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4화 (4/328)

[4화] 운명의 날 (1)

드르륵―

계산대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진동했다.

겨울은 서둘러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굳이 발신자를 확인하지 않아도 송지유가 걸어 온 전화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네, 송지유 씨.”

[겨울 씨, 정말 미안해서 어쩌죠?]

겨울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즉시 송지유가 전에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자기가 봐도 초라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때문은 아닐까 불안한 겨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겨울은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애초에 대가나 큰 기대를 바라고 정한 결정은 아니지 않은가.

이것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겨울은 덤덤하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네? 아니, 그게 아니라… 뭔가 겨울 씨가 오해하신 것 같네요.]

“오해요?”

[다름이 아니라…….]

이어진 송지유의 말은 겨울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부족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 때문에 면접을 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문득 겨울은 걱정되었다.

대한 그룹의 면접시험이 취직 준비생들 사이에서 까다롭고 어렵다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고민보다도 자신을 위해 힘써 준 송지유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 때였다.

“송지유 씨, 저를 위해 이렇게나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서류 전형에 통과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서류 전형에 통과했다는 이메일이 아마 내일 오전 중으로 발송될 거예요. 면접일도 같이 적혀 있으니까, 꼭 확인해 주세요.]

송지유와 통화를 끝낸 겨울은 어둑어둑해지는 창밖을 쳐다보며 한숨 섞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알바는 어떡하지?”

“겨울 총각, 갑자기 쉬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실려 있었다.

그러나 겨울은 그녀가 짜증내는 이유를 알고, 대안도 진즉에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미안하면 다예요? 진즉에 말했으면 좋았을 거 아니에요. 옆에는 누구예요? 친구?”

겨울의 뒤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20대 중반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겨울이 친구 정호영입니다. 잠시 대타로 일하려고 왔습니다.”

“어머, 그러시구나. 내일부터 일해야 하는데, 가능해요?”

정호영의 정중한 인사에 주인아주머니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장 오늘 저녁부터도 가능합니다. 겨울이 이 친구가 최근에 좋은 기회가 생겨서 갑작스레 쉬게 된 거니, 너무 속상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호호, 내가 언제 속상해했다고 그래. 총각 말 참 잘하네.”

내일부터 출근하기로 다짐을 받은 주인아주머니는 만족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겨울은 그 모습을 보고 안심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 갑작스레 바뀐 주인아주머니의 태세에 미간을 찌푸렸다.

“뭘 그렇게 인상 쓰고 계시나.”

“그냥. 나한테는 엄청 뭐라 하더니, 너한테는 알랑방귀 뀌는 게 조금 그래서.”

“에이, 그거야 당연하지. 이제 나갈 사람하고 들어올 사람한테 하는 태도가 같을 수가 있냐. 게다가… 응, 내가 좀 잘생겨야 말이지.”

능글맞은 정호영의 말투에 겨울은 웃음을 터트렸다.

“크큭, 그 말이 맞지. 우리 호영이가 아줌마들 사이에서 잘나가지. 근데 왜 소개팅이나 미팅만 나가면 쪽박을 찰까?”

“거, 갑자기 팩트로 명치 때리기 있냐. 그래도 술자리까지는 잘 가거든?”

“어휴, 말을 더 해서 뭐 하냐. 커피 사 줄 테니까 가자.”

둘은 편의점에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른 편의점에서도 알바해 봤으니까, 설명은 따로 필요 없지?”

“야, 지금 인수인계가 중요하냐? 대한 그룹 면접은 무슨 얘기야? 그거나 좀 말해 봐.”

정호영이 빨대로 커피를 쪼옥 빨아들이며 눈을 빛냈다.

“말해 줬잖아. 교통사고 합의금 대신에 입사시켜 달라고 했다고.”

“아니, 진짜라고?”

“그럼 진짜지, 가짜냐.”

“와… 난 또 네가 술 먹고 취해서 하는 말인 줄 알았지.”

“내가 너냐.”

정호영이 입을 떡 벌린 채 감탄하고 있자, 겨울은 애써 시선을 돌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일류 대학을 졸업한 정호영도 대한 그룹에 취직하지 못했는데, 고작 지방 대학을 졸업한 자신이 떼써서 얻은 결과에 창피했기 때문이다.

“부럽다, 짜샤. 잘되든 안 되든 꼭 밥 사라. 보니까 편의점 주인아줌마 성격이 만만치 않아 보이던데.”

“그래야지. 미안하다.”

“뭐가 미안하냐. 이럴 땐 미안하다가 아니라 고맙다고 하는 거야.”

“…고마워.”

겨울은 다른 건 몰라도 친구 농사는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커피를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 * *

다음 날 오전.

