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7화 (17/328)

[17화] 압도적 1위와 압도적 꼴찌

차병훈 과장은 어젯밤 늦게까지 연수원에 남아 각 팀들이 경연 대회 준비를 위해서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CCTV로 지켜봤다.

간단하게 합만 맞추는 팀도 있었고,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신경 쓰는 팀도 있었다.

연습에 임하는 모습만 봐도 그는 순위를 매길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펼치는 퍼포먼스의 수준 역시 그의 예상 그대로였다.

TOP 팀을 끝으로 여섯 개 팀의 모든 경연이 끝났다.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에 1등부터 6등까지 순위가 매겨졌다.

이제 결선에 진출할 팀과 페널티를 받을 팀을 선정하는 과정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짝짝.

박수를 쳐서 시선을 자기에게 끌어 모은 차병훈 과장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신입 사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까지 9년 동안 연수를 진행해 오면서 수없이 많은 팀이 경연을 펼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매번 그렇지만, 어느 팀은 실망이 컸고, 또 어느 팀은 기대 이상으로 잘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밤을 새워 가며 팀워크 다지기 활동을 임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생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차병훈 과장은 신입 사원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자, 이제 약속대로 경연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Best’와 ‘Worst’라는 단어가 적힌 투표용지를 배포해 드릴 예정입니다. 본인들이 판단할 때, 제일 잘한 팀과 못한 팀을 적어서 여기 보이는 투표함에 넣어 주십시오. 이제부터 질문 받겠습니다.”

한 자신만만해 보이는 사원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팀이 가장 낫다면 자신의 팀을 적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그는 잠시 신입 사원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기다렸지만, 질문은 더 나오지 않았다.

“이제부터 투표용지를 배포해 드리겠습니다. 팀장들은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투표용지를 전달받은 팀장들이 길게 고민하지 않고 ‘Best’와 ‘Worst’ 팀을 적어 교탁 위에 놓여 있는 투표함에 용지를 넣었다.

모든 투표 절차가 끝나자, 차병훈 과장은 팀장들을 다시 한번 교탁으로 불렀다.

“팀장들은 선거관리위원입니다. 제가 투표함에서 투표용지를 꺼내서 ‘Best’와 ‘Worst’ 팀을 체크할 예정입니다. 제가 제대로 체크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십시오. 다른 분들은 강의실로 이동해서 대기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본래의 강의실로 돌아온 겨울은 팀원들과 함께 소곤소곤 대화를 나눴다.

“다들, 결과 어떨 것 같아요? 저는 불안해 죽겠어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장근호가 말을 꺼냈다.

자신 없어 보이는 게 꽤나 불안한 모양이었다.

“불안할 게 뭐 있어요, 오빠. 그런 것 치고는 퍼포먼스 잘 하시던데요? 팀 기도 엄청 잘 나왔고.”

조강희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적인 아이디어에 유치하지 않냐며 반대 의견을 낸 그지만, 그럼에도 연습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맞습니다. 확실히 디자인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팀 기는 물론, 무대도 훌륭히 잘 해내시던걸요.”

이재성이 맞장구치며 말했다.

이재성이야 말로 이번 경연 대회의 숨은 공로자였다.

송지유가 가장을 이끄는 아버지 같은 느낌이라면, 이재성은 뒤에서 팀원들을 챙기며 조율하는 어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새벽 연습에 모두가 지쳤음에도 활기를 잊지 않고 계속할 수 있던 것은 전부 그의 덕이었다.

“…1등 할 수 있을까요?”

장근호를 먼저 위로해 놓고 자신도 불안해졌는지 조강희가 중얼거렸다.

“1등이지.”

“네?”

“무조건 1등이라고, 우리.”

자신만만한 겨울의 말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연습 때, 그 어떤 굳은 일도 도맡아 하던 겨울이었다.

모두가 지쳐 있을 때도 매점에 가서 음료수를 사오거나 물건을 옮기는 등, 뒷정리를 할 때도 먼저 나서서 처리하곤 했다.

처음엔 무뚝뚝해 보였지만, 알면 알수록 편하고 선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당당하게 1등을 말하자, 모두들 정말 그렇게 믿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얼마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차병훈 과장이 팀장들과 함께 강의실에 복귀했다.

팀장들이 굳은 표정으로 자신들의 자리로 이동하자, 교탁에 선 차병훈 과장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먼저 Best 팀을 발표하겠습니다.”

모두가 침을 꼴깍 삼켰다.

두근두근.

긴장한 나머지 겨울은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Best 팀은 부릉부릉 팀. 축하합니다.”

