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3화 (23/328)

[23화] 세 가지 조건

“박 사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부회장님, 그 쓰레기보다 못한 놈이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하, 그래서? 준하는 어떻게 됐지?”

[…해고당했습니다.]

해고라니.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해 버렸다.

그동안 대계를 위해서 숨죽이고 살아온 날들이 장장 20년이 넘어간다.

이제 겨우 첫발을 내 디뎠을 뿐인데.

쓰레기만도 못한 놈으로 인해서 자신이 세워 놓은 대계가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박 사장, 해고 결정은 누가 내렸는가?”

[그게… 송 회장이 직접 내렸습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송훈석 회장이 결정을 내린 것이라면 도저히 되돌릴 방안이 없었다.

대한 그룹에서는 그의 말이 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지금은 무섭게 내리는 소나기를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연수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송 회장이 어떻게 알았지?”

[정재엽 원장이 보고했습니다.]

“조영진 감사팀 부사장은 어떻게 됐나?”

[역시 해임당했습니다.]

“조 부사장한테 내가 미안해한다고 전해 주게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후우… 일단 나중에 통화하지.”

박철헌 사장과 통화를 끝낸 최성진 부회장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벽에다 집어 던졌다.

뻑!

핸드폰 파편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한겨울! 감히 네놈이 내 계획을 무너뜨려?! 내가 네놈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사람이 아니다!”

빠드득!

최성진 부회장의 어금니를 강하게 깨무는 소리가 호텔 객실에 울려 퍼졌다.

* * *

1월에 시작된 대한 그룹 신입 사원 연수는 반환점을 넘어 어느덧 4주차가 시작되었다.

연수 기간 동안 겨울은 피나는 노력을 경주한 결과, 성적은 평균 80점 가까이에 머무르고 있었고, 순위 또한 중위권에서 더 떨어지지는 않았다.

영어는 장대산의 도움을 받아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중이었다.

겨울은 연수 기간 동안에 모의 토익 테스트를 다섯 번 실시했다.

마지막 테스트에서는 700점 가까이 기록했을 정도로 성적이 급격히 향상되고 있었다.

평생을 스스로 돌머리라 생각하며 살아온 겨울은 그게 아니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겨울의 몸에도 가을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겨울이 천재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겨울 씨, 좋은 일 있어요?”

기쁨에 젖어 있는 겨울에게 이재성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네 왔다.

“없, 없어요.”

“어라? 그런데 말을 왜 더듬으시는 거죠?”

“재성 씨가 갑자기 말을 걸어와서 그런 거죠.”

최근 성적도 좋고, 불미스러운 일도 잘 넘어갔으니 기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재성은 그런 겨울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는 듯 손뼉을 쳤다.

“아, 혹시 지난번에 제가 겨울 씨에게 도움받을 게 있다고 얘기한 거 기억나요?”

“네, 물론이죠. 기억하고 있어요.”

“이제 겨울 씨가 우리에게 도움을 줄 때가 왔어요.”

“네? 제가 어떻게 도움을 드리면 되나요?”

“그건…….”

철컥.

중요한 순간에 차병훈 과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든 신입 사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겨울과 이재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탁으로 이동한 차병훈 과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저녁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네, 과장님.”

신입 사원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오늘 저녁 강의는 없습니다.”

“와!”

신입 사원들이 내지르는 함성 소리가 강의실 곳곳에 울려 퍼졌다.

환호성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던 차병훈 과장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까?”

“네!”

“하하, 저도 일찍 퇴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이제부터 내일 일정에 대해서 간단하게 안내해드릴게요. 연수 커리큘럼을 확인해 보면, 내일과 모레는 특별활동이라고 되어 있을 겁니다. 특별활동은 다름이 아니라…….”

차병훈 과장은 말을 중단하고, 화이트보드에 큼지막하게 ‘설맞이 신입 사원 체육대회’라고 적고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보시다시피 내일과 모레는 체육대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반 대항 경기이고 종목은 축구, 배구, 줄다리기, 계주, OX 퀴즈입니다. 각 종목별 배점은 우승 200점, 준우승 100점, 3등 50점이 부여됩니다. 점수 합산으로 최종 우승한 반은 1,000점, 준우승한 반은 500점…….”

그제야 겨울은 이재성이 자기에게 한 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체육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받는 1,000점은 지필 테스트 100점을 열 번이나 달성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이번 신입 사원 연수에서 15등 안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체육대회에서 우승해야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재성은 체육대회 종목에 축구가 포함되어 있는 정보를 선배들에게 입수하고, 미리 선수를 친 것이리라.

그동안 이재성에게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하는 겨울이었다.

그가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차병훈 과장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내일은 예선전을 진행하고, 모레는 준결승과 결승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단체경기인 줄다리기와 OX 퀴즈는 모든 신입 사원들이 참여해야 하고, 축구, 배구, 계주는 한 사람이 두 경기 이상 참여할 수 없습니다. 자, 이제 질문 받겠습니다.”

“과장님, 춥지 않을까요?”

“축구와 계주를 제외한 세 종목은 체육관에서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에 그다지 춥지 않을 겁니다.”

“설 연휴 기간에는 저희는 뭐하고 지냅니까?”

“여러분은 설 연휴 기간에 특별 과제를 수행해야 합니다. 과제 내용은 체육대회가 끝나고 공지하겠습니다.”

그 후에도 차병훈 과장은 신입 사원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이제 더 이상 질문이 없으면 선수 선발을 위한 회의를 진행해 주십시오. 아, 그리고 한겨울 씨는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그럼 다들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겨울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차병훈 과장의 뒤를 쫓아가며 물었다.

