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0화 (20/328)

[20화] 다가오는 위기

톡톡.

이재성은 그렇게 자리를 떠나갔고, 홀로 남은 겨울은 독서실로 이동해서 공부를 이어 나갔다.

그때, 겨울은 누군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등을 두드리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보니 생각지도 않던 사람이 서 있었다.

“지유 씨가 이곳에 어쩐 일이세요?”

“저쪽에 보이는 자리가 제가 공부하던 곳이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잠도 쫓을 겸 잠시 커피 한잔 어때요?”

“네, 좋습니다.”

자판기에서 블랙커피를 뽑은 겨울과 송지유는 휴게실 의자에 앉았다.

“많이 피곤하시죠?”

“하하, 괜찮습니다. 이제 겨우 자정이 넘었는데요, 뭐.”

겨울이 겸연쩍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강의는 들을 만하세요?”

“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지유 씨는 어때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정말요? 너무 겸손하신 거 같은데요?”

“아니에요. 제가 전공한 과목들은 괜찮은데, 다른 과목들은 거의 문맹 수준이나 다름없어요.”

송지유의 표정을 확인한 겨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차 있었다.

정말로 그의 말대로 겸손인 게 분명했다.

아니면 자신을 배려해서 일부러 스스로를 낮춘 것일 수도.

“그러고 보니 지유 씨가 이번 연수에서 수석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겨울의 질문에 송지유는 연수원에서의 소문이 정말 빠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오늘 오후 휴식 시간에 누군가 물어오기에 농담을 가볍게 내뱉었는데, 어느새 그 말이 겨울의 귀에까지 들어갔으니.

겨울에게 농담이었다고 얘기해도 되지만, 이상하게 그녀는 자기의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수석까지는 아니고, 반드시 TOP 3 안에는 들려고요.”

겨울은 문득 머릿속에 중압감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다른 신입 사원들에 비해 송지유의 성적은 모든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라 있었다.

자신이 최준하와 말다툼을 한 것보다 송지유가 수석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더 화제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녀는 그런 시선들을 의식하고 죽기 살기로 공부하고 있는 것이리라.

“굳이 상위 세 명 안에 들려는 이유가 있나요?”

“음, 미안하지만, 그건 얘기해 줄 수 없어요.”

송지유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제가 괜히 물어본 것 같네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그건 그렇고, 매점에서 있던 사건은 어떻게 된 건가요?”

“네? 지유 씨도 알고 계셨어요?”

“지금쯤이면 모든 신입 사원들이 알고 있을 걸요?”

“하아…….”

겨울은 크게 한숨을 내뱉고, 최준하와 있던 사건에 대해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송지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겨울 씨, 최준하 씨와 부딪혀 봐야 도움 될 것 하나 없어요. 피하는 것까지는 힘들어도 적어도 무시는 하는 편이 좋을 거 같아요.”

“네. 그러려고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더군요.”

그 말을 끝으로 대화가 소강상태가 되었다.

둘은 어색하게 눈을 몇 번 마주치고는 커피를 홀짝였다.

괜히 좋던 분위기가 최준하 때문에 망쳐진 것 같아 원망스러운 겨울이었다.

“이제 들어가서 공부할까요?”

“네, 좋습니다.”

* * *

지필 테스트는 전날 배운 과목에 대해 주관식과 객관식을 혼용해 30문제 가까이 출제되고, 100점 만점으로 점수가 매겨진다.

겨울이 어제 배운 과목은 재무관리였다.

겨울은 당연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겁을 왕창 집어먹은 채 지필 테스트에 임했다.

하지만 웬걸.

배점이 10점짜리인 미래 가치(future value)를 계산하는 주관식 문제를 제외하고는 해볼 만했다.

조강희와 이재성이 정리해 준 강의 노트를 죽어라 공부한 결과였다.

마음속으로 두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보낸 겨울은 거침없이 시험 문제를 풀어 나갔다.

교탁에서 지필 테스트를 감독하고 있던 차병훈 과장이 벽시계를 힐끗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이제 팀장들은 팀원들의 시험지를 걷어서 저한테 제출해 주세요.”

시험지를 걷는 막간의 시간.

