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15화 (15/328)

[15화] 부릉부릉

“음, 일단 컨셉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우리 팀이 어떤 팀인지를 팀명에서부터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조강희가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그 말에 송지유를 비롯한 팀원들이 주억거렸다.

“컨셉이라… 아무래도 신입 사원이라는 설정은 빼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기왕이면 대한 그룹의 신입 사원이라는 걸 강조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대한 그룹의 신입 사원인 우리는 어떻다! 이렇게요.”

너나 할 것 없이 저마다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이재성도 이제 더 이상 노하우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TOP는 어떻습니까? 최근 유명 브랜드를 의식해서…….”

“글쎄요, 타 브랜드의…….”

한편, 겨울은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다들 요즘 유행을 생각한 줄임말이나 어디 명언에서 가져온 단어 등 저마다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었다.

유일하게 말을 꺼내지 않고 있는 사람은 겨울 혼자였다.

자기도 사람인데, 팀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하지만 모든 팀원들에게 임팩트 줄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송지유는 겨울이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위해서 끙끙대고 있다는 알고 있었지만, 굳이 그에게 답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 분명하기에 다른 팀원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그의 답변을 기다리기로 했다.

한창 회의가 무르익을 무렵, 겨울이 입을 떼었다.

“…‘부릉부릉’은 어떻습니까?”

“부릉부릉이요?”

“네. 자동차 시동을 걸 때 나는 소리지 않습니까? ‘대한 그룹이라는 자동차가 출발할 때, 가장 눈에 띄게 움직이고 가장 먼저 나서는 게 저희 부릉부릉 팀이다’라는 건 어떨까요?”

처음에 겨울이 제시한 팀명을 듣고 다들 미간을 좁혔으나 그 이유를 듣고 나니 제법 괜찮은 것 같았다.

송지유도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어감이 유치하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대한 그룹이 자동차 사업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거 같아요. 보류로 해 두고 다른 의견도 들어 보죠.”

* * *

“이제부터 저희 팀명은 부릉부릉입니다.”

제법 괜찮은 팀명이 많았으나 의외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은 부릉부릉이었다.

정작 의견을 내놓은 겨울마저 얼떨떨할 지경이었다.

팀명이 결정되자 팀 구호와 팀 기의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결정되었다.

부릉부릉이라는 단어를 표현할 수 있는 구호와 팀 기에 들어갈 수 있는 내용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팀 기는 산업디자인학과 출신인 장근호가 맡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그들은 다시 토의에 들어갔다.

제일 중요한 팀 노래와 퍼포먼스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이것 역시 빠르게 결정이 났다.

이미 대한자동차 광고 중 소비자들 사이에서 유독 유명한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타 커뮤니티 사이트들이나 동영상 사이트에서 많이 쓰여 모르는 이가 없었다.

접근성도 좋고 팀 이미지와도 맞다는 판단에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네. 그럼 노래는 대한 그룹 자동차 광고 ost로 확정하고, 퍼포먼스 역시 이를 바탕으로 구성하도록 할게요. 근호 씨는 팀 기를 제작해 주시고, 나머지 분들은 이제 노래 가사를 개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송지유가 지시를 내리자, 장근호는 팀 기 제작을 위해 자리를 떴다.

차병훈 과장이 팀 기는 4절 켄트지에 그려서 액자에 넣으라고 했기에 이를 위한 재료를 가지러 자리를 떠난 것이다.

나머지 팀원들은 개사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노래 가사 개사 역시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완료했다.

워낙 팀 컨셉 자체가 명확하고 그 소재 역시 한정적이어서 개사하는 데 시간이 크게 소요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폭풍 같은 속도.

다른 팀들이 아직도 퍼포먼스 구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점을 본다면, 부릉부릉 팀은 압도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소품 제작과 연습뿐이었다.

소품 제작에 대해서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강의실 밖으로 나간 장근호가 돌아오더니 팀원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와서 말하기는 좀 그러지만, 팀명이 너무 유치하지 않습니까?”

강의실 밖으로 나가는 길에 다른 팀들, 다른 반들의 퍼포먼스를 슬쩍 보고는 내심 기가 죽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심사관들의 연령층이나 취향을 고려해 다시 짜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근호는 아이디어 자체에 큰 불만은 없었다.

단순하지만 명확하고, 유치하지만 임팩트가 있었다.

다만, 장점보다도 단순하고 유치하다는 단점이 계속 신경 쓰인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 팀원 중 누구도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그들도 어느 정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처음 아이디어를 제시한 겨울마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송지유는 생각이 다른지 고개를 저었다.

“근호 씨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의하기도 어렵네요. 일부 유치하다고 느낄 만한 구석은 있지만, 오히려 그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팀 명만 해도 눈에 확 띄고, 퍼포먼스 내용도 그룹의 광고를 활용해서 제법 알차게 구성되어 있지 않나요?”

“그래도… 심사위원들이 보기에 학예회 같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학예회라… 글쎄요. 근호 씨는 이번 과제를 통해 심사위원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고 싶으신 건가요? 멋진 퍼포먼스? 화려한 개사 실력? 멋있는 신입 사원의 모습인가요? 심사위원들이 바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닐 거예요.”

송지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경연을 통해서 저희가 어떤 팀이고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게 중요하죠. 저희는 대한 그룹 신입 사원이지 배우가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저희 팀이 기획한 것들은 전혀 나쁘지 않아요.”