겨울은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받은 메일함을 확인했다.

대한 그룹 인사팀에서 보내온 메일이 상단에 위치해 있었다.

서류 전형에 통과했다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이리라.

겨울은 재빨리 이메일을 클릭했다.

― 안녕하세요. 대한 그룹 채용 담당자입니다.

2018년도 상반기 대한 그룹 신입 사원 채용에 지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귀하는 대한 그룹 신입 사원 채용 1차 서류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면접시험은 1월 17일…….

이메일을 읽어 내리던 겨울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면접시험까지 불과 하루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고, 돌아 버리겠네.”

때마침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오던 가을이 겨울의 모습을 보고 물어 왔다.

“뭐야? 무슨 일인데?”

“나, 모레 오전 10시에 면접 본다.”

“무슨 소리야? 어떤 회사가 면접 준비 기간을 하루밖에 안 줘? 진짜야?”

“네가 직접 봐.”

겨울이 노트북을 가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메일을 확인한 가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꺼냈다.

“그 여자한테 연락은 해 봤어?”

“아니. 나도 방금 확인했어. 지금 연락해 봐야겠다.”

겨울은 곧장 송지유에게 전화를 걸어 면접시험이 모레 진행되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저도 인사팀에 물어봤는데, 신입 사원 연수가 1월 22일로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네요.]

“아, 그렇군요.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그럼 면접 준비 잘하시고, 모레 면접장에서 볼게요.]

“어라? 송지유 씨가 면접 위원인가요?”

[호호, 아니에요. 저도 이번에 대한 그룹에 입사 원서를 냈어요.]

“네? 회장님 따님도 면접을 본다고요?”

[그럼요. 이번에 무리한 부탁을 한 대가로 저도 같이 면접을 보게 되었어요.]

“역시 무리한 부탁이 맞았군요. 미안합니다.”

[호호, 괜찮아요. 입사하시고 나서 저한테 잘해 주시면 돼요. 그럼 면접일 날 봐요.]

겨울이 전화를 끊자, 가을이 질문했다.

“오빠, 그 여자도 면접 본대?”

“그렇다고 하더라.”

“신기하네. 특채로 충분히 입사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절차를 밟으려는 이유가 뭐지?”

“나 때문이라 하더라. 뭔가 사정이 있나 봐.”

“흠, 역시 돈 많은 집안의 사람들은 뭔가 이해하기 힘드네.”

* * *

그날 밤.

강남의 고급 주점에서 최성진 부회장이 인사 담당 박철헌 사장과 양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박 사장, 송지유가 우리 회사에 입사하려는 이유를 알아냈나?”

“회장님과 딜을 한 것 같습니다.”

“딜이라니?”

“송지유가 들이받은 한겨울이라는 놈을 서류 전형에 집어넣었다는군요.”

박철헌 사장은 파악한 내용을 최성진 부회장에게 상세하게 보고했다.

“그래서, 그 한겨울이라는 놈이 우리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 자질은 되나?”

“아닙니다. 자질은커녕 그냥 쓰레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송지유가 1년 전부터 미국 유학을 위해서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쓰레기에 불과한 놈을 입사시키기 위해서 미국 유학을 포기했다니.

도저히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박 사장, 다른 이유가 있을 가능성은 없나?”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없습니다. 있다 하더라도 굳이 말하자면 변덕… 정도일 거 같습니다.”

“지유, 그 아이가 행동이 가볍긴 해도 변덕을 부릴 만한 아이는 아니지. 그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가?”

“알면서 왜 그러십니까?”

“하하하!”

최성진 부회장이 룸이 떠나가도록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박철헌 사장은 최성진 부회장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또 다른 아부의 말을 꺼내들었다.

“부회장님, 저한테 기막힌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그래. 한번 얘기해 봐.”

“저는 아드님이…….”

최성진 부회장은 그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만약에 박철헌 사장의 아이디어가 제대로 실현된다면…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 단추부터 잘 꿰어야 했다.

“박 사장 말대로라면 면접시험에서 준하가 돋보여야 할 텐데, 방법은 있겠지?”

박철헌 사장은 최성진 부회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챘다.

“물론입니다, 부회장님. 아드님께서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제가 알아서 조치를 취해 놓겠습니다.”

“하하, 아주 믿음직스러워. 그렇게 하라고.”

* * *

면접시험 당일 새벽.

겨울은 집 근처에 위치한 공원의 트랙을 돌면서 오늘 치러질 면접시험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훅훅… 한겨울, 긴장하지 마. 어차피 준비된 것도 없고, 그냥 있는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면 돼. 쓸데없이 허세 부리지 말자.”

