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1화 (21/328)

[21화] 능력 발휘

“김 부장, 어떻게 된 상황인지 얘기해 봐.”

겨울이 증인을 데리러 간다고 자리를 잠시 사이에 이종수 이사가 김성철 부장을 심하게 다그쳤다.

“그게 저…….”

“이 친구야! 빨리 얘기하지 못해!”

김성철 부장이 머뭇대자, 이종수 이사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죄송합니다.”

“누구의 지시를 받았나?”

“그룹 감사 담당의 조영진 부사장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만약에 한겨울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서 당신이 조사한 내용이 모두 허구로 드러나면 어떻게 할 건가?”

“CCTV 동영상이 사라졌기 때문에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동영상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젯밤에 매점에 있던 목격자들의 입을 모두 막을 자신은 있나?”

“…없습니다.”

김성철 부장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 왜 무리수를 뒀어?”

“제보자와 목격자들의 증언이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제보자와 목격자들은 누가 선정해 줬는데?”

“조영진 부사장입니다.”

“하아…….”

이종수 이사의 한숨 소리에 복잡한 그의 심경이 담겨 있었다.

* * *

장대산은 점심 시간이 되면 최대한 식사를 빨리 마무리하고, 남은 시간 동안 생활관으로 돌아와서 오전에 배운 과목을 복습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

오전에 배운 인사관리를 복습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겨울이 급하게 뛰어 들어와 입을 열었다.

“장대산 씨, 부탁이 있습니다.”

창백하게 질린 겨울의 얼굴.

장대산은 우려하던 사건이 터졌음을 직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겨울 씨, 제가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지… 천천히 얘기해 보세요.”

“어제 매점에서 벌어진 사건이…….”

장대산은 겨울의 설명이 두서없었으나 전부 제대로 이해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겨울을 내버려 뒀다가는 연수원에서 퇴소당할 게 분명하다고.

“…급한 대로 장대산 씨가 그때의 일을 증언해 줬음 좋겠어요.”

“겨울 씨, 잠깐만요. 자…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진정해 보세요.”

장대산은 겨울을 잠시 침대에 앉혀 두고, 황급히 책상 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꺼냈다.

“이걸 정말로 사용하게 될 줄은… 진짜 몰랐는데…….”

장대산은 침대 위에 벗어 놓은 외투를 걸치며 말을 이어 나갔다.

“겨울 씨, 제가 나서 볼게요.”

최악의 상황이 오면, 겨울은 매점에 같이 있던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장대산이 나서 준다고 하니 더없이 든든했다.

어느새 쿵쿵 뛰던 겨울의 가슴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고마워요, 대산 씨. 그리고 미안해요.”

“자세한 상황은 같이 가면서 대화를 나누시죠.”

어느새 소심하던 장대산의 얼굴은 담담하면서도 듬직해져 있었다.

* * *

겨울은 이종수 이사에게 장대산을 소개시켜 주고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한겨울 씨, 장대산 씨가 결정적인 증인입니까?”

“어젯밤에 매점에 여러 명이 있었지만, 일단 장대산 씨가 먼저 증언을 해 줄 겁니다.”

“장대산 씨가 위증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대산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이사님, 저는 증인이 아니라 변호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겁니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김 부장, 이제 한겨울 씨와 대화를 나눠 보세요.”

이종수 이사가 뒤로 물러나자, 김성철 부장이 그 자리를 차고 들어왔다.

“한겨울 씨, 장대산 씨의 증언이 결정적인 증거라 하셨습니까?”

“부장님, 저와 얘기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겨울이 대답하기 전에 장대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얘기해 보세요.”

“부장님, 노트북을 가져다주실 수 있습니까?”

“이유가 뭡니까?”

“부장님께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 드리려고 그럽니다.”

김성철 부장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태연을 가장하고 장대산에게 물었다.

“증거물이 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내 노트북을 사용하면 되겠네요.”

이종수 이사가 책상에서 노트북을 가져다가 소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와 동시에 장대산은 주머니에서 꺼낸 USB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USB에는 어젯밤에 매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영상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제가 동영상을 실행해 보겠습니다.”

