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5화 (5/328)

[5화] 운명의 날 (2)

면접 위원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끝낸 송훈석 회장은 서동호 실장의 안내를 받아 비어 있는 상석에 앉았다.

그러고는 앞에 놓인 생수병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미 아시겠지만, 오늘 면접에는 제 딸과 최성진 부회장의 아들인 최준하 군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둘이 대한 그룹이 원하는 인재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탈락시키십시오. 그렇게 해도 저는 여러분께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소신껏 면접을 실시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송훈석 회장의 뒤를 이어서 박철헌 인사 담당 사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신입 사원 연수가 다음 주 월요일에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에 오늘 합격자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 점 참고하시고, 지원자들에 대한 평가 기준은…….”

같은 시각.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겨울이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송지유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후후, 많이 긴장되시나 보네요?”

“하하, 부끄럽게도 그렇습니다. 대한 그룹 면접시험이 까다롭고 어렵다는 얘기를 들어서 더 그런 거 같아요.”

“예상치 못한 돌발 질문 한두 개 빼고는 다른 곳과 별 차이 없으니까,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최준하는 가슴 저 밑에서 짜증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무시하는 것까지는 참으려 했지만, 자신을 두고 다른 남자와 대화하는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 놈은 어디서 굴러온 돌멩이보다도 못한 녀석이라고 아버지에게 들었다.

결국 보다 못한 그가 입을 열었다.

“둘이 얘기하는 거 보니까, 서로 예전부터 알고 있었나 봅니다?”

“아, 안녕하세요. 예전부터는 아니고, 얼마 전에 알게 됐습니다.”

최준하가 갑작스레 대화에 끼어들자, 송지유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노련하게 표정을 감추고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준하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음, 혹시 한겨울 씨와 제가 전에 마주친 적이 있나요?”

“아뇨. 아마 오늘이 초면일 겁니다.”

“오, 그럼 부모님이 좀 대단한 분이신가 봅니다?”

“…저를 낳고 길러 주셨으니 존경할 만한 분들이시죠.”

“하하하, 겨울 씨도 참. 그런 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겨울은 주먹을 꽉 쥐었다.

괜히 자신의 부모님을 무시하는 것 같아 울컥했기 때문이다.

겨울은 주머니 속 빈 우황청심환 병을 움켜쥐었다.

‘참자. 지금은 참는 거다.’

겨울의 표정이 굳은 걸 보자, 최준하는 피식 얄미운 웃음을 얼굴에 띠었다.

“제 소개를 드리자면, 대한 그룹의 최성진 부회장님의 외아들인 최준하라고 합니다. 겨울 씨가 면접에 통과할지는 모르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되면 잘 부탁드립니다.”

“…한겨울입니다.”

“면접자 명단을 볼 때부터 신경 쓰였는데, 혹시 겨울에 태어나셨습니까?”

겨울은 지금까지 수천 번 가까이 이 같은 질문을 들어서 이제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다.

매몰차게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지만, 일생일대의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쓸데없는 소란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네. 며칠 전에 생일이었습니다.”

“오, 그럼 형제나 남매분의 이름은 봄, 여름, 가을이겠네요?”

겨울은 최준하가 어떤 의도로 질문했는지 모르지 않았다.

조롱.

“네. 여동생이 그런 이름입니다.”

최준하와 더 말을 섞기 싫던 겨울은 고개를 돌렸다.

이제 곧 면접이 시작될 테고, 괜한 시비로 컨디션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이 시선을 피하자, 최준하는 오히려 더 신이 나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 부모님의 작명 센스가 정말 대단하시군요. 발상 자체가 남다르신 거 같습니다. 겨울 씨가 이렇게 면접을 볼 수 있는 것도 그런 남다른 발상을 물려받은 덕이군요.”

최준하의 말에 겨울은 움찔하며 몸을 잠시 떨었다.

