨는 힘들지도 않습니까?”

“저도 힘들어요. 응원단한테 얼른 인사하고, 빨리 휴식합시다.”

겨울이 손을 내밀자 이재성이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 * *

톡톡.

토익 공부를 위해서 이어폰을 끼고 공부 삼매경에 빠져 있는 겨울의 등을 누군가 두드렸다.

“겨울 씨, 커피 어때요?”

“아, 좋습니다.”

이재성이 알려 준 독서실에서 마주칠 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송지유와 겨울은 휴게실로 이동한 뒤,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며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지필 테스트가 없는데, 지유 씨는 독서실에 어쩐 일이세요?”

“내일 OX 퀴즈를 대비해서 문제집을 살펴보고 있었어요. 그나저나 피곤하지 않으세요?”

“하하, 피곤하죠. 그래도 일생일대의 시험이 며칠밖에 남지 않아서 열심히 해야 합니다.”

“토익 시험이요?”

“네.”

“자신 있으세요?”

“그럼요.”

송지유는 겨울이 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챘다.

평소와는 달리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으니까.

“저도 토익 시험을 몇 번 치러 봤는데, 긴장하면 좋은 점수가 안 나오더라고요.”

“조언 고마워요.”

“저는 겨울 씨가 토익 700점을 넘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사실 겨울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토익 시험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이유에는 송지유도 한몫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위해서 희생해 준 사실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생활관에서 쉴 수 있겠는가.

“지유 씨가 저를 믿어 주신 만큼 반드시 700점을 넘어 보일게요.”

“좋아요. 저도 겨울 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연수 성적 1등을 꼭 차지해 볼게요.”

“하하, 체육대회에서 반드시 종합 우승하라는 말이죠?”

“아, 그러고 보니, 겨울 씨. 체육대회 관련해서 우리 반에 히든카드가 있다던데, 혹시 누구인지 알고 계세요?”

“누가 그런 얘기를 하던가요?”

“강희요.”

“아… 강희 말이 맞기는 맞는데…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 히든카드에요. 그러니 OX 퀴즈에서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 할 거예요.”

“음… 알겠어요. 최선을 다해 볼게요.”

“이제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해 볼까요?”

* * *

다음 날.

약속된 시간에 모든 신입 사원들이 체육관에 모이자, 정재엽 원장이 마이크 전원을 켜고 모두 발언을 시작했다.

“여러분도 익히 아시겠지만, 스포츠 경기는 페어플레이를 전제로 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여러분이 누군가의 귀한 아들과 딸이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경기에 최선을 다해서 임하는 것은 권장하지만, 절대로 다쳐서는 안 됩니다. 이 점 명심하시고,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내도록 하십시다.”

정재엽 원장의 발언에 뒤이어 이종수 이사가 말을 이었다.

“경기 종목과 배점은 어제 이미 고지했기 때문에 별도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오늘 체육대회가 끝나고 식당에서 뒤풀이가 예정되어 있으니 참고해 주십시오.”

“술도 마음껏 마실 수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와!”

그동안 술이 고프던 신입 사원들의 함성 소리가 체육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럼 지금부터 OX 퀴즈를 시작하겠습니다.”

우르르.

계단에 앉아 있던 신입 사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으로 내려왔다.

이윽고 모든 신입 사원들이 경기장에 들어서자, 이종수 이사가 말을 이어 나갔다.

“OX 퀴즈 룰은 간단하기 때문에 별도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탈락하신 분들은 계단 위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최후의 1인이 남아 있을 때까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최후의 순간에 같은 편끼리 남아 있으면, OX 퀴즈는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했습니까?”

“네, 이해했습니다.”

신입 사원들의 우렁찬 대답을 들은 이종수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곤 본격적으로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자, 첫 번째 문제 드리겠습니다. 오이는 식물학적으로 채소다. 맞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O로 가시고, 그 반대라고 생각하시면 X로 이동해 주십시오.”

첫 문제부터 아리송한 문제가 출제되었다.

OX 퀴즈에서 겨울이 선택한 전략은 잡학다식 만물박사인 이재성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거였다.

“재성 씨, 정답이 뭔가요?”

“운에 맡겨야 할 것 같아요.”

즉, 모른다는 소리였다.

잡학다식의 만물박사가 처음부터 탈락하게 생겼다.

첫 문제부터 패닉 상태에 빠진 겨울은 재빨리 조강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강희야, 정답이 뭔지 알아?”

“어… X일…걸요? 제가 알기로는 채소가 아니라 과일인 걸로 아는데…….”

“오케이.”

조강희의 아리송한 대답을 들은 겨울은 곧장 이재성에게 말을 건넸다.

“들었죠?”

둘은 X라고 적힌 팻말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조강희 말대로 식물학적으로 오이는 과일이었다.

첫 번째 문제에서 400명 가까운 신입 사원들이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시작부터 불안불안했지만, 두 번째 문제부터 이재성은 일고의 고민 없이 정답을 맞혀 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겨울도 승승장구해서 최후의 세 명이 남는 단계까지 진출했다.

OX 퀴즈를 진행하고 있던 이종수 이사가 겨울에게 다가와 마이크를 건네며 질문했다.

“한겨울 씨, 최후의 단계까지 살아남은 비결이 뭡니까?”

“친구 따라 강남에 왔더니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네요.”

“하하하!”

관중석에서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솔직해서 좋군요. 다음 문제가 마지막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때도 이재성 씨를 따라갈 생각입니까?”