딸깍.

장대산이 마우스를 놀려 동영상을 실행시키자, 김성철 부장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김성철 부장은 큰일 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비록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녹음되어 있지는 앉았으나, 최준하가 겨울에게 시비를 걸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제 증거인멸을 위해 피해자인 겨울이 CCTV 기록 장치를 훔쳤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게 되었다.

물증도 부족한데, 심증마저도 부족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결국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려는 순간, 그는 동영상에서 작은 틈 하나를 발견했다.

이틈을 제대로 활용하면 거꾸로 겨울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장대산에게 질문을 던졌다.

“장대산 씨, CCTV 동영상은 어떤 경로로 입수했습니까?”

“혹시 몰라서 그 사건이 끝나고 매점 주인에게 부탁해서 저장해 놓은 것입니다.”

“확실합니까?”

“네.”

그래도 김성철 부장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장대산 씨, 동영상을 보면 최준하 씨가 한겨울 씨에게 다가가서 먼저 말을 거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목격자들이 증언한 내용에 의하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한겨울 씨가 최준하 씨에게 심한 욕설을 했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결과로 최준하 씨가 한겨울 씨한테 주먹을 날린 것이고요.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장대산이 우려한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장대산에게는 김성철 부장과 최준하를 벼랑 끝으로 밀어 버릴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증거를 공개하면 사건이 일파만파 커질 가능성이 있기에 김성철 부장에게 타협안을 제시해 보기로 했다.

“부장님께서 한겨울 씨한테 정식으로 사과하신다면, CCTV 기록 장치 절도 사건을 조용히 묻어 드리겠습니다.”

“거부합니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발생하는 문제는 모두 연수원 측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십시오.”

장대산은 핸드폰을 꺼내서 소탁 위에 올려놓았다.

“저는 약간의 트러블만 발생해도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뭐, 방어기제라고도 할 수 있겠죠. 아무튼 CCTV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침 저는 핸드폰 화면을 켜 두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녹음 버튼을 누를 수 있었습니다.”

장대산은 저장해 둔 핸드폰의 음성 파일과 노트북의 동영상을 동시에 재생시켰다.

[어라? 한겨울이잖아?]

[하아… 최준하 씨, 언제부터 저희가 서로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사이였는지 모르겠네요. 기본적인 선은 지켜 주시죠.]

[기본적인 선? 하, 얘 웃기네. 너도 반말해. 그러면 되잖아. 아∼ 춥네. 이런 한겨울에 낙하산 타면…….]

동영상과 음성 파일을 비교하며 듣고 있던 이종수 이사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에 이 음성 파일이 없었더라면 겨울은 최준하의 치졸한 복수극에 당해서 대한 그룹에서 제대로 근무해 보지도 못하고 쫓겨났을 것이다.

최준하가 휘두른 망나니 칼춤에 동조해서 같이 춤을 춘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음성 파일 재생이 끝나자, 이종수 이사는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겨울 씨, 장대산 씨. 신입 사원 연수를 책임지고 있는 제가 책임지고 사과하겠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이사님, 사과는 모든 진상을 밝히고 난 다음에 받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장대산이 단호하게 말했다.

“…또 뭐가 남아 있나요?”

“CCTV 기록 장치를 훔쳐 간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내야 하지 않습니까?”

“장대산 씨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소리로 들리네요?”

“아직 모릅니다. 범인을 찾기 위해서 몇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후우… 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사실대로 얘기해 줄게요.”

“매점에 경보 장치를 설치해 놓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그 점이 궁금해서 매점 주인에게 물어봤는데, 어젯밤에 깜빡하고 경보 장치를 작동시키지 않았답니다.”

“역시 그렇군요. CCTV 기록 장치 절도 사건과 관련해서 매점 주인이 어떤 말을 했습니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서, 범인을 잡아 달라는 말밖에 없었어요.”