“와!!”

팀원들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다른 팀들은 축하한다는 의미로 박수를 쳐 주었다.

얼굴에는 웃음을 띠웠으나 마음만은 쓰릴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서 따지지 않았다.

그만큼 부릉부릉 팀의 퍼포먼스는 간결하고 명료했다.

대한 그룹의 신입 사원임을 강조하는 것과 동시에 광고 ost로 모두의 추억을 자극했다.

화려하기만 한 자신들과는 달리, 팀의 목표와 존재 의의, 그리고 독창성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차병훈 과장도 박수를 쳐 주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Worst 팀은 따로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신입 사원 커뮤니티에 올려놓을 예정이니 각 팀은 확인 바랍니다. 점수가 깎여 있다면 본인의 팀이 Worst 팀이라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말에 부릉부릉 팀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이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모두의 앞에서 공개되었다면, 차후 다른 과제를 하더라도 무시를 받거나 좋지 않은 선입견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1시부터 대강당에서 결승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부릉부릉 팀은 지금 즉시 대강당으로 이동해서 경연을 준비해 주십시오.”

* * *

같은 시각.

송훈석 회장은 서동호 실장과 함께 연수원장실에서 정재엽 원장과 다과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 원장님, 언제까지 연수원에 머물러 있을 겁니까?”

“회장님, 저는 이제 퇴물에 불과합니다. 이대로 조용히 은퇴하는 게 내 작은 소망입니다.”

정재엽 원장의 말에 송훈석 회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왜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 소망 들어드리고 싶지만, 안 될 것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저는 지유에게 대한 그룹을 물려줄 생각입니다.”

그 말에 정재엽 원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송훈석 회장은 은퇴하고 나면 전문 경영인한테 대한 그룹을 맡기는 게 안타깝다며 늘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다.

그런데 갑자기 송지유한테 대한 그룹을 물려준다니.

“드디어 그 아이가 결심을 했답니까?”

“네, 그렇습니다.”

“허허, 이것 참 경사로군요.”

“맞습니다. 하하하.”

송훈석 회장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와, 이종수 이사가 찾아왔음을 알렸다.

“얼른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원장님.”

비서의 안내를 받아 원장실로 들어오던 이종수 이사는 송훈석 회장을 보고는 멈칫했다.

그가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 이사, 왜 그렇게 놀라나? 귀신이라도 봤나?”

“아, 아닙니다.”

“이리 와서 앉아.”

“네, 회장님.”

이종수 이사가 소파 빈자리에 앉자마자, 송훈석 회장이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이 이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

“제가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송훈석 회장은 차를 한잔하며 표정을 숨기려 애썼지만,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크흠, 최준하가 속한 팀은?”

“…그게 조금 그렇습니다.”

이종수 이사가 머뭇대다가 대답했다.

“자세하게 얘기해 봐.”

“퍼포먼스는 아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준수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압도적인 꼴찌였다고 합니다.”

“흠, 이유를 듣지 않아도 왜인지 알 것 같구먼. 이래서 사람들이 정치가 중요하다 말을 하는 걸세.”

“네, 맞습니다. 한 번 경고를 받은 뒤로는 조용하던 모양이지만, 앞서 평판을 망쳐 놓은 탓에 최악의 팀으로 꼽혔습니다.”

“쯧쯧, 애꿎은 팀원들만 피해를 봤군. 이에 대한 대처는 준비했나?”

“그게… 저희도 그게 고민입니다.”

송훈석 회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팀원을 잘못 선택한 것도 실력이야. 그대로 평가에 적용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종수 이사와 대화를 끝낸 송훈석 회장은 고개를 돌려서 정재엽 원장에게 말을 건넸다.

“정 원장님, 경연을 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심사의 공정성 때문에 대강당에 입장하는 것은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니 영사실에 자리 좀 마련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금방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대강당에서는 결선 준비를 위해서 팀들 모두 나름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열한 명의 팀장은 제비뽑기를 통해서 순서를 정했다.

부릉부릉 팀은 운 좋게도 11번, 마지막 순번을 뽑았다.

“팀장들은 각자 대기실로 이동해서 대기해 주십시오.”

대기실로 돌아온 송지유는 팀원들에게 제비뽑기 결과를 알려 주며 긴장하지 말라며 토닥이고 있었다.

그때, 잠시 화장실에 간 이재성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곧장 팀원들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정말로 말한 대로 결승 무대에 오르니 기분이 묘하네요.”

“그러게요.”

이재성의 말에 송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는 결과물을 보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나, 예상과 직접 겪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내심 그녀도 긴장해 손을 조금 떨고 있었다.

