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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10화 (10/328)

[10화] 밝혀진 진실

월요일 이른 아침.

연수원으로 갈 준비를 끝낸 겨울은 핸드폰으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들, 엄마 아빠는 너를 믿는다.]

“열심히 할게요.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그래. 잘 할 거라 믿는다. 그래도 대한 그룹 신입 사원 연수가 상당히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에이, 무리할 게 뭐 있다고 그래요. 잘하고 올게요. 무슨 일 있으면 가을이나 호영이한테 연락하시구요.”

“그래, 알았다.”

그때,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 한상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소리가 너무 작은 나머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빠가 뭐라셔요?”

[아이고, 이 양반도 참. 모름지기 잘난 사람들은 항상 시기와 질투를 받는 법이란다. 너무 튀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조용히 있지도 말고 적당히 잘 하고 오라네.]

“원래 적당이 제일 어려운 법인데… 그래도 기왕 하는 거 1등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하여간 부자끼리 닮아 가지고 쓸데없는 말은 잘해요. 호영이 기다리고 있겠다. 빨리 가 봐.“

“네, 엄마. 아빠한테도 안부 전해 주세요.”

전화를 끊은 겨울은 가을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잘 다녀와.”

“오냐. 너도 잘 있고.”

“옷 더럽히지 말고 잘 챙겨와.”

그 말에 겨울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지금 겨울은 고가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부모님이 택배로 붙여 주신 정장이었다.

“그럼. 엄마 아빠한테 미안해서라도 절대 안 더럽히지. 드라이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입고 올게.”

철컥.

겨울이 현관문을 열고 자신 있게 걸음을 내딛었다.

* * *

겨울의 어머니인 이진숙 여사가 아들과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 오빠는 갔니?”

[응, 방금 막 나갔어.]

“오빠에게 말 안 했지?”

[응. 근데 엄마, 굳이 숨길 필요 있어?]

사실 이진숙 여사도 가을과 생각이 같았다.

겨울이 입고 나간 옷은 120만 원의 고가의 명품 정장이었다.

이진숙 여사는 지난 토요일 아침에 있던 일을 기억에 떠올렸다.

겨울이 대한 그룹에 취직할 수도 있다는 말에 얼마나 기뻐했는가.

남편과 같이 아이들을 보러 서울로 올라가야 하나 고민하던 때,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집으로 몰려왔다.

시골 사람들끼리 아무리 친하다지만, 이렇게 다 같이 한집에 몰려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표 격인 사람이 커다란 종이가방을 하나 건네주면서 겨울이 취직 기념 축하 선물이라는 게 아닌가.

그녀는 기쁜 마음에 종이가방 안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겨울이의 옷 사이즈는 어떻게 알았는지, 맞춤 정장이 들어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놀란 것은 정장의 가격이었다.

무려 120만 원.

그녀는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으나, 동네 사람들은 그녀가 받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드러눕는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쁜 마음에 그녀는 정장을 꺼내서 살폈다.

하지만 종이가방 안에는 정장뿐만 아니라 곱게 접혀 있는 편지 한 장이 같이 들어 있었다.

짧게 회상을 끝낸 이진숙 여사는 다시 편지를 꺼내 읽었다.

― 겨울이 엄마.

6년 전에 겨울이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죽어서 저세상에 있었을 거야.

겨울이가 생명의 은인인데도 여태껏 애한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서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감정이 있었어.

그래서 이번에 겨울이 대한 그룹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십시일반 다 같이 모은 돈으로 산 양복이니까 겨울이한테 전해 줘.

겨울이 성격에 부담스러워할 수 있으니까, 비밀로 해 주면 좋겠어.

고향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는 편지를 벌써 몇 번이나 읽는 것임에도 이진숙 여사는 다시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아들내미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은혜를 베풀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겨울이가 부담 느낄까 봐 싫대.”

[오빠가 알면 좋아할 텐데. 아, 그보다 오빠가 대한 그룹에 합격한 걸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안대?]

“누구겠니. 동네 사람들한테 겨울이 얘기할 사람은 하나밖에 없지 않니?”

[아… 아빠구나?]

그때, 어떻게 소리를 들었는지 한상우가 툴툴거렸다.

“하이고, 딸내미는 아직도 이 아빠를 모르는구나.

이진숙 여사는 호호 웃으며 대답했다.

“땡. 당연히 네 아빠가 그랬을 리 없잖니. 가을이 네가 합격했을 때도 조용히 있던 사람인데.”

한상우는 가을이 어렵기로 소문난 공인회계사와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을 당시에도 동네 사람들에게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럴 정도로 입이 무거운데, 하물며 겨울이 대한 그룹 입사에 합격했다고 소문낼 리가 있겠는가.