“그렇다면 매점 주인도 공범일 겁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이종수 이사가 진심으로 놀랐는지 살짝 말을 더듬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혹시 몰라서 그 사건이 끝나고 매점 주인에게 CCTV 동영상을 핸드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앱을 설치해 줬습니다. 매점 주인이 그 동영상을 연수원 측에 제공했으면, 한겨울 씨를 범인으로 몰고 갈리는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도둑놈들이 어떻게 비밀번호를 알고 매점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하긴… 그러네요.”

“그때, 사장님에게 가르쳐 주는 과정에서 제 핸드폰에 앱을 깔아 시범을 보인 적이 있는데, 깜박 잊고 지우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 앱에 새벽에 매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촬영이 되어 있을 겁니다.”

장대산은 주머니에서 케이블을 꺼내 핸드폰과 노트북을 연결하고 동영상 재생 버튼을 눌렀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도둑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써서 얼굴은 알아볼 수 없지만, 신입 사원들인 것만은 확실했다.

상의는 패딩을 입고 있지만, 하의는 신입 사원 연수 당시 나눠 준 운동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담하게 매점에 조명을 키고 들어가 CCTV 기록 장치를 떼어서 유유히 매장 밖으로 사라졌다.

동영상 재생이 모두 끝나자 장대산이 입을 열었다.

“이사님, 이래도 한겨울 씨가 범인입니까?”

“정말 미안해요.”

“만약에 이 사건을 흐지부지 넘긴다면, 저는 이 증거물들을 경찰에 제공하겠습니다.”

“후우…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세요. 제가 책임지고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색출해서 합당한 처벌을 내리도록 할게요.”

“제가 확보한 증거물들은 복사해서 건네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장대산이 일련의 과정을 끝마칠 때까지 겨울은 멍 때리고 있었다.

언젠가 그와 이야기할 때, 대학 시절 그가 취미로 추리소설과 영화를 즐겨 본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에 흥미를 가져 범죄심리학에 입문해 공부를 했다는 것도 들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흥미 위주라고만 생각했지 이 정도로 큰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것이다.

장대산이 손을 톡톡 건드리며 눈치를 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겨울이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사님, 저희는 이 사건을 크게 확대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은 가급적 선처해 주십시오.”

“노력해 볼게요.”

“시간이 제법 늦었으니 이제 저희는 강의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겨울과 장대산은 이종수 이사에게 꾸벅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겨울은 이종수 이사의 방에서 나오자마자, 장대산을 꽉 끌어안았다.

장대산은 갑작스러운 겨울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이내 등을 토닥여 주고는 그를 떼어 냈다.

“대산 씨,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정말 미안해요.”

“입사 동기끼리는 서로 돕고 사는 거라고 겨울 씨가 말했잖아요.”

“하하, 제가 그랬죠.”

겨울은 과거의 자신에게도 감사함을 느끼며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이종수 이사의 사무실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종수 이사는 창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고, 죄지은 김성철 부장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 사건과 아무 상관없는 차병훈 과장은 불안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이종수 이사가 등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차 과장은 돌아가고, 김 부장은 나를 따라와.”

“네, 이사님.”

정재엽 원장실.

이종수 이사에게 사건의 전말을 모두 전해들은 정재엽 원장은 화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 부장, 당신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

“당신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사건이 이렇게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잖아!”

“…죄송합니다.”

김성철 부장의 목소리가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정재엽 원장은 고개를 돌려서 이종수 이사에게 말을 건넸다.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몇 명인가?”

“현재까지 파악된 사람은 최성진 부회장, 감사 담당의 조영진 부사장, 김성철 부장, 최준하를 포함한 신입 사원 아홉 명입니다. 다만, CCTV 기록 장치를 훔쳐 간 범인의 신상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매점 주인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알았어.”

짧게 대답한 정재엽 원장은 서동호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건의 진상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습니까?”

[정 원장님, 미진한 부분이 없는지 다시 한번 파악해 보시고, 본사로 올라오셔서 회장님께 직접 보고토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본사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뚝.

화났다는 듯 서동호 실장이 전화를 먼저 끊었다.

“하아…….”

정재엽 원장의 한숨 소리가 원장실 곳곳에 스며들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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