“아, 그 왜, 우리 팀장님에 대해 소문 퍼트린 놈 있지 않습니까?”

그때, 이재성이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그… 그룹 부회장 아들이라는 그 사람 말인가요?”

조강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번 연수에 참가한 사람 중 이 소문에 대해 모르는 이는 없었다.

“네네. 다름이 아니라 방금 화장실에 갔을 때, 그놈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더군요. 웃음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소리를요?”

“네. 아무래도 이번 경연에서 최악의 팀으로 선정된 모양입니다.”

겨울은 깜짝 놀랐다.

분명 그가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능력이 있는 자였다.

그런 그가 경연을 제대로 못 치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고 계속 팀원 탓을 하는데… 어휴, 정말 제가 송지유 팀장님이랑 여러분과 한 팀이라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이재성이 호탕하게 웃자, 모두가 그를 따라 엷게 웃었다.

문득 겨울은 모두가 긴장이 풀렸음을 눈치챘다.

이재성의 유쾌함은 정말로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정각 11시가 되자 경연 대회 결선이 시작됐다.

부릉부릉 팀은 경연 순서가 마지막이기에 제법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으나, 마음 편하게 대기하지 못했다.

앞서 무대를 서는 팀들의 퍼포먼스가 수준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긴장해서인지 겨울은 괜히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겨울 오빠, 긴장했어요?”

조강희가 겨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응, 아무래도 긴장이 되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 보는 건 축구를 그만두고는 처음이라.”

“괜찮아요. 아까 오빠가 말한 대로 저희 1등할 거예요.”

조강희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하는 자세를 취하자, 겨울이 피식 웃었다.

자신의 긴장을 풀어 주려 애교를 부리는 게 귀여운 탓이었다.

“그래. 우리 팀이 1등 하면, 오늘 밤에 내가 매점에서 맥주 쏜다.”

“그 말 진짜입니까?”

그때, 언제 들었는지 이재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팀원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이, 알겠습니다. 오늘 1등 하면 매점에서 제가 맥주 쏘겠습니다!”

“하하! 그럼 제가 안주를 쏘겠습니다!”

겨울이 호탕하게 외치자, 이에 질세라 이재성도 외쳤다.

마지막 점검이 끝날 무렵, 부릉부릉 팀의 순서가 다가왔다.

팀장인 송지유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모두 후회 없이 무대에서 놀다가 내려옵시다. 제가 선창하겠습니다. 대한 그룹!”

“부릉부릉!”

“하하하!”

몇 번을 해도 귀엽고 웃긴 구호에 모두가 한바탕 웃은 뒤, 씩씩한 모습으로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심사 위원과 청중 앞에 2열 횡대로 선 그들은 팀 구호를 외치고는 퍼포먼스에 돌입했다.

* * *

영사실에서 부릉부릉 팀의 퍼포먼스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송훈석 회장이 서동호 실장에게 말을 건넸다.

“서 실장, 참 우리 지유가 잘 컸어.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이번 신입 사원들은 무대 수준이 좀 높군 그래. 회사원이 아니라 배우를 해야겠어. 하하.”

이게 칭찬이 아니라 비꼼인 것을 아는 서동호 실장이 말했다.

“그래도 송지유 씨의 팀은 좀 다르지 않습니까? 저는 저들 중 한 팀을 뽑자면 저 팀을 뽑겠습니다.”

“그건 그렇지. 경연 의도를 잘 꿰뚫어 봤어. 음, 저기 붕붕 날아다니는 녀석은 어쩐지 낯이 익은데…….”

“회장님께서 고심 끝에 조건부로 합격시켜 준 한겨울이잖습니까?”

“아, 저 친구가 그 녀석이구만. 운동을 잘한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군.”

송훈석 회장이 끝말을 흐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부릉부릉 팀의 퍼포먼스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 나오던 노래가 끝나자 관객석에서 박수가 일었다.

짝짝짝.

부릉부릉 팀원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실수하지 않고 퍼포먼스를 끝마친 것에 대해 감사했다.

사회자석에서 사회를 보고 있던 이종수 이사가 마이크 전원을 키며 입을 열었다.

“부릉부릉 팀,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잠시 무대에서 대기하고 계십시오.”

잠시 후, 먼저 퍼포먼스를 끝낸 열 개의 팀이 무대 위에 올라왔다.

그 동안, 이종수 이사는 심사 위원들의 평가 결과표를 건네받았다.

“뜸들이지 않고 바로 발표하겠습니다.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팀은…….”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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