그러고는 슬쩍 송지유를 쳐다보았지만, 그녀 역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디서 정보가 흘러들어 간 듯했다.

겨울은 수치스러움과 동시에 자꾸 부모님을 걸고넘어지는 최준하의 말에 화가 났다.

“…그게 무슨 소리이십니까?”

“뭐긴요.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는 소리죠. 소시민답게 추한… 이거, 실례했습니다. 소시민답게 아주 훌륭한 마음가짐이라는 겁니다. 저는 정말로 상상도 못한 방법이거든요.”

쿠당당!

겨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최준하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를 자신의 얼굴 가까이로 끌어당겼다.

축구 선수를 준비하던 겨울의 근력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최준하는 힘없이 끌려갔다.

“하… 하하, 이러다 한 대 치겠습니다? 여기가 어디고, 제가 누군지 알고서 행동하는 거 맞으십니까?”

알고 있다.

지금 겨울이 멱살 잡고 있는 사람이 대한 그룹 부회장의 아들인 것도, 그리고 자신이 그 대한 그룹 면접장에 와 있다는 것도.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겨울은 참을 수 없었다.

괜히 힘만 더 들어가 겨울의 손은 부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본 최준하는 겨울이 행동이 먼저 앞서는 겁쟁이라고 판단했다.

씨익, 얼굴에 비웃음을 띠며 최준하는 그를 더 도발했다.

“이렇게 생각 없이 행동하라고 부모가 가르쳤나 봅니다?”

퍽!

쿠당탕탕!

결국 겨울은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최준하는 주먹에 얼굴을 맞고 뒤로 나뒹굴었다.

철제 의자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큰 소리가 일었다.

덜컹.

“곧 면접이 시작되니 조용히… 아니, 이게 무슨…….”

대기실이 소란스러워 이를 조용히 시키려 면접 진행 요원이 들어왔다가 깜짝 놀랐다.

한 명은 의자 사이에서 나뒹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를 죽일 듯이 내려다보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대기실 구석에서 싸늘한 눈빛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면접 보러 가서 싸우고 쫓겨났다고?]

“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늦은 시각, 겨울은 이불을 덮은 채 정호영과 통화하고 있었다.

[왜? 어쩌다가? 누구랑?]

“하, 말하자면 긴데… 아무튼 내일부터 대타 안 나와도 된다고 말하려고 전화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내일 알바 들어가기 전에 나랑 얘기 좀 해.]

“그래. 만나서 얘기해 줄게.”

뚝.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머리맡에 내려놓은 겨울은 멍하니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다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를 쥐어 싸맸다.

“아, 내가 왜 그랬지. 아냐, 난 잘못한 것 없어. 녀석은 맞을 만했지.”

최준하의 이죽거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다시 화가 나는 겨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을 보고 실망한 송지유의 모습이 떠오르자 우울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자신을 위해 애써 기회를 마련해 준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부터 아침상을 마련해 주고 응원해 준 가을에게도.

“하아, 지금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이냐. 잠이나 자자.”

한동안 뒤척거리며 설쳤지만, 끝내 겨울은 잠에 들 수 있었다.

* * *

“오빠, 일어나! 면접 안 가?”

“응? 뭔 소리야? 면접 어제 망쳤다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 진짜로 늦는다고!”

가을이 이불을 뺏으며 소리쳤다.

겨울은 어안이 벙벙했다.

가을이 이렇게 질 낮은 장난을 칠 아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어제는 자신의 못난 행동을 혼내면서도 눈치를 보지 않던가.

그런데 당장 다음 날에 이런 장난을 치다니.

“…아직 7시밖에 안 됐는데?”

“원래 면접장에 한 시간 전에는 도착하는 게 기본이야. 빨리 샤워하고 나와서 밥 먹어.”

기묘한 기시감이 겨울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화장실로 들어가 씻었다.

그렇게 가을이 준비한 아침상까지 먹고 옷까지 입었을 때였다.