옆자리에 앉아 있던 조강희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 왔다.

“오빠, 어땠어요?”

“뭐, 그냥저냥.”

이전까지 지필 테스트가 끝나고 난 이후의 겨울의 표정은 항상 일정했다.

나라를 잃은 듯한 허무한 표정.

하지만 오늘은 다른 날과는 달리 눈빛에서 살짝 자신감이 엿보였다.

방금 치러진 지필 테스트를 제법 잘 봤다는 뜻이었다.

이를 눈치챈 조강희는 겨울이 자신의 도움을 받아서 시험을 잘 치렀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오빠, 시험 잘 봤구나?”

“모처럼 70점은 넘을 것 같다.”

“다 내 덕인 거 알고 있죠?”

“당연하지. 점심때 커피 한잔 사 줄게.”

두 사람이 속닥대는 동안 차병훈 과장이 공지 사항을 알렸다.

“지필 테스트를 보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늘 그래 온 대로 테스트 결과는 오후 2시에 커뮤니티에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본인이 획득한 점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저한테 이의를 제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전 강의 잘 받기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차병훈 과장은 시험지를 들고 강의실 밖으로 퇴장했다.

9시부터 시작된 오전 강의는 조직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사관리였다.

재무관리와 달리 암기하는 과목이어서 그런지 강의 분위기는 어제와는 달리 매우 편안한 분위기였다.

“…오후 시간에는 대한 그룹의 직급 체계, 승진 요건, 인사고과, 징계 절차에 대해서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점심 식사 맛있게 하시고, 오후 2시에 뵙겠습니다.”

그때, 신인사원 중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고 발언권을 요청했다.

“강사님, 오후 강의는 1시 30분에 강의를 시작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오호, 3반은 교육열이 매우 뛰어난 것 같으니, 그럼 1시 30분에 강의를 시작할까요?”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하하하, 2시에 뵙겠습니다.”

강사가 신입 사원들에게 목례하고 퇴장하자, 질문한 연수생은 여기저기서 야유를 받았다.

* * *

식당에서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고 있는 겨울에게 차병훈 과장이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한겨울 씨, 점심 식사 끝내고 1시까지 연수팀장실로 와 주십시오. 연수원 본관 205호입니다.”

겨울은 어젯밤에 매점에서 발생한 사건이 신입 사원 연수팀장, 즉 이종수 이사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고 짐작했다.

그만큼 차병훈 과장의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아마 진상 파악을 위해서 호출했을 것이다.

약간의 걱정은 되었지만, 목격자가 워낙 많기에 겨울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재수 없는 인간을 또다시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께름칙하게 다가왔을 뿐이다.

재빨리 생각을 끝낸 겨울은 차병훈 과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연수팀장실에서 봅시다.”

차병훈 과장이 돌아가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재성이 재빨리 말을 붙여 왔다.

“겨울 씨, 어제 일 때문인 것 같은데 같이 가 줄까요? 증인 자격으로?”

“괜찮아요. 만약 재성 씨의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연락하도록 할게요.”

“알겠습니다. 혹시 모를 연락에 대비하고 있어야겠군요.”

허겁지겁 식사를 끝낸 겨울은 재빨리 세면실로 가서 양치하고, 연수원 본관에 위치한 이종수 이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비서의 안내를 받아 이종수 이사의 사무실에 들어간 겨울은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최준하가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파에는 이종수 이사와 차병훈 과장, 그리고 얼굴을 모르는 사람 한 명, 이렇게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겨울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하고 상석에 앉아 있는 이종수 이사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신입 사원 한겨울이라고 합니다. 이사님의 호출을 받고 왔습니다.”

“어서 와요. 빈자리에 앉으세요.”

이종수 이사는 푸근한 표정으로 겨울을 반겼다.

겨울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이종수 이사가 또다시 말을 건넸다.

“한겨울 씨, 커피 좋아해요?”

“네, 좋아합니다.”

비서가 커피를 내올 때까지 이종수 이사는 일부러 말 한 마디도 건네지 않고, 겨울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살짝 긴장한 표정을 제외하고는 특이한 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려운 직장 상사를 만나면 이 정도 긴장하는 것은 당연지사.