“글쎄요. 슬슬 결단의 때가 온 거 같아서 경우의 수를 따져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자, 이제 질문 나갑니다.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틀어 놓으면 전기 요금이 더 많이 나온다. 맞으면 O, 아니면 X로 이동해 주세요.”

겨울은 즉시 이재성과 상의에 들어갔다.

“아, 이거 곤란한데요.”

“답을 모르겠나요?”

“네. 아무래도 찍어야 할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둘이라는 거죠.”

“그럼 제가 상대랑 맞은편에 갈게요. 만에 하나 제가 틀리면 잘 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꼭 우승하겠습니다.”

둘은 가만히 남은 한 명을 주시했다.

이내 그가 X로 이동하자 이재성도 같은 X에, 겨울은 거침없이 O로 이동했다.

여태와는 다른 선택을 한 겨울에게 이종수 이사가 다가와서 X로 이동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지만, 이재성과 세워 놓은 계획이 있기에 O를 고수했다.

“이제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텔레비전을 켜 놓고 관찰해 본 결과.”

“우우!”

이종수 이사가 긴장을 높이기 위해서 말을 중단하자, 곧바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하하, 알겠어요. 정답은 O입니다.”

“엥?!”

겨울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맞은편에 서 있는 이재성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재성은 흐뭇한 표정으로 겨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했네.’

이재성은 문제를 듣자마자 정답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겨울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점수는 팀이라 같이 받으니 둘 중 누가 우승해도 상관없기에 가만히 있던 것이다.

겸사겸사 겨울에게 점수를 따면 더 좋고.

“와!”

그때, 관중석에 있던 3반 신입 사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경기장으로 뛰어 내려와 겨울을 헹가래 쳐 주었다.

축구는 예상대로 3반이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주며 우승해 승점 200점을 획득했다.

모두들 3반이 종합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배구와 줄다리기에서 5반이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이 발생해 버렸다.

결국 3반과 5반은 승점 400점으로 마지막 남은 계주 경기에서 승부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겨울은 3반 신입 사원들을 모아 놓고 대책을 의논했다.

“달리기에 자신 있는 분은 손을 들어 주세요.”

“중학교 때까지 마라톤 선수였습니다.”

“저는 핸드볼 선수였습니다.”

“좋습니다. 이정훈 씨하고, 신영철 씨. 음, 남은 인원에는 조강희 씨와 제가 출전하겠습니다.”

3반 신입 사원들은 축구할 때 겨울의 빠른 달리기를 보았기에 그가 출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왜 조강희를 추가로 뽑았는지 의아해했다.

“저, 조강희 씨는 왜?”

“네?”

신입 사원 한 명의 질문에 오히려 겨울이 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조강희를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강희야, 너 말 안 했어?”

“호호, 네. 모르는 편이 더 재밌잖아요.”

장난스럽게 웃는 조강희의 모습에 겨울은 피식 웃고는 신입 사원들에게 설명했다.

“강희 씨는 제 고등학교 후배입니다. 그리고 제 모교에는 100미터 유망주가 한 명 있었죠.”

“설마…….”

“네. 아마 지금은 강희가 저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싶네요.”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강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런 시선을 즐기는 듯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저는 3번 주자로 뛸게요. 그리고 마지막 주자로 겨울 오빠가 뛰면 아마 무난하게 우승하지 않을까요?”

자칫 오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고 겨울도 그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 체력 괴물이 당연한 듯이 인정할 정도라면 얼마나 빠르단 말인가.

모두가 멍 때리고 있을 때, 겨울이 입을 열었다.

“이정훈 씨, 신영철 씨 열한 명의 선수가 동시에 달리기 때문에 아마 상당히 혼잡스러울 겁니다. 천천히 뛰어도 좋으니까 바통만큼은 절대로 놓치지 말고 잘 전달해 주세요.”

“알겠어요.”

탕!

총소리와 함께 계주 선수들이 힘차게 앞으로 뛰어나갔다.

1번 주자인 이정훈은 5∼6위권, 2번 주자인 신영철은 7∼8위를 유지했다.

8위로 들어오는 신영철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조강희는 마치 날쌘 표범처럼 앞서 달려가는 선수들을 하나둘씩 따라잡기 시작했다.

앞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이 남자임에도 거침없이 제치는 모습.

겨울에게 바통을 넘겨줄 때, 그녀 앞에서 달리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조강희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겨울은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스포츠카처럼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달려 나갔다.

체육대회가 모두 끝났다.

이제 시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신입 사원 체육대회를 총괄 진행한 이종수 이사가 마이크 전원을 키고 입을 열었다.

“신입 사원 여러분, 오늘 하루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최종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1등은 승점 600점을 획득한 3반, 2등은 승점 500점을 차지한 5반이 되겠습니다. 3등은 200점으로 11반이 차지했습니다. 곧바로 시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3등을 차지한 11반 대표는 앞으로…….”

3등부터 하나둘 나가 트로피를 받았고, 1등인 3반의 차례가 다가왔다.

3반의 대표로는 겨울이 나가게 되었다.

3반 모두가 겨울이 이번 체육대회 우승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겨울은 우승컵을 하늘 높이 쳐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와!”

3반 신입 사원들 모두 겨울을 따라 소리를 지르며 온몸으로 기쁨을 만끽했다.

다른 반 신입 사원들은 아쉬운 얼굴이었지만,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 주었다.

“오늘 체육대회에서 가장 두각을 보여 준 선수인 MVP를 호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MVP가 누구인지 알고 계시죠?”

“네!”

3반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신입 사원들도 MVP가 누구인지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이종수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한겨울 씨입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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