그렇게 겨울이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가을은 벌써 아침 식사를 상에 차려 놓고 있었다.

“한가을, 기특하네? 오빠 면접 본다고 꼭두새벽부터 아침도 준비해 놓고?”

“까불지 말고, 빨리 먹고 씻어. 지금 시간 빠듯한 거 몰라?”

“이제 겨우 7시밖에 안 됐잖아.”

“원래 면접장에 한 시간 전에는 도착하는 게 기본이야. 빨리 샤워하고 나와.”

모든 준비를 끝낸 겨울이 집을 나서려고 할 때, 가을이 쫓아와서 작은 병 하나를 건네주었다.

“뭐냐?”

“마시는 우황청심환. 면접 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마시면 효과가 직방이래.”

“고맙다.”

“오빠, 떨어져도 상관없으니까, 편하게 보고 와.”

“어. 다녀올게.”

“오빠, 파이팅!”

* * *

한편, 송훈석 회장은 집무실에서 서동호 실장과 느긋하게 티타임을 가지는 중이었다.

“서 실장, 오늘 면접시험에 대해서 보고해 봐.”

“면접 시작 시간은 오전 10시이고, 장소는 임원 회의실입니다. 면접시험 위원장은 제가 맡기로 했고, 남은 심사관은 인사 담당 박철헌 사장과 정기용 부사장, 그리고 외부 인사로 S대학교의 최강훈 교수와 손석인 교수가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가만…….”

송훈석 회장이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말을 중단시켰다.

반면에 서동호 실장은 자신이 부린 꼼수를 들켰나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변명거리는 미리 준비해 놨지만, 송훈석 회장에게 먹힐지가 의문이었다.

평소 느긋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가 때론 사나운 호랑이 같다는 사실을 서동호 실장은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송훈석 회장이 심사숙고를 마쳤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 실장, 최 교수한테 합의금으로 얼마를 지급했나?”

“받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면접시험 위원으로 위촉한 건가?”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책정된 수고비보다 두 배의 비용을 지불하도록 해.”

서동호 실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이야, 박 사장한테 얘기해서 자리 하나 더 만들어 놓으라고 해.”

“네?”

“우리 딸이 제대로 면접시험을 보는지 지켜봐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작게 미소를 띠며 차를 홀짝였다.

평소에도 차를 좋아하는 그지만, 오늘따라 더 맛있게 느껴지는 송훈석 회장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 녀석이 면접시험을 통과할 수 있어 보이나?”

서동호 실장은 송훈석 회장이 면접 위원으로 참여하기 전까지는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와 최강훈 교수가 겨울의 편을 들어줄 예정이기 때문에.

하지만 송훈석 회장이라는 변수가 생김으로 인해서 오리무중인 상태로 변해 버렸다.

송훈석 회장이 면접 위원으로 참여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다만, 그럴 때마다 합격자의 수는 급감했다.

면접 질문이 예측 불가능한 것은 물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었기 때문이다.

서동호 실장은 이제는 운에 맡기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밝혔다.

“회장님께서 어떻게 하시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봅니다.”

“내가 그 녀석에게 할 도리는 다했다고 보네. 이 점에 대해서는 이의 없지?”

“네, 물론입니다.”

* * *

최준하는 가슴 저 밑에서 짜증이 밀려왔다.

방금 전, 로비에서 늘 그를 본체만체하면서 무시하던 송지유를 마주쳤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녀는 가벼운 인사만 건네 왔을 뿐, 다른 어떠한 사적인 대화도 하지 않았다.

어금니를 굳게 깨문 최준하는 아버지인 최성진 부회장 집무실로 직행했다.

그러고는 온갖 짜증을 늘어놓았다.

“지유는 신경 꺼라. 지금 걔한테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면접시험에 집중해라.”

“그게 무슨 소리예요? 면접은 그냥 통과 의례 아닌가요?”

최성진 부회장도 최준하와 같이 그저 통과의례라 생각했지만, 방금 전 송훈석 회장이 면접 위원으로 참여한다는 얘기를 듣고 만만히 생각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만약 송훈석 회장의 송곳 같은 질문을 준하가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해 송지유와 그 쓰레기 앞에서 망신이라도 당한다면…….

최성진 부회장은 이를 악물었다.

“하여간 망할 딸 바보가…….”

“네?”

“아무것도 아니다. 송 회장이 면접 위원으로 참여한다고 하니, 긴장해라.”

“긴장까지 할 것도 없어요. 오히려 잘됐죠.”

“흠, 잘되다니?”

“저의 진면목을 회장님께 각인시켜 줄 기회잖아요.”

“으하하하!”

아들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크게 만족한 최성진 부회장이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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