겨울이 어디까지 가을의 장단에 맞춰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뭐냐?”

“마시는 우황청심환. 면접 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마시면 효과가 직방이래.”

“…너, 정말로 장난치는 거 아니야?”

“장난은 내가 아니라 오빠가 치고 있지. 면접장 가서도 헛소리하고 그러면 안 될 텐데. 걱정이다, 걱정.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떨어져도 상관없으니까 편하게 보고 와.”

“…다녀올게.”

“정신 차리고! 오빠, 파이팅!”

핸드폰에도 분명 면접날인 1월 17일로 표시가 되었음에도 겨울은 이 모든 것을 믿기 어려웠다.

그것은 겨울이 면접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내가 어제로, 아니, 오늘로 돌아온 건가? 아니면 대한 그룹 면접이 너무 부담돼서 그런 꿈을 꾼 건가?’

과거로 돌아왔다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이고, 그렇다고 꿈을 꿨다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한참을 혼란스러워하던 겨울은 한 인물을 마주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제 소개를 드리자면, 대한 그룹의 최성진 부회장님의 외아들인 최준하라고 합니다. 겨울 씨가 면접에 통과할지는 모르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되면 잘 부탁드립니다.”

“…한겨울입니다.”

“면접자 명단을 볼 때부터 신경 쓰였는데, 혹시 겨울에 태어나셨습니까?”

겨울은 지금까지 수천 번 가까이, 당장 어제도 들은 이 질문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어제처럼 매몰차게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지만, 기적처럼 주어진 이 기회를 다시 망치고 싶지 않았다.

“네. 며칠 전에 생일이었습니다.”

“오, 그럼 형제나 남매분의 이름은 봄, 여름, 가을이겠네요?”

이번에 겨울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제법 큰 덩치의 겨울이 그렇게 쳐다보자, 최준하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네. 여동생이 그런 이름입니다.”

“하, 하하… 부모님의 작명 센스가 정말 대단하시군요.”

으득.

겨울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시선을 돌리고 있던 송지유 역시 놀란 듯 겨울을 쳐다보았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부모님 얘기가 나오면 참지 않겠습니다.”

이미 한 번 들은 조롱이지만, 그래도 부모님 이야기는 참기가 어려웠다.

분명 일생일대의 기회인 것은 맞지만, 부모님에 대한 놀림까지 받으며 쟁취할 기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겨울의 단호한 말투에 움찔한 최준하는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지원자분들, 들어오세요.”

잠시 후, 면접 진행 요원이 대기실 문을 열고 세 명에게 말했다.

“…무슨 일 있었나요?”

진행 요원이 대기실에 흐르는 싸늘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슬며시 입을 열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큼큼, 제가 나눠 주는 번호표를 왼쪽 가슴에 붙여 주시기 바랍니다.”

1번은 최준하, 2번은 송지유, 3번은 겨울이었다.

세 사람이 번호표를 왼쪽 가슴에 붙이는 것을 확인한 진행 요원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지원자분들은 저를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면접장 문을 열고 들어간 세 사람은 면접 위원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자리에 착석했다.

겨울은 안도와 긴장이 섞인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주어진 기회를 이번만큼은 쟁취하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겨울이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면접은 시작되었다.

송지유의 말대로 면접은 다른 회사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기본적인 자기소개와 형식적인 질문들.

겨울이 안심하며 긴장을 푸려던 찰나,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송훈석 회장이 입을 열었다.

“3번 지원자.”

“네!”

“3번 지원자는 자신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 순간, 겨울은 이 질문이 송지유가 말한 돌발 질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면접장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송훈석 회장과 자신에게로 모였다.

침을 꼴깍 삼킨 겨울은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적극성이 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적극성이라…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능동적이고 빠른 행동이 요즘 사회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이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서 생각보다는 행동이, 행동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일 수 있는 적극성이 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은 속으로 가을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우황청심환 때문인지, 아침에 먹은 밥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말이 술술 나왔기 때문이다.