[그럼 한 사람밖에 없네. 아무튼 알겠어요. 오빠 연수 끝나면 한번 내려갈게요.]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네~ 사랑해요, 엄마.]

“호호, 그래. 나도 사랑한다, 딸.”

뚝.

이진숙 여사가 전화를 끊자 다시 한상우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아빠한테는 사랑한단 말 한 번 안하고, 하여간 엄마만 챙기지.”

* * *

[오빠, 항상 우리 오빠 챙겨 줘서 고마워.]

“고맙긴. 친구 사이에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우리 오빤 아닌 거 같던데?]

가을의 장난 섞인 말에 호영은 쿡쿡거리며 웃었다.

확실히 겨울은 눈에 띄게 챙겨 주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뭐. 친구라서가 아니라 은인이라서 챙겨 주는 걸로.”

6년 전, 겨울의 도움으로 인해서 생명을 건진 사람들 중에는 호영의 부모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호영은 아직도 오싹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물에 젖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자신의 부모님 역시 콜록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후에 구급차가 오고 부모님을 모시고 나서야 호영은 절룩거리는 겨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짧게나마 과거를 회상한 호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용인까지 조심해서 가.]

“어. 겨울이, 저기 보이네. 나중에 애들 내려 주고 나면 또 전화할게.]

급하게 가을과 통화를 끝낸 호영은 겨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겨울아, 여기야.”

호영을 발견한 겨울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언제나 그렇듯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추운데 왜 나와 있어?”

“내가 따뜻한 차 안에 있으면, 너 여기서 한참 헤맸을 거잖아.”

“…아닌데.”

“그래그래. 캐리어는 트렁크에 실어. 열어 줄게.”

덜컹.

겨울이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는 모습을 본 호영은 내심 뿌듯했다.

120만 원짜리 명품 정장이 겨울에게 제법 그럴 듯하게 어울렸기 때문이다.

이내 둘은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탄 겨울은 궁금한 것이 있다는 듯 호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전 10시까지 가면 되는데, 이렇게 꼭두새벽부터 서두르는 이유가 뭐냐?”

“넌 7시가 새벽이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여간 한마디를 안 져요.”

호영은 핸드 기어 옆에서 껌 하나를 꺼내 입에다 넣었다.

“차가 밀릴까 봐 걱정돼서 여유 있게 출발하는 거야. 괜히 늦어서 밉보이는 것보다 조금 피곤한 게 더 낫지 않냐?”

“그렇긴 하지.”

“그나저나 정장이 좀 잘 어울린다? 이번에 하나 장만했어?”

겨울의 기분을 살려 주고자 호영이 모르는 척 물었다.

“어. 내 돈으로 산 건 아니고, 부모님이 보내 주셨다.”

“크, 역시 두 분 보는 눈이 좀 있으시네. 너한테 딱이다, 딱.”

“음, 근데 조금 수상하단 말이지.”

“…뭐가?”

호영은 움찔했다.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옷을 사주신 게 3년 조금 넘었나? 그럴 거야.”

“근데?”

“내가 운동을 그만두면서 근 몇 년 동안 살이 좀 쪄서 정확한 사이즈를 모르실 텐데, 이상하게도 이 정장은 몸에 딱 맞는단 말이지?”

그제야 호영은 아차 싶었다.

몰래 선물을 주고 싶다고 생각한 나머지,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그래도 선물을 받는 대상이 겨울이라 사소한 부분은 눈치채지 못할 거라 여겼는데, 오산이었다.

“가을이가 알려 줬나 보지, 뭐.”

“음, 아닌데. 가을이가 그렇게 기특한 성격은 아니지. 세상 어느 여동생이 자기 오빠 옷 사이즈까지 외우고 다녀?”

호영은 진심으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은 무언가에 꽂히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을 보려는 성향을 가졌다.

승부욕.

겨울이 축구를 하던 당시에도 다들 승부욕 하면 그를 손꼽아 이야기했다.

그런 승부욕이 혹시라도 발현될까 걱정된 호영이었다.

만약 겨울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와중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금방 발각될 게 분명했다.

호영은 과감하게 화제를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가을이가 그냥 천재라서 그런 거 아냐? 누구처럼 자기 옷 사이즈도 기억 못하고 그러진 않잖아.”

“말이 심한데?”

“네 얘기라는 자각은 있어서 다행이다. 그냥 편하게 생각해. 뭘 그렇게 따지냐. 그렇게 꼬치꼬치 따질 거면 경찰 시험 보고 형사나 하든가.”

“오, 괜찮은데? 나랑 어울리지 않냐?”