겨울이 이런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종수 이사는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비서가 내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겨울 씨, 내가 보자고 한 이유를 알고 있나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젯밤에 매점에서 있던 사건에 대해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불려온 것 같습니다.”

“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오늘 새벽에 매점에 도둑이 침입해서 CCTV 기록 장치를 훔쳐 가는 절도 사건이 발생해서 부른 거예요.”

“혹시… 범인이 저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한겨울 씨가 범인이라고 지목한 목격자가 나타났거든요.”

겨울은 어이가 없었다.

아마도 최준하가 자신에게 해코지하기 위해서 CCTV 기록 장치를 절도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다.

어느 누가 봐도 어젯밤 매점에서 있던 사건은 최준하가 시비를 걸어왔고, 목격자 또한 수십 명에 가깝다.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는 CCTV 기록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입도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격자들이 누구인지 파악해야 하고, 그들이 원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하면서 딜도 벌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점이었다.

일단 어설퍼 보이는 이런 점은 나중에 파악해 보기로 하고, 이종수 이사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사님, 저는 CCTV 기록 장치를 훔쳐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겠죠?”

“네, 그렇습니다. 어젯밤에 매점에서의 사건에 대해 말씀드렸으면 합니다.”

“한겨울 씨의 시각에서 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어서 얘기해 보세요.”

“어젯밤 강의가 끝나고 저는 동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 매점에 갔습니다.”

겨울은 매점에서 있던 사건을 이종수 이사와 다른 두 사람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최준하 씨는 플라스틱 테이블을 손으로 넘어뜨리고 매점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한테 시비를 걸어온 사람은 최준하 씨가 분명한데 제가 뭐가 켕겨서 CCTV 기록 장치를 훔쳐 가겠습니까?”

“한겨울 씨, 이제부터 김성철 부장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내용을 얘기해 볼 테니까, 궁금한 점이 있으면 바로바로 질문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흠흠.”

호명 받은 김성철 부장이 가볍게 목을 풀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늘 아침에 누군지 밝힐 수 없지만, 제보를 받았습니다. 오늘 새벽에 한겨울 씨가…….”

김성철 부장의 설명을 듣고 있던 겨울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목격자들은 어젯밤에 매점에서 있던 사건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자신이 최준하에게 시비를 걸은 것으로 몰았기 때문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다 보니 CCTV 기록 장치를 훔친 범인이 자연스럽게 자기가 되어 버렸다.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을 만큼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겨울이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김성철 부장의 설명은 계속됐다.

“…어젯밤에 매점에서 벌어진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서 CCTV 기록 장치를 훔쳐 나오다가, 목격자에게 발각된 상황입니다.”

김성철 부장의 설명은 누가 들어도 논리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본인도 그 점을 알고 있을 것이 빤한데도, CCTV 기록 장치를 훔쳐간 사람이 자기라고 몰아가고 있었다.

‘뭐야? 김성철 부장도 최준하와 같은 편이라는 말인가?’

최준하의 아버지가 대한 그룹 부회장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 밀어야만 누명을 벗을 수 있다는 뜻.

겨울은 긴장한 목소리로 김성철 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부장님, 어젯밤 매점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서 목격자들에게 증언을 청취했습니까?”

“지금까지 다섯 명에게 증언을 청취했는데, 그 사람들 모두가 한겨울 씨가 최준하 씨에게 시비를 먼저 걸었다고 했어요.”

“나머지 목격자들은 조사하지 않을 생각입니까?”

“이 사건을 확대시켜 봐야 좋을 것이 없기 때문에 목격자 조사는 이쯤에서 멈출 생각이에요.”

“다섯 명의 목격자들이 최준하 씨한테 매수당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봅니다만, 그들이 뭐가 아쉬워서 위증을 했을까요? 오히려 그들을 함부로 몰아붙이는 것이 잘못 아닐까요?”

겨울은 김성철 부장도 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울적해졌다.

그러다가 어젯밤에 장대산이 한 말이 머릿속에 문득 떠올랐다.

이건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부장님, 제가 어젯밤에 매점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서, 증인을 데리고 와도 될까요?”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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