“흠, 오히려 그런 적극성이 단점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신중을 요하는 일에는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외의 일에는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저에게는 특정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중하지 않게 일하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네? 아, 아닙니다! 어떤 일이든 신중을 기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럼 3번 지원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거 아닙니까?”

“…….”

억지스러운 말꼬리 잡기에 겨울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말을 끝내기는 싫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매사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잘 들었습니다. 그럼 장점 말고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세요.”

겨울은 속으로 자신의 머리를 재촉했다.

단점이야 차고도 넘쳤다.

다만, 어떤 단점을 말해야 면접 위원들에게 점수를 딸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제 단점은…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온다는 겁니다.”

“음? 앞에서 말한 장점과 같은 내용 아닙니까?”

“맞습니다.”

“…….”

“앞에서 말한 장점은 업무에 있어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외에는 단점이라고 여겨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그의 질문에 겨울은 잠시 망설이며 송지유를 쳐다보았다.

단점에 대한 예시로 교통사고를 언급하려는 것이라 짐작한 송지유는 고개를 슬쩍 끄덕여 주었다.

“6년 전에 저는 사고가 난 버스에서 사람들을 구출한 적이 있습니다. 자랑스러울 만한 일이지만, 저는 다리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사람들을 구하느라 본래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제가 조금만이라도 제 생각을 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건… 안타까운 일이군요.”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가 날 뻔한 학생을 구하려다 제가 대신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깊게 고민하지 않고 욕심만으로 가해자에게 합의금 대신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겨울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송지유가 낸 교통사고임을 알고 있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궁금해진 그는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경청했다.

“생각보다 행동이, 행동보다 마음이 먼저 앞서는 것. 그간 취업 준비를 하면서 여러 직장을 전전했습니다. 고작 아르바이트였지만, 제 일처리를 보고 좋아하지 않던 점장님 혹은 사장님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게, 뭐든 빠르게 움직이고 거짓 없이 솔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점으로도 단점으로도 같은 얘기를 한 겁니다.”

그때, 옆에서 피식,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겨울이 고개를 슬쩍 돌려 보자, 최준하가 가소롭다는 듯한 비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름 인생을 고찰하며 진지한 이야기를 한 것인데, 최준하가 비웃자 겨울은 화가 나면서도 괜히 민망해졌다.

“이상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어쩐지 싸늘한 송훈석 회장의 목소리였다.

겨울은 괜히 솔직하게 이야기했다며 후회했지만, 이미 뒤늦은 자책일 뿐이었다.

더욱이 옆에서 비웃는 최준하 때문에 기분이 더욱 좋지 못했다.

미간을 찌푸린 송훈석 회장은 이번엔 최준하를 향해 질문했다.

이번에 사내에서 신입 사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의 내용이었다.

“1번 지원자, 대한 그룹이 글로벌 넘버원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조금이라도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혼쭐을 내 줄 생각이었지만, 최준하는 예상과 달리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오히려 송훈석 회장의 질문이 달가운 듯 기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꾸준한 경영 혁신과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부터 꾸준히 생각해 오던 부분이라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각 계열사별로 말씀을 드리자면, 대한전자의 경우에는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 적극 투자해야 하고, 대한자동차의 경우에는…….”

“그만.”

낮고 차분하지만, 공간을 울리는 위압감 서린 목소리.

송훈석 회장은 기분이 상당히 언짢아졌다.

지금 최준하가 말하는 내용은 대상으로 뽑힌 보고서의 내용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전부터 꾸준히 생각해 오던 부분이라’는 부분까지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최성진 부회장…….’

송훈석 회장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굳이 자신의 아들을 면접시험에서 돋보이게 하기 위해 중장기 사업 계획으로 뽑혀 대외비가 된 문서를 노출시킨 것이 너무도 괘씸했다.

송훈석 회장은 말없이 최준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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