“어울리기는 무슨… 그러지 말고 나하고 동업하자니까?”

“내가 지난번에 얘기하지 않았냐?”

“야, 그러는 놈이 대한 그룹에서 탈락하고 경찰 시험을 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화제를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한 호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겨울의 시선을 돌릴만한 노래를 틀었다.

용인에 위치한 연수원을 가기 위해서는 올림픽 도로를 타고 가다가 한남대교 남단에서 경부고속도로와 합류하면 된다.

그런데 호영은 경부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한남대교를 지나쳤다.

궁금함이 생긴 겨울은 그 이유를 물었다.

“전에 말한 후배도 태워야 해서. 잠실에 살고 있거든.”

“지난주 목요일 밤에 통화한 후배?”

“어.”

“여자냐?”

“어.”

“예쁘냐?”

“어.”

“여친이야?”

“후배라는 소리 못 들었어?”

“그럼 내가 꼬셔도 되겠네?”

“‘너 자신을 알라’는 테스 형님의 말 모르냐?”

“에이, 무정한 놈.”

겨울과 호영이 전혀 쓸모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호영의 후배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호영은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고 알려 주었다.

잠시 후, 저 멀리 우아한 각선미를 보유한 여자가 캐리어를 끌며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멀리서도 상당한 미인임은 알아볼 수 있었다.

“내려.”

“…나도?”

“내 후배인데 차 안에서 인사를 나눌 거야?”

덜컹.

차에서 내린 겨울은 저 멀리 다가오는 여자를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가물가물하기만 할 뿐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여자는 둘에게 다가와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영 오빠, 많이 기다렸어요?”

“아니야. 방금 도착했어.”

“어… 이분은?”

“강희, 너 얘 기억 안 나? 잘 생각해 봐.”

그 말과 함께 호영이 겨울을 바라보았다.

겨울이 어깨를 으쓱이자 호영은 어이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야, 너도 모르면 어떡해. 당연히 서로 알 줄 알았더니.”

겨울은 그녀가 누구인지 떠올리기 위해 머리에 힘주었다.

호영의 말대로라면 그녀와 자신은 아는 사이였다.

강희라 불린 여자 역시 잘 생각이 안 나는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겨울… 겨울? 겨울 오빠예요?”

자신의 추측에 확신이 없는지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겨울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해 냈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조강석의 여동생.

“너 설마 강희냐? 조강희?”

“네! 맞아요!”

“와,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못 알아보겠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반가움에 둘의 대화가 길어지려 하자, 호영이 급하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얘기는 연수원 가는 길에 더 나누고 빨리 출발하자.”

차에 타자마자 조강희는 겨울에게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왔는지 물었다.

“축구 그만두고 평범하게 지내고 있지. 너는?”

“저도 평범하게 살고 있죠.”

“평범하게 산다는 애가 대한 그룹 신입 사원 연수를 간다고?”

“그렇게 말하는 오빠도 가고 있잖아요. 호호.”

겨울은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통과해 연수를 가는 게 내심 찔렸다.

“나는 좀 경우가 다르긴 한데…….”

“응? 뭐가요?”

결국 겨울은 그녀에게 자신이 어떻게 면접에 통과하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창피하긴 하지만, 호영의 후배에게 거짓말로 허세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해서 운이 좋았지.”

“아, 그렇구나. 안 그래도 작년 신입 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못 봐서 신기해하고 있었어요. 몸은 괜찮으세요?”

조강희가 불편한 시선으로 자신을 볼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응. 후유증도 없고, 멀쩡해.”

“휴, 다행이다…….”

둘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호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근데 아직 완전히 입사가 확정된 건 아니야.”

“네?”

“면접은 통과했는데, 아무래도 특별 채용이다 보니 조건이 더 붙더라고.”

“무슨 조건이요?”

“이번 연수에서 평균 70점을 넘겨야 한다더라. 그러니까 강희, 네가 좀 도와줘라.”

겨울은 호영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또 토익 700점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을 놀릴 줄 알았는데, 그래도 아는 동생 앞이라고 봐주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신입 사원 연수를 무사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조강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고마운 겨울이었다.

“그럼요! 겨울 오빠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쁘네요.”

“겨울이, 너도 강희 좀 챙겨 주고. 강희, 얘가 똘똘한데 은근 덤벙대는 구석이 있어서 걱정이네. 혹시 동생한테 도움 받는 게 부끄럽다거나 그런 거 아니지?”

호영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내 처지에 더 부끄러울 게 뭐가 있냐. 고맙지. 강희야 잘 부탁한다.”

“네, 오빠! 저도 잘 부탁드려요!”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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