“과장님, 지금 어디 가시는 겁니까?”

“이종수 이사님께서 겨울 씨를 보자고 하십니다.”

“네, 알겠습니다.”

“겨울 씨, 체육대회에서 최대한 능력을 발위해서 우리 3반을 우승으로 이끌어 주세요.”

“과장님, 저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하하, 과연 그럴까요?”

차병훈 과장의 웃음소리가 캄캄한 밤하늘 위로 흩어졌다.

이종수 이사는 언제나 그러던 것처럼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겨울을 반겼다.

“한겨울 씨, 이리 와서 앉아요.”

“네, 이사님.”

이종수 이사는 비서가 내온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겨울과 대화를 시작했다.

“한겨울 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잘 들어주세요.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이종수 이사의 모습에 겨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한겨울 씨는 면접에서 불합격을 받아 대한 그룹에 입사할 수 없었어요.”

갑작스러운 얘기에 당황한 것도 잠시, 겨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수 담당자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안 들어갔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면접 역시 그렇게 망쳤는데 붙을 리도 없었고.

“송지유 씨가 회장님을 설득해서 조건 세 개를 걸고 한겨울 씨를 임시로 합격시킨 거예요.”

“어? 이사님, 저는 두 가지로 알고 있습니다.”

“조건 한 개는 송지유 씨가 달성해야 하는 조건이에요.”

순간, 겨울은 지난번에 송지유와 휴게실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

‘아! 그래서 송지유 씨가 죽기 살기로 공부한 거였구나?’

이제야 모든 의문을 해소한 겨울은 이종수 이사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사님, 송지유 씨가 저한테 연수에서 TOP 3에 들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그 조건인가요?”

“네, 맞아요. 하지만 송지유 씨가 그 조건을 달성하지 못해도 한겨울 씨는 두 가지 조건만 달성하면 됩니다. 그래도 대한 그룹에 입사할 수 있어요. 다만, 송지유 씨는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되겠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송지유 씨가 TOP 3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체육대회에서 무조건 우승을 해야 해요.”

이쯤 되니 겨울도 이종수 이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았다.

“그러니 한겨울 씨가 최대한 능력을 발휘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우승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었습니다.”

겨울은 굳은 각오를 다졌다.

개인적으로 받은 은혜도 있지만, 지금 송지유는 겨울에게 믿고 따르는 팀장이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믿어 볼게요. 이제 다른 얘기를 잠깐 했으면 좋겠네요.”

“네.”

“사실 우리는 한겨울 씨가 하위 15위권에 머물러 있다가 탈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토익 테스트는 실시할 계획조차 수립해 놓지 않았어요.”

겨울은 그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누가 자신의 이력서를 보고 기대를 갖겠는가.

이종수 이사는 목이 마른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한겨울 씨는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더군요. 최근까지도 점수가 계속 오르고 있죠? 한겨울 씨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연수 일정상 토익 테스트는 돌아오는 일요일에 실시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이사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유를 제가 알 수 있습니까?”

“신입 사원들은 연수가 끝나는 마지막 주에는 인사 상담을 통해서 계열사 배치를 받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인사 상담 전까지는 한겨울 씨의 토익 점수 결과가 나와야 해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저는 한겨울 씨가 토익 700점을 넘길 거라고 믿고 있어요.”

“믿어 주시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종수 이사는 겨울과 잠시 눈을 마주쳤다.

“…용건은 이게 답니다. 이제 강의실로 돌아가서 체육대회 우승 전략에 대해서 논의해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겨울이 이종수 이사에게 꾸벅 인사하고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이종수 이사는 말없이 옆에 앉아 있는 차병훈 과장에게 말을 건넸다.

“차 과장, 지금까지 한겨울을 지켜본 소감을 말해 봐.”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독종을 오랜만에 만난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강의 시간에 조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습니다. 늘 이어폰을 귀에 꼽고 살더군요.”

“한겨울이 토익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통과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흠…….”

이종수 이사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나저나 체육대회는 3반이 우승할 수 있을까?”

“5반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 같습니다.”

“5반은 왜?”

“고등학교까지 배구 선수로 활동하던 신입 사원이 하나 있습니다.”

“호오…….”

그때, 이종수 이사의 눈에 장난기가 스며들었다.

“우리 내기할까?”

“좋습니다. 저는 3반이 우승하는 쪽에 걸겠습니다.”

* * *

겨울은 강의실로 곧바로 이동하지 못했다.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야외에서 별이 촘촘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없이 생각에 잠겼기 때문이다.

‘한겨울, 나를 믿어 준 사람들에게 결코 실망을 주지 말자. 지금 잘하고 있어. 남은 2주도 최선을 다해 후회를 남기지 말자.’

주먹을 꽉 움켜쥐며 속으로 다짐한 겨울은 다시 강의실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강의실에서는 체육대회와 관련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이재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발언권을 요청했다.

“동기 여러분, 이렇게 하다가는 밤을 새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제가 우리 반이 우승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볼 테니,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이재성은 주변을 둘러보며 동의를 구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반발하지 않았다.

그는 연수 기간 동안 강의실의 다른 신입 사원 대부분과 친분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우승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00점은 획득해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400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때.

덜컹.

아주 공교로운 시간에 겨울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겨울에게로 쏠렸다.

“…이제부터 우리 반이 우승할 수 있는 방법은 한겨울 씨한테 들어 보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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