그 말을 들은 장근호를 비롯한 일곱 명의 팀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 역시 시야가 크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여태껏 스스로가 멋지고 당당한 신입 사원이 되고자 생각해 왔다.

그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대한 그룹이 원하는 신입 사원이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송지유를 통해 다시금 자신만의 목표가 재조정된 겨울이 입을 열었다.

“저도 팀장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다른 팀에서 준비하는 것들을 얼핏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정작 이번 과제의 숨겨진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말을 보태자, 송지유가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음, 팀장님과 겨울 씨의 말을 듣고 나니 확실히 그러네요. 그래도 너무 유치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수정했으면 합니다.”

“근호 씨 말도 일리가 있어요. 유치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수정 보완하도록 합시다.”

그때였다.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큰 목소리들.

“아니, 팀장님!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지금 말씀하시는 게 딱…….”

강의실이 너무 소란스러워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누가 봐도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점 언성이 높아져 제법 멀리 있는 팀까지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장근호와 팀원들은 송지유에게 다시금 감탄과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반대되는 의견을 부드럽게 전달하고 필요한 의견은 수용하는 자세.

그녀와 한 팀이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그들이었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팀원들은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퍼포먼스에 쓰일 소품 목록을 비롯해 이제 기획 단계에서 손댈 것이 없는 그들에게 남은 것은 연습뿐이기 때문이다.

강의실에서 퍼포먼스 연습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에 사전에 차병훈 과장이 말한 대로 비어 있는 강의실을 찾기로 한 것이다.

송지유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 먼저 강의실에 가서 연습하고 계세요. 저는 차병훈 과장님께 소품 요청하러 갔다가 합류할게요.”

“네. 그럼 강의실 호수는 핸드폰으로 알려 드릴게요.”

그러고 그녀는 천천히 겨울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겨울 씨, 저랑 잠시 데이트 좀 하실까요?”

“네?”

갑작스러운 발언에 겨울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옆에 있던 조강희도 눈을 튀어나올 듯이 크게 뜨며 송지유를 바라보았다.

“호호,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어요. 준비실에 같이 가자는 말이니까요. 소품 좀 같이 들어 주세요.”

“…아, 네.”

* * *

차병훈 과장은 자신을 찾아온 두 남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는 대한 그룹에 입사한 뒤 9년 동안 신입 사원 연수를 담당해 왔기에 지금 이 시간에 교육생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대충 예상되었다.

팀 노래를 선정하거나 진도가 빠른 팀은 퍼포먼스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에 열중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CCTV로 지켜본 결과, 실제로도 그렇고.

하지만 부릉부릉 팀은 퍼포먼스 구성까지 끝냈다고 하면서 소품을 요청해 오는 것이 아닌가.

간혹 이처럼 빠른 시간에 소품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연 대회를 포기하고 대충 마무리하려는 팀들이었다.

하지만 대한 그룹 회장의 딸인 송지유가 그런 판단을 내리고 가볍게 행동할 리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같이 온 남자의 눈빛에도 열정이 가득해 보였다.

열정이 가득한 팀은 언제나 그렇듯 퍼포먼스 경연 대회에서 크게 사고를 치곤 했다.

송지유가 속해 있는 팀이 이번에 사고를 크게 쳐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필요한 소품이 무엇인가요?”

“먼저…….”

송지유는 필요한 소품을 하나하나 열거해 나갔고, 옆에 서 있던 겨울은 목록을 보며 그녀가 놓친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송지유의 말을 듣고 있던 차병훈 과장은 난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수팀에서는 신입 사원들이 요청하는 소품들이 매년 비슷비슷하기에 적당한 것들로만 준비해 놓는다.

문제는 송지유가 요청한 소품들 중에서 30% 정도는 연수원에서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었다.

그녀가 경연 대회를 포기하려는 생각이었다면, 차병훈 과장은 있는 것으로 적당히 알아서 쓰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송지유의 눈빛에는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신분 또한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쉽게 간과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신입 사원 연수를 총괄하고 있는 이종수 이사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소품을 내 주는 것에 대한 판단은 자신의 몫이지만, 돈을 쓰는 것에 대한 보고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요청한 것들 중에 저희 쪽에서 구비되지 않은 물품들이 있네요. 저녁 식사 전까지 준비해 놓을 테니 식사 이후에 다시 한번 찾아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준비실을 떠나가자, 차병운 과장은 이종수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 과장, 무슨 일인가?]

“이사님, 소품 준비 때문에 잠시 시내에 나갔다 오겠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소품이 부족한가?]

“그게 아니라. 송지유가 소속되어 있는 팀에서 요청한 소품 중에서 구비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래. 가기 전에 대리로 누구 한 명 세워 놓고 다녀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소문을 낸 녀석이 누군지 밝혀냈나?]

차병훈 과장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소품 따위를 구해 오는 것은 사실 일도 아니었다.

단지 귀찮을 뿐.

하지만 이종수 이사가 묻는 질문은 명백히 그에게 난처한 것이었다.

“네. 예상대로 최준하였습니다. 행여나 논란을 일으키기 위해 악의적인 소문을 낸 것은 아닌가 싶어 철저하게 조사했지만, 그가 팀원들에게 스스로 떠들어 댄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하아…….]

전화기 너머로 이종수 이사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차 과장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음, 모른 척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소문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바로 제재할 예정입니다.”

[알았어. 그런 낌새가 보이면 바로 조치하도록. 수고해.]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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